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사람이다, 진보의 핵심 사상은 연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고집 <진보의 미래>를 읽고

등록 2009.11.26 15:11수정 2009.11.2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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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봉화산 정상 사자바위에서 차를 마시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 ⓒ 고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제공

2007년 3월 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봉화산 정상 사자바위에서 차를 마시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 ⓒ 고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제공

 

'국민들이 먹고 살기에 어떤 나라가 좋은 나라일까, 특히 힘없는 보통사람이 살기 좋은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국민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진보주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 직전 마지막까지 몰두했던 주제다.

 

'민주주의든 진보든 국민이 생각하는 것 만큼 간다'며 국민과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책을 내보자고 했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이 주제에 매달렸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진보주의 연구 육필 원고와 육성 기록을 엮어 출간한 <진보의 미래>(동녘)에는 이런 치열한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진보의 핵심 사상, '연대, 더불어 함께'

 

ⓒ 동녁

ⓒ 동녁

노무현 대통령에게 '진보의 미래'는 오랜 화두였다. 노 대통령이 지향한 국가상이 바로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에 기반한 민주적 위민국가였다고 생각한다. '민주적 원칙이 승리하고 모든 인간의 자존심이 자유롭게 활짝 피는 나라', '권력에 눈치 보고 강자에 줄 서지 않아도 되는 사회' 바로 그런 나라가 정치인 노무현이 꿈꾸고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어했던 나라다.

 

이 민주적 위민국가에 대한 대통령의 지향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 '사람 사는 세상'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말하는 진보의 사상이기도 하다. 진보의 사상에는 '연대,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의 가치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50년간 '경쟁과 효율', '성장지상주의'가 우리 사회의 최상의 가치로 자리잡게 되었다. 더불어 함께 사는, 사람사는 세상의 가치는 실종되다시피 하였다. 대통령은 절박한 심정으로 '이대로 가면 안된다'고 호소하고 있다. 진보의 가치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진보주의 시대를 준비하자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은 진보정권이었나?

 

그렇다면, 참여정부는 이러한 진보의 가치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 여전히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주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참여정부는 한편에서는 '진보·좌파정부'로 또 다른 한편에서는 '신자유주의·보수정부'로 불렸다. 한나라당과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무능한 정부', '경제파탄'을 주장했다. 진보진영에서는 민주세력 무능론, 참여정부 실패론이 나왔다.

 

그런데 참여정부 기간동안 수출·외환보유고·국민소득은 두 배나 올랐다. 경제성장률은 평균 4.2%로 OECD 국가 중 7위에 해당하고, 수출 3천억 불을 넘어섰으며, 국민소득은 2만 불 시대로 진입했다. 국가재정의 7~15%에 불과했던 복지지출 비중은 28%로 올랐다. 참여정부 5년간 늘어난 복지재정은 100조가 넘는다. 이명박 정부의 부자감세는 5년간 100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복지재정 100조와 부자감세 100조의 차이는 아무 것도 아닌가. 이것이 과연 무능한 정부, 실패한 정부가 초래한 경제파탄, 민생파탄의 성적인가.

 

모든 것을 신자유주의로 환원해서 보수와 진보를 말하고, 민주정부 10년을 신자유주의 정권, 실패한 정권이며, 그래서 진보를 말할 자격도 없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진지한 태도가 아닐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주장한 것처럼 '진보에도 경쟁력과 효율성 향상을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개방·규제완화·민영화 등 민주정부 10년 동안 선택한 신자유주의 정책 일부는 보수냐 진보냐가 아니라 개방형 통상국가인 '한국경제의 체질상 유리하냐 불리하냐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민생의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자영업자 등 양극화와 빈부격차의 문제는 심각하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고통스러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진보정권이었나?, '제3의 길', 유럽의 진보주의 기준으로 평가해 보자. 그래도 한계는 분명하다… 무엇이 발목을 잡았을까. 한국의 이념구도,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조류, 제3의 길 노선의 세례, 위기와 극복을 위한 비상대책, 정치세력의 한계-소수파 정권, 여론을 주도하는 조직적 세력의 열세, 진보주의 분파와 분열과 갈등…"

 

그의 고백과 성찰은 이어진다.

 

"따로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 이런 것을 얘기하지도 말아라, 나는 그냥 불행한 대통령이다. 분배는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분배정부라고 몰매만 맞았던 불행한 대통령이다."

 

"우리가 진짜 무너진 건, 그 핵심은 노동이에요…노동의 유연성을 받아들인 것인데… 아웃소싱을 우리가 불법이라고 규정해서 잘라내지를 못하니까 정부의 칼이 현장에서 파업하는 사람들한테 겨눠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복지비 그냥 올해까지 30%, 내년까지 40% 올려, 그냥 (색연필 들고) 쫙 그어버렸어야 하는데…그냥 앉아서 이거 몇 프로 올랐어요? 했으니… 무식하게 할 걸 바보같이 해서…."

 

과연 무엇이 문제였는가. 분단체제, 지역주의, 그리고 보수시대의 조류라는 시대적 한계가 있어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와 보편적 가치 사이의 충돌이 발생하는 것도 주장할 수 있다. 또한 진보의 가치와 현실의 구체적인 정책 사이의 간극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 시대를 준비해나갈 민주개혁세력에도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지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뼈아픈 고백과 성찰 속에서 출발하자. 함께 마음을 열고 논쟁하고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한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설계해 나가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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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5일 서울 CCMM빌딩에서 열린 '노무현 시민학교' 에서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민주개혁진영의 대타협과 시민주권운동의 과제'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 남소연

8월 25일 서울 CCMM빌딩에서 열린 '노무현 시민학교' 에서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민주개혁진영의 대타협과 시민주권운동의 과제'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 남소연

"나의 실패가 여러분의 실패는 아니다. 사람답게 대우받는, 사람 노릇을 하는, 사람이 돈과 시장의 주인이 되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를 부엉이 바위 위에 세움으로써 사람사는 세상에의 꿈이 송두리째 부정 당하는 것에 온몸으로 저항했다. 자신을 딛고 우리의 길을 갈 것을, '진보의 미래'를 개척해나가기를 온몸으로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진보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던지고 있다. 

 

"진보의 핵심가치는 복지와 분배이다."

 

그의 이 말 속에 진보의 미래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확신한다. 이제 구체적인 진보의 대안과 전략을 함께 고민하자. 진보의 가치를 소통하고 서로 격려하며 함께 연대해나가자.

 

그리고 근본에서부터 다시 출발하자. 

 

그는 정치전략과 세력 이전에 "다음 세대를 이끌어가고 다음 세기를 지배해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의 가치체계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은 사람이다.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는 가치를 함께 인식하는 진보적 사상과 시민을 육성하자. 시민 속으로 들어가자. 시민과 함께 행동하자. 시민이 지도자를 만들고 스스로 지도자가 되는 시민주권을 실현하자.

덧붙이는 글 | 이해찬 기자는 참여정부 시절 총리를 지냈고, 현재 시민주권 대표입니다.

2009.11.26 15:11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해찬 기자는 참여정부 시절 총리를 지냈고, 현재 시민주권 대표입니다.
#진보의 미래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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