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부자도 사람이다 일거리를 만들어줘라

서민을 위한 정치는 이제 그만 해다오

등록 2009.11.29 11:34수정 2009.11.2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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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연탄을 들였다. 왜 하필 밤에 왔느냐고 하니 그 답이 예술이다. 낮에는 삼백 장 오백 장 하는 자잘한 것들을 처리하고, 밤에는 느긋하게 차떼기 주문을 처리한다고 하는데 그 논리가 그럴싸하게 정연하고 아름답다. 연탄을 삼백이나 오백 장 정도만 들이는 집은 아무래도 공간이 적을 것이고, 골목 또한 미로 같을 것이고 땀을 뻘뻘 흘려야만 할 정도로 언덕바지일 것이다.

 

 아무튼 연탄의 수요가 갈수록 늘어서 잠잘 틈도 없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수요가 늘면  가격은 내리는 것이 경제원칙에도 부합된다 할 것이다. 그런데 이놈의 연탄은 경제원칙이고 뭐고 싹 무시하고 오르기만 한다. 뭐냐 이거? 생산비가 높아서 어쩔 수 없다고?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그만해라. 농산물은 생산비가 낮아져서 가격이 그 모양이냐?

 

 나는 연탄을 사도 보통 차떼기로만 산다. 그 바람에 실내 난방이 필요한 계절이 시작된 지도 벌써 한참이나 지난 이제야 겨우 연탄가게에 전화를 걸었다. 연탄 한 차를 부를 만큼의 돈을 축적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탄을 삼백 장 오백 장 이렇게 사는 것은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지는 것 같아서, 말하자면 그렇게라도 존심을 좀 살리자는 면도 있고, 보다 실용적으로는 이렇게 차떼기로 하면 운송비용이 절감되기 때문에, 절감되는 그 비용 가운데 일부를 소비자에게 되돌려준다 해서 차떼기를 선호하게 된 것이다.

 

 연탄 한 장이 얼마인데 작년 대비 얼마가 올랐다는 둥, 이런 자잘한 얘기는 안 하겠다. 내가 명색이 차떼기로 연탄을 사는 사람인데 한 장 두 장 이런 단위는 영 격에 안 맞는다. 차떼기를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같은 돈이라도 푼돈은 돈으로 잘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어쨌든 연탄 값이, 한 차에 사십 만 원대였던 것이 금년에는 칠십 만 원대란다. 이렇게도 갑자기 토끼뜀을 해버린 이유는 대체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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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자욱해서 이슬이 마치 이슬비처럼 내리는 야심한 시각에 연탄차가 왔다. ⓒ 김수복

안개가 자욱해서 이슬이 마치 이슬비처럼 내리는 야심한 시각에 연탄차가 왔다. ⓒ 김수복

 내 일찍이 부자들로부터 거둬들인 세금을 돌려주었다는 말도 들은 바 있다. 그렇게 돌려주고 난 뒤의 구멍을 연탄 값이라도 올려서 조금이나마 채우고자 하는 모양인데 그야말로 어이상실이다. 무슨 이런 놈의 나라가 다 있는가.

 

 나는 부자를 부러워하지도 않지만 증오하지도 않는다. 미워하지도 않고 질투하지도 않는다. 부자는 그저 부자일 뿐이고 사람일 뿐 다른 그 무엇도 아니라는 사회학자들의 주장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부자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나 있어 왔다는 역사학자들의 보고서를 나는 신뢰한다. 또한 부자는 있어야만 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경제학자들의 주장에도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

 

 모든 사람들이 부자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만약에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된다면, 그럴 수 있다면, 부자라는 단어가 설 자리를 잃어버린다. 말장난 같지만, 인류의 풍부한 지적재산인 그 부자라는 단어 하나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부자는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해야 할, 또는 할 수 있는 적절한 일거리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저 먹고 마시고 놀기나 하는 인간폐물 내지는 쓰레기로 전락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국가의 할 일이고, 존재이유이며, 국민이 국민의 이름으로 세금을 내는 이유이다.

