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들, 영어강사로 나서다

다문화 영어 강사와 공부방 학생이 함께 한 무료캠프 참관기

등록 2009.08.06 18:06수정 2009.08.06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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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영어 캠프다 휴가다 해서 해외로 또는 바다로 갔던 지난 주에 나는 아주 특별한 영어 캠프가 열린다는 강화도 오마이스쿨로 향했다. 필리핀 출신 결혼이주 여성들이 영어 강사로 참여하고 경기도 지역 취약계층 학생들 20명이 참여하는 2박 3일간의 무료 영어캠프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결혼 이주민 관련 일을 하는 남편 덕에 다문화 가정과 취약계층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기자는 유치원에 다니는 우리 아이들과 함께 텐트에서 생활하며 이들을 취재해 보기로 하였다.

월요일(7월 27일) 오전 11시가 되자 필리핀 강사 4명이 먼저 오마이스쿨에 도착했다. 이들과 인사를 나눌 틈도 없이 학생들을 태운 버스가 도착하였고 재잘대는 아이들 틈에 섞여 함께 강당으로 향했다. 캠프에 대한 안내가 끝나고 강사들이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자 무슨 말인지 몰라 친구들과 서로 "뭐라는 거야?" 하며 두리번거리는 아이들.

5명씩 짝을 지어 수준을 점검하는 레벨테스트는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몇 명을 제외하고는 영어로 수업하기가 거의 불가능 한 상태다. 다행히 강사들은 한국어가 가능해 중요한 몇 마디는 우리말로 설명을 해주었다.

점심식사 동안에 선생님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이주민이나 외국인을 만나면 하게 되는 통상적인 질문 하나.

"한국에 오신지는 얼마나 되었어요?"

이들 중 가장 오래되었다는 클레어가 먼저 답했다.

"3년 전에 왔어요. 필리핀에서 영어학원 강사였는데 그때 학생이었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오게 되었죠."

다음으로 로즈, "2년 정도요."

버나뎃과 제이드는 각각 1년여 정도 된 새색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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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영어 강사들 우리는 탕! 탕! 탕! 이 좋아요. 감자탕, 삼계탕, 갈비탕이 좋다는 제이드, 로즈, 버나뎃, 클레어(사진 왼쪽부터)-이들은 모두 행사주관 업체인 이든헤윰에서 화상영어 강사로 활동 중이다. ⓒ 한봄


첫째 날과 둘째 날 오후에는 주로 재미있는 놀이를 하였다. 짧은 캠프기간이라 공부보다는 영어나 외국인에 대한 부담감을 없애도록 하자는데 이번 캠프의 목적이 있어서다. 준비된 재료로 종이 오려 붙이기, 재미있는 모양 만들기, 필리핀 전통놀이 등을 통하여 아이들은 어느새 선생님들과 친한 이모, 조카 사이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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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놀이 더 높이 뛸 수 있어요! 필리핀 전통놀이인 장애물 뛰어넘기를 즐기는 선생님과 아이들 ⓒ 한봄


저녁식사를 하고 준비된 활동이 끝나면 이제는 아이들의 천국. 오마이스쿨의 숙소를 관리하시는 선생님의 호통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뛰어다닌다. 베게 싸움은 기본이고, 짬짬이 풀밭에서 잡은 방아깨비를 방에 가져와서 방아깨비 경주. 아이들은 영어공부 보다는 놀기에 더 신나는 듯 보였다.

공부방에서 따라온 인솔자 선생님들은 난처해 하면서도 이해하는 듯 하였다.

"이 아이들에게는 이런 캠프가 처음이에요. 영어캠프는 말할 것도 없이 부모님 곁을 떠나는 유료 캠프는 생각해 볼 기회도 없었죠. 이런 기회를 통해서 아이들은 영어나 외국인을 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지금껏 누려보지 못한 자유를 만끽하는 천국인 셈이죠."

저녁 10시가 되면 취침시간이라 불을 껐는데도 밤 12시까지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였다. 둘째 날 오전에는 간단한 영어회화 수업과 필리핀 요리 시간.

"티쳐, 이건 영어로 뭐라고 해요?"

마늘을 가리키며 한 아이가 묻자 주변 아이들도 귀를 쫑긋 세운다.

"This is garlic.(이건 "갈릭"이라고 해), 자! 따라 해 보세요. 갈릭(garlic)"

아이들은 병아리같이 따라 한다.

