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사 설경

세상을 단순화시키는 우주의 마법에 감동하다

등록 2009.12.21 18:17수정 2009.12.21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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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설국이다."

 

저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온 세상이 하얀 축복을 받고 있었다.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었다. 순백의 아름다움이 감동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무엇을 더 바란단 말인가? 눈에 들어오는 하얀 우주의 모습은 그 자체로소 경이였다. 오직 자연만이 연출해낼 수 있는 마법이었다. 그 누구도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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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산 내장사 일주문 ⓒ 정기상

▲ 내장산 내장사 일주문 ⓒ 정기상

 

내장사 설경. 내장사는 붉은 단풍으로 치장한 모습만을 떠오르게 된다. 그런데 아니었다. 가을보다 더 아름다운 풍광이 바로 설경이었다. 물론 가을의 현란한 모습도 그 나름대로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빼어난 모습이 바로 설경이었다. 하얀 눈 나라에 들어서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었다.

 

집을 나서면서는 많은 걱정을 하였었다. 특히 정읍에는 대설 주의보가 내려질 정도로 눈이 많이 내렸다는 사실을 보도를 통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욕심을 버릴 수는 없었다. 설경의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집사람의 말리는 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을 나섰다. 분명 아름다운 겨울나라의 감동에 흠뻑 젖어들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기대로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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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전 담당 하얀 눈 ⓒ 정기상

▲ 부도전 담당 하얀 눈 ⓒ 정기상

 

다행히 도로는 눈이 녹아 있었다. 아마도 염화칼륨을 뿌린 탓이리라. 불편을 줄이기 위하여 공무원들의 새벽부터 땀 흘렸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노고가 있어서 편안하게 달릴 수 있었다. 감사하는 마음이 앞섰다. 내장사로 향하고 있는 중에도 눈은 내리고 있었다. 하얀 눈이 가는 길을 축복해주고 있어 더욱 더 좋았다.

 

내장사에 가까워지면서 쌓인 눈이 보였다. 도로 위에도 녹지 않은 눈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역시 눈이 참 많이 왔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눈이 녹아버린 도로 위를 신나게 달리다가 눈 쌓인 도로를 달리게 되니, 조심스러워졌다. 녹지 않은 도로 위에 눈이 또 내리고 있어 더욱 더 위험하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런 길이 그렇게 길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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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 사천왕문 안 ⓒ 정기상

▲ 연못 사천왕문 안 ⓒ 정기상

 

내장사. 전북 정읍시 내장도 59 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하얀 눈이 쌓인 대웅전 앞은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넓지 않은 절 마당에는 부처님 진신 사리를 모습 탑이 우뚝 서 있었다. 부처님의 따뜻한 사랑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안온한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하얀 눈으로 단순화된 산사가 어머니 품속 같았다.

 

하얀 눈은 우주를 단순화시켰다. 세상을 온통 한 가지 색으로 통일시켰다. 그 세상에는 차별은 없었다. 잘사는 사람도 없고 못사는 사람도 없었다. 남자와 여자의 차별도 없었고 지위의 고하도 없었다. 모두가 평등하고 공평하였다. 설국 안에 들어선 사람들은 모 동등하였다. 생명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생명 없는 것까지도 모두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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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 대웅전 올라가는 길 ⓒ 정기상

▲ 석탑 대웅전 올라가는 길 ⓒ 정기상

 

하얀 눈의 마법. 하얀 눈의 마법은 놀라웠다.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었다. 욕심으로 얼룩진 세상의 구석구석까지 빼놓지 않고 말끔하게 청소해버렸다.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바탕을 마련한 것이다. 앞일은 누구에게나 미지의 영역이라고 하였던가? 하얀 눈이 마법으로 바꿔놓은 세상에서 희망을 꿈꿀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질 수 있었다.

 

내장사는 외호신 사천왕이 지키고 있었다.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 남쪽을 지키는 증천천왕,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의 부릅뜬 눈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어렸을 적에는 그 형상이 무서웠었는데, 이제는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이 편안하게 해준다. 이들이 선악의 잘못을 관찰하여 제석천에게 보고하여 징벌한다고 하니,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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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 산사의 겨울 ⓒ 정기상

▲ 설경 산사의 겨울 ⓒ 정기상

 

연못을 지나 내장사 안도 설국을 이루고 있었다. 그렇게 큰 산사는 아니지만,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위엄이 있다. 백제 무왕 때 영은 조사에 의해 건립된 내장사는 그동안 역사와 함께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한국전쟁 때 완전히 소실되었고 1957년 야은 스님에 의해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남아 있는 건물은 작지만 세월을 지킨 정신만큼은 위대하다.

 

내장사의 흥망성쇠를 통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실패자들은 기회가 없다고 불평하지만 성공한 사람은 기회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을 새삼 실감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고난을 극복해가는 과정이 아닌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당하게 해쳐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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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 가는 길 설국 ⓒ 정기상

▲ 산사 가는 길 설국 ⓒ 정기상

 

결국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내 인생이 나의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결국 마지막 행동은 내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할 수밖에 없다. 하얀 눈 세상 속에서 걸어온 지난날들을 되돌아다보게 된다. 비록 잘못 걸어온 길이라 하여도 그 길은 결국 나의 것일 수밖에 없다. 실패한 인생도 나의 것이다.

 

풍경 소리. 하얀 눈이 쌓인 대웅전 처마 밑에 풍경이 운다. 바람이 불 때마다 맑고 고운 소리가 우주를 깨운다. 풍경 소리를 들으면서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풍경 소리에 주의를 집중하면서 한 가지 깨닫는 것이 있다. 풍경 소리가 나기 위해서는 바람이 불어야 한다. 만약 바람이 불지 않으면 소리는 절대로 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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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안고 세월 ⓒ 정기상

▲ 세월을 안고 세월 ⓒ 정기상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내 마음이 맑고 밝은 상태에 있다면 바람이 분다고 하여 달라질 것은 없다. 마음이 산란하고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바람에 의해 경망스러워지는 것이 아닌가? 비바람이 아무리 요란스럽게 세상을 흔들어놓아도 마음만 고요하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 아닌가? 하얀 눈의 마법으로 하얗게 변한 세상을 바라보면서 깨닫는다.

 

내장사 설국에서 나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하얀 눈의 마법으로 온 세상은 단순화되었다. 마음이 복잡하고 흔들리는 것은 세상이 그런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그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세상이 아무리 바람이 불고 천둥이 쳐도 마음이 고요하면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내장사 설국에서 하얀 눈의 마법에 흠뻑 취하였다.<春城>

덧붙이는 글 데일리언
#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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