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에 무더기 해고... 2009 시간강사 잔혹사

[보따리강사 이야기 24] 기축년 마지막 날 전국 시간강사들에게 드리는 글

등록 2009.12.31 17:50수정 2010.01.0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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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은빛 설원 기축년 마지막 날 도심이 온통 눈으로 뒤덮이고 말았습니다. ⓒ 박주현

▲ 도심 은빛 설원 기축년 마지막 날 도심이 온통 눈으로 뒤덮이고 말았습니다. ⓒ 박주현

어느덧 오늘이 기축년(己丑年) 마지막 날입니다. 참으로 곡절 많은 한 해였습니다. 힘들었던 한 해가 또 이렇게 지나갑니다. 소처럼 뚜벅뚜벅 걷자던 새해 첫날의 맹세도 눈발과 한파 속에 지구 저편으로 물러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이 더욱 애처롭고 처량해 보입니다. 아프고 슬프고 아쉬웠던 올 한 해 기억들을 망각 속에 묻어 버리고 싶은 소망을 알아차린 듯 밤새 내린 눈이 온 세상을 은빛 설원으로 수놓은 2009년 마지막 날입니다.

 

다른 날보다 일찍 나서 아무도 걷지 않은 눈 위를 걸어 보았습니다. 모처럼 눈 구경을 실컷 하면서 출근했습니다. 20cm 가까운 눈 위를 걸어 보기는 20여 년 전 백령도에서 군대 생활을 하면서 경험해 본 후론 아마 처음인 것 같습니다. 서해안 지역에 밤부터 폭설이 내려 일부 지역이 대설경보와 대설주의보가 발령된 상태랍니다.

 

비정규직법에 갇혀 무더기 해고... 2009년, 시간강사 잔혹사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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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 마지막 날 은빛 세상 다사다난했던 2009년 한 해 슬프고 아픈 기억들을 저 먼 망각 속에 묻어 두려는 듯, 30일과 31일 서해안 지역에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 박주현

▲ 기축년 마지막 날 은빛 세상 다사다난했던 2009년 한 해 슬프고 아픈 기억들을 저 먼 망각 속에 묻어 두려는 듯, 30일과 31일 서해안 지역에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 박주현

기상청에 따르면 31일 중부지방의 아침 최저기온은 철원 영하 19.4도, 문산 영하 17.1도, 춘천 영하 16.3도, 서울 영하 12.8도, 인천 영하 10.9도 등 이번 겨울 들어 가장 낮았다는군요. 해돋이 구경을 하기 위해 먼 길을 계획하신 분들은 각별한 주의를 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매 순간 매 해가 다사다난했지만, 전국 6만여 대학 시간강사들에게 2009년은 더 특별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뜨거웠던 지난 7월과 8월,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2년이 경과하면서 많은 시간강사들이 집단으로 해고되는 일이 발생해 지금도 상당한 후유증과 잔상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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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꽁꽁 얼어 붙은 차가 움직일 줄 모릅니다. ⓒ 박주현

▲ 차가 꽁꽁 얼어 붙은 차가 움직일 줄 모릅니다. ⓒ 박주현

 

많은 시간강사들이 도심 길거리에서 또는 대학내에서, 심지어 국회 앞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을 하며 '강사들의 교원지위회복'을 위해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1219명의 시간강사가 졸지에 해촉됐으니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깊었겠습니까.

 

대부분 석사학위 소지자이면서 4학기(2년) 이상 강의를 했다는 게 죄라면 죄였습니다. 시간강사 중 박사학위 소지자는 비정규직보호법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이유였지만 이는 또 다른 갈등과 분열기제로 작동하고 말았습니다.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는 사용기간 제한 예외대상으로 규정한 비정규직법 시행령은 힘없는 시간강사들을 양분시켜 놓았고, 하늘과 땅, 천당과 지옥으로 비유되는 교수와 강사들 간의 종속관계를 더욱 심화시켜 놓고 말았습니다. 결국 대학 교양과목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면서도 교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강사들을 비정규직법은 두 번 울린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시간강사들에게 '대학의 유령'이란 멍에가 더욱 무겁고 고통스런 한 해였을 것입니다.   