 

 그런데 이놈의 나라는 지금 서민을 위한 서민에 의한 서민의 나라를 표방하고 있을 뿐 부자를 위해서 뭘 하겠다는 말은 한 마디도 찾아볼 수 없다. 굶어 죽으면 안 된다느니, 길거리에서 소리를 지르면 안 된다는 둥 서민의 의무와 책임은 열심히 강조하면서도 부자의 의무와 책임을 강조하는 말은 농담으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부자들 스스로 알아서 내준 세금을 되돌려주면서까지 부자들을 아예 돈밖에 모르는 꿀돼지 같은 종자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이놈의 나라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왜 이렇게도 부자와 가난한 자들의 사이를 자꾸만 갈라놓으려 하는 것일까.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그 나라를 실천적으로 세우고 유지, 관리하는 일은 가난한 사람이 맡아 왔다. 거기에 필요한 재정은 부자가 담당해 왔다. 이것은 불멸의 공식이고, 상식이다. 그런데 이놈의 나라는 지금 어쩌자는 것인지 가난한 인간들에게 일도 맡기고 재정부담까지 지라고 한다. 이제 부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부자는 사람이 아닌가? 부자는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닌가? 왜, 무엇 때문에 그들을 소외시키고자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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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 세 장을 피우게 되어 있는 난로에 한 장만 피우는 까닭이 뭔 줄 아느냐고 물으면 국가는 아마 이렇게 답할 것이다. 한 장씩밖에 때본 경험이 없는 탓이라고, 그러니 이제부터 세 장씩 땔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 김수복

연탄 세 장을 피우게 되어 있는 난로에 한 장만 피우는 까닭이 뭔 줄 아느냐고 물으면 국가는 아마 이렇게 답할 것이다. 한 장씩밖에 때본 경험이 없는 탓이라고, 그러니 이제부터 세 장씩 땔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 김수복

 나는 부자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부자도 주사바늘을 꽂으면 따끔해서 살짝 눈살을 찌푸린다. 남의 잘난 자식보다는 못났어도 제 자식이 예쁘다고 홍홍거리고, 남의 예쁜 여자(혹은 잘난 남자)를 향해 군침을 남몰래 꿀꺽꿀꺽 삼킬지는 몰라도 공식적으로는 자신의 아내와 남편이 무탈하게 씩씩하게 당당하게 사회의 주인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놈의 나라는 지금 부자는 사람이 아니라고, 다른 무엇이라고, 그러니 어디어디에 꽁꽁 숨어 있는 것이 좋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내보내고 있다.

 

 부자도 사람인 바에야 착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 줄을 안다. 착하게 사는 것이 정신 건강에 엄청 좋다는 것을 알고, 오만보다는 겸손이 좋다는 것도 알고, 치질이나 변비에 걸렸을 경우 죄 지은 일도 없이 부끄럽고 민망해서 이중으로 고통을 겪는 것 또한 서민의 그것이나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이런 사실 증거들은 서민보다 부자들의 편에서 열심히 일해 온 언론사나 각종 연구소의 보고서 및 인터뷰 자료들에 차고도 넘칠 정도로 다 나와 있다.

 

 이런 엄연한 객관적인 자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놈의 나라는 부자란 본디 착하다는 것이 무엇인 줄도 모르는, 겸손이란 '개에게도 덕성이 있느냐'하는 질문처럼 선문답 같은 데서나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치질이나 변비 따위는 애당초 접근금지 코드가 찍혀 있는 아주 특수한 집단으로 규정지어놓고 마치 역병이 창궐할 때 격리시설을 운영하듯이 부자들을 한쪽으로 몰아서 대중의 눈에 띄지 않도록 숨겨놓으려고만 한다.

 

 하기야 또 모르겠다. 이 나라 이 정부의 장기적인 계획표에 혹시 거대한 눈싸움 대회 같은 것이라도 있는지 모르겠다. 서민과 부자들의 눈싸움 대회. 그리하여 정부 구성원들은 한쪽에서 서민 이겨라, 응원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부자 이겨라, 응원을 하는, 저 80년대 초의 국풍인가 뭔가 하는 그것 같은 그런 거대한 축제 한마당을 기획해놓고, 그래서 그토록 열심히 서민과 부자의 편갈이를 해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민이 부자를 알고, 부자가 서민을 알게 되면, 그러면 모두가 하나로 얼싸안고 '우리'가 되어 춤이나 추어댈 뿐 눈싸움이고 뭐고 싸움 같은 것에는 영 관심을 안 가져버릴 테니 말이다.

 

 국가여, 바라건대 이제라도 좀 국가다운 국가가 되어다오. 서민만 사람이 아니다. 부자도 사람인데 너무 그렇게 소외시키지만 말고 당당하게 얼굴 내놓고 다니면서 할 수 있는 일거리를 만들어 주란 말이다.

2009.11.29 11:34 ⓒ 2009 OhmyNews
#연탄 #서민 #부자 #국가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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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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