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과 '헌책까페' 이야기를 쓰는 기자님께

[헌책방 나들이 219] <주간한국> 기사(2010.1.12.)에서 잘못된 곳 바로잡기

등록 2010.01.13 15:38수정 2010.01.13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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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기사로 다룬 헌책방 이야기는 반가웠지만

지난 2010년 1월 12일치 <주간한국> 커버스토리(머리기사)라는 자리에 '2000년대 헌책방이 뜨는 까닭'이라는 큰 기사가 실렸습니다. 얼마 앞서 새로 나온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책 하나를 비추면서 이 책을 써낸 사람하고 만난 기사와 함께 '2000년대에 새바람을 일으키는 헌책방을 이야기한다'는 뜻으로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를 읽다 보면, <주간한국> 기자가 잘못된 정보로 잘못 적은 대목이 무척 많습니다. 헌책방 문화를 널리 나누고 헌책방 삶자락을 두루 알린다는 테두리에서는 반가운 기사이지만, 여느 기사가 아닌 머리기사로 헌책방 이야기를 다루면서 잘못된 정보를 가득 담아 놓는다면, 앞으로 다른 사람들이 이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똑같이 잘못된 이야기를 되풀이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이리하여, 이 기사에서 잘못된 대목을 짚어 올바르게 바로잡는 한편, 헌책방과 헌책과 헌책방 문화란 무엇인가를 차근차근 풀어내 보고자 합니다.

 2. 헌책방을 세대로 나누려 한다면

헌책방 이야기를 쓴 <주간한국> 기자님께서 아무쪼록 차근차근 살피면서 하나하나 받아들여서 기자를 바로잡아 주기를 바라면서, <주간한국> 기자님한테 띄우는 편지 투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겠습니다.

<주간한국> ○○○ 기자님.

인터넷 검색으로 기자님이 쓴 글을 읽었습니다. 얼마 앞서 나온 책을 놓고 소개를 하시면서 '3세대 헌책방'을 이야기하고 있으시던데, 잘못된 정보와 생각으로 잘못된 기사를 쓰셨기 때문에, 잡지에서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인터넷에 뜨는 글에서는 바로잡으시기를 바라며 편지를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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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헌책방'이라 하면 낡고 오래된 곳만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낡고 오래된 곳이 헌책방 맞을까요? 그리고 낡고 오래된 곳에는 어떤 책이 있을까요? 이 사진은 <신고서점> 모습으로, 우리 나라에서 맨 처음으로 '인터넷 헌책방'을 열었던 곳입니다. 그런데, 숱한 신문과 방송에서는 후발주자인 <고구마>가 첫 번째 인터넷 헌책방을 열었다는 잘못된 정보를 자꾸 퍼뜨리고 있습니다. ⓒ 최종규

기자님께서는 청계천이 1세대 헌책방이라고 적으셨지만, 청계천은 1세대일 수 없고 1세대조차 아닙니다. 이중연님이 쓴 <고서점의 문화사>라는 책에도 나와 있습니다만, 청계천에는 처음에 헌책방이 없었습니다.

종로에 헌책방들이 있었는데, 1970년대에 서울시에서 종로를 재개발하면서 종로에 있던 헌책방들이 모조리 쫓겨나며 청계천으로 밀려났습니다. 지난 2000년대 첫무렵에 이명박 서울시장이 청계천 고가도로를 뜯고 개발계획을 세우면서 적잖은 청계천 헌책방이 동묘나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쫓겨났듯이, 1970년대에는 종로에서 쫓겨나서 청계천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기자님께서 이런 대목까지 알아차려서 기사를 쓰기는 어려웠다고는 하나, 글자 매체에 적히는 글을 쓰신다고 한다면 이 글이 나중에 '시대를 읽는 참고자료'로도 쓰일 수 있음을 살펴서 더 꼼꼼하고 바르게 적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기자님께서 <고서점의 문화사>라는 책까지 찾아보기 어려울는지 몰라, 이 책에서 종로 헌책방이 어떻게 청계천 헌책방으로 바뀌었는가를 밝힌 대목을 옮겨적어 보겠습니다.

