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짱의 뒤늦은 후회, 그러나 정성스런 애프터 서비스

[서평] <진보의 미래> 이제 우리 함께 사전을 쓰자

등록 2009.12.31 15:42수정 2009.12.3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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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장터진 '한명숙 사건'

 

솔직히 복장이 터지고, 한심스러웠다. 한명숙 전 총리가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라 수사를 받게 되자 참여정부와 야당 인사들이 내보인 반응을 보고 나서다. "검찰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정치검찰을 끝내야 한다"며 모두들 분노하는 모습에 공감을 하면서도 '왜 이제와서 뒷북이고, 소란이야'라는 원망의 마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시민의 힘을 보여주었던 촛불시위를 지켜보면서도 '투표는 안하거나 잘못해 놓고 왜 이제와서 길거리에서 사서 고생이야'라면서 한탄했던 나는 검찰에 대한 지난날 정권의 주인공들의 궁색한 모습에도 똑같은 한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어떻게 했기에, 이 모양 이 꼴로 당하는 것인가?

 

얼마 전 참여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정치인의 강연회에 가서 현재의 검찰의 행태에 대한 소회를 질문한 적이 있는데 "법무부 장관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럼 정권은 뭐하러 잡으려고 하나' 하는 실망을 느낀 적이 있기에 검찰을 둘러싼 이런 반응들이 더더욱 공허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눈 깜짝하면 지나갈 짧은 시간 동안의 정부 운영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견제와 균형을 넘어 발목잡기와 방해하기로 치닫고 있는 이상한 민주주의 구조에서도 마음껏 꿈꾸고 계획하는 것을 이룰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하겠다. 그러나 자신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때도 못한 것을 탄압 받는 위치에서 해내겠다고 목소리 높이는 것은 아무래도 공허한 외침으로 들린다. 그리고 그렇게 핏대를 올리기 전에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해야 함이 마땅하다.

 

뒤늦은 후회, 그리고 애프터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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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유고집 <진보의 미래> ⓒ 도서출판 동녘

노무현 대통령 유고집 <진보의 미래> ⓒ 도서출판 동녘

그런 와중에 노무현 대통령의 유고집인 <진보의 미래>(동녁 펴냄)를 펼쳐들었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의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오마이뉴스 펴냄),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회고록인 <성공과 좌절>(학고재 펴냄)을 읽은 후 내가 만난 세 번째의 노무현이다.

 

인터뷰라는 형식도 아니고, 자신의 인생을 곁들여 이야기한 회고록도 아닌 민주주의, 보수와 진보, 국가의 역할에 대한 시민을 위한 교양으로서의 책이기에 가장 재미는 없었지만, 가장 마음깊이 읽게 된 노무현이었다.

 

<진보의 미래>는 그가 봉하마을로 부른 참모들과 둘러앉아 '좋은 책,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책, 우리 사회 공론의 수준을 높일 책, 민주주의 발전사에 길이 남을 책'을 펴내기 위해 나누었던 이야기들과 그가 적어내려간 글들이 담겨있는 책이다.

 

이 책에는 대통령을 지낸 정치인으로서, 여전히 나라의 미래와 국민을 사랑하는 전직대통령으로서 실제적인 정책과 가치의 측면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과 생각의 줄기들이 가득차 있다.

 

그 또한 정책을 이야기하면서도 후회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그는 "나는 그냥 불행한 대통령이다. 나는 분배는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분배 정부라고 몰매만 맞았던 불행한 대통령이다"라고 말하고(140쪽), 또한 "이거 하나는 내가 좀 잘못했어요. 내가 잘못했던 거는 오히려 예산을 가져오면 색연필 들고 '사회정책 지출 끌어올려'하고 위로 쫙 그어 버리고, '여기에 숫자 맞춰서 갖고 와' 이 정도로 나갔어야 하는데..."(234쪽)라고 고백한다. 뒤늦은 후회처럼 보이는 말들이다.

