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초등 동창들과 함께한 가을산행

지친 40대 후반에 초딩친구들 만난 모임 후기

등록 2009.11.02 16:16수정 2009.11.0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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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숲 단풍이 대단원을 맞은 가을숲 ⓒ 박상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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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동학사로 가는 길. 중년의 친구들이 초등학교 포즈를 취하며 즐거워하는 모습 ⓒ 김정호


불혹의 팔부능선에서 초등 동창과 함께한 아름다운 동행


늦가을. 무르익을 대로 익은 단풍도 한 해의 성취물인 열매도 모두 지는 그런 가을이다. 11월은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을 앞에 두고 못 다 이룬 꿈, 못 다 이룬 사랑으로 마음이 휑할 수밖에 없는 그런 '비움과 버리기'의 계절이다. 

10월의 마지막 날, 계룡산 동학사로 가는 길. 산길마다 계곡마다 울긋불긋 낙엽들이 마치 추수 때 탈곡기 돌아가듯 가을바람에 회오리쳤다. 장관이었다. 우리네 삶도 푸른 봄날과 여름을 거쳐 저렇게 속절없이 허공으로 낙엽이 되어 나부낄 것이다.

불혹의 팔부능선을 넘어 내일 모레 다시 쉰의 징검다리를 건너 또 하나의 풍진세상 언덕길을 오르고 내려설 세대들. 그런 우리들은 초등학교 동창끼리 야유회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출발하여 한반도 중심부에서 '2009 아름다운 동행 동학사 가을모임' 깃발 아래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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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휴식 나이는 못 속이나 봅니다. 산행 중 휴식을 취하는 모습. 사고를 당해 목발 짚고 동창회에 참여한 친구의 웃음이 천만불짜리입니다. ⓒ 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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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반 깃발을 들고 이제는 초등 중등 대학생 자녀를 둔 친구들이 그 때 그 깃발 아래 모였습니다 ⓒ 김정호


40대에 만난 육지 최남단 바닷가 친구들의 초상


우리는 한반도 육지 최남단 완도초등학교 65회 졸업생들. 계룡산 입구에서 먼저 도착한 수도권 친구들은 멀리 완도에서 새벽녘 버스를 타고 당도한 친구들을 만나 포옹하며 속절없이 흘러간 세월의 무상함과 그 순수한 초등 동창사랑에 한동안 깊은 감회에 젖어들었다.

그 때 그 원형의 얼굴로 간직한 친구들, 이미 흰 머리카락이거나 대머리가 된 친구들, 시골스러움과 도회지 스타일 등 저마다 삶의 편린으로 채색되어 있었다. 레크레이션 때는 그 때는 몰랐지만 남다른 위트와 끼를 발산하는 친구들도 보았다.

우리는 땅끝마을에 사는 시골 친구가 묵은 지에 삶은 돼지고기 그리고 막걸리 등 마음을 다해 준비한 찬거리를 펼쳐 놓고 비좁은 주차장 한 귀퉁이에서 점심을 나누어 먹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고 푸짐하고 즐거운 야외 식탁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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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4반 세월은 흘렀어도 웃음만은 초등학교 시절 그 웃음입니다 ⓒ 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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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3반 몰라게 변한 중년의 세월이지만 웃음만은 한결같습니다. ⓒ 박상건


대한민국 40대 후반, 인간군상의 축소판

각박한 세상살이를 살아온 친구들, 입시생을 둔 친구들, 이미 자식을 대학에 보낸 친구들, 늦동이 사춘기에 고민 앓는 친구, 가장의 무거운 어깨와 그 어깨를 남모르게 다독이며 살아온 모성애의 흔적까지... 대한민국 40대 후반 인간군상의 축소판 그 자체였다.

식사 후 우리는 6학년 당시 반별 깃발을 들고 동학사로 가벼운 산행을 시작했다. 1반부터 7반까지 깃발을 들고 줄지어 걷는 우리들을 바라보는 행인들은 "당시 시골학교치고는 꽤 큰 학교였나 보다"며 소곤대곤 했다.

