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떤 책을 팔든지 상관하지 마라"

[인터뷰] 인문사회과학 서점 '풀무질' 일꾼 은종복씨

등록 2010.01.28 14:16수정 2010.01.28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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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웬 경찰서?"
"으응. 아빠가 이사왔다고 인사하러 왔어."
"경찰서에서 왜 아빠한테 인사 와?"
"응. 아빠가 중요한 사람이라서 이사가면 안부인사를 꼭 하네."
"우와~"


장수로 터를 옮겨 집을 짓고 사는 남편 집 탁자에 경찰서 아무개 명함이 놓여 있었습니다. 둘째 딸은 경찰이 보호해준다니 아빠에게 존경하는 눈빛을 보냅니다. 그러나 저는 재빠르게 눈치를 챘습니다. '왔다 갔구나'라고 말이지요.

1995년. 제가 다녔던 사회단체 '사회민주주의청년연맹(사민청)'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으로 대거 잡혀 들어갔습니다. 저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쉬는 중이었고, 남편은 직장을 그만두고 시험공부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때, 국가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친절하게 제 집을 방문했는데 시어머니께선 저 사람들이 왜 또 찾아왔냐며 불안해 하셨지요.

그때 운 좋게 태어난 큰 딸 덕에 잡혀가진 않았지만 한동안 악몽을 꾸었습니다. 우리랑 같이 밤새워 토론하고, 술도 먹고, 함께 어깨동무를 했던 그 사람의 얼굴이 꿈에서도 저를 괴롭혔습니다. 나중에서야 그 사람이 왜 그토록 북한에 집착했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우리 단체는 북한과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독일로 유학 가는 단체 사람에게 북한과 접촉해보라고 여러 차례 권유했습니다. 그게 다 국가보안법으로 엮기 위한 작업이었음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의 의도대로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얼토당토않게 많은 이들이 국가보안법으로 엮었고 그는 잠수를 탔습니다. 나중에 들려온 소문으론 그가 안기부 직원이었고, 조직적으로 단체를 깨기 위해 들어온 프락치였다고 합니다. 

이사갈 때마다 찾아와 인사하는 그들


벌써 15년 전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이렇게 흘렀으니 웃으며 지난날을 이야기하지만 당시로는 멀쩡히 직장 다니던 사람들이 구속되고, 함께 밥을 먹던 내 오빠, 내 삼촌이 하루아침에 빨갱이로 몰려 손가락질 당해야 했던 잔인한 날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번 국가에게 눈도장을 찍고 나면 늘 어디로 이사를 가든 친절하게 인사를 해주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정작 이삿짐 날라야 할 때는 안 나타나고, 힘들여 이사하면 찾아옵니다. 그것도 빈손으로.

저는 그 프락치를 오랫동안 잊지 못했습니다. 아니 이를 갈았습니다. 어디 길가다가 딱 한  번만이라도 걸려라. 내 너를 절대 가만두지 않으리라. 그때 사건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꼬였는지를 생각하면 제 마음이 편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제 눈앞에 안 나타납니다. 몇 년 전에 봤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워낙 순식간에 튀어서 놓쳤다고 합니다. 

제 입장에서는 원수 같은 그 프락치가 공안정국을 만들고자 하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사건 하나 시기적절하게 터뜨려 주는 일 잘하는 직원이었을 겁니다. 요즘은 그렇게 입장이 다를 뿐이라고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데 얼마 전 만난 사람이 그 평정심을 확 깨줍니다.

'내가 어떤 책을 팔든지 상관하지 마라'

성균관대학교 앞에서 17년째 사회인문과학 서점 '풀무질'을 운영하고 있는 은종복씨가 지난 1월 17일 만났을 때 내민 글의 제목입니다. 은종복씨 가방에는 늘 자신이 쓴 일상적인 글들이 있고, 만남이 있는 자리에는 항상 그 글들을 우리에게 선보입니다. 이번 글 제목은 아주 재밌습니다. 뜬금없기도 하고, 봉창 두드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내용을 읽어보니 왜 이렇게 제목을 달았는지 백 번, 천 번 공감이 갑니다. 대충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명박정권이 들어서고 나서부터 공안기관에서 일하는 사복경찰들이 일주일에 서너 차례 서점에 들락거리고, 진보성향이 있는 신문이나 잡지를 사가고, 심지어 집까지 따라 붙었다. 그 때문에 1997년 봄, 국가보안법 이적표현물 판매죄로 한 달간 감옥에 갔던 지난날이 떠올랐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서점서 진보단체 유인물 찾는 그들은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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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봄, 국가보안법 이적표현물 판매죄로 잡혀간 당시를 회상하는 '풀무질' 일꾼 은종복씨 ⓒ 권영숙

그렇게 씌어진 은종복씨의 글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받을 때 겪은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 그때가 떠올라 두려운 마음이 들어 마음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저는 은종복씨의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었고, 같이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지 못해서 아직도 많은 사람이 다치고 있다는 사실이, 자책감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봤습니다.  