 

그러나 이 뒤늦은 후회 속에는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고 고민하는 사람으로 한 평생을 살아 온 자의 성심을 다한 애프터 서비스의 정신이 담겨있다. 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이제 와서 뒤늦게 후회하는가의 문제가 대통령 한 사람, 그리고 대통령을 둘러싼 정치세력만의 문제가 아님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회로 남는 일이 있음에도 그는 사회복지 지출을 늘린 대통령이고, 비전2030을 통해 미래속에서의 동반성장을 고민하며 많은 일들을 했던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우선은 그 자신의 역량 부족, 그리고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전략부재와 치열하지 못했던 개혁작업들을 반성하는 것이 먼저이겠으나,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해법을 고민하는 것은 정치적인 공격과 사람들의 편견을 뛰어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노무현, 그가 내린 결론은 "국민이 생각하는 만큼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에게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잘 자랄 수 있는지, 무엇이 발전인지, 다시 생각해 보자고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안해도 상관없는 작업이다. 하지만 자신의 노력과 진심은 알아주지도 않고 돌을 던졌던 국민들에게 그는 책을 펼쳐들고, 자판을 두들기며 다시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솔직하고 정직하게 "일 잘하는 사람, 그 다음에는 교육, 생활 환경까지 다 조성하고, 이렇게 만들어야 된다는 것인데, 그걸 우리가 한번 해보자고 이런저런 계획은 세웠는데, 5개년 프로젝트 갖곤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265쪽)라고 고백하면서 국민들의 공론을 바꾸어보자고 호소하고 있다. 그래서 그것은 뒤늦은 후회라기보다는 서비스 정신에 투철하고, 국민에게 받은 월급이 소중한 줄을 아는 지도자의 성심을 다한 애프터 서비스가 된다.

 

정말로 돌이킬 수 없고, 막을 수 없고, 자연스럽게 국민을 위한 정책과 재정의 수립 그리고 이를 해낼 수 있는 정치세력의 형성을 위해서는 그야말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론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소중한 진리를 그는 깨달았고, 그것을 절실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노무현의 사전'을 함께 쓰자

 

이제 와서 검찰개혁을 부르짖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해, 고상하게 투표장에 가서 도장 한번 잘 찍으면 될 일을(사실 이 말에 100% 자신이 없는 것은 그럴 만한 정치세력이 있는가에 의문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악을 피할 수 있지 않겠다는 현실적인 소망에서) 거리에 나와 살수차에 맞서는 '사서 고생'을 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명제를 바꾸자"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내가 노무현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명제가 아니라 "사전을 바꾸자"고 이야기했을 것 같다. 그는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수많은 기준들에 결함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나도 그것에 공감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문제는 명제가 아니라 사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진보라는 명제, 복지라는 명제의 싸움이 아니라 무엇이 성공이고, 잘사는 것인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 이해되고 있는 개념들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 그 자신이 권력이 머리를 조아리지 않고, 지역감정에 편승하지 않고 결국에 성공의 스토리를 써낸 주인공이 아닌가? 그래서 정직하지 않아야, 줄을 잘서야 성공할 수 있다는 성공의 사전을 의심하게 하고 다시 쓰게한 주인공이 아닌가? 그것을 개인의 삶에서 끄집어내 정책과 재정을 통해 발전, 잘 사는 것, 성공의 개념을 다시 써내려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잘못된 성공이 좋은 성공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후퇴한 사회에 좋은 사전을 들이밀어야 되지 않겠는가?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사전을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어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 사전을 바꾸는 일을 해야 한다. 그것이 "이제 우리가 할래요"라고 고백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이다. 소수의 부와 발전이 우리의 성공으로 정의되어 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우롱하는 현실에 우리는 당당히 좋은 사전을 가지고 함께 공부하고 이야기해야한다. 그것이 노무현이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선사한 애프터 서비스에 응답하는 길이다.

 

연금 받으면서, 봉하마을로 몰려드는 사람들과 농담따먹기 하면서 편하게 살았어도 그만인데 그는 마지막까지 우리 아이들의 삶을 걱정했고, 우리의 미래를 고민했으며, 과연 무엇이 우리에게 좋은것인지 제시하고자 밤을 세웠다. 진짜 바보다. 그 바보가 올해의 마지막날 참으로 그립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권오재의 블로그 '오재의 화원'(vacsoj.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2009.12.31 15:42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권오재의 블로그 '오재의 화원'(vacsoj.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진보의 미래 (특별 보급판) -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쓴 시민을 위한 대중 교양서

노무현 지음,
동녘, 2017


#노무현 #진보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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