"갈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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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수업 으아! 메워. 마늘을 까느라 눈물을 흘리면서도 선생님 말씀 하나는 잘 듣는 아이들 ⓒ 한봄


함께 준비한 재료들과 선생님들의 익숙한 요리솜씨를 거쳐 식사가 준비되고 아이들은 자기들이 만든 음식을 먹기 시작하였다. 생전 처음 맛보는 요리지만 스스로 만들었다는 자부심에 젓가락을 가져간다. 입맛에 맞지 않는 아이들도 있는 듯하다.

"아이 너무 짜."

그래도 아이들은 마냥 즐겁다.

오후엔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로 야외활동이 실내활동으로 바뀌었다. 강당에서 줄 잇기 놀이, 귓속말 전달하기.. 상품으로 이긴 팀에게는 수박 한 통, 진 팀에게는 반 통을 걸자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간단한 영어 문장을 전달하기인데 잘 들어보지 못한 말들이라 자꾸 틀리지만 아이들은 마냥 신난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다문화 사회에 대한 DVD 시청시간. 필리핀에서 온 결혼이주 여성과 그 아이가 학교생활에서 겪는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사회 다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국가 인권위원회에서 제작한 이야기다. 캠프에 참가한 아이들 중 몇 명은 이미 그런 경험들을 하고 있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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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관광 야! 신기하다. 우리도 모르는 것들을 어떻게 이렇게 잘 알지? 한국인보다 더 자세한 역사적 사실을 설명해 주는 인도출신 가이드 선생님 ⓒ 한봄


셋째 날 오전에는 강화도 탐방을 하였다. 강화도에 살고 있는 인도인 가이드와 한국인 통역 선생님이 안내를 해 주었다. 국내에서 영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관광을 하고 있자니 색다른 느낌이었다. 관광하는 시간 동안에 강사들과 집중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이 잘해주기 때문에 아직은 큰 불편은 못 느끼지만 그래도 문화, 언어적인 차이 때문에 힘든 점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미국의 영향을 받은 우리 필리핀 사람들은 어른에 대한 공경 같은 부분이 한국만큼 강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남편은 그걸 다르게 생각하니 힘들죠"

"많이 외로워요. 친구 한 명 없이 남편만 믿고 왔는데, 남편은 직장생활로 바쁘고 주변은 말도 안 통하니 가끔씩 눈물을 흘리며 친정이나 고향 친구들과 전화통화를 하죠."

"한국말을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무엇을 하든 기본인 것 같아요. 그런데 가장 옆에서 잘 도와줘야 할 남편은 별로 신경을 안 써요. 결국 제가 알아서 스스로 한글학교도 가고 그래야 하죠."

한국 생활의 힘든 점에 대해 묻자 그 동안 참았던 얘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하였다.

그럼, 이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제가 직접 운영하는 유치원을 갖고 싶어요"
"한국말을 잘 하고 싶어요. 그리고 안정된 직장도요."
"저도 안정된 일을 하고 싶어요. 아이도 갖고 싶고요."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어요.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돕고 싶어요."

이들 네 명 모두 공통적으로 경제적 자립을 얘기하였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회사의 한 직원이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이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능력있는 이주민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출신국이나 피부색 등 때문에 본인의 능력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공장이나 식당에서 일하는 분들이 많죠. 저희는 이들이 갖고 있는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사업들을 펼쳐보고자 합니다. 지금 서비스 중인 웹튜터 화상영어와 이번 캠프가 그 시작입니다."

"이번 캠프는 외부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행사를 진행하였지만 앞으로는 저희의 경험을 바탕으로 관심있는 정부기관이나 지자체가 함께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사업의 일환으로 펼쳐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캠프에 참가한 학생들 중에서 원하는 아이들은 일주일에 2회씩 인터넷을 통한 1:1 화상영어 수업을 무료로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검증도 안된 무자격 불량 어학 강사를 수입하기 보다는 능력있는 이주민들과 사교육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취약계층의 아이들을 이어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사업일 것이다. 이번 캠프는 그런 면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행사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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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찰칵! 이 아이들도 방학이 끝나면 영어캠프 다녀왔다고 자랑할 수 있지 않을까? ⓒ 한봄


다문화 가정 13만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아직 이들에 대한 이해부족과 편견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이 많다. 이들 필리핀 결혼이주 여성들은 그나마 영어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정적이지는 않지만 영어학원 등에 취업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언어권 출신의 이주민들은? 언젠가 다문화 축제에서 만난 베트남 출신 아줌마에게 들었던 얘기가 귓전을 맴돈다.

"우리 그냥 이웃하면 안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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