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마을마다 사랑을 나누는 슬기란

[책읽기가 즐겁다 303] 소노 아야코, <왜 지구촌 곳곳을 돕는가>

등록 2009.08.13 11:03수정 2009.08.13 11:03
0
원고료로 응원

 

- 책이름 : 왜 지구촌 곳곳을 돕는가

- 글 : 소노 아야코

- 옮긴이 : 오근영

- 펴낸곳 : 리수 (2009.6.22.)

- 책값 : 9800원

 

 

 (1) 우리가 걷는 길이란

 

a

겉그림. ⓒ 리수

겉그림. ⓒ 리수

 1995년에 고향 인천을 떠난 다음 2007년에 이곳으로 돌아왔습니다. 열세 해 만에 다시 살림집을 얻어 지내며 예전에 이 동네에서 살 때 거닐던 곳을 날마다 새롭게 거닐고 골목 사진을 찍습니다. 처음 태어나서 부대끼고 보던 모습하고 바뀐 곳이 곳곳에 있다고 느끼지만, 웬만한 곳은 거의 그대로 있다고 느끼며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싱그럽기도 하고 고단하기도 합니다. 꼭 어느 한 가지 모습이나 느낌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예전과 오늘이 거의 꼭 같은 모습 가운데 하나는, 동인천지하상가 계단짬에서 옥수수며 고구마며 군밤이며를 파는 할매입니다. 이제는 문닫은 인형극장 쪽으로 가는 길머리에서 고구마며 군밤이며를 파는 할매도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이곳 동인천지하상가 계단에 엎드려서 동냥을 하는 아저씨 또한 그대로입니다.

 

 그렇지만 그 동냥꾼이 내 어릴 적 보던 그 사람하고 같은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동냥꾼은 어린이인 적이 있었고 젊은이인 적이 있었으며 아저씨인 적이 있습니다. 늘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고 떠오르지만, 이 또한 모르는 일입니다. 늘 같은 사람이 늘 같은 자리에서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씩 동냥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노릇이며, 동냥꾼을 바라보고 떠올리고 돈닢 몇 푼 나누는 사람 또한 언제나 똑같은지 모르는 노릇입니다.

 

.. 따뜻한 잠자리에서 깨어나면 충분히 먹고, 병이 나면 의료기관을 이용할 수 있으니, 체험으로서의 빈곤은 알지도 못한다. 인간이란 자신의 인생에서 경험하지 못한 일은 상상하지 못하니 당연한 노릇이다 … NGO는 항상 신문이나 뉴스의 기삿거리가 될 만한 재난 지역을 우선적으로 원조하는 측면이 있다. 빈곤이나 비참은 어디에나 항상 지속적으로 있는 일이다 … 먹을 것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절실한 상황에 대해 우리는 거의 무지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 일본인은 자기들에게 필요없는 옷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대신, 난민 구제라는 명분으로 보내 주었던 것이다. 처치하기 곤란한 물품을 구호물자로 내놓으면 폐품도 처리할 수 있고, 뭔가 좋은 일을 한 듯한 기분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에티오피아는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일본은 정신이 가난했다 ..  (13∼14, 24, 53∼54쪽)

 

 저나 옆지기는 길이나 전철이나 구름다리나 계단에서 동냥하는 사람들을 마주치면 으레 다문 오백 원이든 천 원이든 주머니에서 꺼내서 내밀어 줍니다. 우리가 돈을 주는 모습을 보는 이웃이나 동무는 '도움받을 사람이 딴 사람을 도와준다고 그러네?' 하면서 가볍게 웃곤 합니다. 우리 식구는 후줄그레한 살림인 가운데 조금 덜어내어 다른 사람한테 도울 수 있으면 돕자고 여기며 살고 있는데, 우리 식구가 살림을 꾸릴 수 있는 까닭을 곰곰이 돌아보면, 우리를 어여삐 여기며 도와주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누군가 우리를 도와주는 손길을 받으면서 우리 몫만 얼마쯤 덜어낸 다음, 나머지는 다른 사람한테 넘겨 주는 셈입니다.

 

 모르는 노릇인데, 우리를 도와주는 손길을 내민 그분들도 다른 누군가한테 도움을 받고 있는지 모르는 노릇입니다. 지난날 둘레 사람들한테 도움받은 고마움을 우리한테 이어주는 셈인지 모릅니다.

