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신혼집? 너희 신랑 힘들구나"

[결혼 전세금 논란②]'남성=집, 여성=혼수' 공식, 이젠 바꾸자

등록 2009.08.11 11:25수정 2009.08.2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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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결혼정보회사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혼 남성의 45%, 여성의 37%가 '자택의 유무가 결혼 걸림돌이 된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또 최소 전세자금으로 1억5천만원을 준비해야 결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최근 결혼한 남성과 여성, 결혼 적령기 아들을 둔 시민기자들에게 결혼 전세자금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소형 아파트 단지와 영구임대, 연립 다가구세대로 이뤄진 동네 모습. ⓒ 유성호


결혼 이야기가 오갈 때쯤, 그간 사는지 죽는지 관심도 없던 이들에게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뒤늦게 싸이클럽을 통해 만나게 된 동창들이라든가 한동안 재미 붙였던 세이월드 음악방송 지인들까지. 그들은 '니가 결혼을 하다니!'와 같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가족들보다 더 많은 관심을 내비쳤다. 특히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집과 신혼여행과 예물.

"신혼집은 어디로 할 거야?"
"그냥 나 사는 월세에서 시작할 건데?"
"그… 그래? 하긴 경기도 안 좋은데 뭐… 신랑이 힘든가 보네."
"음? 아니야. 직장도 잘 다니고 월급도 안 밀려."
"그러면 월세는 좀…."

이제야 말이지만 결혼을 하기 전, 아니 결혼을 약속하기 전 난 지금의 내 남편이라는 사람에 대해 별 기대가 없었다. 내가 알기로 그는 직장을 다니긴 했으나 월급은 악기 사는 데에만 사용하셨는지 고가의 악기만이 유일한 재산인 그런 남자였다. 집도 절도 없이 누나 집에 얹혀 살며 고향집에 얼마의 생활비를 보태고 나머지는 공연을 보거나 동생들 밥을 사 먹이거나 하는 집도, 절도, 모아놓은 돈도 없는 남자.

그런데 뭐가 좋아 결혼까지 하게 되었느냐 묻는다면… 나 또한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부류의 인간이었던 탓이랄까?

모든 문제의 근원은 주변 '오지라퍼들'

서로 아직 젊고 이제껏 모아놓은 돈은 없더라도 지금껏 흥청망청 술 먹고 도박해서 날린 것도 아니고,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를 위해 악기를 사고 공연을 보고 주변 사람들 챙기고 뭐 이런 정도면 용서할 수 있는 수준 아닌가. '살면서 모으면 되지, 나도 꼴랑 보증금 얼마 모아 놓은 게 전재산의 다인데'라는 생각.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키보드 두드리지 않으면 노는 동네 백조밖에 안 되는 꿈만 있는 놈팽이 작가가 무슨 염치로 돈 많고 능력 있는 남자를 갈구한단 말인가.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서방도 나의 그런 대책 없는 나태함과 속편함이 까무러치게 좋았다고. (훗~) 멀쩡하게 생긴, 하자도 없어 뵈는 남자가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며 만난 지 보름 만에 결혼하자고 들이댔을 때 솔직히 '어? 왜… 왜 이러는 거야?'라고 생각했었는데 남편은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비정상적인 여자를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고 한다(나도 댁 같은 남자를 만날 줄은 몰랐다우).

아무튼 이렇다 보니 1년여의 연애 끝에 결혼 이야기가 오고갈 때도 난 남자 측에서 집을 해온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당시 내가 살던 방 2개짜리 월세에서 신혼집을 차리고 둘이 돈 좀 모아서 낡은 물건이나 몇 개 바꾸면 신혼살림도 끝이라고. 심플하고 조촐하고 유별나지 않아 좋다고 생각했었다. 애당초 우리의 꿈은 내 집 마련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섬 출신(제주도)이라 그런지 서울에 대한 큰 애착도 없었고 서울에서 아파트 살 돈이면 조용한 지방이나 고향 제주도에 내려가 카페를 열고 악기나 연주하며 살겠다고 했다. 난 거기에 좀 더 보태 "난 글 쓰며 낚시나 하겠다"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뭐 비록 결혼 준비 하면서 당시 살고 있던 나의 집과 그의 직장이 너무 먼 관계로 조금 대출을 받아 작은 전세로 이사를 하긴 했지만. 이 또한 오지라퍼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평수이긴 하다(대체 그들을 만족시킬 능력자 그 누구인가!).

"남들은 이랬다더라~" 식 염장질은 이제 그만!

"그럼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 발리? 세부? 요즘 유럽도 많이 간대."
"복댕이 삼식이 데리고 전국일주 할 건데?"
"어우야… 안됐다… 무슨 고생을 사서 하려고 하니? 니 신랑도 어지간하다."

