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안중근 동상'과 ' 하얼빈서 온 안중근 동상'

<안중근 동상 비교> 안중근 장군 기상과 영웅적 모습 어떻게 담았나?

등록 2009.09.05 20:35수정 2009.09.05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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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전혀 다른 안중근 동상 하얼빈동상은 안중근 장군이 하얼빈 거사시 입었던 전투복 차림이고, 서울 남산동상은 하얼빈 의거 전에 입었던 넥타이를 멘 현대식 양복 차림이다. 안중근 장군이 넥타이를 멘 사진은 10.26 하얼빈 거사 전의 것이다. ⓒ 정광일


서울 남산 안중근의사 기념관에 옆마당에 세워져 있는 안중근의사 동상은 1974년에 세워진 것이다. 이 동상은 대표적인 친일작가로 알려진 김경승의 작품으로 그 동안 여러 차례 친일논란에 휘말려 왔다. 남산 안중근 동상은 문화재급으로 지정된 것으로 국가보훈처로 부터 대표적인 안중근 의사 동상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회내 헌정기념관 앞마당에 9월 4일 임시로 세워져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는 안중근 장군 동상은 2006년 1월 16일 중국 하얼빈 시 중앙대가 번화가에 세워졌다가 11일 만에 '외국인 동상은 실외에 세울 수 없다'는 중국정부에 의해 강제 철거되는 수모를 당한 후, 지난 3년 8개월 동안 재중사업가가 운영하는 하얼빈 백화점 지하사무실에 보관됐다가 2009년 9월 1일 귀국한 '고독한 사연'을 간직한 동상으로 대한민국 현역군인(이인희 대령 /육사 39기)이 설계디자인하고 안중근 장군의 의거현장인 중국 하얼빈에서 하얼빈 공과대학 양세창 교수에 의해 조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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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 멘 안중근(거사 전)과 전투복의 안중근(거사직 후)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총소리는 안중근 장군의 상징이다. 서울 남산의 안중근 장군 동상에 넥타이를 활용했다는 것은 안중근의 하얼빈 정신을 동장제작에 반영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서울 남산 동상은 대표적인 친일작가로 알려진 김경승의 작품이다. ⓒ 정광일


하얼빈 안중근 동상은 이미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동상이다. 동상제막과 철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서울 남산 안중근의사 기념관 입장권에 3년 넘게 사진으로 소개되고 있고 안중근의사 기념관 입구에도 대형사진으로 3년 넘게 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언론보도와 안중근의사 기념관에서 사진으로만 소개되고 있는 하얼빈 동상의 실물이 지난 9월 1일 인천항을 통해 서울에 도착했다.

그러나 국가보훈처는 국내로 반입된 하얼빈 동상에 대해 작품성, 예술성 등 검증 안된 동상이라는 입장을 보이면서 공공장소 설치에 난색을 표명해 갈등의 소지가 만들어졌다. 보훈처는 하얼빈 동상의 얼굴이 안중근 의사의 사진 속 얼굴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민간단체의 안중근 동상건립운동에 제동을 걸고 있다.

하얼빈 동상의 국내반입을 추진한 안중근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는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알려진 '안중근 사진'은 안 의사가 하얼빈 의거 후 일본헌병들에게 체포돼 쇠사슬에 묶인채 흉악한 살인범으로 묘사하기 위한, 일제의 불순한 의도로 찍힌 사진들이라면서 쇠사슬에 묶여 찍힌 얼굴 사진과 동상의 얼굴 모습의 동일 여부에 비중을 두고 동상의 작품성과 예술성을 운운하는 것은 동상이 갖는 정신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쇠사슬에 묶인 얼굴 사진으로 안중근 의사의 영웅적인 모습을 작품화 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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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이 온 몸이 묶인 안중근 사진들 안중근 장군 사진은 대부분 일제가 흉악한 살인범으로 묘사하기 위해 찍은 것들이다. 특히 일부 사진은 일제가 엽서로 제작해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기도 했다. 이같은 사진 얼굴이 민족의 영웅 안중근 얼굴일까? 쇠서슬에 묶인 사진 얼굴과 닮지 않는 동상은 작품성과 예술성이 없을까? ⓒ 정광일


서울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괌에 세워져 있는 남산 동상과 하얼빈에서 귀국해 국회에 임시로 세워진 하얼빈동상의 모습은 분위기가 다르다.

