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서지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쇼'"

MBC 백분토론에서 주익종 연구위원 주장

등록 2009.11.13 10:51수정 2009.11.1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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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1위 경제대국에 빛나는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열사의 탄생은 사실 요원한 일이다. 우리가 말하는 열사 및 의사는 대부분 일본제국주의시절 일제와 맞서싸운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을 이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지난 '광우병쇠고기에 따른 촛불정국'의 여름에 한국에는 여러명의 열사가 탄생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임헌조 뉴라이트전국연합 사무처장이다. 그는 호주산쇠고기로 햄버거를 비롯한 패스트푸드제품을 생산하는 맥도날드가 미국산 쇠고기를 사용한다고 해 일약 열사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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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친일인명사전 논란을 주제로 열린 MBC 100분 토론 ⓒ MBC

13일 친일인명사전 논란을 주제로 열린 MBC 100분 토론 ⓒ MBC

이미 임열사를 탄생시킨 MBC의 <100분 토론>은 13일 친일인명사전논란을 다룬 논의에서 또다른 열사를 탄생시켰다. 바로 현재 사용되는 고등학교의 근현대사교과서가 좌파적시각에서 쓰여진 만큼 실증을 중심으로 대안교과서를 집필했다는 교과서포럼의 주익종 박사(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가 그 인물이다.

 

이날 토론은 예상대로 일제의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의 육군중위로 패전을 맞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에서 가장 뜨거운 열기가 발했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이 박정희 혈서에서 "멸사봉공, 견마의 수고를 다하겠다"는 구절을 들며, 일제의 관동군과 이 지휘를 받는 만주국군이 한중독립무장운동을 탄압하던 1939년 시절에 문경보통학교 교사를 하던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하기 위해 혈서를 썼다고 선제공격했다.

 

이에 주 연구위원은 혈서를 쓰기 위한 이유는 박 전 대통령이 당시 23세로 입학제한인 19세를 넘겼기 위해 "쇼를 한 것"이라며 박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측에서도 잘 쓰지 않는 '쇼'라는 단어를 사용해, 혈서의 의미를 최소화시키기 위해 애를 썼다. 그는 이어 "조갑제의 박정희 연구에서 잘 드러나듯, 박 전 대통령은 따분한 교사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군인이 되고 싶어했고, 이는 나폴레옹의 사진을 걸어놓은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며 박 전 대통령의 만주군관학교 입교를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게 해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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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군관학교를 1등으로 졸업한 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 기념관측은 이 사진이 매우 자랑스러운지 "수년의 방황 끝에 정열을 쏟아부을 천직을 확실하게 붙들었다는 징표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 박정희인터넷기념관

만주군관학교를 1등으로 졸업한 박정희 전 대통령. 박정희 기념관측은 이 사진이 매우 자랑스러운지 "수년의 방황 끝에 정열을 쏟아부을 천직을 확실하게 붙들었다는 징표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 박정희인터넷기념관

문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하기로 결심해 혈서를 보낸 1939년의 군인과 현재의 군인을 동일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우리 주위에도 절도 있는 군인이 멋있어서 사관학교나 부사관학교에 지원하고 실제로 훌륭한 장교, 부사관으로 국토를 수호하는 멋진 군인이 많다. 일부는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되는 유엔평화유지군으로 세계평화에 기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1939년의 군인은 민족탄압의 첨병이었다. 1937년 일본이 중국본토를 침략하고 이어 동남아시아 각국을 침략하며 한반도 주민들을 수탈하는 강도가 더욱 심해졌고, 군의 주도 아래 각 행정기관은 집행기관으로 민족에 큰 고통을 남겼다. 이 시기의 군인을 현재의 군인상으로 해석하는 것은 팩트를 왜곡하는 것이다. 