.. 지하철공사가 진행되자 동대문 고서점들은 문을 닫거나 활동무대를 옮겼다. 40∼50곳에 이르던 책방은 1974년에 불과 세 곳으로 줄어들었고, 그나마 지하철이 개통되자 모두 없어졌다. 보문사ㆍ교문사ㆍ희문사ㆍ경안서점 등은 청계천으로 옮겼다. 1970년대에 그렇게 고서점의 동대문 시대는 저물어 갔다 … <샛강>의 설명은 자세하다. 시장에 건물이 새로 세워지자 연고권을 가지고 다시 샀지만 빚이 불어난다. 그런데 앞뒤의 가게가 모두 책과는 거리가 먼 가게들이었다. 당연히 책방은 장사가 안 된다. 결국 시내로 들어갔지만 6개월도 안 돼 주인의 횡포로 쫓겨나고 급기야 어느 집 처마 밑에 차양을 달고 책방을 꾸민다. 하지만 근처에 빌딩이 들어서면서 책방이 도로에서 보이지 않게 된다. 3대 헌책방의 전주에서의 마지막 모습이다 ..  (246, 324쪽)

1세대 헌책방이란 "청계천 헌책방거리 시대에 있던 헌책방"이 아닙니다. 1세대 헌책방은 다름아닌 개화기 무렵부터 한국전쟁 뒤까지입니다. 이때에 헌책방은 가게로 차린 곳도 있으나 '길바닥 장사(난전/노점)' 중심으로 여겨야 하며, 차츰 가게를 얻으며 새로워지는 모습이 2세대입니다.

서울뿐 아니라 제가 살고 있는 인천이든 부산이든 광주이든 대구이든 대전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들 한국전쟁 앞뒤로 길바닥 헌책장사와 손수레 헌책장사로 푼푼이 돈을 모아 가까스로 가게 하나 마련하면서 차근차근 전국 곳곳에 헌책방거리와 헌책방골목을 이루어 갑니다. 청계천은 2세대 헌책방과 2.5세대 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느 자리가 아닌 공공매체 성격인 신문과 잡지와 방송에서는 이와 같은 흐름을 올바로 짚으면서 잘 담아내야 합니다. 청계천을 세대로 나눈다 하면 2세대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그러니까 청계천과 같은 '헌책방거리'나 '헌책방골목'은 1950년대에 전국 곳곳에 자리를 잡고 마련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문화를 2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세대는 1980년대까지 거의 그대로 이어갑니다.

그런 다음이 3세대라 할 텐데, 3세대는 군사독재정권이 물러나고 3s정책과 문화해금정책에 따라 '출판금지/판매금지/불온도서'가 많이 줄어드는 1980년대 첫무렵을 거치고 1990년대에 이르러 사람들 눈길이 책에서 영화와 스포츠로 옮겨 가면서 차츰차츰 어려움을 겪습니다. 1970년대까지 헌책방들은 '책시렁에 꽂아 놓으면 열 권 가운데 아홉 권이 팔려 나갔다'고 하며,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는 '열 권 가운데 대여섯 권이 팔려 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끝무렵과 1990년대 첫무렵부터는 '열 권 가운데 서너 권이나 한두 권'으로 뚝 떨어집니다.

이때에 우리 나라에는 프로야구 프로축구 프로씨름을 비롯해 농구 배구 영화 …… 들이 넘쳐납니다. 이렇게 '책읽는 사람이 줄어드는' 흐름에 따라 동네새책방과 동네헌책방이 하나하나 줄어들거나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런 갈림길과 어려움이 얽히고 설키면서 '집안 어른한테서 물려받지 않고 스스로 동네 골목 한켠에 새로 여는 사람들'이 하나둘 헌책방을 엽니다. 지난날 1세대와 2세대 헌책방은 먹고살자는 생각으로 헌책방을 열었다면, 3세대에 이르는 헌책방 일꾼은 "책을 좋아해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 하면서 쌈지돈을 모아서 하나둘 뿌리를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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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촌에 자리한 <뿌리와 새싹>은 모양새로는 헌책방이지만, 헌책방계에 있는 분들은 이곳을 헌책방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아름다운재단에서 독지가한테서 기증받아서 연 곳하고, 당신들이 피땀 흘려 모은 돈으로 어렵사리 마련한 매장하고는 한 자리에 놓을 수 없으며, 스스로 '책을 캐내고 찾아내고 갖추는' 헌책방과 달리, '아름다운 가게'는 따로 책을 캐내거나 찾아내며 사들이지 않고 '기증'을 받기 때문입니다. ⓒ 최종규


서울 노고산동에 자리한 <숨어있는 책>은 이런 흐름에서 내로라할 만한 3세대입니다. 3세대에 앞서 2.5나 2.7세대쯤 되는 분들이 지금은 동묘역 앞에 있는 <영광서점>이나 제주에 있는 <책밭서점>이나 서울 외대앞 <신고서점>이나 부산 보수동에 있는 <우리글방>이나, <주간한국> 기자님이 기사에 적은 <고구마> 같은 곳입니다.

