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러기아빠의 귀가

김대중 대통령 서거에 즈음하여

등록 2009.08.20 11:50수정 2009.08.20 11:50
0
원고료주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느즈막이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선 방안엔

습기 먹은 공기가 적막과 함께 나를 맞이하고

전등 스위치로 손이 가려다 멈칫,

그대로 의자에 앉아 어둑한 방 안을 응시합니다.

실상 방 안을 살펴보는 게 아니라

그저 눈만 뜬 채 적적한 상념에 잠깁니다.

귀가를 맞아주던 반가운 목소리도

지친 어깨를 풀어주던 따스한 포옹도

이 방엔 없습니다.

그리움에 시린 가슴만 어둠 속에 덩그러니...

 

평범한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던

우리 사회의 커다란 별 세 개가

연이어 스러지는 기막힌 우연.

나와 직접 관련 없을 그들의 죽음이건만

왠지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고이고

가족에 대한 먹먹한 그리움은

눈물과 함께 스러진 별들로 향합니다.

사랑도 의로움도 침침한 어둠에 묻히고

문득, 그들을 스쳐간 죽음의 그림자가

내게 있어서도 그리 멀리 있지 않음을 느낍니다.

 

하늘에선 별이 떨어지고

땅에서는 고통과 울분의 소리가 요란한데

어두운 밤은 끝 닿은 곳을 알 수 없습니다.

여기에선 힘겨움과 외로움을 삼키고 있는데

멀리에선 돈 부족하단 원망의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옵니다.

탁 트인 수평선을 바라볼 여유도 없이

찜통 더위로 꽉 막힌 내륙의 땅에서

길 잃은 기러기는 힘겨운 날개짓을 합니다.

기댈 곳도 잠시 쉬어갈 여유도 없이...

 

축 처진 기러기아빠의 어깨 위로

어둠은 점점 두텁게 쌓여갑니다.

2009.08.20 11:50 ⓒ 2009 OhmyNews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AD

AD

인기기사

  1. 1 윤석열 총장님, 이건 해명이 필요한데요?
  2. 2 휴전 들어간 국회... '검찰 간부 실명공개' 언급한 이해찬
  3. 3 걱정스러운 황교안 호감도...1위 이낙연·2위 심상정
  4. 4 무릎 꿇린 전두환 동상, 손으로 맞고 발길에 차이고
  5. 5 "전 역대 어느 대통령도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