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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수 늘면 뭐해...사서 교사는 고용불안, 아이들은 입시불안

등록 2009.12.22 14:50수정 2009.12.22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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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 '느낌표' 프로그램과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본부'가 전남 순천에 우리나라 최초 어린이 공공도서관인 '기적의 도서관'을 세운 지 올해로 6년. 그 사이 '독서문화진흥법'과 '도서관법'이 제정됐으며 서울 역삼동에 국립어린이청소년 도서관이 세워지고 '학교도서관 활성화사업'이 실시되는 등 어린이 독서 환경 조성을 위한 노력이 본격화됐다. 그러나 현장에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문화체육관광부 국가도서관 통계시스템(www.libsta.go.kr)의 지난해 도서관 통계에 나와 있는 어린이용 공공도서관은 모두 43곳이며 각 도서관 당 평균 장서 수는 약 4만권 정도다. 공공도서관(어린이·일반·장애인·병원·병영·교도소 도서관, 문고를 포함) 1관의 평균 장서 수가 8만5천여 권인 것을 고려해보면 양호한 편이다.

도서관 수 크게 늘었지만 운영 여건은 여전히 부족

학교 도서관도 크게 좋아졌다. 지난달 23일 교육과학기술부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 현재 전국 시도별 초등학교 도서관 설치율은 평균적으로 93.4%에 이른다. 초·중·고교 도서관을 모두 합산해 계산한 학생 1인당 장서 수도 12권으로, 국민 1인당 1.05권 수준인 공공도서관 장서수보다 훨씬 높다. 그밖에도 '학교 도서관 활성화사업', '찾아가는 어린이 책 잔치', '북 스타트 운동' 등 어린이 독서 교육을 돕는 여러 사업이 교과부, 문화부 등 정부기관 주도로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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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적으로 전국 초등학교의 93.4%에 교내 도서관이 마련돼 있을 정도로 도서관 설치율은 높다. ⓒ 박소희


하지만 도서관이 많아졌다고 아이들이 책 읽는 환경이 잘 갖춰졌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2009 전국 도서관 운영평가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경남 양산 오봉초등학교의 황가순(31) 사서 교사는 "학생들에게 독서교육을 가장 효과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곳은 학교도서관인데, 우리나라는 도서관 운영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학교도서관 활성화 사업'은 학교에 도서관을 설치하는 수준까지 진행됐을 뿐 정작 필요한 운영 인력과 도서구입비 지원은 안정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과부는 독서동아리 지원과 학교도서관-공공도서관의 협력망 구축, 학교 도서관 지역 개방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2009년 학교독서교육 및 도서관 활성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물론 학교도서관 활성화를 위해 백과사전이나 참고도서 같은 도서관 기본 장서 확보와 교과 관련 도서 구입 등도 지원하지만 이는 몇몇 학교만 해당한다. 대부분의 학교는 매해 교육청에서 주는 예산에서 자료구입비를 편성해 사용하는데, 이 비용은 학교기본운영비의 3% 이상으로 '권고'되어 있다.

즉 학교가 자료구입비를 임의로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학교 사이의 자료구입비 격차가 크다. 반면에 미국의 학교도서관은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는다. 지자체 사정에 따라 학교도서관 지원 여부와 그 폭이 해마다 변하면서 문제점이 발생하자 지난 2001년 학생들의 학업능력 향상을 위해 '낙제학생방지법(No Child Left Behind Act)'을 제정하면서 학교도서관의 도서구입비 등을 지원하도록 명시한 것이다.


황씨는 또 "도서관의 시설·자료를 활용해 최적의 독서교육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인력은 늘리지 않으면서 독서교육을 소리 높여 강조하고, 도서관 활용 수업을 권장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며 "우리나라에서 독서교육을 제대로 하려면 학교도서관 운영과 독서교육을 담당하고 추진할 사서 교사가 더 많이 배치되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이 양산 내 유일한 초등학교 사서 교사라고 했다. 교과부의 2008년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 있는 초등학교 도서관은 모두 5412곳인데, 초·중·고교 도서관 모두를 합친 전담 직원(사서교사, 계약직 사서) 수는 3538명이다. 초등학교에만 있는 사서 수는 더 적을 뿐더러 10곳 중 8~9곳은 사서가 있는 외국의 학교 도서관과 크게 차이난다.

선생님은 고용불안, 아이들은 입시불안

경기 A도서관의 이모(41) 사서 역시 모양새 갖추기에 급급한 어린이 독서교육 정책을 비판했다. 이 사서는 "자료실 만드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사서 교사를 뽑아야 한다"며 "아무리 작은 도서실이어도 사서 교사가 프로그램을 짜고, 독서 수업을 하면서 고민하면 그게 도서관이 활성화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당장 사서교사를 뽑는 게 힘들다면 비정규직 사서 채용이라도 줄이자고 말했다. 공교육이 활성화되려면 수업에 다양한 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학교 도서관이 활성화돼야 하는데 공공성을 추구해야 할 도서관 문제 역시 효율성으로 풀어내려 하는 점이 한국 독서교육의 문제란 게 그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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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초중고 교내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사서의 82%는 비정규직으로, 이들은 업무 부담에 고용 불안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 박소희


교과부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전국의 초·중·고교 학교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계약직 사서의 비율은 82%에 달한다. 같은 기간 어린이 도서관 사서의 24%가 계약직인 것과 비교하면 크게 차이 난다. 이 사서는 "도서관 운영은 단기전이 아니라 백년대계"라며 "월급 70~80만원 받아가며 고용 불안에 떠는 사서가 도서관을 활성화 할 방안을 제대로 고민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어린이 독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우리나라 교육제도에서 찾을 수 있었다. 7년 간 독서지도사로 활동했던 홍안나(가명, 29)씨는 "애들이 너무 바쁘다"며 "영어·수학 학원을 다니는 애들에겐 책 읽는 것은 부수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원래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책과 멀어지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 심해지고 있다는 게 홍 씨의 생각이다.

그는 "사실 엄마들이 독서지도에 신경 쓰는 이유는, 아이들이 당장은 어리지만 국제중과 외고를 거쳐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한 밑바탕을 다지기 위한 것"이라면서 "교육제도가 바뀌면 귀가 얇은 대다수 엄마들은 거기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데, 대학입시에서 논술 비중이 줄어들면서 독서가 더 등한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홈페이지(http://journalism.semyung.ac.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홈페이지(http://journalism.semyung.ac.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도서관 #학교도서관 #독서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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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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