또다른 3세대가 되는 헌책방이라면, 대방동에 있는 <대방헌책방>과 불광동에 있는 <작은우리>와 서울역 앞에 있는 <서울북마트>와 부산 보수동에 있는 <고서점>과 서울 목동 <열린책방>을 들 수 있고, <숨어있는 책>은 좀 후배입니다. <숨어있는 책> 뒤로 연, 인천 부개동 <책사랑방>이나 증산동 <모아북>이나, 이제 문을 닫은 연대 앞 <연세헌책방>이나, 이곳과 마찬가지로 문을 닫은 서울 교남동 <어제의 책>이나, 새롭고 당차게 문을 연 부산 연산동 <헌책방>이나 서울 이대 앞 <유빈이네 헌책방>이 3세대입니다. 여기에 아버지와 함께 2대 헌책방을 이루는 서울 홍제동 <대양서점> 2매장 또한 3세대라 할 수 있습니다.

기자님이 보시기에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같은 데가 새롭게 3세대를 연다고 느끼실는지 모르나, 헌책방 갈래에서는 이러한 곳을 '책방으로 치지' 않습니다. '대안문화공간'이면서 '책을 조금 놓고 있는' 곳이니, 이른바 '헌책까페'라는 이름을 붙일 수는 있습니다. 책방하고 까페는 다릅니다. 오로지 '책을 사고팔면서 살아가는 곳'에만 '책방'이라는 말을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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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고구마>는 창고를 퍽 많이 갖추면서 개미소굴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곳은 3세대 헌책방 가운데 퍽 남다른 생각과 마음으로 새 문화를 일구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기사로 <고구마>를 다루려는 분들은 헌책방 <고구마>가 어떻게 왜 무엇이 다른가를 살펴서 담아내야 합니다. ⓒ 최종규


3. 인터넷헌책방 발자취

기자님은 '서점'과 '책방'이 다른 느낌이 있는 말인 듯 쓰셨습니다. 기자님께서는, "모든 문화에는 역사가 있고, 서점과 책방에도 유행이 있다. '서점'이 신간을 파는 곳이라면, '책방' 하면 왠지 고색창연한 냄새가 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둘을 가를 수 있을까요? 서점은 새롭고 책방은 고색창연다니요?

기자님 취향에 따라 이렇게 이야기하는 일은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서점과 책방은 같은 말입니다. 같은 곳을 가리키는 같은 말을 기자님이 달리 생각한다고, 함부로 이렇게 적는 일은 잘못입니다. '서점'이나 '책방'이나 똑같이 한자말이기는 해도, '서'는 완전히 한자로만 여기는 낱말이고 '책'은 따로 한자로 여기지 않는 우리 말입니다.

새책방과 헌책방이라 일컬을 때에는 우리 말이고, 신간서점과 고서점이라 일컬을 때에는 일본 한자말입니다. '책방'이라는 낱말이 고색창연하다면 '새책방'과 '동네책방'이라는 낱말과 '인문사회과학책방'이라는 낱말 모두 고색창연할 텐데, 이러한 대목을 제대로 헤아리지 않고 기사로 이와 같이 개인 취향을 적는 일은 자칫 위험할 수 있음을 알아두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고구마>가 인터넷헌책방을 처음 연 곳이라고 적으셨지만, 가장 먼저 인터넷헌책방을 연 곳은 <신고서점>입니다. 두 번째가 <고구마>입니다. 이 또한 기자님처럼 잘못된 정보로 잘못 기사를 쓰는 사람들 때문에 잘못 퍼지고 있는데, 반드시 바로잡으시기 바랍니다. 알라딘이나 인터파크 같은 데에서 연 '헌책 파는 자리'가 아닌 민간 헌책방으로서, 나라안에서 세 손가락으로 꼽는 큰 곳으로 <신고서점>, <고구마>, <책창고(북어게인)>를 듭니다. <신고서점>이 1997년에 열었고, <고구마>가 1998년에 열었으며, <책창고>가 2000년에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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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문을 닫고 사라진 <어제의 책>은 헌책방 문화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고자 애썼지만, 끝내 어려운 살림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참고서와 교재를 안 다루고 인문사회과학책만 다루어서 살아남기란 너무 힘듭니다. ⓒ 최종규