 

 사진쟁이 전민조 님이 엮은 《사진 이야기》(눈빛,2007)라는 책을 보면, 다른 사진쟁이 최민식 님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진 이야기》는 이 나라 숱한 사진쟁이들이 쓴 글을 모둔 책으로, 최민식 님 글은 2006년에 〈월간조선〉에 실려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 쓴 최민식 님 글을 읽으면, 당신은 1972년에 어느 독일 신부님이 당신이 사진을 찍도록 도와주었다면서, "신부님은 비밀로 하자면서 매월 30만 원씩을 지원해 주셨다. 생활비로 10만 원, 사진작업에 필요한 창작활동비로 20만 원을 사용했다(당시 부산시청 국장 월급이 3만8백 원이니 많은 돈을 받은 것이다). 나는 꿈인지 생시인지 뜻하지 않은 횡재에 반신반의했다. 그것이 한두 달도 아니고 일 년도 아닌 10년 간 지속되었다(100쪽)."고 밝힙니다.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최민식 님이 그 많은 사진을 그토록 오래 찍을 수 있던 힘은 바로 '남몰래 오래도록 도와주던 사랑어린 손길'에 있구나 싶었고, 최민식 님은 이 사랑어린 손길을 곱게 받아먹으면서 당신 사진에 이 사랑어린 손길을 깊고 넓게 담아내었구나 싶었습니다.

 

 사랑어린 손길이 없었더라도 최민식 님은 어려운 가운데 사진을 찍었을 테지요. 어려운 가운데 사진을 찍었을 테며, 스스로 어려움을 쓰디쓰게 견디어 내면서 더 놀라운 사진을 일구어 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몹시 고단하고 힘든 나머지 사진기를 팔며 살림을 이어야 했을 수 있고, 이러면서 최민식 님은 더는 사진찍기를 못했을 수 있습니다.

 

.. 자기가 맡은 곳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전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전부 구제할 수는 없다. 수마트라의 쓰나미 피해자를 지원하든 내전으로 상처를 입은 시에라리온의 농촌 사람을 지원하든 우리의 힘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 그러나 너무나 가난해서 과자 맛을 전혀 모르는 아이도 있었다. 사탕을 줘도 포장지 벗기는 법을 모르는 아이도 드물지 않았다. 사탕 같은 건 먹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바깥 포장지는 먹을 수 없다는 것도, 종이는 어떻게 벗기는 건지도 잘 몰랐다. 그리고 사탕을 입에 넣은 아이들 중에는 빨던 사탕을 도로 꺼내 주머니에 넣는 아이도 있었는데, 맛있는 사탕을 혼자 먹을 수 없어서 동생들에게 주려는 것이었다 … 어떻게 생활을 꾸려나가느냐고 묻자 그들을 보살피던 일본인 수녀가 진지한 얼굴로 "지인들과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갑니다"라고 대답했다. 주위 사람들도 매우 가난했다. 그곳에도 부자는 있을 테지만, 부유한 사람일수록 가난한 사람에게 인색하다 ..  (15, 20쪽)

 

a

속 사진. ⓒ 리수

속 사진. ⓒ 리수

 

 요즈음은 어떠한지 모르지만, 교사 달삯이 그리 높지 않던 때, 웬만한 교사들은 '촌지'라는 이름으로 돈봉투를 받아챙겼습니다. 이런저런 공납금을 숱하게 거두었고 폐품모으기를 한다면서 또다른 돈을 모으기도 했으며, 국화를 길러 팔든 뭐를 팔든 하면서, 교사와 똑같이 어려운 살림이던 아이들 어버이한테서 돈을 푼푼이 울궈냈습니다. 누구라고 더 나은 살림이었겠느냐마는, 교사 자리는 돈봉투에다가 몽둥이를 거느린 무시무시한 사람으로 보일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교사 달삯은 꽤 많으며, 교사들한테는 말미가 자주 많이 주어지고, 갖가지 수당을 듬뿍 챙겨 주는 한편, 정년퇴직 뒤에는 죽는 날까지 퍽 많은 연금을 꾸준하게 주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예전 같은 돈봉투는 거의 없어졌다 할 수 있는 가운데, 돈봉투에 따라 아이들을 따돌리거나 들볶는 일은 많이 사라졌다 할 수 있습니다(그렇지만, 이 또한 모르는 노릇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교사 달삯이 높아진 오늘날, 교사들은 넉넉한 살림살이를 꾸리면서 아이들 앞에서 어떤 사람으로 마주하고 있을까요. 먹고사는 걱정이 사라진 교사들은 얼마나 스스로를 담금질하거나 갈고닦으면서 더 나은 스승이 되려 애쓰며, 더 거룩한 스승으로 살고자 힘쓰고 있을까요.

