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디스트릭트 9'이 있다

방안에 갇혀 살아야 하는 장애인들

등록 2009.11.12 14:56수정 2009.11.12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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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트릭트9   ⓒ 닐 블롬캠프

▲ 디스트릭트9   ⓒ 닐 블롬캠프

닐 블롬캠프 감독의 영화 <디스트릭트 9>이 개봉 한 달이 조금 안 된 지난 11일 누적관객수 총 83만6745명으로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FIC) 순위 8위를 기록했다. 순위상으론 그리 높아 보이지 않지만 현재 상영 중인 외국영화 가운데 누적관객수가 가장 많으며, 10위 안에 든 영화 중 가장 롱런(2009년 10월 15일개봉)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오랜 시간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아공 출신 감독의 이 영화는 실제 남아공에 있었던 '디스트릭트6'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라는 역사적 사실을 연상시켜 더욱 주목 받고 있다. <디스트릭트 9>은 외계인이 나오는 SF영화(Science Fiction Films)로 분류되지만 공상과학 영화라기보단 사회반영(Society reFlection) 영화에 더 가깝다. 영화에 투영되는 사회가 남아공만인 것은 아니다. <디스트릭트 9>은 전세계 각국의 '제9구역'을 생각하게 하며, '한국의 디스트릭트9'이 어디인지 더듬어 보게 한다.

 

방 안에 갇혀 지내는 한국판 '디스트릭트 9'

 

등록장애인 수 210만5천명(2007년 12월 기준,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조사), 비등록장애인을 포함한 실제 장애인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국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은 오늘도 사회가 구획해 놓은 '디스트릭트 9'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영화 속 '제9구역' 보다도 더 좁고, 팻말은 없는 자신의 방 안에 갇혀 지낸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28일 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경기도·충청북도 등 8개 지역에 예산 부족을 이유로 '활동보조서비스' 신규 신청을 중단하라는 공문을 보낸 뒤 장애인들의 이동할 자유를 막는 투명 철장은 더 높아졌다.

 

'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고자 하는데 불편함이 없이 움직일 권리… 거리나 건물의 설계가 장애인을 위한 배려가 되어 있지 않는 경우, 장애인의 이동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게끔 장애인을 위한 거리 정비, 건물 설계, 비장애인의 협조 등이 필요하다. - <위키피디아> '장애인 이동권'

 

사전에 정의된 대로 장애인의 이동을 위해선 버스, 도로와 같은 시설의 정비와 함께 이동을 실질적으로 도와 줄 수 있는 인적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장애인들이 버스와 지하철, 택시 등을 이용하기 위해선 저상형 버스를 기다리고 한정된 장애인 콜택시를 미리 예약해야 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감수해야만 한다.

 

활동보조서비스 신규신청 중단... 이동 자유 막는 철장 더 높아져

 

여기에 '활동보조서비스'에 대한 '시간축소' '신규신청 중단' 등의 위험은 장애인들이 방 밖 세상으로 나올 길을 더 좁게 만들고 있다.

 

'사람도 많은데 휠체어 끌고 다니면 불편하지 않나? 몸도 불편한데 집에 있는 게 더 편하지 않느냐? TV도 있고 컴퓨터도 요즘엔 잘 발달돼 있는데' 라는 인식은 누구나 접근 가능한 버스와 기차, 도로 등을 갖추지 못한 사회와 장애인 이동으로 생기는 불편은 조금도 감수하기 어렵다는 다수의 논리일 뿐이다.

 

이동에 있어서만 제약을 받은 것은 아니다. 주거에 있어서도 장애인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애인 관련시설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며 시설 이전 반대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과 어떻게든 외계인들을 <디스트릭트 9>에서 쫓아내려는 영화 속 한 인물의 대사 "가라고 해요. 어디든 상관 없어요. 그냥 가라고 해요"가 무엇이 다른가?

 

시설이 아닌 '사회 속'에서 자립하려는 장애인들의 상황은 더욱 나쁘다. 2008년 대구에선 아파트 관리위원회가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 3명씩이나 들어와 사는 것은 민원 등을 고려할 때 곤란하다'며 장애 여성 3명의 입주를 막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해당 아파트 관리위는 이후 '노후한 아파트여서 엘리베이터 사고시 장애인이 더 위험하기 때문에' 이를 '우려'한 것이지 입주를 '반대'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을 내놓았지만 현실에서 장애인이 사회의 한 일원으로 '주거권'을 갖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고향'으로 떠난 외계인들, 장애인들은 어디로?

 

<디스트릭트 9>에서 외계인들은 자신들을 억압하고 핍박하는 지구인을 '강력한 무기'로 막고 '모선'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향에서는 아무도 자신들을 힘들게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부당함에 대응할 '강력한 무기'도 '모선'도 없고, 여기 지구, 한국사회가 '고향'인 장애인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차라리 장애인을 죽여라'는 2007년 5월 장애인들의 절규가 반복돼야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장애인은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와 '자유롭게 사회 속에서 살 권리'를 가지고 있다. 정부와 사회는 지금이라도 장애인에게 자유를 돌려주어야 한다.

2009.11.12 14:56 ⓒ 2009 OhmyNews
#디스트릭트9 #DISTRICT9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보건복지가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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