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새집을 사랑해 주세요

[인천 골목길마실 74] 사람을 생각하는 개발정책이란

등록 2010.01.17 13:48수정 2010.01.17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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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지나다니는 길이라 하더라도 이 길목에 무엇이 있는지 제대로 알아채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서두를 일 때문에 걸음을 재촉하거나 허둥지둥 달린다면 내가 오가는 이 길에 누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들여다보거나 느끼지 못합니다. 아무리 천천히 달린다 하더라도 자가용을 몰면서 지나갈 때에는 아무것도 못 느끼곤 합니다. 골목길에서조차 40∼50킬로미터 넘게 싱싱 내달리는 자가용이라면 도무지 받아들일 가슴이 없다고 할 만하겠지요.

 

지난 1월 14일 낮, 인천 동구 송림1동과 송현동이 엇갈리는 골목동네 갈림길 한켠에 있는 골목가게 처마에서 새집을 하나 만났습니다. 이 길은 언제나 뻔질나게 지나다니는 길이요, 골목사진을 찍으려고 천 번 넘게 밟은 길이었는데, 이 갈림길 한켠 자그마한 가게 처마 한켠에 새집이 조그맣게 붙어 있는 모습을 보기는 처음입니다. 이 자리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작은 새는 지난 2009년에 처음으로 지었을까요? 2008년에 지어 놓지는 않았을까요? 2007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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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골목가게 타일벽으로 된 처마 한 귀퉁이에 새집이 있습니다. ⓒ 최종규

동네 골목가게 타일벽으로 된 처마 한 귀퉁이에 새집이 있습니다. ⓒ 최종규

 

어쩌면 2006년이나 2005년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는지 모릅니다. 더 앞서일는지 모르고, 해마다 조금씩 다른 자리에 보금자리를 틀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작은 새들이 마련한 이 보금자리를 사람들이 잘 알아채지 못했으니 고스란히 살아남았으리라 봅니다. 또는, 이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동네사람들이 모두 알아챘지만, 작은 새가 느긋하고 넉넉하게 쉬면서 새끼들을 보살필 수 있도록 알뜰히 지켜 주었기에 살아남았으리라 봅니다. 둘 모두일 수 있습니다.

 

골목가게 앞에서 한참 선 채로 고개를 올리고 자그마한 새집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모르는 노릇인데, 이 골목동네 다른 곳에도 조그마한 새집이 사람들 눈에 잘 안 뜨이는 구석구석에 깃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떠나고 빈 집 안쪽에 조용히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으며, 헐린 집 자리에 텃밭을 일구어 놓은 골목동네 한켠 빈구석에 남몰래 보금자리를 엮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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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가게 아저씨 아주머니들을 비롯해, 이 둘레 걸상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는 할머니들까지, 이 새집을 모를 리 없습니다. 새끼들과 어미 새가 쉴새없이 우짖었을 테니까요. 동네 어르신들이 새집을 잘 건사해 주었으리라 믿습니다. ⓒ 최종규

골목가게 아저씨 아주머니들을 비롯해, 이 둘레 걸상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는 할머니들까지, 이 새집을 모를 리 없습니다. 새끼들과 어미 새가 쉴새없이 우짖었을 테니까요. 동네 어르신들이 새집을 잘 건사해 주었으리라 믿습니다. ⓒ 최종규