 

 교사와 마찬가지로 공무원들은, 또 정치꾼들은 당신들이 받는 꽤 높은 일삯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이러한 일삯만큼 둘레 사람들한테 사랑이나 믿음을 알뜰살뜰 나누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퍽 많이 받으면서도 퍽 많이 받는다는 생각을 않고 몰래몰래 검은돈을 챙기려 하는지, 지나치게 많이 받는다는 마음으로 더 힘을 내어 둘레 사람들한테 사랑과 믿음을 나누려 하는지 궁금합니다.

 

..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구걸은 생업이다. 그런 엄연한 현실을 모르는 대부분의 일본의 신문이나 출판사는 '거지'라는 말은 차별어니까 사용하지 말라고 한다. 만약 지금 모두가 좋아하는 '인도주의'나 '인권'을 생각한다면, 제일 먼저 할 일은 그러한 현실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 모름지기 이상은 높이 가져야 한다지만, 이 내용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읽은 후에는 침묵하거나 깊은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 빈곤 지대에서는 특히 평화, 존엄, 자유, 평등이라는 개념의 편린조차 없다 … 거의 동물처럼 오두막에서 잠자는 사람들이 과연 존엄성을 알고 있을까. 그들은 자유도 없다. 이동 수단이 없기 때문에 이웃 마을에도 거의 가지 못한다. 볼일이 있으면 10킬로미터든 20킬로미터든 걸어갈 다리는 있지만 10킬로미터, 20킬로미터를 가도 그곳에 다른 마을이나 친척의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끝없는 황야라면, 아무도 그런 거리를 걸어가지 는 않을 것이다. 이동조차 자유롭지 않은 사람에게 교육이나 여행, 주거의 자유 따위를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26, 28쪽)

 

 고리끼 님이 쓴 《이탈리아 이야기》(이성과현실,1991)라는 소설책을 읽다 보면, 공장 사장과 일꾼이 주고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공장 사장은 일꾼더러 자꾸 파업을 일으켜서 손해가 크다고 소리를 높이고, 공장 일꾼은 처음부터 우리들한테 일삯을 옳게 주었으면 조금도 손해볼 일이 없을 뿐더러 서로한테 훨씬 좋았으리라고 대꾸합니다.

 

 어느 노동조합이든 공장이든 파업을 하면 정부와 언론매체는 언제나 '파업에 따른 경제손실 얼마'라는 통계를 내놓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경제손실을 입을' 바에는 이 돈을 일꾼들이 여태까지 제대로 못 받았던 일삯으로 내밀어 준다면, 공장으로서는 손실 날 일이 없는 가운데, 공장 일꾼들은 더 기쁘고 벅찬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면서 한결 힘차게 일하면서 곧바로 '사장들이 일꾼들한테 더 내어준 몫보다 큰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 삶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 두 분 이탈리아 신부님이 마주한 빈곤은 아마 한 번도 언론의 조명을 받은 적이 없을 것이다. 에티오피아와 르완다, 시에라리온의 비극은 항상 세계의 톱뉴스가 되고 보도사진의 모델이 되었지만, 이 지구상에는 항상 극적인 빈곤과 만성적인 빈곤이 있다. 그리고 만성적인 빈곤은 원조의 대상으로는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은 더 오래 갈 수밖에 없다. 구호 활동의 세계에서도 옷이나 장식만큼 유행을 좇는 집단이 있는 것 같다 ..  (121쪽)

 

 숱한 부모님들은 아이들한테 일찍부터 영어를 못 가르쳐서 법석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뭐를 더 배우고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며 몸부림입니다. 모두들, 아이들이 남들이 가는 대학교보다 더 나은 대학교에 가기를 바라고, 대학교를 마친 다음에는 남들이 다니는 일터에서보다 더 많은 돈을 받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당신들 아이는 남들보다 '얼마를 더 벌어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당신들 아이가 남들보다 돈을 더 잘 버는 일꾼이 되도록 하자면, 더 나은 대학교에만 보내야 할까요. 영어를 반드시 어릴 때부터 가르쳐 주어야만 할까요.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더 돈을 많이 버는 회사원이 되는 일이 부모님 당신들한테나 아이들한테나 '이 세상에 태어나서 품는 아름다운 꿈 하나'라고 곱게 껴안을 수 있을까요.

