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보리밥 열무쌈에는 전어밤젓이 찰떡궁합

보릿고개, 아련한 세월의 추억 꽁보리밥 속에서 솔솔 피어나

등록 2009.08.28 11:00수정 2009.08.28 11:00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꽁보리밥 열무쌈에는 전어밤젓이 찰떡궁합이다. 순순한 고향의 맛이 그대로 담겨 있으니 그 무엇에 견줄까. ⓒ 조찬현


꽁보리밥이 담긴 대바구니에 시선이 머물자 어린 시절 보릿고개를 넘던 어려웠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고향집 처마 밑에서 대롱거리던 보리쌀바구니도 떠올랐다. 어머니는 가마솥에 삶아 낸 보리쌀을 보리쌀바구니에 담아 쉬지 말라고 바람 시원한 처마에 매달아 놓곤 하셨다.


대바구니에 그득 담긴 꽁보리밥이 넉넉하다. 대바구니에는 각자 먹을 만큼만 덜어서 먹을 수 있도록 주걱 하나가 꽂혀 있다. 찬은 묵은지가 단연 독보적이다. 꽁보리밥에 제격인 묵은지는 감칠맛에 세월의 깊이까지 담고 있다. 묵은지로 끓여낸 김치국에도 세월의 맛이 오롯하다.

고향집 처마 밑에서 대롱거리던 보리쌀바구니

a

고향집 처마 밑에서 대롱거리던 보리쌀바구니, 옛날에는 냉장고 대용으로 사용했다. ⓒ 조찬현

옛날 천덕꾸러기 꽁보리밥이 이제는 귀한 대접을 받는 세상이 되었다. 그 시절에는 워낙 귀해 특별한 날에만 구경했던 쌀밥이 이제는 푸대접이다. 가족끼리 둘러앉아 도란거리며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는데 보리밥만한 음식도 없을 것이다. 추억할 수 없을 정도의 아련한 세월까지도 꽁보리밥 속에서 솔솔 피어나고 있다.

"야~ 진짜 꽁보리밥이네!"
"이집 보리밥으로 꽤나 유명한 집이에요."
"별미 보리밥이라~ 이거 정말 구미 당기는데."
"맛이 어때?"

송죽회관, 그러고 보니 언젠가 한번 다녀갔던 집 같다. 어쩐지 분위기가 낯설지 않다. 아내는 몇 해 전 가족모임을 가졌던 곳이라고 했다. 여수에서 출발하여 전남 담양의 창평IC를 빠져나오자 왼편에 자리잡고 있어 찾기도 수월했다.


전원적인 이미지에 제법 운치가 있다. 실내는 고기 굽는 냄새로 가득하다. 청둥오리와 보리밥 전문점이다. 보리밥은 1인분에 7천원이다. 여느 집과 달리 값이 약간 높은 걸 봐서는 뭔가 다른 게 있나 싶어 한편으론 내심 기대도 되었다.

대바구니 가득한 푸성귀가 주인의 심성을 짐작케 했다. 열무, 풋고추, 상추, 깻잎이 정갈하게 담겨 있다. 상이 차려져 나오기까지는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잠깐, 삼베를 깐 대바구니에 담겨져 나온 꽁보리밥을 보는 순간 "그래 여길 오길 잘했어, 탁월한 선택이야"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꽁보리밥에 한 쌈... 스르르 밀려드는 행복감

a

대바구니에 그득 담긴 꽁보리밥이 넉넉하다. ⓒ 조찬현


꽁보리밥에 갖은 나물을 넣어 양푼에 쓱쓱 비벼내 쌈을 하니 행복감이 스르르 밀려든다. 여기에 참기름 한 방울을 뚝 떨어뜨리면 구수한 향이 어우러져 그 맛이 배가된다. 꽁보리밥 열무쌈에는 전어밤젓이 찰떡궁합이다. 순순한 고향의 맛이 그대로 담겨 있으니 그 무엇에 견줄까.

꽁보리밥을 참 잘도 지었다. 진짜 꽁보리밥의 맛이 그대로 살아 있다. 가마솥에 밥을 짓던 시절에 비하면 요즘은 압력솥이 있어서 참 편리해졌지만 그래도 음식의 기본은 밥이다. 첫째는 밥맛이 좋아야 한다.

계속 당기는 감칠맛에 이끌려 정신없이 먹었더니 포만감이 가득하다. 배가 부르니 이제 나른함이 밀려온다. 평상에 늘어져 한숨 잤으면 좋겠다. 느티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시원한 곳에서.

a

꽁보리밥에 제격인 묵은지는 감칠맛에 세월의 깊이까지 담고 있다. ⓒ 조찬현


a

대바구니 가득한 푸성귀가 주인의 심성을 짐작케 했다. 열무, 풋고추, 상추, 깻잎이 정갈하게 담겨있다. ⓒ 조찬현


오곡지장이라 하여 다섯 가지 곡식 중 가장 으뜸으로 여긴 '보리'

우리나라의 보리경작은 기원전 1천5백년 경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다. 가난의 상징으로 알려진 보리는 한때 유럽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의 주식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건강식품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은 보리의 기능성이 알려지면서부터다. 보리는 우리 식생활에서 부족하기 쉬운 여러 가지 무기성분들과 비타민류가 풍부하다.

추운 겨울철에 자라는 우리나라의 보리는 다른 작물에 비해 병충해가 없다. 그래서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무공해 식품이다. 이렇듯 그 가치가 높은 보리는 영양학적 우수성은 물론 대기 중의 탄산가스를 작물의 광합성에 이용하여 공기정화를 하는 친환경작물이기도 하다.

a

꽁보리밥에 갖은 나물을 넣어 양푼에 쓱쓱 비벼내 쌈을 하니 행복감이 스르르 밀려든다. 여기에 참기름 한 방울을 뚝 떨어뜨리면 구수한 향이 어우러져 그 맛이 배가된다. ⓒ 조찬현


고대 로마의 검투사들이 체력 보강을 위해 먹었던 보리는 힘의 상징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들을 '보리를 먹는 사람'들로 부르기도 했다. 보리에는 다량의 식이섬유와 비타민이 들어 있어 정력 강화에 도움을 주고, 말초신경의 활동을 원활하게 하는 비타민E와 말초신경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비타민B도 들어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보리를 오곡지장이라 하여 다섯 가지 곡식 중 가장 으뜸으로 여겼다.

1960~70년대 보릿고개 시절 넌더리가 나도록 먹었던 보리밥은 우리나라에서도 가난의 상징이었다. 그 시절에는 쌀이 워낙 귀해 잔치가 있거나 특별한 날에만 쌀밥 구경을 했으니 그도 그럴밖에. 그 천덕꾸러기 꽁보리밥이 귀하게 대접받는 세상이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꽁보리밥 한 그릇에는 이렇듯 수많은 추억이 담겨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보리밥 #꽁보리밥 #보릿고개 #열무김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니, 소파가 왜 강가에... 섬진강 갔다 놀랐습니다
  2. 2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3. 3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4. 4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5. 5 '김건희 비선' 의혹, 왜 자꾸 나오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