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5천만원 없이 결혼한 나, 별종인가

[결혼 전세금 논란③] 결혼 2개월차 남편이 본 집 값

등록 2009.08.11 14:05수정 2009.08.11 14:05
0
원고료주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최근 한 결혼정보회사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혼 남성의 45%, 여성의 37%가 '자택의 유무가 결혼 걸림돌이 된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또 남성의 상당수가 최소 전세자금으로 1억5천만원을 준비해야 결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최근 결혼한 남성과 여성, 결혼 적령기 아들을 둔 부모 입장에서 결혼 전세자금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a

상계역 부근 아파트에서 내려다본 상계3동 주택가. ⓒ 권우성


평범한 남성이 1억5천만원을 모으는 데 얼마의 기간이 걸릴까? 1년? 2년? 주식이나 재테크 수단 없이 '적금'만 이용해서 모은다면, 모르긴 몰라도 3년 안에 5천만원 모으기도 힘들 것이다. 물론, '월급을 얼마나 받는가'가 문제지만 3년 동안 한 달에 100만원씩 꼬박 모아도 3600만원이니.

그런데 요즘 남성들은 결혼 적령기인 30대 초중반까지 1억5천만원을 모아야 한단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20대 후반에 첫 직장에 취직하는 것을 감안하면, 5년 이내에 1억이 넘는 큰돈을 모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갑자기 왜 뜬금없이 '돈', '돈' 하나 싶을 테지만, 최근 한 결혼정보업체가 미혼 남녀를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그렇다.

이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택의 유무가 결혼의 걸림돌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남성의 45
%, 여성의 37%가 '그렇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결혼 시 자택 마련 비용으로 얼마가 적절한가'라는 질문에 남성의 38%가 '8천만원~1억원', 29%가 '1억~1억5천만원'이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혼 전세자금이 1억5천?..."정말 씁쓸하구만"

사실 이런 결과가 나올 때마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30대 초반 남성인 나는 착잡하기만 하다. 나 이외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엔 정규직 일자리도 감소했고 취직을 한다 해도 인턴이나 비정규직이다. 막상 정규직으로 취직을 해도 초봉 2000만원이 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런데, 결혼을 하려면 억대의 돈을 가지고 있어야 하다니….

물론 이 설문조사를 무작정 신뢰하기도 힘들다. 여론조사 대상자가 587명으로(남 281명, 여 306명), 아주 적은데다 설문 대상자들의 소득수준 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서울 도심에서 전셋집을 구하려면 적어도 1억5천만원~2억원 정도의 큰돈이 있어야 하는 건 사실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4년제 대졸자가 27살에 중소기업에 취업해 연봉 2000만원을 받기 시작했다고 가정하고 모을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되는지 따져보자. 2000만원 중 절반은 쓰고 절반을 꼬박 모아도 10년은 넘어야 1억원이란 돈을 손에 쥘 수 있다. 결론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 상황이 이러니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남성에겐 '결혼'이 부담으로 다가오는 건 사실이다.

나도 지난 6월에 결혼했지만, 여론조사에 나온 것처럼 1억5천만원을 준비해 놓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놀지 않고 적금과 예금을 털어 결혼준비를 했는데, 신혼집 마련에는 아내와 내가 절반씩 부담해 6천만원 정도 돈으로 집 전세금을 준비했다. 둘이 합한 금액으로는 조금 부족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고, 매달 얼마 되지 않은 월급에서 생활비와 대출금을 갚고 나면, 간단한 문화생활을 즐기기도 빠듯하다. 이것도 서울이 아닌 경기도 외곽에 집을 얻어 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허탈감' 조장하는 여론조사 결과는 '공해'

a

서울시 강남구 개포2동 개포주공2단지 아파트. ⓒ 권우성


대부분의 신혼부부들이 우리와 비슷한 환경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여론조사 결과나 관련 뉴스가 보도될 때마다 '언론이나 미디어, 관련 업계에서 여론을 너무 부추긴다'라는 생각이 든다.

매주 일요일 밤 10시에 방송하는 KBS2 <개그콘서트>를 볼 때도 이런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2009 봉숭아학당' 행복전도사가 나올 때가 그런데, 앳된 남성 개그맨은 매주 다음과 같은 비슷한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집에 다들 10억쯤은 있잖아요~"
"차 바꾸고 싶다구요? 가족끼리 차 바꿔 타면 되잖아요~"

이런 대사를 어떻게 봐야할까. 이 코너가 끝나면 항상 허탈한 웃음 밖에 나지 않았다. 30대 초반인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10억원은 고사하고 당장 생활비로 쓴 신용카드 요금이 통장에서 빠져나가면, 또 마이너스 생활을 해야 한다. 대다수 서민들의 정서가 이럴 텐데….

물론 세태를 비꼬면서 풍자하는 '개그'라는 점에서 이해는 가지만, 굳이 이렇게 자극적인 소재를 쓸 필요가 있을까. 코미디인데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방송, 그것도 대중 속에 물질 만능주의와 허탈감을 조장하는 이런 내용은 분명 공기(公器)가 아니라 공해다.

너무나 당연한 교훈, 결혼은 돈이 아니라 '마음'

앞서 나온 설문조사 결과 보도도 마찬가지다. 이런 결과가 언론에 보도되면 결혼 적령기 남성들이 짊어져야 할 '부담'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진다. '결혼을 하려면 1억원 이상 모아야 하는구나,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렇구나'라는 생각에서 오는 무력감과 부담감, 패배감을 갖게 된다. 여성들 역시 배우자를 고를 때 이런 언론 보도를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경향'을 보여주기 위해 진행한 설문조사가 '기준'이 돼 버리는 재앙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넌 그만한 돈도 모으지 못했냐. 남자가 집을 해와야지."
"그럼 집에서 집 사달라고 해라. 차는 끌고 다녀야지."

이런 대사가 자연스럽게 결혼 과정에서 오가는 세태는 결국 누구의 책임인가. 결혼 적령기 남성들에게 높은 진입 장벽을 치고 '그런 능력이 없으면 결혼도 못해'라는 이데올로기를 노골적으로 주입하는 세상이 현실이라 씁쓸하기만 하다.

최근에 결혼한 남성으로서 한 가지 바람을 가져본다면, 남자와 여자가 진심으로 인격 대 인격으로 만나고 함께 결혼을 통해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설계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고작 몇 개월 밖에 살지 않은 신혼이지만 돈보다 중요한 게 껍질이 아닌 본질, 교언영색과 허영이 아니라 진실과 마음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안녕하세요. 세 자녀를 키우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가장입니다.

AD

AD

인기기사

  1. 1 문재인 정부의 역대급 국방비, 한숨이 나온다
  2. 2 지뢰 묻혔는데 직진 명령? 중국인 병사는 이렇게 한다
  3. 3 여자의 몸은 어디까지 음란한 걸까
  4. 4 "지금 딱 한 사람 설득하라면... 윤석열이다"
  5. 5 윤석열 총장, 정녕 이것보다 조국 먼지떨이가 더 중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