 

조선이 외교권을 상실한 1905년부터, 최소한 불법적인 절차에 따라 병합을 당한 1910년 이후부터 박 전 대통령이 일본군 장교가 되기로 마음먹은 1939년까지 20년 이상의 세월동안 일본군인들의 침탈과 만행을 박 전 대통령이 몰랐을 리 만무하다. 실제 그가 민족에 일부러 피해를 주려는 목적에서 일본군 장교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는 후일 남로당입당과 군사정변을 일으킨 당시와 마찬가지로 더 큰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따분한 소학교 선생님의 자리를 걷어차고 손가락을 베어내어 그 긴 혈서를 쓰며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한 것이다.

 

일제시대의 소학교 교사도 조선의 어린이들을 황국신민으로 길러낸다는 측면에서 그렇게 칭찬할 만한 직업은 아니나, 군인이 되기로 결정했고 장교로 복무한 것은 조선민족보다는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한 것으로 명백한 친일행위다. 주 위원이 언급한 나폴레옹은 유럽의 평화를 깨뜨렸을지언정, 최소한 당시 민족개념이 현재처럼 널리 통용되지 않은 유럽사회를 '프랑스 민족'을 강조하며 제패한 인물이다. 생도시절과 장교로 복무한 시절 그 어떠한 민족에 대한 기여를 하지 않은 박 전 대통령을 그가 걸어놓았던 사진속의 인물, 나폴레옹과가 비교하는 것은 나폴레옹에 대한 모독이다.

 

만주국에서 근무한 시절 그는, 일본육군사관학교 우수성적졸업생답게 엘리트 보직인 현재의 작전과장교에 해당하는 을종부관으로 복무했다.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항일독립단체에 대한 군사작전에 가담한 적이 없다며 그의 복무를 친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날 100분 토론에서 일제 고등관으로 활동한 이들에 대해서 단지 그들이 일정 직위 이상을 차지했다 해서 친일로 볼 수 없다는 허동현 경희대학장과 주 연구위원의 발언은 이와 일맥상통한다.

 

이 역시 일제의 고등관과 판검사들이 어떻게 조선총독부의 눈에 들어 그 위치에 올랐으며, 그 직위를 유지했는지에 대한 사실을 무시한 결과다. 조선민족에 대한 수탈과 당시 세계평화파괴 가담의 적극성은 그들이 받을 수 있는 높은 직위와 정비례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오히려 식민지시절 행정기관에서 일했던 이들의 힘을 고려했을 때, 군수에 해당하는 고등관 이상만을 친일인명사전에 기재하는 것은 진정한 역사세우기를 위한 자세가 아닌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일부는 일제에 부사관으로 복무한 이들이나 일반 사병들 중에서는 장교들보다 훨씬 악질적으로 민족을 괴롭힌 이들도 있는데, 소위 이상만을 친일인명사전에 기재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친일인명사전 자체를 규탄한다. 일제에 너무나 귀한 존재인 소위 이상의 장교에 비해 부사관 등의 복무자는 그 명단도 온존하지 못하고, 역사적 자료 역시 상대적으로 구하기 어렵다. 사실 이들은 조선인으로서 부사관 이상의 일본군인으로 활동한 자를 친일인명사전에 기재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예비역 일본 육군 소위인 박 전 대통령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에 다름아니다.

 

친일인명사전은 어떤 형사적 규제를 수반하는 행위가 아니다. 친일행위자들의 과(過)뿐 아니라 공(功) 역시 기록해 후손들이 한 인물에 대해 객관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진정한 역사의식을 세우는데 매우 중요한 학문적 결과물이다. 보수진영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비학문적이고 감정적인 대응만을 할 것이 아니라, 가능하다면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같이 3만명의 국민과 5천명 회원의 성금을 받아 수록된 인물들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발굴하고 논의하는 자세로 이 문제에 직면하길 바란다.

 

2009.11.13 10:51 ⓒ 2009 OhmyNews
#100분 토론 열사 #친일인명사전 #박정희 혈서 #박정희 친일 #주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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