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중국정부, 후계자 전쟁의 최후 승자는 누구?

티베트 불교 종주권 놓고 중국 정부와 달라이라마간의 갈등 심화

등록 2009.07.27 15:34수정 2009.07.27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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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제 판첸라마 티베트 라싸·시가체 방문 등을 통해 영향력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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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의 포탈라궁 티베트 수도 라싸의 포탈라궁과 티베트 주민들의 모습, 1959년 달라이라마가 인도로 망명한 이후 이곳은 티베트의 종교문화박물관 형식으로 보존되고 있다. ⓒ 백찬홍


지난 12일부터 8박 9일간 중국을 방문하는 동안 국영방송인 CCTV(중국중앙방송)를 비롯한 중국 언론에서는 연일 중국 정부가 세운 어용 판첸라마의 티베트 방문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었다.

수도 베이징에 머물고 있었던 판첸라마는 14일 라싸에 도착해 15일부터 21일까지 티베트인들의 성지인 조캉사원을 비롯한 승려학교 방문, 종교대표자 면담 등을 진행했으며 22일에는 티베트 제2의 도시인 시가체를 방문해 일련의 종교행사를 진행했다. 시가체는 역대 판첸라마가 거주했던 타쉬룬포 사원이 있는 곳으로 1987년 10월에 티베트 독립 봉기가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내용은 한국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다.

중국정부가 판첸라마를 티베트에 보낸 것은 최근 신장지역의 위구르족 사태를 비롯한 소수민족 문제가 불거지자 티베트주민들을 위무하고 그의 권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판첸라마가 티베트를 성공적으로 장악할 경우 지난 59년 인도망명이래 중국 정부와 대립 관계에 있는 달라이라마의 흔적을 지울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 판첸라마는 본명이 기알첸 노르부로 1995년 12월 중국정부는 티베트 공산당원의 아들인 그를 여섯 살 때 판첸라마의 환생자라고 공표하고 10여 년간 수도인 베이징에서 티베트 불교와 역사, 사상교육을 철저하게 시켜왔다. 판첸라마는 티베트불교전통에서 달라이 라마가 입적한 후 환생자(후임자)를 찾고 후임자가 성숙할 때까지 스승으로서 실권을 갖는 존재다.

그러나 인도에 망명한 달라이라마와 대다수 티베트인들은 기알첸이 환생자의 지정권한이 없는 중국 정부의 꼭두각시라며 자신들이 지정한 판첸라마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달라이라마는 10대 판첸라마가 입적한 후 1995년 비밀작업을 통해 티베트 현지에서 당시 여섯 살의 치에키 니마를 판첸라마로 지정했으나 중국 정부는 발표 3일 만에 치에키를 비롯한 가족, 조사단원을 연금해 현재까지 행방불명상태다.

티베트 망명정부의 반발에도 판첸라마는 2006년 4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제1차 세계불교포럼에 참석해 외국대표단 앞에서 중국 정부의 티베트통치를 옹호하면서 달라이라마를 반역자라고 비난했으며 2008년 2월에는 중국 전국인민대표자회의(전인대) 상무위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올 3월 말에는 중국 우시에서 열린 제2회 세계불교포럼 개막식에 참석해 역시 중국 정부의 티베트 통치가 이룬 성과를 찬양하는 연설을 했으며 중국 공산당이 있는 한 티베트의 미래는 밝다고 주장했다. 제2차 세계불교포럼은 46개국 1300여 명의 대표들이 참가했으며 한국에서도 조계종·태고종 등 불교계 주요 인사 30여 명이 참석했다.

달라이라마, 환생이 아닌 후계자 지명이나 선거 등을 고려

중국 정부의 발 빠른 움직임에 대항해 달라이라마도 자신의 사후에 발생할지 모르는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현재 달라이라마는 활동에는 큰 지장이 없지만 나이가 74세인 점을 감안하면 후계자 문제는 시급하다. 전통적으로 티베트불교에서는 달라이라마가 입적할 경우 고승들이 어린이 중에 환생자를 골라내는 방식을 택해왔으나 그는 지난 6월 말 자신이 죽기 전에 후계자를 지명하거나 민주적 방식으로 결정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달라이라마가 후계자 문제를 언급하면서 환생의 방식을 피한 것은 환생자를 고르는 동안 수년간 지도력 공백이 생기고 그 기간 동안 중국 정부가 판첸라마와 유사하게 후계자를 선정하면 티베트 주민은 물론 전 세계 티베트 사회가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달라이라마는 후계문제에 대해 "한 사람의 달라이라마에게 정신적·정치적 지도력을 맡기는 것은 너무 힘겨운 일이며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됐다"면서 현재의 제도를 유지할 여부는 티베트인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달라이라마의 말과는 달리 티베트의 전통과는 너무 동떨어진 방식으로 투표로 후계자가 선출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달라이라마가 민주주의를 천명한 것은 중국의 일당독재 정책에 대항하기 위한 것으로 그가 후계자를 지명한다면 티베트 카규파의 현 지도자인 17대 카르마파가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00년 1월초 15세의 카르마파는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로 망명했으며 달라이라마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카르마파는 달라이라마와 판첸라마에 이은 티베트 불교 서열 3위에 해당한다. 티베트인들은 달라이라마와 판첸라마를 각각 관세음보살의 화신과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믿고 있으며 카르마파는 '부처의 삶을 실천하는 자'로 부르며 존경심을 표시하고 있다.

