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 왜 자살해야만 할까?

[서평]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노년과 나이듦에 대한 여덟

등록 2009.11.10 13:48수정 2009.11.10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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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독거노인이라 정부에서 주는 생계비로 공과금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어요. 그렇지만 내가 죽을 때까지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싶어서 내가 먹고 싶은 것도 안 먹고 할머니 간식 사고 택시 타고 오는 겁니다. 이제는 늙고 몸에 힘도 없고 사는 것도 어려워요.…나는 원래 충청도 양반이라 예전에는 절대 쇼핑백 같은 것도 안 들고 다닐 정도였는데, 내 아내니까 내가 보살피면서 같이 살 수는 없어도 하루라도 더 보려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빵이랑 과일이랑 사서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 가지고도 다녀요. 제발 우리 할머니를 부모다 생각하고 이쁘게 봐 주세요. 못 걷고 사고 쳐도 자꾸 일어나라 하고 운동도 좀 시켜주세요. 할머니가 가끔 날 보면 걷고 싶다고 얘기해요."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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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 ⓒ 궁리

'나이듦'과 '노년'에 대한 글 모음집인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궁리 펴냄)를 읽다보면 이처럼 코끝 찡하고 생각이 깊어지는 글들과 자주 만난다.

지난 날 잉꼬부부로 소문났던 80대 이 노부부는 한사람은 독거노인으로 정부 보조금에 의지해 살고, 한사람은 요양원에서 생활한다. 여든 살의 할머니는 치매 증상이 심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니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휠체어에 의지해 산다. 그저 하루 종일 아리랑만 부르고 부를 뿐이다.

이런 할머니를 할아버지는 거의 매일 찾는데 늘 할머니가 좋아하는 빵이나 간식들을 사들고서란다. 치매나 중풍을 앓는 노인들이 멀쩡하게 생활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쓰러져버린 것처럼 할머니 역시 할아버지와 맛있는 것을 사먹고 들어온 날 "맛있는 것 사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정신을 놓고 말았단다.

요양원에서 제공하는 식사는 거의 하지 않는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사다 주는 간식들만큼은 삼사일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해치우고 만다. 이에 글쓴이가 "빵이 소화가 잘 되지 않는 간식"이라고 말하자 할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한 것이다.

아들이 둘 있어도 자주 찾아오지도 않고 가끔 전화를 해도 바빠서 제대로 통화도 못하는데, 할머님은 아직도 그 아들들 밥을 해주지 못하고 살림을 못하는 것이 한이 되어 요양원 직원들이 아무 쓸모도 없는 늙은이를 잡아다가 집에 못 가게 해서 아이들이 굶고 있다고 생각하신다. 집에 가신다고 화를 내면 어느 날은 원장님이 허락하셔야 간다고 달래기도 하고 어느 날은 가까운 곳에 산책을 시켜드리기도 한다. 어떨 때는 요양원 승용차에 태워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오기도 한다. 치매 노인들을 돌볼 때면 노인들의 입장에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돌보는 방법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비단 치매 노인뿐만 아니라 나이가 들면 자신의 경험과 기억에 더 치중해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책속에서

최할머니 이야기 또한 가슴 뭉클하고 생각을 깊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1990년대 초반부터 노인복지 분야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기 시작, 2001년부터 요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글쓴이는 이처럼 요양원에서 지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사연을 담담하게 들려줌으로써 우리에게 '나이듦'과 '노년'을 묻는다.

전체인구 중 노인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7%이던 2000년, 우리나라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고 2009년 현재 전체 인구 중 노인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10.5%.  2018년에는 노인인구가 14%를 넘는 고령사회가 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지난해(2009년) 8월 노인 장기요양보험법이 제정됐다.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으로 일상생활을 혼자 꾸려가기 어려운 노인들 문제는 노인이나 노인을 모시는 가족만의 일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기 때문이다. '실버산업'도 이젠 낯익은 말.

요양원에서 일해 온 나로서는 '노인 장기요양보험법'이 제정되고 요양원이 갑자기 주목받으면서 요양원이라는 공간이 새롭게 노인들에게 꼭 필요한 노후생활 공간이라고 인식되는 면이 반갑고 좋기도 하다. 하지만 단지 노인 장기요양보험제도하에서 노인복지서비스가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되면서, 노인요양원을 실버산업의 개척되지 않은 한 분야로 알고, 경제적 수치에 의한 잣대로 운영에 참여하여 요양원에 들어가야 할 노인 자신과 노인을 맡겨야 할 가족과 그 안에서 노인을 돌보아야 하는 직원들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만 노인요양원이 움직이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우려가 생긴다.
-책속에서

글쓴이는 또한 이처럼 요양원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급속도로 늘어난 요양원 등의 노인복지 현장의 현재와 실태, 복지제도 등을 들려줌으로써 이미 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우리 사회가 노인(복지)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를 함께 생각하게 한다. 현장 경험이 바탕이라 그런지 이야기들은 진솔하게 와 닿았다.