- 아직도 공안기관 사람들이 와요? 어떻게 알아요?  
"공안기관 사람들로 의심되는 이들은 특징이 있어요. 첫째 말을 안 한다. 책 사러 왔으면 물어보잖아요. 절대 말을 안 해요. 둘째 속속들이 뒤져요. 빨간책 비슷한 거는 꼼꼼히 봐요. 30분이고, 1시간이고, 오래 오래 다 뒤져요. 셋째 따로 따로 들어와요. 5분 간격으로. 그런데 나갈 때는 한 명씩 나가요. 내가 따라 나가 봤어요. 갈 때는 한차를 타고 가요. 제가 승용차 번호 적어서 알아보니까 남영동 경찰청 번호라고 나오더라고요.

그리고 한 번은 집에 가느라 지하철을 탔는데 기분이 안 좋은 거예요. 옆에 딱 보니까 많이 본 사람이에요. 따라 붙은 거죠. 그래서 옆 칸으로 옮겼어요. 내릴 때 한 정거장 전에 내려서 마을버스를 타서 골목골목으로 해서 집에 거의 다 갔는데 어떤 여자가 딱 내려와요. 그러더니 또 어떤 남자가 따라 내려와요. 그런데 눈빛이 달라요. 내가 집에 들어가서 내려다보니까 아래서 지키고 있더라고요."

- 그게 언제예요?
"두 달 전이에요. 또 어느 날은 서점에 한 남자가 왔는데 아까 말한 특징 있는 그 세 가지 행동을 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물어봤어요. '어디 정보기관에서 일하세요?'라고요. 그랬더니 자기가 그렇게 불량스럽게 보이냐고 해요. 자기는 이런 책 좋아한대요. 자기는 회사 다니는데 이 책방에 오고 싶었다는 거예요. 우리 서점이 얼마나 오래됐는데 그렇게 오고 싶었으면 진작 오지, 이제 와요? 이상하더라고요. 그래서 '무슨 회사 다니냐'고 물어봤는데 그냥 샐러리맨이래요. 일 끝나고 와서 책 구경하러 왔대요. 그런데 샐러리맨이 낮 12시에 오나? 싶은 거예요. 그러더니 이 사람이 좀 있다가 진보단체에서 나온 유인물이 없냐고 물어요. 요즘 진보단체 유인물이 어디 나오냐고, 나오지도 않는다고 했죠. 자기가 그런 거 좋아한다는 거예요."

- 그때 기분이 어땠어요?
"너무 안 좋죠. 내가 인문사회과학서적 팔아서 떼돈을 벌었다거나 하면 말도 안 해요. 또 내가 무슨 조직을 만들어서 혁명을 하겠다거나 그것도 아니잖아요. 혹시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 뭘 엮으려고 했는지, 아님 나를 엮으려고 했는지 그건 모르지만 무섭잖아요. 그래서 집에 문제될 만한 게 있는지 다시 보게 되더라고요. 

솔직히 자기네들이야 잡아가면 그만이겠죠. 제가 14년 전에 잡혀갔을 때 700만 원 손해 봤어요. 아내가 임신한 상태에서 매일 면회 오고(당시 국가보안법은 직계가족만 면회가 가능한데 결혼했으면 아내만 면회됨), 책방은 몇 시간밖에 못 열고, 그래도 월세는 꼬박꼬박 내야 되고, 변호사 비용 대고, 생활비 들어가니까 딱 700만 원 손해 나더라고요. 그리고 정신적인 피해가 있잖아요. 또 엄청나게 많은 책을 가져가서 돌려주지도 않았고요."