카르마파는 달라이라마의 기대에 부응해 미국 등 서구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2008년 5월 중순 미국을 첫 방문해 티베트 이민자들은 물론 미국 지식인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틀간 뉴욕 맨하턴에서 열린 그의 법회에는 이메일을 통한 판매에도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씩 하는 입장권 2만여 장이 곧바로 매진되기도 했다. 카르마파의 방문에 대해 미국의 유력언론인 <뉴욕 타임스>와 타임지는 그의 활동내용을 상세하게 보도했으며 주간 타임지는 카르마파를 달라이라마를 이을 최고의 종교적 지도자로 꼽기도 했다.   

달라이라마와 카르마파가 속한 겔룩파와 카규파는 14세기이래 티베트 불교의 패권을 놓고 심각한 분쟁을 겪기도 했으나 중국의 티베트 점령과 탄압정책으로 양파는 화해의 길에 접어들고 있으며 카르마파는 달라이라마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

만일 카르마파가 달라이라마를 이을 티베트 망명 정부의 최고 지도자가 된다면 중국 정부에게도 적잖은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중국 정부는 자신들의 통치하에서 티베트사회가 번영했다고 선전해왔지만 카르마파가 중국을 탈출하면서 그간의 선전이 허위였다는 것이 드러난데다 그 역시 반 중국노선의 상징적인 인물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카르마파가 2000년 1월 혹독한 추위와 중국군대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인도로 망명하자 전세계는 경악했으며 서구언론과 인권단체들은 그를 '아시아의 영웅'으로 부르기도 했다. 카르마파가 티베트를 탈출한 것은 중국 정부가 그를 이용해 달라이라마와 티베트인 간의 불화를 조장하고 수차에 걸쳐 인도에서 수행할 기회를 달라고 청원한 것을 거부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중국 정부의 정치적 꼭두각시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인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정부의 후진적인 지배정책 종식이 해결책이 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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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캉사원 티베트 라싸에 소재한 조캉사원앞에서 오체투지하는 티베트 주민들.조캉사원은 당나라 문성공주와 티베트 송첸감포왕의 유물이 전시된 곳으로 티벳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곳이다. 최근 중국의 관제 판첸라마가 방문해 화제가 되고 있다. ⓒ 백찬홍


앞으로 중국 정부와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라마간의 후계전쟁이 치열해질 전망이지만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알 수 없다. 중국 정부는 17세기 청나라 때부터 달라이라마와 판첸라마의 현신은 중국 중앙 정부의 승인 하에 전통방식으로 선출됐다면서 달라이라마는 중국 정부가 선정하는 인물이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보기에도 막강한 권력과 물량공세를 앞세운 중국 정부가 유리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의도대로 될지는 의문이다. 달라이라마를 정점으로 한 티베트불교의 정통성에 있어서 중국 정부는 명분상으로 크게 밀리고 있다. 종교는 영토나 경제력을 넘어서는 영적·정신적 문제이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의 강압적인 방식이 반드시 성공을 거두리라는 보장은 없다.

특히 서구사회에서 불교가 확산되고 그중에서 티베트불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티베트인들에게 유리한 면이 없지 않다. 현재 미국의 불교인구는 지식인을 중심으로 수백만을 헤아리고 프랑스·독일 등 유럽에서는 나라마다 각각 약 50만에서 100만 명이 불교신자라는 통계가 나오고 있으며 대부분은 티베트불교에 심취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티베트인들은 영토를 빼앗기는 비극을 당했지만 달라이라마를 비롯한 수많은 고승들이 티베트를 탈출해 물질문명에 찌든 전 세계인들에게 희망의 빛을 선사했다는 점에서 현대인들은 티베트인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현재 중국내에서는 중국의 대외적 위상이 점점 높아지는 것과 비례해 티베트, 위구르, 내몽골 등 소수민족의 처지는 점점 비참해지고 있다. 한때 소수민족 우대정책을 펼치는 듯 했던 중국 정부는 최근에는 노골적으로 한족 이주 및 우대정책을 펼치면서 소수민족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있다.

내몽고 같은 지역은 맹(盟)-기(旗) 같은 전통적인 지역명칭들이 사라지고 시(市)-현(縣) 같은 한족 중심의 행정단위로 통일되고 있다. 이 같은 정책은 현재 중국내에서 벌어지는 빈부격차와 도농간의 갈등과 함께 소수민족 문제가 화약고와 같다는 것을 의미하고 경제성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국 중국 사회도 어느 시기에 물질물명이 가져온 폐해를 깨닫고 영적 가르침에 비중을 둘 날이 오겠지만 불행하게도 그때가 되면 중국내에서 티베트불교는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다. 중국-한국-일본으로 이어지는 북방불교, 스리랑카-미얀마-태국-라오스에 전해진 남방불교와 함께 세계3대 불교전통인 티베트불교가 말살된다면 인류의 소중한 정신적 유산이 사라지는 것과 다름없다.

중국 정부가 티베트불교의 가치를 인정한다면 후진적인 지배정책을 철회하고 외교-국방을 제외하고 전통 문화와 전통 언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달라는 달라이 라마의 제안을 수용해야 한다. 그것만이 현재 중국 정부와 달라이라마간의 소모적인 후계자 전쟁을 종식시키고 중국과 티베트가 상생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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