기자님을 비롯하여 수많은 기자님들이 잘못된 정보를 자꾸자꾸 되풀이하기 때문에, 저는 스스로 어줍잖으나마 지난 2004년에 <모든 책은 헌책이다>를 써냈고, 2006년에는 <헌책방에서 보낸 1년>을 써냈으며, 2007년부터는 1인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을 써내고 있으며, 제 개인누리집에서 헌책방 이야기를 바지런히 쓰는 한편,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헌책방 기사를 띄우고 있습니다. <주간한국> 기자님께서 기사를 쓰시기 앞서 인터넷 검색을 조금이라도 더 해 보시면서 제 모자란 글을 살펴보셨더라면, 적어도 이런 잘못이 나타나지는 않았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기자님은 헌책방 <고구마>는 책 보유수가 40만 권이니 얼마이니 하고 말씀하시지만, <신고서점>이 갖춘 책 보유수 또한 이보다 많으면 많지 적지 않습니다. 저는 이 커다란 세 군데 헌책방 매장과 창고를 다 알고 있으니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데, 기사에서는 숫자가 얼마나 되느냐를 밝히는 일이 중요할는지 모르나, 정작 헌책방 문화를 말할 때에는 참 군더더기입니다. 책 숫자를 이야기하고 싶으시면 이야기하시되, 이런 숫자를 다루느라 우리가 참으로 나누고 함께해야 할 깊은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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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에 문을 연 <정은서점>은 지금 서울 연대 앞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1969년부터 오늘날까지 '대학교재'는 다루지만, 여느 초중고등학생 참고서와 교과서는 다루지 않고 '인문학 책'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숨어있는 책>이 교과서 안 다루는 첫 번째 헌책방인 줄 알고 있지만, <정은서점>은 벌써 1969년부터 이러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신문기자들은 제대로 받아쓰기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 최종규

사람들은 책을 읽지 숫자를 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책문화를 누리지 책방매출을 누리지 않습니다. 어찌 되었든, 기본 사실과 정보는 올바르게 적으셔야 할 줄 압니다.

책 보유 숫자로 놓고 볼 때에는, 어쩌면 대구에 있는 <합동서적>이나 경남 진주에 있는 헌책방이 훨씬 많은지 모릅니다. 게다가 동묘앞역에 있는 <청계천서점> 사장님이 도매로 움직이는 책 숫자는 때때로 몇 만 권을 넘나들기도 하는데, 40만 권이라는 책 숫자는 헌책방 큰손들로는 하루 만에도 만들 수 있고 며칠 만에 100만 권을 갖춘 곳이 될 수 있습니다.

제발이지, 언론매체에서 몇 십만 권이니 하고 떠벌이는 기사가 앞으로는 없기를 바랍니다. 왜 이렇게 부질없는 숫자 이야기를 늘어놓아야 할까요?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을 자리에 헌책 문화와 발자취가 우리한테 어떻게 스며들고 아름다이 자리매길 수 있는가를 적어 주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더욱이, 기자님은 "동네헌책방 장서는 적게는 이삼천 권에서 많게는 삼만 권을 넘지 않는다"고 적으시는데, 무슨 잣대와 현실에 따라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동네헌책방은 어느 헌책방을 가리키는지요? 동네헌책방이 아닌 헌책방은 어떤 헌책방인지요?

4. 헌책방이냐 헌책까페이냐 다원문화공간이냐

<주간한국> 기자님 글에서, '북까페형 헌책방'이 생겼다고 하는 말씀은 옳지 않습니다. 북까페는 북까페이고 헌책방은 헌책방입니다. <아름다운 가게 신촌점> 같은 곳은, 아름다운재단에서 기증받은 한옥집을 고쳐서 마련한 '대안문화공간'입니다. 이곳은 거의 헌책방 같은 모양새를 갖추고 있지만, 이곳도 헌책방은 아닙니다. '대안문화공간' 또는 '다원문화공간'입니다.

저는 이러한 곳을 가리켜 '책쉼터'나 '책나눔터' 또는 '동네책쉼터'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헌책을 몇 권 들여다 놓고, 사람들이 읽은 책 얼마쯤 갖추어 놓았다고 해서 헌책방이 되지 않습니다. 헌책방이란, "헌책방 일꾼이 품을 팔아서 새로운 책을 사들이고 갖추어서, 이 책들이 새로운 임자를 만날 수 있도록 다리를 이어 주며 살림을 꾸리는 곳"입니다. 그래서 헌책방은, "책방 일꾼 스스로 읽지 않은 책이지만, 책손한테 어떻게 값이 있고 뜻이 있는가를 알아채며 갖추어 놓은 책에 알맞춤하게 값을 매기어 파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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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책과 문화예술 책을 골고루 잘 갖춘 헌책방 <숨어있는 책>은 경기도 파주 출판문화도시에 2매장을 열 만큼, '매장으로 헌책방 문화를 널리 나누려는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따로 열지 않고 매장으로만 책문화를 나누고자 하는 뜻을 잘 읽어내야, 헌책방 이야기를 기사로 쓸 때에도 옳고 바르고 알맞고 아름답게 글을 여밀 수 있습니다. ⓒ 최종규


