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스트레스? 발로 차 보세요

[주부들의 반란 ③] 아줌마들을 홀리는 킥복싱의 매력

등록 2009.11.09 16:03수정 2009.11.0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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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복싱을 하는 주부들 운동을 마치고 쉬는 시간 ⓒ 김준희


"하나! 둘! 셋! 넷!"


지난달 21일 오전 10시, 서울 석촌동에 있는 명지킥복싱 체육관에서 우렁찬 함성이 터져나왔다. 함성의 주인공은 모두 30~40대 주부들이다. 발차기를 하고 주먹을 내지르며 기합을 넣다보면 가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도 모두 날아갈 것만 같다.

개관한 지 16년이 된 이 체육관에는 주부회원들만 약 35명 정도라고 한다. 많을 때는 70명까지 있었지만 지금은 다소 줄어들었다. 거칠고 과격해보이는 킥복싱, 남자들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워보이는 운동을 주부들이 선택한 이유는 뭘까. 체육관을 운영하는 이강은(45) 관장은 "일단은 건강"이라고 말했다.

"건강과 다이어트 그리고 거기에 따라오는 호신술이죠. 주부님들이 여기와서 스트레스가 제일 많이 풀린다고 그래요. 평소 일상은 똑같은 생활의 반복이잖아요. 그런데 여기 오면 구령도 붙이고 소리도 지르죠. 또 누군가가 동작을 하다가 실수하면 그게 그렇게 우스운 거예요. 자신도 그런 실수를 할 수 있으니까 서로 웃어주는 거죠."

주부회원들의 운동 시간은 월·수·금으로 일주일에 3번이다. 하루 운동시간은 1시간인데 스트레칭으로 시작해서 발차기와 손동작 연습, 마지막에는 복근운동 등으로 마무리한다. 1시간 동안 열심히 운동하면 땀도 쭉 빠지고 기분도 상쾌해질 것이다.

"어떤 분들은 도장에 나올 때 아주 굳은 얼굴로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분들은 운동하는 시간에 화가 난 것처럼 구령소리도 엄청 커요. 집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거죠. 어떤 이유에서든. 그렇게 1시간 내내 소리지르다 보면 스트레스가 다 풀려요. 운동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는 얼굴 표정이 환해집니다. 주부님들에게 킥복싱이 매력적인 이유예요."


'킥복싱'의 매력에 빠진 주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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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복싱을 하는 주부들 명지킥복싱 이강은 관장 ⓒ 김준희


이강은 관장은 그동안 선수생활을 해오다가 1993년에 이 체육관을 개관했다. 당시에는 주부회원이 전혀 없었고 약 5년 전부터 주부회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학생회원들이 처음에 나올 때 어머니하고 같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때 "어머니도 한 번 해보세요"라고 권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두세 명의 주부회원에게 무료로 운동을 가르치고 운동에 재미를 붙인 주부회원들이 주변에 권하면서 지금처럼 많아지게 된 것이다. 현재 오전에 나오는 주부회원의 회비는 3개월에 6만원. 이 정도면 무료나 마찬가지다.

"주부회원님들 회비로 커피도 사다놓고 물이나 음료수도 사다 두고 그러지요. 그 돈은 제 주머니로 들어가는 돈이 아닙니다. 무료로 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면 회원님들이 쉽게 생각하고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주부회원님들의 경우 최소한의 회비만 받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관장실 밖에서는 커다란 음악 속에서 10여 명의 주부들이 스트레칭 중이다. 실제로 주부들이 느끼는 킥복싱의 매력은 무얼까. 킥복싱을 시작한 지 이제 2개월 된 김근영(44)씨는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는 유산소운동을 많이 했는데 그렇게 효과를 보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여기 오니까 스트레칭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목이나 허리 이런 곳이 많이 결리는 증상이 있었는데 운동 시작하고 2달 동안 그런 게 없어졌거든요. 살도 많이 빠졌고요."

김근영씨는 집 앞에 있는 동사무소를 통해서 킥복싱 강좌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게시판에 붙어있는 많은 프로그램 중에서 '킥복싱 다이어트'가 눈에 띈 것. 그전부터 킥복싱 다이어트로 효과를 본 여성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어서 주저없이 입문하게 되었다.

"과격한 운동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아무래도 주부회원들의 경우는 스트레칭을 많이 하니까요. 중년의 나이라서 무슨 고도의 기술이나 큰 체력을 필요로 하지는 않아요. 그런 점이 중년여성한테 좋은 것 같아요."

