삼거리 정육점은 '골목길 꽃잔치집'

[인천 골목길마실 54] 빗물 흐르는 골목길 계단을 오르내리며

등록 2009.07.17 20:36수정 2009.07.17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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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줄기가 굵어집니다. 아침에는 가늘게 흩뿌리더니, 낮나절부터는 굵직굵직해서, 지붕을 때리는 소리, 길바닥을 때리는 소리, 골목길 거니는 사람 우산을 튕기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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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나오는 길목, 주인집 할아버지가 키우는 장미는 새롭게 빨간 꽃을 피우고, 우리 집을 지나가는 분이 쓴 귤빛 우산하고 서로서로 산뜻하게 어울립니다. ⓒ 최종규


엊그제 비가 내릴 때에는 후덥지근했는데, 오늘은 시원합니다. 아기는 집에서 벌거벗은 채로 뒹굴고, 아기 아빠는 도서관 문을 열고자 우산을 받고 골목 사이를 사뿐사뿐 누비면서 일터로 갑니다. 오늘은 어느 골목으로 해서 갈까 헤아려 보다가, 동인천역 뒤쪽 송현동으로 가로지르기로 합니다. 이곳, 동인천역 뒤쪽은 '북광장 재개발 사업'을 한다면서, 이 둘레에 있는 골목가게와 골목집을 모두 허물고 있습니다. 이주보상비를 받은 가게는 옮겨 가고, 아직 이주보상이 안 된 집과 가게는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인천시는 2009년은 '인천 관광의 해'로 삼고 '인천 도시축전'을 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처럼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밀어붙이는 재개발 정책과 철거는 바깥손님한테 얼마나 보기 좋을는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바깥손님한테 내보이기 앞서, 이 땅에서 뿌리내리며 살아왔던 사람들 어제와 오늘 앞에 무슨 이야기를 남기며 앞날에는 어떤 이야기를 아로새기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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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리는 골목가게와 골목집들 빈터. 저 뒤 아파트 같은 건물이 새로 서거나, 광장으로 바뀐다고 하는데.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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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으로 바뀌면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올까요? 광장으로 만들 때에는 누가 이곳에서 무엇을 즐기라고 하는 광장이 될까요? 물텀벙집 간판은 이제 불이 꺼졌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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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보상을 받지 않고 남아 있는 골목집과 골목병원. ⓒ 최종규


허문다며 건물 안팎으로 죄다 뜯어 놓고 부수어 버린 건물 한 곳으로 올라가서 물끄러미 골목길을 내려다봅니다. 송현동 골목에서 송현시장을 지나 수도국산 배수지 언덕받이에 지어진 주택공사 아파트 무리가 한눈에 보입니다. 저 너머로도 인천 앞바다가 있으나, 높직한 아파트는 다른 데에서는 바다를 바라볼 수 없도록 합니다. 자유공원 둘레 송월동에서 바라볼 때에도 바다가 아파트한테 막히고, 도원동 황골고개에서 바라볼 때에도 바다가 아파트한테 막힙니다. 아직 북성동과 선린동 언덕받이에서는 아파트한테 막히지 않지만, 새로 지은 호텔이 눈길을 떡하니 가로막는 데다가 숱한 타워크레인이 바다를 못 보도록 합니다. 예전에는 웬만한 언덕받이나 골목집 옥상에서 바라볼 수 있던 바다였는데, 이제는 아파트 높은층에 깃들지 않고서는 바다를 바라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파트 높은층에 깃든다 하여도 먹고살기 바쁜 나머지 바다를 바라볼 겨를이 없는 우리들입니다.

며칠 뒤면 허물리겠구나 싶은 건물에서 내려와 송현시장을 가로지릅니다. 송현동에서 송림1동 골목길로 접어들고, 산업도로 공사터를 끼고 수도국산 배수지 언덕으로 올라서는 골목계단을 하나하나 딛습니다. 언덕받이로 다 올라와서 가쁜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보니, 금곡동과 창영동이 둘러싸는 배다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이내 송림2동으로 건너갑니다. 길바닥에는 '여기는 송현동, 여기는 송림1동, 여기는 송림2동'이라 하는 금이 그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저, 골목집 문패와 주소패를 흘깃흘깃 쳐다보면서, 여기는 무슨 동 몇 번지이고, 저기는 무슨 동 몇 번지이구나를 헤아리면서 머리속으로 길그림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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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정육점 앞에서. ⓒ 최종규


번지ㆍ통ㆍ반을 속으로 읊는 가운데, 송림1동에 자리한 '삼거리정육점' 앞에 닿습니다. 간판은 정육점이되, 거의 꽃집처럼 이루어져 있는 산뜻한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봅니다. 늘 지나다니는 길임에도, 이 앞을 지날 때면 언제나 넋을 잃고 한참 서 있습니다. 오늘도 우산을 받는 채로 비 내리는 골목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빗방울에 흔들리는 골목꽃과 골목나무를 물끄러미 마주합니다. 골목마다 빗물이 조르르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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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이 흐르는 계단을 천천히 하나씩 딛습니다. 집과 집 사이를 잇는 계단은 띄엄띄엄 비스듬하게 이어져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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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집에 깃든 오래된 동네 교회 앞에도 언제나처럼 꽃그릇으로 잔치를 이룹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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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골목길에는 황매화고 밝고 맑은 꽃망울을 잔뜩 터뜨리고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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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로 덮은 골목 한쪽 가에서 제법 굵게 뿌리를 박고 있는 골목나무는, 동네 어르신 몇 분이 장판을 깔고 앉아서 쉴 만큼 알맞게 그늘을 드리웁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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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이제나 골목길하면 ‘계단’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계단이 있기에 차가 들어올 수 없고, 계단이 있으니 다리 아픈 이는 오르내리기 고단하고. 그러면서 집값이 쌀 수밖에 없고.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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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다 오른 다음 뒤를 돌아보니, 골목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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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평상은 비를 맞습니다. 골목 할머니들은 문이 열린 골목집에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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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 옆 평상도 비를 맞습니다. 미용실을 알리는 돌돌이는 빗속에도 잘 돌아갑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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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을 머금고 있는 골목길 고추포기. 웬만한 골목길에서는 먼 곳 하늘을 아파트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오늘날 모습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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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한켠에 어김없이 마련된 텃밭. 이 텃밭 한쪽에 놓인 호미.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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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도라지꽃은 차츰 지고 있으나, 아직도 환하게 피어 있는 골목을 곳곳에서 만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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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이 넘치지 않도록 마련된 골목길 도랑.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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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골목 한복판에 이와 같은 돌이 있으면서 하수도가 흘렀습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나무전봇대. 이제 나무전봇대는 동강나고 시멘트 전봇대가 새로 서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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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되었어도 깔끔하게 붙어 있는 동네 이발관 앞에서 잠깐 발걸음을 멈춥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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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마다 꽃잔치를 이루는 어여쁜 집이 어김없이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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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워진 마음은, 골목길 해바라기를 보며 살포시 풀립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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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송림1동, 삼거리정육점 …, 알고 보면 거의 꽃집과 같은 골목가게 앞에 하염없이 선 채로 비를 느끼면서 살며시 풀어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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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한 송이 느긋하게 필 수 없는 재개발이라 한다면, 우리 삶을 아름다이 채울 수 없는 삽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골목길 대추나무 앞에서 꾸벅 절을 합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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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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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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