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없는 세상' 미국의 변신 기대해도 될까

오바마의 '핵무기 없는 세상'과 미국의 변신, 한국은?

등록 2009.09.26 11:17수정 2009.09.2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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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4일 유엔 안보리가 핵무기 근절을 강조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무엇보다 미국은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국의 많은 언론 보도들은 안보리 정상회의와 결의안이 북한과 이란을 경고하고 있다는 데 비중을 두었지만, 그것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알려진 대로 역사상 5번밖에 열리지 않은 안보리 정상회의가 핵군축을 의제로 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정상회의를 오바마 미 대통령이 주재했고 결의안 초안도 미국이 제출했다. 안보리 결의안의 내용이나 주요 국가 정상들의 발언도 이전 핵군축 논의에서 한 발 더 나갔다. 핵무기를 철폐하는 것보다 핵무기 사용 위험성을 없앨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말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핵군축과 비확산 결의안을 통과시킨 유엔 안보리가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단 하나의 핵무기도 수십 만명의 인명을 살상할 수 있다며, 핵확산방지조약(NPT)에 명시된 대로 핵무기 보유 국가들은 핵군축의 책임을, 비핵국가들에게는 핵무기를 포기할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러시아와 전략핵무기의 실질적인 감축을 협상하고 핵물질 생산의 종식을 위한 협상에도 나서겠다고 밝혔다.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CTBT)을 비준하여 핵실험이 영구히 금지되도록 노력하며, 미국 최초로 국무부 장관이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을 논의하는 회의에 미국 대표로 참석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핵태세검토(Nuclear Posture Review)도 핵무기 자체를 줄이고 핵무기의 역할을 줄이는 방향으로 할 것임을 덧붙였다.

 

그 동안 유엔 핵군축 결의안 중 표결에 붙여졌던 결의안에 모조리 반대해왔던 미국의 이 같은 변신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최소한 부시 행정부 시절 미국은 핵무기 사용 금지를 비롯해 핵무기 감축, 핵분열성 물질 생산금지, 핵무기 작동태세 완화, 그리고 비핵국가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소극적안전보장(NSA, Negative Security Assurance)에 지속적으로 반대해왔다. 핵실험금지조약도 비준하지 않았고, 지역별 비핵지대화에도 반대해왔다. 원자폭탄을 사용했던 유일한 국가이자, 러시아와 더불어 핵무기를 최대로 보유하고 있는 국가이면서도 강고하게 핵군축을 거부해왔던 미국은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핵군축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것이다.

 

관련기사
[참여연대 핵군축 보고서] 유엔 핵군축 결의안에 대한 주요국가, 한국 정부 표결 분석(종합)  
[참여연대 핵군축 보고서 I] 주요국가들의 핵군축 결의안 표결 성향
[참여연대 핵군축 보고서 I] 유엔 핵군축 결의안에 대한 주요국가 표결 분석(요약본)


오바마의 미국은 이제 스스로 핵확산방지조약(NPT)의 강화를 말하면서 더 이상 국제협약이 공허한 약속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이에 대해 러시아도 미국과 전례없는 전략핵무기감축에 나섰음을 강조하고 핵군축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핵전쟁 위협 제거가 핵심이라며, 핵억지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동안 국제사회의 핵군축 논의가 제대로 힘을 얻지 못했던 것은 핵보유 국가들의 비타협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가공할 핵전력을 추구해왔고 핵무기 사용위협도 배제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핵물질과 기술이 확산되었고, NPT 밖에서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국가들도 늘어갔다. 핵억지력을 중요한 안보수단으로 삼으려는 이들 나라들에 대해서 기존의 핵보유 국가들이 선별적으로 대응함에 따라 핵군축과 비확산의 책임소재와 이중 잣대 문제는 언제나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핵억지력으로 유지되던 냉전시대는 종식되었지만 핵무기 비축량은 지속적으로 쌓여왔다. SIPRI(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09년 현재 전 세계에는 23,300개의 핵무기 존재하며, 2000회가 넘는 핵실험이 진행되었다. 1,379톤의 고농축우라늄이 비축되어 있고, 225톤의 군사용으로 추출된 플루토늄(separated plutonium)이 존재한다. 이러한 수치들은 '핵무기 없는 세상(Nuclear Weapon Free World)'이 인류가 지향하고 포기해서는 안 될 과제라는 걸 보여준다.

 

물론 핵군축의 과정은 말처럼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핵무장을 선호하는 이해집단의 존재와 국가간의 불신관계는 핵군축을 몹시 더디게 할 수도 있다. 핵무기 없는 세계(Nuclear Weapon Free World)라는 말 그대로 오바마 행정부가 핵무기의 제조, 배치, 사용 등을 일체 금하는 전세계의 비핵지대화를 추구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핵군축을 주도하겠다는 미국의 태도 변화는 고무적이고 긍정적인 신호임에는 틀림이 없다.

 

오바마 행정부가 핵군축과 비확산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은 북핵 문제를 포함해 한반도 상황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최근 정권교체를 이룬 일본의 민주당이 동북아비핵지대화를 내세우고 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북핵 피로도'라 불릴 만큼 온통 북한의 핵개발 문제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한국사회도 이제 국제사회의 핵군축 논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 사회에 팽배해져 있는 핵억지력에 대한 맹신도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북한의 핵개발 포기를 요구하되,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느라 핵군축에는 사실상 부정적이기까지 했던 정부의 태도도 이제 바뀌어야 한다.

 

 

관련기사
[참여연대 핵군축 보고서 II] 한국 정부의 유엔 핵군축 결의안 표결 분석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가 작성한 글입니다. 

2009.09.26 11:17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가 작성한 글입니다. 
#핵무기 없는 세상 #NPT #CTBT #핵군축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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