거칠다고 생각하면 오해, 킥복싱은 섬세한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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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복싱을 하는 주부들 정은주(왼쪽)씨와 천순덕씨 ⓒ 김준희


30분 동안의 스트레칭과 준비운동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손발을 내지르기 시작한다. 기합 소리도 그만큼 커져간다. 이번에는 오랫동안 킥복싱을 해온 회원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천순덕(48)씨와 정은주(40)씨가 그들이다.

체육관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 천씨는 경력 6년의 최고참이다. 여태껏 이 체육관을 거쳐간 여성들이 300명가량 될 거라고 했다. 아이들과 같이 시작했지만 처음에는 '격투기'란 운동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 때문에 다소 반대했다.

"킥복싱이니까…. 그 이름에서 떠오르는 그런 과격한 면만 생각했는데 실제로 시작해보니까 굉장히 부드럽고 섬세한 거예요. 헬스나 다른 운동에 비해 온몸을 사용하니까 체력단련에도 좋고요. 우리 아이도 꾸준히 하고 있는데 예전에 비해서 참을성이 많아지고 성품도 좋아졌어요. 남을 배려할 줄도 알고 자세도 곧아지고요."

천씨는 또다른 장점으로 담력이 생긴다는 점을 꼽았다. 동네에서 싸움이 나거나 하면 예전에는 그냥 못 본 척하거나 뒤로 물러서고 그랬는데, 요즘은 다가가서 단호하게 제지하고 말린다고 한다. 그렇게 생겨난 담력과 자신감이 있어서 불의를 보고 피하지는 않는다고.

"살 빼려고 처음에 시작하는 주부들이 많죠. 그런데 한 달 두 달 하다보면 몸에 근력이 생기는 게 느껴져요. 주부들이 평소에 집안일만 하니까 근력이 생길 일이 없잖아요. 허리나 어깨가 아픈 그런 증상도 없어지구요. 그리고 실컷 웃어요. 우리 가정주부들이 어디 가서 한 시간 동안 웃겠어요. 근데 여기 오면 맘껏 웃거든요, 누가 흉보는 사람도 없고. 그러다보면 본인도 젊어지고 그런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주부들이여, 집 안에만 있지 말고 나와라!

경력 3년의 정씨는 처음에 요가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요가가 정적이어서 심심하게 느껴질 즈음에 이 체육관에 오전반이 생기면서 킥복싱을 시작하게 되었다.

"활동적인 운동이라서 아주 좋아요. 요가처럼 가만히 앉아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활기차게 움직이니까요. 한 시간 동안 땀을 쭉 흘리고 나면 개운해요. 더워서 흘리는 땀이 아니라 운동하면서 흘리는 땀이니까요. 하루라도 안 하면 몸이 아파요. 이렇게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요. 우리가 어디 가서 발차기를 한 번 해보겠어요."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자기는 몸을 움직이고 싶다면서 일어선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계속 스트레칭을 한다. 3년의 경력자라서 그런지 몸이 아주 유연해보인다. 예전과 비하면 몸이 확실히 좋아진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3년 전하고 비교해보면 일단 몸이 너무 좋아졌어요. 감기도 안 걸리고 전에는 제가 허리가 좀 안 좋았는데 지금은 그런 증상도 없고요. 살림하다보면 목이나 어깨가 결리는데 그것들도 싹 없어졌죠. 왜 주부들 제사 한 번 지내고 나면 힘들어서 앓아 눕잖아요. 근데 저는 안 그래요. 그러니까 주변에서 사람들이 저보고 그러는 거예요. 평소에 무슨 보약을 먹냐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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킥복싱을 하는 주부들 명지체육관 내부 ⓒ 김준희


킥복싱이란 운동은 확실히 여러 장점이 있지만 주부들이 선뜻 택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정씨도 그 점은 인정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권하는 말을 했다.

"주부들은 회사에 다니지 않으면 평소에 집에만 있잖아요. 그러니까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어서 처음에 용기를 내는 게 어려운 건 사실이에요. 그 용기만 있다면 한 번 나와서 시작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한 번은 깨고 나와야 되잖아요. 집에만 있으면 똑같아요. 집에 있다보면 더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지는데, 나와서 운동하고나면 하루를 활기차게 보낼 수 있어요."

이 체육관에 모인 주부들의 공통점도 그것이다. 활기차 보인다는 점. 함께 모여서 운동하고 웃다보면 없던 활기도 저절로 생길 것이다. 주부회원들이 바닥에 누워서 공을 벽에 던지며 복근운동을 하고 있다. 이강은 관장은 말한다.

"여기 오시면 땀을 내게 해드리고 운동하는 동안에는 다치지 않게 그리고 많이 웃고 가실 수 있게 합니다. 그게 우선이에요. 엄마가 웃어야 가정이 행복해집니다."
#킥복싱 #이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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