 

엄동설한, 갈등 깊어지는 영남대... 다른 대학 강사들도 고민은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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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용 탱크 눈을 맞은 탱크도 꽁꽁 얼어 붙었습니다. ⓒ 박주현

▲ 전시용 탱크 눈을 맞은 탱크도 꽁꽁 얼어 붙었습니다.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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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용 전투기 눈에 뒤덮인 전투기입니다. ⓒ 박주현

▲ 전시용 전투기 눈에 뒤덮인 전투기입니다. ⓒ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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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도 꽁꽁 얼어 붙고 말았습니다. ⓒ 박주현

▲ 자전거도 꽁꽁 얼어 붙고 말았습니다. ⓒ 박주현

그럼에도 대학들은 2년(4학기) 이상 강의를 맡아 온 강사 중 박사학위를 갖고 있지 않은 강사를 대상으로 계속해서 해고했습니다. 영남대에선 시간강사 100여 명을 이 같은 이유로 해고했으나, 비정규교수노조의 반발이 거세지자 강사들의 강의시간을 주당 5시간 이내로 제한한 희한한 대책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주당 근무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는 사용기간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조항을 교묘히 적용한 것입니다. 지난 2003년 고등법원 판례에 따르면 대학 시간강사의 경우 근로시간을 일반 노동시간의 3배로 산정한 바 있습니다. 강의 준비시간과 연구활동 등을 감안한 판단입니다.

 

각 대학들이 주당 강의시간을 5시간 이하로 제한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아쉽게도 다시 긴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대학 측과 강사들 간 갈등의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방학 시작과 함께 강사들의 집단해고로 몸살을 앓았던 영남대가 또 다시 격랑에 휩싸여 있습니다.      

 

비정규교수노조 영남대 분회는 지난 23일부터 파업을 계속하며 학생들의 2학기 성적 입력을 거부, 29일까지로 돼 있는 성적 정정 기한을 넘겼습니다. 노조는 올 6월부터 대학 측과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벌였으나 시간당 강의료 1만1천원 인상, 강의준비금 5만원 인상 등 노조의 요구를 대학이 거부해온 때문입니다.

 

최근 경북지방노동위원회가 '강의료는 동결하되 강좌당 강의준비금을 8만5천원 인상하라'는 중재안을 냈으나 대학 측이 수용하지 않아 파업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에 영남대 시간강사들은 "엄동설한 추위를 뚫고 대학 측의 탄압을 넘어 반드시 승리 할 것"이라며 지난 21일 총파업출정식을 갖고 결연한 투쟁의지를 내비쳤습니다.

 

그러나 대학 측은 "학생 등록금 동결로 교직원 임금이 동결됐는데 현재 전국 지방대 중 최고 수준인 시간강사 강의료 등을 인상할 명분이 없다"고 일축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노조 측은 "올해 교직원 호봉승급분과 연금보험 가입비 등을 합치면 적잖은 임금 인상 효과가 있기 때문에 임금 동결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해 팽팽히 맞선 상태입니다. 누구의 주장이 옳은 것일까요.

 

"시간강사 6320명 가운데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람은 단 2명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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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저울에 든 정의의 여신상 새해에는 원칙과 정의가 통용되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 박주현

▲ 눈을 저울에 든 정의의 여신상 새해에는 원칙과 정의가 통용되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 박주현

