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거짓말, 세종시 문제만 그런 걸까

등록 2009.12.03 13:43수정 2009.12.0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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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그러니까 2009년 11월 27일은 우리 정치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날이 될 것 같다. 이 날 대한민국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마음에 있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속이고 거짓말을 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런 반성의 말을 덧붙였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그대로 밀고 나가겠단다.

 

대통령의 이런 고백에 국민들은 참 당혹스럽다. 우선 다른 걸 다 떠나서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선거법 위반이다, 사기다, 갖가지 비난이 쏟아지고 있지만 가장 심각한 건 이번 사태가 국가 지도자인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조차 뿌리째 흔들어버렸다는데 있다. 우리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흩어져버리는 걸 수도 없이 목격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애초부터 생각이 달랐는데 당선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고백은 사상 초유의 사태다. 그렇다면 2년 전 대통령 선거는 도대체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이 땅에서 민주주의는 어떤 의미와 무게를 지니는가?

 

늦었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고백에 반성이 따르고 거짓말에 속은 당사자들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의지가 따른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번 대통령의 '후회와 반성' 속에는 그런 의지가 전혀 깃들어 있지 않다. 대통령의 입장은 '비록 내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거짓말을 했지만 내 생각이 옳기 때문에 밀고 나가겠다'는 것이다. '미안하다. 이해해라.'

 

그런데 세종시 문제만 그런 걸까. 혹시 4대강 사업은? 모두가 아는 대로 4대강 사업의 전신은 한반도 대운하였다. 뜨거운 논란 속에 반대여론이 비등하고 사업계획의 허점이 드러나면서 대통령은 임기 중에 대운하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대신 4대강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4대강 사업은 이름만 바꾼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라는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4대강 사업이 마무리될 즈음 우리는 다시 한 번 대통령의 고백을 접할지도 모른다. '미안하다. 사실은 4대강 사업이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공사를 마쳤는데, 이제 물길만 이으면 된다. 국민들 다수가 반대했지만 내 생각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 이해해라.'

 

이런 상황에서 명색이 주권자인 우리는 대통령의 선의만 믿고 그의 거짓말을 이해하고 따라야 할 것인가?

 

서울 방향으로 경부 고속도로를 달리다 행정중심복합도시라는 안내판을 마주쳤다. 대통령의 뜻대로 세종시 원안 추진이 백지화된다면 전국 고속도로와 국도의 표지판은 물론 새로 만들어진 지도와 각종 데이터도 모두 수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랏일 치고는 너무 경박스럽지 않은가.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서 법안을 만들고 그 법률에 의거해 추진되던 일이 하루아침에 백지화될 처지에 놓여 있다. 국민들 뜻도 아닌데 말이다. 이런 우리사회의 정체를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 한국적 민주주의? 이명박식 민주주의? BJR(배째라) 민주주의?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이든 '민주주의'라는 네 글자가 참으로 초라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광조씨는 CBS PD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이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12.03 13:43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이광조씨는 CBS PD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이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국민과의 대화 #민주주의 #4대강 사업 #세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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