그랬다. 개도 천 원짜리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대한민국 김과 미역 70% 이상을 생산하고 거의 일본으로 수출하던 수출산업전진기지였던 완도는 섬이면서도 가난을 모르고 성장하던 소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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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7반 머리카락에 세월의 흔적이 묻어납니다...읍네 시골학교 맨 마지박 반 친구들은 나름대로 추억도 색다르다고 합니다... ⓒ 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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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배 산행 후 건배를 외치며 한잔씩 나누는 모습 ⓒ 김정호


바삐 살면서 잊을 수 없는 단어, 고향 친구 순수 추억...

그렇게 조무래기들은 저마다 객지로 나가 살다가 남쪽바다 파도소리가 그리워 짬을 내어 만난 것이다. '초등학교'라는 이름만으로 마음이 편해지고 첨단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때 그 순수함과 정겨움만은 메마르지 않았음에 안도하고 고향친구로만 늘 하나가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동학사 대웅전 앞에서 플래카드와 깃발을 들고 단체사진을 찍는 우리 중년의 모습을 보고 젊은 연인과 어른 할 것 없이 흐뭇해하며 기념 촬영하는 우리를 찍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한 다리 건너면 모두가 농어촌 후예들인 대한민국 백성들.

그분들 마음속에서도 부모님이거나 삼촌 이모 고모이거나 며느리 딸이거나, 중년의 흔적에서 여러 삶의 상징을 읽을 수 있었을 터. 바삐바삐 살면서 우리가 잠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중에는 분명 고향과 친구, 순수와 추억이라는 이름일 것임을 이심전심으로 느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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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사진 동학사 대웅전 앞에서 찍은 아름다운 동행자들의 단체사진 ⓒ 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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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리 구계등 갯돌 초등학교 때 소풍 다니던 완도 정도리 구계등 바닷가. 저 조약돌을 일깨우며 보물찾기를 했다. ⓒ 박상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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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미소 세월은 흘렀어도 그 때 그 소녀의 미소는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 김정호


인생과 친구는 영원히 함께 하는 깨달음이고 추억이다

인생은 하나의 학교이다. 서로 배우며 느끼는 깨달음의 현장이다. 인생은 한 권의 책이기도 하다. 매일 스스로 한 페이지씩 쓰며 넘겨가는 것이다. 그리고 행복은 만드는 것. 행복의 어원은 마음에서 불러일으킨다는 뜻에서 유래됐다. 행복은 그렇게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그 행복을 위해 우리는 만난다. 만나서 알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이 우리 인간의 살아가는 이야기다. 차박차박 터벅터벅 파도처럼 살아온 중년의 세월들. 한번쯤 멈춰서 호흡을 한 템포 늦추면서 그 세월을 음미하는 게 진정한 사랑과 삶이 아닐까.

그런 인생살이의 가을 나들이. 우리는 그 가을모임 명칭을 '아름다운 동행'이라고 불렀다. 가을에 만든 초등친구들의 사랑. 그 여운이 참으로 오래갈 것만 같다. 우리는 그렇게 만남과 사랑과 감탄으로 다시 지천명의 고개를 향해 쉬엄쉬엄 걸어갈 것이다. 이 세상 유일무이하고 영원한 만병통치약인 친구들과 더불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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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시골에서 준비해온 찬거리로 주차장 한쪽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 ⓒ 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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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부선 섬과 섬 사이를 오가는 철부선. 느림의 미학입니다.... ⓒ 박상건

덧붙이는 글 | 박상건 기자는 시인이고 성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사단법인 섬문화연구소 소장이다.


덧붙이는 글 박상건 기자는 시인이고 성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사단법인 섬문화연구소 소장이다.
#완도초등학교 #동창 #동학사 #친구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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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언론학박사, 한국기자협회 자정운동특별추진위원장, <샘이깊은물> 편집부장,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위원, 한국잡지학회장, 국립등대박물관 운영위원을 지냈다. (사)섬문화연구소장, 동국대 겸임교수. 저서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섬여행> <바다, 섬을 품다> <포구의 아침> <빈손으로 돌아와 웃다> <예비언론인을 위한 미디어글쓰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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