추운 겨울을 이 보금자리에서 나는지, 겨울철에는 따뜻한 곳으로 날아갔다가 돌아와 지내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함께 골목마실을 하신 분은 율목동에 있는 율목공원 우듬지에서 우짖는 새를 올려다보더니 "직박구리네요." 했습니다. 도심지에는 까치와 참새도 함께 살지만, 박새와 어치도 함께 삽니다. 저는 새 이름을 잘 몰라서 못 알아보지만, 직박구리 말고도 오색딱따구리를 보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 새들 말고 또다른 새들도 곳곳에 사람들 눈길이 안 닿는 자리에서 오순도순 지내고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제가 살고 있는 이 동네는 아직 아파트가 빼곡하게 들어선 새마을(뉴타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파트 툇마루에 황조롱이가 둥지를 틀기도 한다지만, 이런 일은 아주 드뭅니다. 아파트만 빼곡한 동네에 어떤 새가 느긋하게 깃들이면서 제 먹이감을 찾으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논밭과 갯벌을 메우고 산을 깎아 올려세우는 아파트뿐인 이 나라 어디에 텃새이든 철새이든 즐겁고 신나게 찾아와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어제 낮에는 배다리 헌책방골목에 있는 <삼성서림>에 들러 <김용수 사진집 1960-1998>을 구경했습니다. 김용수 님은 인천에서 마흔 해 넘게 사진을 찍은 분이라 하는데, 이 사진책을 들여다보니 1969년 어느 날 인천 골목길 사진이 한 장 있는데, 할배 두 분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앞쪽으로 제비들 스무 마리 남짓 전깃줄에 앉아 있더군요. 그야말로 아득한 옛날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제가 국민학생이던 1980년대에도 이런 모습을 곧잘 보기는 했으나 1990년을 넘어선 뒤로는 동네에서 제비를 구경한 일이 없습니다. 앞으로는 제비를 구경하기 더 어렵지 않을까 싶으며, 열 해쯤 뒤에는 제비를 천연기념물로 삼아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천성산에서 꼬리치레도룡뇽을 비롯한 뭇목숨을 아끼는 마음이란 바로 꼬리치레도룡뇽만이 아니라 우리들 사람을 함께 아끼는 마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꼬리치레도룡뇽 한 마리를 살리지 못하는 개발정책이라면,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 하나를 살리지 못하는 개발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아끼지 못하는 개발정책이라 한다면, 개발정책을 이끌어 내어 큰돈을 벌거나 싱싱 내달리는 철길과 찻길을 닦았다 하여도 누구한테 도움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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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송림1동 언덕배기는 예전에는 모두 골목집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달동네였습니다. 달동네를 밀어내고 아파트가 높이 섰는데, 아직 나무전봇대를 비롯해, 오래된 골목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제 눈에는 이들 나무전봇대와 텃밭과 새집까지 모두 '살아 있는 문화재'라고 보입니다. ⓒ 최종규

인천 송림1동 언덕배기는 예전에는 모두 골목집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달동네였습니다. 달동네를 밀어내고 아파트가 높이 섰는데, 아직 나무전봇대를 비롯해, 오래된 골목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제 눈에는 이들 나무전봇대와 텃밭과 새집까지 모두 '살아 있는 문화재'라고 보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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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공무원들은 돈을 들여 동네를 싸그리 밀어내면서 다시 돈을 들여 아파트를 짓거나 쇼핑센터나 광장을 짓는다는 개발계획만 내놓습니다. 사람이 느긋하게 살아갈 정책이란 내놓지 않습니다. ⓒ 최종규

인천시 공무원들은 돈을 들여 동네를 싸그리 밀어내면서 다시 돈을 들여 아파트를 짓거나 쇼핑센터나 광장을 짓는다는 개발계획만 내놓습니다. 사람이 느긋하게 살아갈 정책이란 내놓지 않습니다. ⓒ 최종규

동네 골목길 한켠 조그마한 새집을 지킬 수 있는 '사람 정책'을 꿈꾸고 싶습니다. '사람조차 살기 어렵게 하는 개발만 일삼는 정책'이 아닌 '사람이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정책'을 꿈꾸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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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는 '재래시장 활성화와 현대화'를 내세우면서, 인천 송현동 송현시장 재개발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 송현시장에는 번듯하고 말끔한 바닥돌(보도블럭)과 비와 눈을 막아 주는 튼튼한 지붕이 있었습니다. 이 모두를 갑작스레 모두 치워 버리며 시장통 사람들이 장사를 못하게 해 놓고 '새로 꾸미기'를 큰돈 들여서 하고 있습니다. 이런 개발은 누구한테 도움이 될 개발일까요? ⓒ 최종규

인천시는 '재래시장 활성화와 현대화'를 내세우면서, 인천 송현동 송현시장 재개발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 송현시장에는 번듯하고 말끔한 바닥돌(보도블럭)과 비와 눈을 막아 주는 튼튼한 지붕이 있었습니다. 이 모두를 갑작스레 모두 치워 버리며 시장통 사람들이 장사를 못하게 해 놓고 '새로 꾸미기'를 큰돈 들여서 하고 있습니다. 이런 개발은 누구한테 도움이 될 개발일까요?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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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전봇대 기둥에 줄을 달아 빨래줄을 드리운 골목길 한켠. 동네사람 스스로 조촐하게 조용하게 가꾸는 골목 문화를 우리 스스로 사랑해 줄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 최종규

나무전봇대 기둥에 줄을 달아 빨래줄을 드리운 골목길 한켠. 동네사람 스스로 조촐하게 조용하게 가꾸는 골목 문화를 우리 스스로 사랑해 줄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2010.01.17 13:48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골목길 #인천골목길 #개발정책 #새집 #골목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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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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