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님, 그건 사실이 아니지요

[取중眞담] '세종시'는 수도분할이 아니라 행정기관 분산입니다

등록 2009.11.30 10:37수정 2009.11.30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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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27일 밤 이명박 대통령이 특별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에 참석했다. ⓒ 청와대

이명박 대통령이 27일 밤 '특별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 프로그램에 출연해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 수정 방침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 이유로 밝힌 핵심 근거들 중엔 사실관계가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핵심적인 몇 가지만 바로잡습니다.   

"세계 어떤 나라도 수도를 분할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전체를 이전하더라도 분할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독일이 있지만 특수한 경우입니다. 통일됐으니 한꺼번에 못 오니까 남아있는 것입니다."

한국은 수도 분할을 결정한 바가 없습니다. 행정수도를 이전하려다가 헌재 위헌 결정으로 행정복합도시를 건설해 몇몇 행정기관만 분산(이전)하기로 한 것입니다. 세종시가 건설되더라도 수도는 여전히 서울이고 세종시 또한 수도가 아닙니다.

수도 이외의 곳에 국회, 행정부 또는 사법부가 분리되어 있는 나라는 독일 외에도 스위스, 네덜란드, 칠레 등 많습니다. 20세기 이후 수도를 옮긴 나라들도 많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멜버른→캔버라), 터키(이스탄불→앙카라), 브라질(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리아), 파키스탄(카라치→이슬라마바드), 말레이시아(콸라룸푸르→푸트라자야), 일본(도쿄→후보지 3곳) 등입니다. 이 중 말레이시아는 1980년대부터 콸라룸푸르로부터 기능을 분산하기 위해 신행정도시 입지를 푸트라자야로 선정하고 2015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입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도 행정기관을 캔버라로 옮겼지만 '시드니=비즈니스 중심지', '켄버라=행정업무', '멜버른 =ITㆍBT 본부' 등으로 지역 기능이 분화해 서로 윈-윈(win-win) 구도를 그려 가고 있다는 게 행정도시건설청의 설명입니다.

행정수도 이전 첫 시도 대통령은 박정희

"시작은 정치적 판단에서 수도를 옮긴다고 했다가 헌법에 위반되니까 수도를 분할하게 된 것입니다. (중략) 9개 부처를 세종시에 옮겨놓고 나면 세계 모든 나라가 경제 전쟁인데, 지난 1년간 일하면서 경제 부처 장관을 1주일에 2~3번, 아침 조찬 새벽같이 모여서 해외에서 연락할 것을 하고, 국내 조치할 것을 해왔습니다. 서울에 6개월 와 있어야 합니다. 이래서 정말 되겠습니까."


행정수도 이전을 처음 시도한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이 아닌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정부는 1972년 국토기본계획부터 대도시 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마련해 두고 있었으나 권력의 집중과 집중된 권력의 서울 집중으로 아무런 실효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어 78년 초 연두기자회견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행정수도 건설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행정수도 이전계획은 국가균형발전전략 이전에 수도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적 성격이 더 강하다는 게 당초 정부 발표였습니다. 현재와 같은 수도권의 집중과 과밀,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와 그로 인한 지역갈등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지속적인 국가발전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게 정부 설명이었습니다.

정부가 솔선수범하여 국가균형발전을 선도하기 위해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건설하고 공공기관 지방이전, 수도권 발전방안 등 각종 균형발전시책을 병행 추진하는 것만이 수도권과 지방을 살리고 나아가 국가경쟁력을 제고하여 한국이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도 경제부처 장관들의 회의 비효율만 언급하고 수도권 집중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 급증과 지역 간 격차의 심화로 인한 국가경제력 저하를 해결할 방안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말이 바뀌었다고요?