특히 사진 속의 '안중근 옷'을 기준으로 볼 때 두 동상이 갖는 의미에 큰 차이가 있다. 남산 동상은 안중근 장군이 하얼빈 거사 직전의 사진을 동상제작에 반영했고, 하얼빈 동상은 거사 직후의 사진을 동상제작에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안중근 장군이 입고 있었던 사진 속 옷을 기준으로 볼 때 1974년 서울에서 제작된 남산 동상은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안중근 장군이 이등박문을 사살하기 전의 '안중근 의상' 모습이고, 하얼빈에서 제작해 최근 서울로 온 하얼빈 동상은 동양평화를 파괴한 이등박문을 사살한 직후의 '안중근 의상' 모습을 동상에 담은 것이다. 그 증거를 안중근 사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안중근 사진 중 넥타이를 멘 모습은 하얼빈 의거 전이다. 남산의 안중근 동상에 넥타이가 등장한다는 것은 안중근이 이등박문을 사살하기 전의 안중근 사진을 참고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친일작가 김경승은 왜 안중근 장군이 이등박문을 사살하기 이전의 넥타이를 멘 안중근 사진을 동상제작에 이용했을까?

우선 남산동상은 안 의사의 모습이 단정하다. 넥타이를 메고 양복을 입고 그 위에 다시 코트를 입었다. 전체적인 의상이 파티복처럼 고급스럽다. 얼굴 표정 역시 귀공자에 가깝다.

그러나 국회에 전시되고 있는 하얼빈 동상에서 안중근 장군이 입고 있는 옷은 전투복이다. 하얼빈 의거 당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재현했다. 옷의 단추 하나가  없다. 단추가 하나 없는 것은 안중근 장군이 의거 직후 러시아 헌병들에게 체포된 과정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다.

하얼빈 동상 얼굴 표정은 심각하다. 시선도 매섭고 힘이 들어가 있다. 목을 약간 옆으로 돌린 상태에서 한 곳을 분명하게 응시하는 자세를 취하는 힘 있는 자세다.

남산 동상의 얼굴 표정은 전체적으로 온화한 느낌을 갖는다. 입가에는 엷은 미소도 감돈다. 시선은 정면을 보고 있지만 다정한 느낌을 갖는다. 상대적으로 하얼빈 동상에 비해 인자한 느낌이다. 하얼빈 동상이 전투적인 역동적인 느낌이 있다면 남산 동상은 인자한 정적인 느낌을 준다.

하얼빈동상 오른 손은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하반신 자세는 움직이는 포즈다. 그러나 남산 동상의 오른 손은 태극기 깃대를 쥐고 서 있는 정적인 이미지에 가깝다.

남산 안중근 동상의 이미지가 가볍다면 하얼빈 동상 이미지는 무겁다. 하얼빈 동상이 씩씩한 용모라면 남산 동상은 온화한 용모를 갖는다. 남산동상에서는 이등박문을 사살한 용맹스런 항일투사의 면모를 상대적으로 찾기가 어렵다.

안중근청년아카데미는 '하얼빈 안중근 동상' 국내 반입을 '안중근 장군 100년 만에 귀국'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역사의 현장인 하얼빈에서 만들어진 안중근 장군 하얼빈 동상은 지난 8월 15일 광복절에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려져 100년 전 총성이 울린 의거의 현장 하얼빈 역과  안중근 장군이 유언을 통해 자신의 시신을 묻어달라고 했던 하얼빈 공원을 거쳐 안중근 장군이 하얼빈에서 여순감옥으로 이송된 경로를 따라 여순재판소에 16일 도착해 14일 동안 임시보존 했다.

특히 하얼빈 동상은 귀국에 앞서 당시 안중근 장군에게 사형을 선고한 법정에서 100년전 재판이 부당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의미로 진혼제 의식을 갖고 인천항을 통해 9월 1일 귀국 한 뒤, 안중근 장군 허묘가 있는 서울 효창공원에서 100년 만에 귀국 의식을 상징하는 귀국의식을 마치고 9월 3일 국회사무처의 지원을 받아 하루 뒤인 4일, 민의의 전당 국회 안 헌정기념관 앞 뜰에 임시로 세우고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정광일 / 안중근평화재단청년아카데미 대표>
www.danji12.com

덧붙이는 글 | 안중근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www.danji12.com)는 '보통사람들의 안중근 운동'이라는 슬로건으로 안중근운동의 대중화를 표방하고 안중근 웅변대회, 안중근평화마라톤, 안중근평화축구대회, 안중근 도서보급 운동,안중근동상건립운동 등을 전개하는 민간단체입니다.


덧붙이는 글 안중근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www.danji12.com)는 '보통사람들의 안중근 운동'이라는 슬로건으로 안중근운동의 대중화를 표방하고 안중근 웅변대회, 안중근평화마라톤, 안중근평화축구대회, 안중근 도서보급 운동,안중근동상건립운동 등을 전개하는 민간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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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 봄에 미국에 이민, 뉴욕 한인타운 한 복판에서 부인과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과 함께 평범하게 살고 있는 뉴욕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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