 

.. 나는 아프리카의 진실 하나를 발견했다. 이 비행클럽의 멤버는 백인만으로 구성되며 생명과 관련한 비행기의 기계적인 부분은 흑인의 손에 맡기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비행하는 사람도 백인, 기계를 만지는 사람도 백인, 지원 부품을 가지고 오는 사람도 백인, 사무원과 차를 대접하는 사람만이 흑인으로 배치되어 있는 듯했다. 여기서는 이런 점을 나처럼 아무도 대놓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비행기를 띄우는 일에 흑인을 제외한다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지만, 현실에서는 엄격하게 지키고 있었다. 생명과 관련한 부분은 말없이 모두 백인끼리만 하는 것이었다 ..  (145쪽)

 

 하늘은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돕는다는 말을 한 분은 다른 뜻으로 말했겠지만, 저는 이 말마디를 '하늘은 아름답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을 아름답게 살도록 한다'고 받아들입니다. 우리 스스로 사랑을 가득 나누며 살아가고자 꿈꾸는 사람은, 이 꿈 그대로 늦든 이르든 잘되든 못되든 차근차근 사랑 가득 나누는 삶으로 나아간다고 느낍니다. 우리 스스로 돈바라기를 꾀하는 삶이라면, 시나브로 돈을 움켜쥐는 삶으로 나아갈 텐데, 반드시 돈을 많이 움켜쥐지는 않을 테지만 돈에 둘러싸인 삶을 꾸리지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한 사람은 하루에 두어 끼니로도 배가 부르고 즐겁게 일을 하며 놀이를 할 수 있습니다. 하루 두어 끼니는 삼천 원짜리 밥이어도 괜찮고, 집에서 손수 마련한 도시락이어도 괜찮습니다. 꼭 삼사만 원짜리 밥을 먹어야 하지 않고, 오천 원이나 만 원에 이르는 밥을 먹어야만 배부르지 않습니다. 한 달에 백만 원을 벌어도 네 식구가 오붓하게 지낼 길이 있고, 한 달에 천만 원을 벌어도 두 식구가 돈이 모자라다며 징징거릴 수 있습니다. 저마다 살기 나름일 테며, 생각하기 나름일 테고, 꿈을 꾸기 나름이겠지요.

 

a

속 사진. ⓒ 리수

속 사진. ⓒ 리수

 

 (2) 《왜 지구촌 곳곳을 돕는가》라는 책은

 

 소설쓰는 소노 아야코 님이 쓴 《왜 지구촌 곳곳을 돕는가》라는 책을 읽습니다. 소노 아야코 님은 소설쟁이이지만, 소설쓰기 못지않게 '지구마을 돕기'를 오래도록 해 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소노 아야코 님이 소설쓰기를 할 수 있는 바탕힘은 바로 '내 곁에서 아파하는 사람을 알아채는 눈길과 같이 아파하는 가슴'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 근대적인 경찰 조직이 제대로 기능하는 나라는 선진국과 일부 중진국뿐이고(미국에서도 그렇지 못한 상황을 영화에서 많이 보지만), 가난한 국가의 경찰은 월급만으로는 가족을 부양할 수 없기 때문에 어딘가에서 불법 아르바이트, 다시 말해 부정을 저질러야 하는 것이다 … 어디선가 부정 행위를 하지 않으면 굶어죽는 구조인 것이다 … 우리는 흔히 가난한 사람이 도둑질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사실이지만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모두 도둑질을 한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부자나 권력자는 크게 훔치고, 가난뱅이는 작게 훔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 권력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원조금을 가로채는 사회구조가 형성된 것은 그 나라의 국민이 그런 행위를 허용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권력자가 되면 국가예산을 착복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  (17∼18, 153, 178쪽)

 