어쩌면, 기자님께서는 '헌책방 정의'조차 제대로 갈피를 잡고 있지 못하니, 곳곳에 잘못이 있고 헌책방 문화하고 어긋난 기사를 썼는지 모릅니다. '헌책방'이라는 곳을 즐겨 찾아다니면서 우리 삶터 뒤안길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는 헌책 문화를 맛보지 못하고 있으시기에 이만한 기사에 머물면서 잘못된 이야기가 되풀이나오지 않느냐 싶습니다.

우리 나라 헌책방은 오늘날 4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헌책방들이 4세대이지요. 그리고 '헌책방이라는 매장 장사'에서 조금 벗어나면서 '헌책방을 문화쉼터로 삼고자 하는 찻집 마련하기' 또한 4세대 흐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4세대 헌책방 문화 흐름은, 서울 홍익대 앞 <온고당> 헌책방에서 2001년에 열었던 "까사"라는 '헌책까페'를 연 데에서 비롯했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헌책까페는 2005년에 서울 연남동에 열린 <캘커타 & 코코넛>이 두 번째 끈을 이어받았습니다. 2009년 여름에는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 열린 <우리글방 북 까페>가 세 번째 끈을 이어받았다 할 수 있고, 2009년 가을에는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열린 <나눔과 비움>이 네 번째 끈을 이어받았다 할 수 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곳은, 책쉼터에 붙인 이름으로는 '헌책방'이지만, 성격으로는 '다원문화공간'입니다. 스스로 헌책을 좀더 무게있게 다룬다고 밝힌다 하면 '헌책까페'로 여길 수 있습니다.

기자님이나 다원문화공간지기 분들은, 스스로 '헌책방'이라는 이름이란 섣불리 붙이기 어려운 이름이며, '헌책방'이라는 이름을 붙이고자 한다면, 그만큼 '헌책장사'라는 너른 바다로 풍덩 뛰어들 수 있어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종이에 찍혀 나오는 모든 인쇄물을 놓고 '책'이라 할 수 있지만, 모든 책을 놓고 '책답다'고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우리한테는 '헌책방'이라는 이름이든 '헌책까페'라는 이름이든 그다지 눈여겨볼 대목은 아닙니다. 우리들은 책 하나가 돌고 돌아 사람과 사람을 만나면서 넋과 얼을 밝히고 빛내는 삶자리가 어디인가를 눈여겨보아야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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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우리글방>은 대단히 큰 돈을 들여 <우리글방 북 까페>를 열었습니다. 이러한 문화내음을 읽어야 합니다. 문화내음을 읽지 않고 헌책방과 헌책까페 이야기를 섣불리 쓰면, 이 나라 책마을에 도움이 되기란 너무 어렵습니다. ⓒ 최종규


무엇보다도 헌책방이라는 곳은 '나눔'을 바탕으로 합니다. 나눔과 함께 '되살림'을 밑거름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부자이든 가난뱅이이든 누구나 책을 좋아하고 아끼고 사랑한다면 널리 문을 열어 놓아 '열림'으로 먹고삽니다. 그래, 헌책방이라는 이름을 이 나라에서 업신여기거나 깔본다고 한들, 이리하여 거의 모든 헌책방 2세들이 당신들 부모님이 꾸려 온 헌책방을 이어받을 생각이 없는 우리 사회라고 하여도, 헌책방은 헌책방 그대로 고운 결을 간수하면서 책마다 오래도록 흐르고 있는 숨소리를 담고 있다고 믿습니다. 헌책방이라는 곳은 "책방 일꾼 스스로 읽지 않았어도 누군가한테 이바지하는 좋은 책을 찾아내고 캐내고 알아내어, 당신들 품값을 알맞춤하게 매겨서 파는 곳"입니다.

부디, 앞으로는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잘못된 줄거리가 담긴 기사를 쓰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지면이 된다면 인터넷 기사와 종이매체 다음 호에서 '바로잡기'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덧붙이는 글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헌책방 #헌책까페 #이상북 #책삶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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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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