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교전 벌어진 날, 임진강 건너 북녘을 바라보다

등록 2009.11.11 08:55수정 2009.11.1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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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건너 북녘땅 사무실 창문을 통해 바라본 임진강 건너 북녘땅 ⓒ 이태훈

▲ 임진강 건너 북녘땅 사무실 창문을 통해 바라본 임진강 건너 북녘땅 ⓒ 이태훈

오늘은 아침부터 가시거리가 좋았다. 사무실에서 창문을 통해 보면 임진강을 지나 북한땅이 보인다. 주말에 비가 온 뒤라서 그럴 것이다. 함께 일하는 분들도 오늘은 북한이 더 가까이, 선명하게 보인다고 했다. 디지털카메라로 살짝 담아보지만 눈으로 보는 것만큼 북한이라고 실감나지 않는다. 망원경이 있으면 좀더 잘 보일까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호기심일 뿐이리라. 물리적 위치로 존재하는 임진강 건너편의 북한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도 싶었다.

 

자리에 돌아와 인터넷을 여니 서해교전 소식이 눈에 들어온다. 7년 만에 벌어진 것이라 했다. 북한의 핵 이야기는 너무 덩어리가 커서 실감이 나지 않지만,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남한 군인과 북한 군인이 전함에서 서로 총알이 50발 나가고 또 100발 나갔다는 기사는 임진강 건너편에 서있는 북한의 산들이 갑자기 불쑥 강을 건너와 내 앞에 존재하는 것같은 실감이 들게 했다. 해군에서 근무하는 호형호제하던 분이 있던지라 그 놀라움은 더욱 컸다.

 

많은 생각이 든다. 끼룩끼룩 철새들이 임진강을 동서로 남북으로 지나간다. 그들에게는 이념이나 철조망 또는 망보는 군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따뜻한 곳을 찾아서 낮에도 밤에도 이동을 한다. 파주에 와서 놀란 것 가운데 하나는 철새들이 이동하며 끼룩끼룩 우는 소리가 유독 많고 크게 들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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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진 동생 백일을 기념해 찍은 가족사진 (아래 중간이 필자) ⓒ 이태훈

▲ 가족사진 동생 백일을 기념해 찍은 가족사진 (아래 중간이 필자) ⓒ 이태훈

우리는 이산가족이었다. 아버지는 함경북도 원산에서 태어나 광복이 되던 해 남한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원산 앞바다에서 고래랑 함께 뛰어놀았다던 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를 들으며 막연히 원산을 동경했었다. 명절은 언제나 쓸쓸했다. 유일한 혈육이던 고모네 집이 명절 순례의 모든 행사였다.

 

아직도 수많은 이산가족이 있을 터이다. 북한 이야기만 나오면, 이념을 떠나 고개를 돌리고 눈시울을 적시는 수많은 사람들이 남한 땅에 아직도 살고 있다. 북한땅에서 생사도 모르는 100세가 넘은 할아버지가 호적등본에 호주로 남아 있어 나는 행정적으로 언제나 원산에 계신 할아버지의 반경을 벗어나지 못했다. 호주와의 관계에 언제나 "손"이라고 썼지만 나는 호주된 할아버지를 끝내 만나지 못했고 결국 아버지가 식도암으로 돌아가시면서 그 원산과의 인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좌와 우가 충돌하고 남과 북이 충돌한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기네스적인 상징을 안고 있다. 중국이 개혁하고 러시아가 미국과 유화 제스처를 취해도 여전히 남아있는 북한의 모습은 검은 구렁이 속이다. 손을 내밀면서도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남한의 정치인들은 동서남북으로 갈라져 출렁거리고 으르렁거린다.

 

아버지가 남한으로 내려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고향 사랑은 손녀들의 이름에 강하게 박혀 있다. 두 딸의 이름에는 모두 "원산"의 "원"자가 중간에 들어가 있다. 다행히 예쁜 이름을 지을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고향을 잊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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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함께 여름 휴가 때 두 딸과 함께 ⓒ 이태훈

▲ 딸과 함께 여름 휴가 때 두 딸과 함께 ⓒ 이태훈

나는 전형적인 야당편이지만 그렇다고 좌파는 아니다. 야당을 편드는 것은 그들이 약자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잘한다고 칭찬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순수한 개혁을 바라며 정의를 사랑하는 마음뿐이다. 어떤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아야 하며, 이념의 사유를 접어야 한다. 후설의 현상학처럼 편협된 사고를 일으키는 모든 것들은 괄호치기로 막고, 참 본질을 찾아 이해해야 한다. 그저 안타까운 것은 갈라져 있는 사상의 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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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임진강을 따라 날아가는 철새무리 ⓒ 이태훈

▲ 철새 임진강을 따라 날아가는 철새무리 ⓒ 이태훈

경쟁은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알고 이겨내는 것이다. 양심이 소리하는 순전함의 사유, 상식의 선을 벗어나지 않는 도덕과 교양, 남을 가르치기보다 나를 먼저 돌아다보는 겸손 등이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손가락으로 다른 사람의 허물을 가리키기보다 하늘 날아가는 철새를 올려다보자. 길고 긴 항해의 길임을 알면서 그렇게 날아가는 고단한 삶을. 고독하지 않게 서로 울며 날갯짓하는 그들의 삶을. 오늘은 또 하나의 삶을 배우는 가치있는 날이다.

2009.11.11 08:55 ⓒ 2009 OhmyNews
#서해교전 #북한 #원산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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