 《왜 지구촌 곳곳을 돕는가》는 섣불리 '나라밖 봉사'를 하도록 우리를 이끌지 않습니다. 애써 '나라안 봉사'만 할 까닭은 없는 가운데, 우리 스스로 가장 알맞고 좋고 힘자라는 어깨동무를 할 수 있으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날, 소노 아야코 님을 비롯해 숱한 사람들은 '나라밖 봉사'를 하고 있는데, 오늘날 힘센 나라 숱한 정부들이 '나라밖 (땅이든 경제이든 문화이든 무엇이든) 식민지 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로 도와줄 까닭이 없이 어느 나라나 제 삶터와 삶결대로 살도록 가만히 놓아 줄 때가 가장 아름답지만, 힘센 나라 정부가 더 많은 돈을 울궈내려고 자꾸자꾸 힘여린 나라를 들볶으면서 힘여린 나라에서 사는 사람을 가난 구렁텅이로 밀어넣고 있기 때문에 나라밖 봉사를 한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이 나라밖 봉사는 어떤 매무새로 해야 하며, 우리가 봉사를 하는 그 나라 삶과 삶결은 어떠한가를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마디를 덧붙입니다.

 

.. 우리가 수도원의 모든 방, 심지어 세탁실까지 빌려 묵던 날 밤에 나는 마당에서 어마어마한 반딧불이의 불빛을 보았다. 어쩌다가 반짝 하고 나타나는 게 아니었다. 여기저기, 그중에는 문 바로 위의 벽에 앉아 빛을 뿜는 반딧불이도 있었다. 그런데 진짜 피그미 숲에서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숲은 반딧불이가 내뿜는 빛으로 넘쳐나고 사람은 반딧불이의 빛을 헤치면서 걸어간다고 했다. 나는 그처럼 청정한 공기를 아프리카의 시골에서만 느낄 수 있었다. 한 번도 사람의 폐와 장은 물론 자동차 엔진에도 들어간 적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는 깨끗하고 강렬한 생기로 가득 찬 공기였다. 공업의 발전과 반딧불이의 서식은 양립할 수 없다는 원칙을 나는 카메룬과 방글라데시에서 알았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왜 도시로 나가 어려운 수학을 배우고, 냄새 나는 방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야 한단 말인가 … 누군가는 수돗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또 텔레비전을 볼 수 있어서라고 하지만, 그런 건 애당초 없는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에 없어도 전혀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들의 세상은 아무런 문명의 이기가 없어도 멋지게 완결되어 있었다 ..  (78∼79쪽)

 

 2001년에 《아름답게 늙는 지혜(계로록)》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손바닥만 한 자그마한 판으로 나온 책으로, 책겉에는 한자로만 글쓴이 이름이 적혀 있어, 그 책을 쓴 사람은 '曾野綾子'라고만 알았습니다. 여덟 해 앞서 《아름답게 늙는 지혜(계로록)》를 읽은 까닭은 그무렵 제가 일하는 곳 사장님이 예순 나이를 앞둔 분이었는데, 당신이 먼저 이 책을 읽고 보니 책이 참 좋더라고, 저보고 "종규 씨네 부모님한테도 이 책을 선물해 주면 좋을 듯한데, 괜히 부모님이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모르겠어? 이 책을 선물하면 마치 자기들은 아름답지 못하게 늙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잖아?" 하면서 저보고 이 책을 몇 권 사 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사장님은 우리 부모님한테 한 권, 당신 다른 옛동무들한테 한 권씩 이 책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명절날 이 책을 들고 부모님을 찾아가서 건네드렸습니다. 일터 사장님 말씀마따나 부모님은 대뜸 성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너나 읽어!" 속으로 말합니다. '네, 제가 읽어야겠네요.'

 

 그 뒤로 책은 판이 끊어졌고, 헌책방에서 이 책이 보이면 가끔 한 권씩 집어들어, 둘레 '나이 좀 든 분들'한테 선물해 주곤 합니다. 이때에도 선물받은 분들은 한결같이 책 겉에 적힌 말마디 때문인지 이맛살을 찌푸리곤 합니다. 꼭 당신이 '아름답게 안 늙고' 있어서 책을 주는 듯하다고.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이 책을 잊었는데, 2004년부터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라는 새이름을 달고 새판으로 다시 나오고 있습니다. 바뀐 책이름을 보며 '옛이름이 나쁠 까닭은 딱히 없지만, 한국땅에서는 옛이름을 받아들일 어른이 드물겠지. 아무래도 이 새이름쯤 붙여야 겨우 집어들려고 할 테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a

