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 올려받아 은행에 넣어두지 그랬어"

친구의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렸으나...

등록 2009.09.01 09:54수정 2009.09.0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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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네 그 아파트 전세기한 되지 않았어?"
"2년 지났지. 왜?"
"요즘 전세가 없어서 난리인데 얼마나 올려 받았어?"
"아니, 올려 받아봐야 빚만 되지. 내가 무슨 재테크의 여왕도 아니고."
"그래도 그렇지. 조금이라도 올려서 은행에라도 넣어 놓으면 이자라도 붙잖아."


사실 친구에게 그 말을 듣는 순간에는 "그럴 걸 그랬나?" 하면서 많이 후회가 되었고 많이 흔들렸다. 

그대로 살라고 하기 전에 부동산에 가서 시세를 알아볼 것을 그랬나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하지만 '은행이자가 붙으면 얼마나 붙어? 올려달라는 말 안 하기를 정말 잘했어'라는 생각이 금세 들기도 했다.

어쨌든 그의 말에 의하면 천만 원은 더 올려 받아도 되고 그것도 없어서 못 구한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전세를 준 아파트는 지난 8월 중순경이 2년 만기였다. 기한이 되었지만 세입자에게 연락이 없어 내가 먼저 전화를 했다.

그는 조금은 긴장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면서 "그렇지 않아도 전화를 하려고 했어요" 한다.  "그랬어요. 벌써 2년이 되었네요. 이번에 이사할 계획 있어요?" 하고 물었다. "아니요. 이사할 계획 없어요" 한다. "그럼 더 살 거예요?"하고 물으니 조금은 힘 있는 목소리로 망설임도 없이 "네, 더 살게요" 한다. 전세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와 난 그렇게 합의를 보았다. 전세파동이 나지 않았어도 내가 돈이 필요했다면 세입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올려달라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나도 전세 살던 경험이 있고,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하면 그것처럼 난감한 일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도 하다. 돈이 준비되어 있다면 걱정할 일은 없겠지만 그렇지 못하니 걱정인 것이다.


오래 전 전세를 살 때의 일이다. 먼저 살던 집주인이 집을 팔고 새 주인이 들어왔다. 새 주인이 들어오면 전세금을 올려 받든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것이 공식처럼 통할 때였다. 그때 마침 남편은 직장을 잃고 실직상태여서 걱정은 태산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사를 안 가려면 전세금 50만 원을 올려달라고 해서 전세금이 200만 원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6~27년 전에는 양옥집 한 채에 400만 원~500만 원(내가 살던 곳은 응암동에서 조금은 높은 곳이라 다른 곳보다 조금 쌌다) 정도면 살 수 있었다. 그때 오십만 원이면 꽤 큰돈이기도 했다. 주인이 바뀌는 상태라 올리는 전세금도 미룰 수가 없었다. 그 집이 이사오는 날에 꼭 맞추어야 했었다.

저축해놓은 돈은 곳간에서 곶감 빼먹듯이 생활비로 야금야금 쓰고 있었다. 그러니 목돈이라고는 있을 턱이 없었다. 올려줄 돈이 없어 이사를 간다 해도 돈은 깨지기 마련이다. 복비와 이사비용 등이 적잖게 지출이 되는 것은 뻔한 일. 그러느니 차라리 올려주고 편하게 사는 것이 좀 더 나은 방법이었다. 아이들 학교문제도 있고. 또 전세금을 올려주고 나면 저축하는 기분이 들기도 해서, 올려주고 사는 것이 여러 가지로 좋다는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이웃에서 돈을 빌려 전세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자는 다달이 주었지만 그때 심정으로는 빌리는 그 돈도 공짜로 주는 기분이 들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고마운 이웃이었다. 은행대출은 감히 꿈도 꾸지 못했고 카드가 없을 때였으니 현금서비스를 받을 수는 더더욱 없었다. 이웃에게 빌린 돈은 몇 개월 후 남편이 취업해 갚을 수가 있었다. 갚고 나니 어찌나 후련하던지.

빚을 갚으면서 난 '빨리 내 집을 다시 장만해서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야 해. 그래야 아이들도 기를 펴고 살지'하며 다시 한 번 굳게 다짐을 했다. 어쨌든 집 없는 어려움이나 고통을 알기에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하는 일은, 웬만하면 앞으로도 하고 싶지 않다.

세입자는 그동안 다른 곳에서 전세를 살면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전세금을 빼지 못해 다달이 받기도 했고, 보일러가 고장이 났지만 주인이 고쳐주지 않아 겨울에 냉방에서 지내기도 했단다.

2년 전 세입자가 나와 계약을 하면서 애틋한 얼굴로 "사모님 여기서 오래 살게 해 주세요" 했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하다. 그럼에도 만약 내가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했다면 올려주고 더 산다고 했을까? 아니면 이사 간다고 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그냥 살라고 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전세대란 #전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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