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여기 우체국인데..." 혹시 보이스 피싱?

BBB 전화 통역 봉사

등록 2009.11.23 16:50수정 2009.11.2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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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데, 핸드폰에 저장하지 않은 전화번호가 액정에 떴습니다.


015-88-5644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번호인데, 015를 쓰는 데가 어디지?"

마침 차를 타고 사무실을 나가려던 때였는데, 전화를 받을까 말까 약간의 고민을 하다가, 받아봤습니다.

전화를 받자, 상대방은 아주 맑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여기 우체국입니다. 송금을 하려고…"라며 말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은 "어라? 우체국? 어느 우체국,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고, 송금? 이거 말로만 듣던 보이스 피싱 아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바로 끊는 게 낫겠다 싶더군요. 하지만 전화번호가 아주 익숙한데다 아직까지 어떤 요구를 한 것도 아니고 해서, 조금 더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이어진 상대방의 사연은 이랬습니다.


"여기 우체국인데요, 송금을 하려고 인도네시아 사람이 왔는데, 송금을 하려면 수취인 계좌가 있는 은행과 지점 이름, 주소 등이 명확해야 하는데, 고객님께서 그런 부분을 적어 오시지 않아서요. 인도네시아어로 안내 부탁합니다."

우체국 직원의 안내를 끝까지 듣고 나서야 보이스 피싱이 아니고, 휴대전화를 통한 언어 통역 봉사단체인 BBB를 통해 연결된 전화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쩐지 전화번호가 익숙하다 싶었는데, 예전에도 종종 전화로 통역봉사를 요청받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늘 대면하여 이주노동자 상담을 하던 입장에서는 전화 통역 봉사는 사건 해결보다는 정보 전달만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아 간단하고 부담이 덜 가는 봉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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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b 홈페이지 외국어 통역자원봉사 전화번호 1588-5644 ⓒ 고기복


우체국을 찾은 인도네시아인은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송금을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개 국내 대형 은행을 통해 송금하는데, 그는 가까운 은행을 찾다보니 우체국에서 송금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일반적인 이주노동자들이 그러하듯 본국에서 자신의 명의로 계좌를 개설하지 않고 출국한 탓에, 가족 명의로 돼 있는 통장으로 송금하려고 했는데, 은행계좌번호만 알고, 그 외의 사항은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송금한다는 걸로 봐서 그는 입국한 지 채 몇 달이 되지 않는 이주노동자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동안 말이 통하지 않아서 답답한 게 있었는지 그는 전화로 몇 가지를 더 물어보았습니다.

그에 대해 우체국 직원의 말대로 해외송금의 경우, 수취인 정보가 불명확하여 돌아올 경우 수수료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수취인 정보를 확실하게 적어 보내는 것이 안전하니, 우체국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정확히 적을 수 있으면 적되, 모르면 나중에 알아서 송금하는 방향으로 하라고 전달해 주고 끊었습니다. 첫 월급인지, 몇 달을 모은 월급인지 모르지만, 부푼 마음을 안고 우체국에 들렀을 그에게는 아쉬운 일이지만, 수취인 정보도 정확하지 않은데 무턱대고 보내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전화를 끊고 나서, '015-88-5644' 번호를 핸드폰에 저장해 두었습니다. 혹시 압니까? 고국을 떠나 첫 월급을 받고 고향에 송금하려는 누군가를 전화로 도울 일이 또 생길지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핸폰에 왜 '0'이 앞에 찍히는지 모르지만, bbb 안내전화는 1588-5644이다.


덧붙이는 글 핸폰에 왜 '0'이 앞에 찍히는지 모르지만, bbb 안내전화는 1588-5644이다.
#BBB #통역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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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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