앞서 말한 대로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는 '나이듦'과 '노년'에 대한 글 모음집이다. 이 책의 저자는 어사연 회원 8사람. '어사연'은 '어르신 사랑 연구 모임'의 약칭이다.

2000년 겨울, 노인복지를 전공한 3명이 노인복지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만든 모임이란다. 이후 이들은 인터넷카페(http://cafe.daum.net/gerontology)를 개설해 노인문제를 주제로 소통했다고 한다. 나아가 매월 1회씩 '어사연 공부방'이란 이름으로 오프라인에서 만나 노인문제 관련 다양한 주제들로 공부를 해왔다고.

인터넷 카페로 시작해 노인문제를 공통 관심사로 10년 동안 매월 만나 공부하는 '어사연 공부방'은 올(2009년) 8월 100회를 기록했다. 이들은 이를 기념하고자 '나에게 나이듦이란 무엇인가?', '어르신들은 내게 어떤 존재인가?', '내가 꿈꾸는 노년은?" 등, 나이듦과 노년이라는 공통 주제로 고민하고 글을 썼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나이듦이란 철이 든다는 것이다"
"나는 늙어 어디에서 살 것인가?"

"나도 누군가를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노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스스로 낮아지기를 몸소 보여주셨던 어르신들처럼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렇게 소신 있게 노년을 살아가고 싶다. (20대 조향경)

"요양원에 근무하다 보면 노인을 누가 어디에서 모시고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늘어나는 걸 볼 수 있다. 노인을 대하는 일을 하면서 노인을 서비스 제공 대상자로만 인식했지 나도 노인이 된다는 생각은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나는 과연 나이 들면 어디에서 살 것인가? (40대 정은숙)

"일흔이 되어도 욕심이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미움도 여전하다. 고집은 신념이란 이름으로 더 세졌다. 일흔이 넘으면 신선이 되는 줄 알았는데, 더 질기게 사람 노릇 하면서 살아가는 나 자신을 확인하곤 한다. (70대 정진홍)

"늙어간다는 것, 나이 든다는 것은 한마디로 철이 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에서 종종 만난 힘들었던 시간들 앞에서 신세를 진 분들, 많은 도움을 준 분들에게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지 못한 반성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80대 유재완)

글쓴이들은 10대부터 80대 노인까지 다양하다. 중학생도 있고 노인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이 때문에 들려주는 이야기들 또한 다양하다. 어떻게 나이 들고 싶으며 어떤 노인이 되고 싶은지, 정년퇴직 후 어떻게 살고 있으며 요양원의 생활은 어떤지 등.

고령화 사회인 우리나라, 고부갈등의 깊은 골과 함께 노인자살이 중요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통계청의 '최근 5년간 연령대별, 성별 월별 자살통계' 자료에 따르면, 60대 이상 노인 자살자는 2004년 4,099명, 2005년 4,346명, 2006년 4006명, 2007년 4351명, 2008년 4365명. 2005년 기준 OECD 국가 중 75세 이상 자살률은 OECD 국가 평균보다 8.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 연령 표준 자살률은 24.1로 가장 높다)

이 책을 읽는 중에 춘천에서 신병을 비관한 한 노인이 자살했다(10월 31일)는 소식을 뉴스로 접했다. 또 돈 문제와 고부갈등이 맞물려 몇 년 째 이혼소송을 진행 중이던 한 남편이 아내를 살해했다는 뉴스(11월 3일)도 접했다.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 90대 할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살해하고 스스로 자살한 사건도 생각난다.

책의 의도대로 책을 읽는 내내 내 주변의 노년과 나의 나이듦을 되짚어보았다. 고령화 사회를 대비한 해법은 없을까? 노인 문제,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풀 것인가? 책에는 고령화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중한 정보와 지혜가 될 만한 그런 이야기들이 풍성하다.

덧붙이는 글 |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노년과 나이듦에 대한 여덟 가지 시선|저자: 어사연(어르신사랑연구모임)|궁리|2009년 9월| 가격:12,000원


덧붙이는 글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노년과 나이듦에 대한 여덟 가지 시선|저자: 어사연(어르신사랑연구모임)|궁리|2009년 9월| 가격:12,000원

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 - 노년과 나이듦에 대한 여덟 가지 시선

어사연(어르신사랑연구모임) 지음,
궁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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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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