대학은 전체 강의의 절반에 육박하는 시간을 시간강사에게 배정하는 등 시간강사에게 최저임금에도 훨씬 못 미치는 저임금에 장시간의 노동을 요구하면서 필요하면 언제든지 해고시킬 수 있는, 인력 구조조정에 관한 절대적인 우위를 띄고 있으면서 절대적 약자들의 의견을 묵살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 판단이 설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많은 대학 시간강사들은 영남대 수준에 못 미치는 대우를 받으면서 학생과 강의실을 지키고 있다는 겁니다. 더구나 이제 강의가 없는 긴 겨울 방학이 시작됐습니다. 강사들에게는 다시 춥고 배고픈 시절이 왔습니다. 내년 3월 새 학기 강의가 시작될 때까지 빈궁기를 잘 극복해내야만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년부터는 올해처럼 시간강사들이 전국적으로 집단 해고되진 않을 전망이라는 소식에 위안을 삼아봅니다. 앞으로는 대학 시간강사와 연구원의 근무기간이 2년을 넘어도 비정규직으로 계속 일할 수 있게 됐다는 입법 예고안이 발표됐습니다.

 

노동부는 지난 23일 이 같은 내용의 비정규직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대학 시간강사나 연구기관 연구원 등을 비정규직 사용기간 제한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게 골자지만 강사들의 교원지위 회복과는 요원한 일입니다.

 

이와 관련해 노동부는 4년제 대학 153곳과 전문대학 122곳의 시간강사를 대상으로 지난달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상당수가 고용불안을 겪었으며 시간강사들도 대부분 기간제한 대상에서 빼줄 것을 희망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비정규직법이 적용되는 시간강사 6320명 가운데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람은 단 2명뿐이었고 2312명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고통을 주고선 이제 와서 땜질식 처방이라니 참으로 가증스럽기만 합니다.

 

새해에는 분열, 갈등 해소되고 '강구연월' 시대 열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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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연월... <교수신문>이 선정한 2010년 희망의 사자성어. ⓒ 교수신문

▲ 강구연월... <교수신문>이 선정한 2010년 희망의 사자성어. ⓒ 교수신문

<교수신문>을 보니 2010년 새해의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강구연월'(康衢煙月)이 선정됐습니다. 각 대학 교수, 일간지 칼럼니스트 등 지식인 21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강구연월'이 새해 사자성어로 뽑혔다고 하는군요.

 

'강구연월'(편안 강, 네거리 구, 연기 연, 달 월)이란 '번화한 거리에 달빛이 연기에 은은하게 비치는 모습'을 나타낸 말로, 태평성대의 풍요로운 풍경을 묘사할 때 쓰이는 뜻이라고 하는군요. 이 말은 중국 요 임금 시대에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노래한 동요 '강구요'(康衢謠)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열자(列子)의 '중니'편에 보면 천하를 다스린 지 50년이 된 요 임금이 민심을 살펴보려고 미복 차림으로 번화한 거리에 나갔는데, 아이들이 "우리 백성을 살게 해 주심은 임금의 지극한 덕"이라고 노래하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강구연월'을 희망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단국대 김상홍 교수(한문학)는 "지도층은 요 임금처럼 국민에게 강구연월의 세상을 만들어 줄 책임과 의무가 있다. 새해에는 분열과 갈등이 해소되고 강구연월의 시대가 열리길 기대한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습니다.

 

'강구연월' 외에 '편안할 때 위태로울 때의 일을 생각하라'는 말로 '경제적인 측면에서 현실에 안주해선 안된다'는 뜻의 '거안사위'(居安思危), '때를 벗기고 잘 닦아 빛을 낸다'는 의미의 '괄구마광'(刮垢磨光) 등도 새해 사자성어 후보로 꼽혔습니다. 지난 한해 민심이 얼마나 흉흉했으면, 분열과 갈등이 얼마나 심각했으면 이런 사자성어들이 등장했는지를 읽게 해주는 대목입니다. 

 

이에 앞서 <교수신문>은 올 한해 한국 사회의 모습을 비유한 사자성어로 '바른 길을 좇아 정당하게 일을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 억지로 한다'는 뜻의 '방기곡경'(旁岐曲逕)을 선정한 바 있습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경인년(庚寅年) 새 아침이 밝아 옵니다. 모든 시간강사님들, 올 한해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경인년 새해에는 호랑이의 용맹한 기운을 받아 부디 소망하시는 모든 일들을 이루시고 더욱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2009.12.31 17:50 ⓒ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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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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