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설 김구라 퇴출? 막말 국회의원부터 나가라

[주장] 방송인 짖누르는 권력, 섬뜩하다

등록 2009.10.23 11:34수정 2009.10.23 14:40
0
원고료로 응원
22일 국회 방송통신위 국감에서 일어난 진성호(한나라당) 의원의 '방송인 김구라 퇴출' 발언 뉴스를 듣고 깜짝 놀랐다. 방송에 대해 너무나 공공연하게 압력을 행사하는 권력의 잔인함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손석희 교수, 김제동씨 등 실력있는 방송인이 참 알쏭달쏭한 이유로 프로그램에서 싹둑 하차당하는 시국. 그래서인지 요맘때 터져나온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의 '김구라 퇴출' 발언은 단지 해프닝이 아니라 방송인을 짓누르는 권력의 씁쓸한 행태를 보는 것 같아 섬뜩하게 느껴진다.

'김구라 퇴출'이 나온 이유가 그가 '막말'을 가장 많이 한 방송인이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독한 방송이 트렌드가 된 지가 언제인데 유독 그만 물고 늘어지는 것은 참 의아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혹 과거 김구라가 이명박 대통령 등, 일부 정치인들에게 독설가를 퍼부었다는 사실이 괘씸죄를 준 것은 아닌가 하는 괜한 생각마저 해본다. 뭐, 비단 어떤 이유에서든 연예인의 실명을 대며 퇴출시키라고 거론할 수 있는지, 그 무모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갑작스런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22일 진성호 의원이 국회 방송통신위 국정 감사 도중 '김구라의 막말 방송 사례'를 화면으로 보여주며 프로그램 1회당 평균 김구라 42.3회의 심야 오락프로그램 막말 방송 위반 내역이 있었다고 지적했었다.

그 후, 진성호 의원은 KBS 이병순 사장에게 연예·오락 프로의 사회자 문제에 관여 여부를 물은 뒤, "KBS는 아름다운 한국말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방송사인데 저런 분은 좀 빼십시오"라며 문제의 발언을 꺼냈다. (여기서 저런 분은 물론 방송인 김구라를 지칭하는 것이다.)

방송사 사장에게 저런 분은 좀 빼라는 협박, 방송인을 잘라라. 말라 하는 그 고압적인 태도. 그저 잘나가는 국회의원의 힘 자랑이라고 보아 넘기기에는, 우리 시청자에게 아름다운 언어 교양을 배양하기 위해 막말 평정(?)에 나선 국회의원의 열정이라고 보기에는 무엇인가 낯이 간지럽다. 진성호 의원의 발언은 이만한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없기에 실소마저 나온다.

방송가의 '독설'이 김구라라면, 정치가의 '독설'은 누구일까? 과거 '모 포털사이트 평정' 등의 발언으로 독설의 대명사로 불리며 많은 국민의 공분을 받았던 진성호 의원도 순위권에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구라야 연예인, 일명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니 '의미없는 독설'에 웃음 지을 수 있지만, 진성호 국회의원의 '모 포털사이트 평정' 같은 의미심장한 독설에 웃었던 국민은 얼마나 될까?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국민의 거센 비판을 받았던 '독설' 정치가가 상대적으로 덜한 비판을 받는 '독설' 연예인을 나무라는 꼴이다. 우리 속담에서는 이것을 뭐라고 하던가?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욕한다 였었나.

그렇기에 독설 방송인 김구라 퇴출을 논하려면, 먼저 독설 국회의원부터 나가는 것이 순리가 아닐 듯 싶다. 이 자유주의 나라에 김구라 같은 독설 연예인 한명 있는 것이 무엇이 그리 대수인가. 요즘 같은 다채널 시대에 싫으면 방송을 돌리고, 정 문제가 있다면 법적으로 제제를 가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굳이 앞장서서 '퇴출'을 논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뭐 어쨌든, '독설가' 김구라는 채널을 돌리면 안본다고 하지만 문제는 권력을 독점한 '막말'의 정치인들이다. 방송마다, 뉴스마다 나오는 정치인님들을 싫다고 채널을 돌릴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시청자들이 진정 퇴출시키고 싶은 것은 독설가 김구라가 아니라  독점적으로 TV에 나와 허언, 망언, 폭언을 일삼은 국회의원님들 일지도 모를 일이다.

정작 국민을 분통터지게 하는 모 국회의원, 정작 자신의 허물은 모른 채, 힘없는 연예인 하나만 숨죽이게 만드는 행태가 참으로 안타깝다. 힘을 앞세운 여당 국회의원이 공공연하게 연예인의 이름을 거명하며 '퇴출'을 논하는 것이 어디 자유주의 나라에 가능한 일인가? 독재정권에서나 가능한 일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의 방송가가 참 딱하다.
#김구라 #진성호 #막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잊지말아요. 내일은 어제보다 나을 거라는 믿음. 그래서 저널리스트는 오늘과 함께 뜁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4. 4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