속 사진. ⓒ 리수

속 사진. ⓒ 리수

 

.. 물론 세월이 거의 1세기가 흘렀고 독립의 자극에 의해 우수한 '시골 청년'들이 아프리카 각지에서 배출되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들 중 대부분은 슈바이처가 살던 때처럼 고국의 수도는 물론, 랑바레네 마을로도 돌아오지 않았다. 현재 그들은 뉴욕이나 주네브 혹은 유엔기구 등에서 일하며 자신이 태어난 마을로는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고국에 남은 일반인의 삶의 질이 향상되지 않고, 나라의 발전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  (175쪽)

 

 새벽 세 시쯤 갑자기 깨어 큰소리로 울어대다가 엄마가 젖을 물리니 금세 잦아들면서 새근새근 잠든 아기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아기 엄마는 고단한 몸을 다시 뉘지만, 아기 아빠는 다시 잠들지 못하고 오늘 하루 미리 챙길 여러 가지를 생각하며 뒤척이다가, 다른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새벽 네 시가 넘을 무렵 부시시 일어납니다. 낯을 씻고 어제 못 담근 쌀을 씻어 담그며 몇 가지 글을 끄적입니다. 조금 뒤에는 저녁 동안 나온 기저귀 빨래를 해야 하며, 그러면서 걸레도 빨아 마루바닥을 훔쳐야 하고, 지난밤 다 마른 빨래를 개야지요.

 

 차츰 날이 밝아 오면서, 모기장 안쪽에서 잠든 아기 얼굴이 또렷하게 보입니다. 엄마젖을 새로 물고 잠든 아기는 더없이 느긋하고 맑습니다. 아기한테는 밥 몇 술과 물 몇 모금과 엄마젖이면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랑과 평화를 선사받습니다. 이것 말고 따로 무엇을 더 바랄 일이 있으랴 싶습니다. 굳이 무엇이 더 있어야 하지는 않을 테지요. 그러면 우리 어른한테는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우리한테는 저마다 무엇이 더 있어야 기쁘거나 즐겁거나 보람차거나 신날까요? 우리한테는 무엇이 있어야 우리 삶이나 모습이 한결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우리 주머니에는 돈이 얼마쯤 있어야 하는지요? 우리 주머니에서 돈을 얼마쯤 덜어내어 내 이웃이나 동무나 다른 살붙이한테 나눌 수 있을는지요?

 

 두 다리로 길을 거니는 당신은, 담배를 안 태우며 걸을 수 있습니까? 자전거로 일터를 오가는 당신은, 자전거 빠르기를 줄여 '자전거가 달리는 길 둘레'를 살필 수 있습니까? 자가용으로 일터를 오가는 당신은, 찻길 한쪽을 줄여 자전거가 함께 달리도록 하는 일에 마음을 나눌 수 있습니까? 자가용 대놓을 자리를 덜어내어 자전거 대놓을 자리를 마련해도 괜찮습니까? 한 달에 이백만 원을 일삯으로 받는 당신한테서 이십만 원쯤을 사회복지와 문화예술을 북돋우는 데에 쓰도록 덜어 가도 괜찮습니까?

 

 《왜 지구촌 곳곳을 돕는가》를 차근차근 읽으면서도 느끼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 나를 돕고 사랑하는 마음을 올곧게 다스릴 수 있을 때 바야흐로 내 이웃과 동무를 도울 수 있습니다. 내 나라 내 겨레 내 동네 내 삶터에서 내가 아름답게 살아가고 내 이웃과 동무가 아름답게 어깨동무할 길을 마련하려고 애쓰고 있을 때 비로소 나라밖 이웃과 동무를 올곧게 헤아리면서 따순 손길을 내밀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한국땅 한국사람들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이들이 나라밖 마실을 자주 떠나고는 있어도, 정작 우리 삶터를 제대로 모르고 우리 이웃이 누구인지를 까맣게 잊으며 우리 스스로 어떤 모습인지를 똑똑히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짧게 끄응 하며 모로 누운 아기를 살며시 바라보며 앞머리를 쓸어넘겨 줍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08.13 11:03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왜 지구촌 곳곳을 돕는가 - 빈곤에 관한 가장 리얼한 보고서, NGO활동의 의미와 진실

소노 아야코 지음, 오근영 옮김,
리수, 2009


#책읽기 #해외봉사 #NGO #인문책 #구호활동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