"1만400명의 공무원이 아마 이사를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결정한 정권에서도 1만400명의 공무원이 가족을 데리고 전부 이사할 수 있을 것인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 당시인 2007년 8월 3일 한나라당 대전시당에서 대전·충남지역 공약발표회를 연 바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1만400여 명의 공직자들이 모두 행복도시로 이사하고 자녀들도 고등학교까지 여기서 다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언론에도 죄 보도가 됐었지요. 이날 공약발표회에는 현재 한나라당세종시특위위원인 전여옥 의원과 진수희 의원이 동행했습니다. 이것마저도 말씀하신 게 부끄럽고 후회스러운가요?

'대통령과의 대화'가 있던 날 이 대통령은 "(대선 당시) 충청도에 가서 유세를 할 때 처음에는 어정쩡하게 (말을) 했는데 선거일에 가까워지면서 말이 바뀌어졌다"고 말씀하셨는데, 전후상황을 따져보면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바뀐 게 아닌 '처음'부터 확실하게 말을 바꾸신 것입니다. "행정도시는 이미 시작됐기 때문에 (대통령이 돼도) 변경할 계획이 없다"는 확실한 언급 또한 2006년 12월 13일 충북대 특강에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부처가 이전해도 공무원들은 서울에 남아 출퇴근할 것이며, 따라서 자족기능을 갖출 수 없다."

지난해 대전발전연구원이 정부대전청사 대전이전 10주년을 맞아 대전청사 재직공무원 4800여 명 가운데 6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에 따르면 96.5%가 대전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처음과는 달리 이제 수도권으로 숨 가쁘게 통근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나머지 3.5%도 충남·북 거주자가 대부분입니다.

전체의 45.1%가 대전의 자기 명의 집에 살고 있고 전세 40.4%, 월세 4.7%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 중 46.0%가 도보로 출퇴근한다고 답해, 절반 가까이가 둔산 신도시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들은 또 자기 월급의 80%가량을 대전에서 쓴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역산해보면 연평균 2319억원의 직접적인 경제효과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대전 둔산 대전정부청사에는 8청(廳) 1소속기관에 4100여 명의 공무원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관세청, 문화재청, 중소기업청, 산림청, 국가기록원, 조달청, 통계청, 병무청, 특허청 등입니다. 

국민이 해야 할 일을, 왜 대통령이 미리 하십니까

27일 밤 이명박 대통령이 특별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에 참석했다. ⓒ 청와대


"교육과학도시는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닙니다. 어떤 형태로 나올지 모르지만. 교육·과학이 중심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금년 내에 정부가 안을 확정해서 내놓게 되면 아마도 자족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 것입니다."

각종 조사에서 기업과 대학 등이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가장 큰 원인을 정부기관과 권한의 집중 때문이라고 답변하고 있습니다. 수도권에는 100대 기업 본사의 91%, 공공기관의 85%, 금융기관의 67%가 위치해 있습니다. 때문에 정부 스스로 솔선수범해 행정도시를 건설하고 정부기관을 이전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 밝혀왔습니다.

이 대통령도 지난 2007년 8월 초에 언론인터뷰를 통해 "중앙정부의 기능 이전이 대전·충청지역의 경제부흥을 위한 시금석이 될 수 있도록 국제과학기업도시를 함께 건설할 것이다, 행정도시와 대덕의 R&D 단지, 국제과학기업도시 등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연계 발전시켜 충청광역경제권을 구축해 충청지역의 실질적 발전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도 대선후보가 아닌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였습니다.

"국민이 정부안을 보고 도민들도 (정부)안을 보고 판단해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의 말씀을 드립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이 공포된 2005년 3월 22일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국민과 정치권의 주장을 충분히 수렴해 만든 행정도시안인만큼 이제 이대로 해보고 결과에 대한 판단은 훗날 국민들의 판단에 맡기자"고 말했습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은 2030년까지 수십 년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사업입니다. 전 대통령은 우선 시행해보고 결과에 대한 판단은 훗날 국민들의 판단에 맡기자고 했는데 현 대통령은 해보기도 전에 수정한 후 판단해 달라고 합니다. 훗날 국민들이 판단해도 늦지 않을 일을 왜 이 대통령이 미리 판단하려 하는지요?
#이명박 #국민과의 대화 #세종시 #행정도시 #효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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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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