아니, 뭐가! 전국일주는 나의 제안이었단 말이다! 발리나 세부나 유럽 정도는 나이 들어서도 얼마든지 갈 수 있지 않은가. 전국일주는 지금이 아니면 도무지 시도를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뭐가 문제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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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집, 여자=혼수'라는 공식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권우성

이처럼 내 결혼에 대한 주변의 과도한 관심은 정작 별 생각 없는 나에게도 은근히 스트레스가 되곤 했다. 굉장히 구질구질하게 보는 듯한 시선과 동정의 뉘앙스를 흠씬 풍긴 달까? 나처럼 웨딩 촬영 전날에도 오뎅, 순대, 떡볶이를 잡숫고 주무시는 무신경한 신부가 아니었다면 아마 굉장한 압박감을 받았을 것이다.

이렇듯 정말 막상 실행해 보니 결혼준비 기간 동안 신랑, 신부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다름 아닌 주변의 '오지라퍼'들이었다. 끊임없는 비교를 시작으로 자신들의 잣대를 기준으로 조금만 모자라다 싶으면 온갖 참견과 "남들은 이랬다더라~"라는 식의 염장질. "이 정도는 해줘야 대접받는다"라는 충고 아닌 충고까지. 니들이 데리고 살게 아니면 "그 주둥이 닥치라"고 말해주고 싶었달까?

문제가 이렇다 보니 결혼을 준비하는 이들은 주변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기에 신혼집을 마련할 때에도 조금이라도 큰 평수의 아파트로 가야 한다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남들 안줏거리가 되는 꼴은 보여주기 싫다고 생각하게 된다.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평생 두고두고 누군가 결혼만 할라치면 "내가 아는 애는 글쎄…"라며 우리의 이야기를 불쌍한 결혼의 대표적인 예로 우려먹을 테니 말이다. 이러한 상황을 피하고 싶은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주변에 이러한 오지라퍼들만 제거되어 준다면 집 때문에 결혼 못한다는 답변 따위, 적어도 반은 줄어들 텐데 말이다. 참 현실은 녹록치가 않더라는 말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린 자잘한 격식의 차이로 몇 번 투닥거린 적은 있지만 돈 문제로 다툰 적은 없었다. 워낙 주변 사람들 말을 귓등으로 흘리는 성격들인지라 위에서 열거한 오지라퍼들의 공격에 별 타격을 입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우리도 우리지만 양가 부모님들의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귀가 따갑도록 들어와서 지레 긴장하고 있던 시댁의 혼수 타박도 없었고 그 무시무시하다는 시누이들의 텃세도 없었다. 할머니는 내 사주에 금여살이 들었다고, 결혼은 잘한 모양이라며 그 공덕을 부처님께 돌리셨다(내 사준데 그분께 왜!).

결혼은 장사도, 신분상승 도구도 아니다

아무튼 많은 오지라퍼들의 참견과 공격을 귓등으로 막아내고 우린 전국일주를 했으며 작은 평수의 전세에서 시작을 했고 반지 교환 외에 별다른 예물도 하지 않았다. 얼마 되진 않았지만 이제와 되돌아보니 하고 나면 별거 아닌 문제들인데 조금이지만 준비 기간 동안 오지라퍼들의 공격에 마음 상했던 게 억울하기까지 하다.

또 다른 결혼정보업체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재혼 남녀 684명 중 '집 장만 시 부부간 바람직한 분담 비율'에서 36.4%의 남성이 '70 : 30'의 비율이 적당하다고 답한 반면, 여성은 '100 : 0', 즉 모두 남성이 부담해야 한다는 답변이 29.4%나 된다고 했다.

과거부터 '남성은 집, 여성은 혼수'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시대에 따라 이러한 가치관에도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뭐 여성에게 바라는 혼수도 많은 데다 남녀 월급 차이부터 가사노동의 비율, 여러모로 포기해야 할 부분 등을 짚어가며 집 정도는 남자가 해 와야 한다고 따지고 들기 시작하면 끝도 한도 없는 노릇. 그렇게 파고 들어가다 보면 '왜 너는 남성(혹은 여성)으로 태어났느뇨?'에 까지 도달하게 되는 것 아닌가.

이 대목에서 필요한건 양심. 너무나 평범한 진리지만 적당히 받았으면 적당히 주고,  별반 해줄 게 없으면 유별나게 바라지도 말자는 것. 혹은 좀 덜 받았으면 사는 동안 받고, 좀 많이 받았으면 사는 동안 좀 더 많이 주고. 결혼은 장사도 아니고 신분상승의 도구도 아니라는 것.

본인이 가진 능력은 쥐뿔 하나도 없으면서 남편(혹은 아내) 하나 잘 만나면 된다는 생각으로 오로지 '돈, 돈, 돈'만을 따지니 신성한 결혼식에 언약은 없고 장사 속만 들어차는 것이 아닐는지. 영악하고 약삭빠르게 사는 것도 삶의 방식이라지만 평생 살 부비고 사는 부부끼리 첫 단추부터 그러면 재미가 있나, 재미가.

이도저도 안 되면 결국, 월세에서 신혼을 시작해도 축복해주고 숟가락, 젓가락만 싸가도 사랑해주는 그런 사람들, 끼리끼리 만나서 끼리끼리 어울리는 게 가장 속편한 방법이라고 마무리를 지어야 하나? 어째 해답이 안 나오는 문제라 그런지 뒷맛이 쌉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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