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배구대표팀 오른쪽 간판 공격수인 박철우 선수(24·현대캐피탈)가 태릉선수촌에서 대표팀 이상렬 코치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해 충격을 주고 있다. 태릉선수촌에서 합숙훈련 중이던 박철우 선수는 왼쪽 뺨에 상처를 드러낸 채 18일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아버지 박정선(57)씨와 기자회견을 열어 "17일 저녁 6시께 운동 뒤 대표팀의 이상렬 코치가 선수들을 불러놓은 자리에서 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손과 발로 얼굴과 배를 때렸다"고 구타 사실을 자세히 설명했다.국가대표 오른쪽 간판 공격수까지 지도자에게 구타를 당한 것은 우리 체육계 고질병인 '구타'가 얼마나 뿌리깊은지 보여준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지도자에게 구타 당한 것은 박철우 선수가 처음은 아니다.2004년 11월 쇼트트랙 여자대표선수 6명은 코칭스태프의 반복되는 구타와 언어 폭력, 사생활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견딜 수 없다며 태릉선수촌을 이탈했다. 쇼트트랙은 겨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안겨주는 효자 종목이어서 시민들이 받은 충격은 더 컸다. 이 구타 사건으로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단과 강화위원 전원이 총사퇴했다.2008년 12월에는 홍콩전지훈련으로 떠나던 펜싱국가대표 선수 한 명이 코치에게 맞았다. 비행기 탑승 직전에 대표팀 선수 한 명이 공항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다가 코치한테 걸렸고 그로 인해 공항과 홍콩 도착 후 선수단 숙소에서 무차별 폭행을 당했던 것이다. 맞은 선수는 28세의 에페 대표팀 김승구 선수(화성시청)이고 선수를 때린 지도자는 이석 코치였다.국가대표 선수가 지도자에게 맞는데 어린 선수들이 맞는 일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2008년 3월에는 용인대 강장호 선수가 폭력을 당해 격막 손상에 의한 뇌출혈로 생명을 잃었다. 체육학과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팬티만 입히고 얼차려와 구타하는 장면이 신문과 방송사 카메라에 잡혀 보도되기도 했다.2008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전국의 중고교 남녀 학생선수 113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운동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의하면 학생선수 10명 중 8명꼴(78.8%)로 폭행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운동을 못하거나 훈련태도가 나쁘다는 이유로 '기합이나 얼차려'(64.3%), '모욕적 욕설'(59.1%), '구타'(49.3%)를 당했고 '훈련과 상관없이 욕을 듣거나 맞았다'는 경우도 44.4%나 됐다. 이래도 맞고, 저래도 맞는다는 말이다. 10명 중 8명이 구타를 당한다면 어린 운동 선수들 전체가 구타를 당하는 것과 같다. 자신은 구타를 당하지 않아도 옆에 있는 동료 선수가 구타 당하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정신적인 구타를 당하는 것과 같다. 심지어 프로야구 선수들도 폭력을 당하는 일어 일어났다. 기아의 김성한 전 감독이 지난 2002년 8월 2군 포수 김지영을 훈계하면서 방망이로 헬멧을 때려 여섯바늘을 꿰매는 중상을 입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2009년 8월 8일 LG 트위슨 2군 훈련장인 구리구장에서 투수 서승화 선수(30)가 야구 배트를 사용해 후배 야수 이병규 선수(26)를 "선배를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때렸다. 이 뿌리 깊은 폭력은 지도자들은 선수들을 강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선수들도 선수촌에서 생활하면서 군대식 문화와 성적 지상주의에 물들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폭력이 대물림된다는 것이다.선배에게 폭력을 당한 선수가 후배 선수를 또 폭력하는 폭력의 대물림은 체육계뿐만 아니라 가정 폭력에서도 드러난다. 부모에게 폭력을 당한 아이가 자라 나중에 자신도 모르게 폭력을 행하는 것이다.체육계는 폭력사건이 터질 때마다 무슨 자정위원회같은 것을 구성하여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지만 체육계 폭력은 박철우 선수에게서 보듯이 현재진행형이다. 안 보이면 적당히 묵인하고, 드러나면 징계하는 척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어쩌면 구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체육계 안에서는 이미 자정 능력을 잃어 버렸는지 모른다.어린이와 가정 폭력에 대해 처벌하는 것처럼 체육계도 폭력 방지를 위한 특별법 따위를 만들어 뿌리 뽑아야 한다. 지도자가 선수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가하는 폭력은 사랑의 매도, 실력을 키우는 방법이 아니라 범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