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연하장을 받고 나서

등록 2009.12.01 16:11수정 2009.12.0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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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한 해가 한 달 남았습니다. 해마다 이 때쯤이면 '연하장'을 보내고 받습니다. 어떤 이들은 연하장을 받는 사람마다 다른 글 내용이 다르고, 직접 손으로 쓴 글씨라면 받는 사람은 고마움과 함께 감격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런 연하장이라면 받으면 받을수록 좋습니다.

하지만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그것도 손으로 쓴 글이 아니라 똑같은 문구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보낸다면 굳이 이런 연하장을 보낼 필요가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특히 연하장을 보낸 사람이 평소에 그 사람이 가진 생각과 철학이 자기 자신과 맞지 않아 비판했던 사람이라면 마음 한 켠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오늘(1일)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씨가 연하장을 나에게 보내왔습니다. 이 대통령 내외와 나는 한 번도 얼굴을 맞댄 일이 없습니다. 대한민국 시민인 나는 만날 이 대통령을 언론을 통해 만날 수 있지만 대통령 내외는 나를 한 번도 만나지 않았으니 알리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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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내외가 보낸 연하장 ⓒ 김동수


그런데 연하장을 보냈습니다. 연하장 내용을 읽어보니 목회자들에게 보낸 것 같습니다.  'ㅇㅇ교회' 담임목사 앞으로 보냈습니다. 연하장 맨 위 내용이 성경 구절이고, 한 해 동안 나라를 위해 기도해 준 것에 대한 감사와 함께 내년 G20정상회의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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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씨가 보낸 연하장 ⓒ 김동수

먼저 이 대통령 내외께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합니다. 나 같은 사람도 잊지 않고, 연하장을 보내주셨으니 말입니다. 지금까지 시장과 도지사에게도 연하장을 받아보지 못했는데 대통령 내외가 보내주셨는데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예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연하장을 보내주는 것은 감사하지만 글을 읽고나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연하장에는 "지난 한 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고 했는데 솔직히 나라를 위해 기도한 일이 별로 없습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 않았는데 나라를 위해 기도해주신 것을 감사하다는 연하장을 진심으로 받기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이에 안주하지 않고 경기회복의 온기를 서민들도 체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나가겠습니다"고 했지만 내년 예산 편성을 보면 서민들과 가난한 자들을 위한 재정을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펴겼다고 숱하게 말했지만 재정이 있어야 서민을 위하 정책을 펼칠 수 있습니다. 돈이 없는데 어떻게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펼칠 수 있습니까. 부자를 위해 힘쓰는 모습 절반 만이라도 서민을 위한 예산을 편성하면 기도하겠는데 그런 것은 하지 않고 기도해달라고 하면 목회자로서 양심상 하기 힘듭니다.

또 "새해에는 역사적인 G20 정상회의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됩니다. 이를 통해 국격을 높이고 세계 경제 회복에 기여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시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고 했습니다. G20정상회의가 분명 우리나라를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임을 믿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G20정상회의를 개최하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국격을 높일 수 없습니다. 나라를 한 단계는 높이는 것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는 나라가 될 때 국격은 높아집니다. 그런데 2009년을 보낸 현 시점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세종시는 지난 정부때 여야가 치열한 논쟁을 끝에 통과시켰는데 시민들에게는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고, 수정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4대강은 국가재정법과 하천법 따위를 어겼다는 이유로 국민소송까지 당했는데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비록 일이 늦게 진행되더라고 논쟁과 토론을 통해 하나의 의견을 통합해 가는 과정인데 이 대통령은 이런 곳은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국격이 높아질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위해 기도해 달라니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기도란 대통령이 생각을 바꿔 4대강 사업을 포기하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새해에도 변함없이 우리 국민과 북녘 동포를 위해서, 그리고 온누리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고 했습니다. 이런 기도를 부탁했다면 2010년에는 북한과 마주 앉아 대화를 해야 합니다. 대화는 하지 않고,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해달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북한 동포와 온 누리,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 부탁 귀담에 듣고, 실천하겠습니다. 모두가 함께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연하장을 보내주신 것,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어떤 내용은 마음을 답답하게 합니다. 내년에는 이런 답답함이 없도록 서민과 모두가 더불어 잘 살아가는 나라를 만들도록 힘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래는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씨가 보낸 연하장 내용 전문.

이 대통령 내외가 보낸 연하장 내용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라다"
                                                                                        
지난 한 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우리는 누구보다 빨리 일어서고 있고,
전세계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에 안주하지 않고
경기회복의 온기를 서민들도 체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나가겠습니다.

새해에는 역사적인 G20 정상회의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됩니다.
이를 통해 국격을 높이고 세계 경제 회복에 기여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주시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새해에도 변함없이 우리 국민과 북녘 동포를 위해서,
그리고 온누리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총과 축복이 늘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10년 새해 새아침에
                                                 대통령내외   이명박
                                                                    김윤옥

#연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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