은종복씨가 조사 받은 남영동 510호

- 가족들이 엄청 놀랐겠어요?
"그렇죠. 너무 웃긴 건 제가 어디로 잡혀갔는지 3일 동안 아무도 몰랐어요. 그때 같이 잡힌 사람들이 '그날이 오면'하고, '장백'하고 낮 12시에 긴급구속으로 잡혔어요. 어머니가 수소문 해서 겨우 제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셨죠. 박종철 열사가 509호에서 죽었잖아요. 제가 510호에서 조사받았어요. 벽이 이렇게 두꺼워요. 형광등도 철망이 돼있고, 문도 안에서는 못 열어요. 열쇠로 열고 나가고 닫으면 그냥 잠겨요.

어머니가 펑펑 울면서 찾아와서 수사관한테 우리 아들은 절대 그럴 리 없다고 한 거예요. 그랬더니 수사관이 걱정 말라고 어머니를 집에 모셔다 준다면서 아들 방을 한 번 보자고 했대요. 그러더니 내 책이랑 유인물을 상자에 담으면서 이런 거 가지고 있으면 죄가 더 무겁다고 하더래요. 그런데 집에 있는 책을 가져갈 때 압수수색영장도 없이 와서 가져간 거예요. 불법이죠.

수사관이 저한테 왜 이렇게 돈 안 되는 책방을 하느냐고 했어요. 그러면서 나가면 술집을 하래요. 성대학생들 술도 많이 먹을 거 아니냐고요. 또 책방 하고 싶으면 자길 도와달래요. 성대에 데모하는 학생들 이름하고 조직을 알아주면 자기가 도와주겠다는 거예요. 나더러 끄나풀이 되라는 거죠.

제가 수사관한테 물었어요. '말'지는 영풍문고나 교보에서도 팔지 않느냐 했더니 하는 말이 그 사람들은 돈 벌려고 하는 거지만 당신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했더니 당신 학교 다닐 때 진보활동 많이 했고, 학교 생활했던 사진이 쫙 찍혀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사진을 쫙 보여주는데 내가 어떻게 지냈는지 다 있어요.

부인이 성대 앞 집회 같은데 가서 '내 남편 죄가 없다'고 말했었는데 그거 하지 말라고 하더래요. 그거 하면 더 오래 있는다고. 그래서 제가 더 하라고 했어요. 왜냐면 이름 난 사람들은 그냥 나오는데 이름 없는 사람들은 안 그렇거든요. 그래서 더 알리라고 했어요."

- 고문은 안 했나 봐요?
"때리지는 않는데 언어폭력이 심했어요. '너 여기서 죽어도 아무도 몰라. 옛날에 박종철 죽은 거 모르지' 이런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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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위반 책목록,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도 있다. ⓒ 권영숙


- 국가보안법 목록 중에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시집이 있던데요?
"저도 그게 왜 걸렸을까, 걸릴 이유가 없는데 싶어서 문학과 지성사에 전화해봤어요. 다른 비슷한 책이 있냐니까 없대요. 아마 '평강공주'를 '평양공주'로 오해한 것 같아요."

'평양공주'로 오해했을 거라는 말을 들으면서 떠오르는 사건이 있습니다. 제 아는 분이 국가보안법으로 재판받다가 너무 무식하게 들이대는 공안검사에게 이렇게 쏘아붙였답니다.

"앞으로 검사님은 나를 심문하려거든 공부 좀 하고 나오시오. 도대체 뭘 제대로 알고서 덮어 씌워야 할 게 아니오? 공안검사가 그렇게 책을 안 읽고 무식해서 어쩌자는 겁니까!"

그때 공안검사의 얼굴이 엄청 벌겋게 달아올라 볼만 했답니다.  

풀무질 17년 역사를 엮어낸다는 은종복씨

저는 몇 년 전 국가보안법 철폐 1인 시위를 국회 앞에서 한 일이 있었습니다. 매일 국회의원들 점심시간 때 맞춰서 지인들과 돌아가며 1인 시위를 했습니다. 그때 좀 더 열심히 했다면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이야기하는 내내 들었습니다.

은종복씨가 요즘 하도 바쁘다고 해서 뭐하느라 바쁘냐고 물으니 4월에 출간 예정인 책을 쓰는 중이랍니다. 가제목인데 '풀무질 일꾼, 사람들'이라고 17년 동안 인문사회과학 서점 '풀무질'을 꾸려온 이야기와 그동안 풀무질을 다니고, 사랑해줬던 20여명의 사람들이 함께 글을 보탠다고 합니다. 또 은종복씨가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 평화에 대한 생각과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면서 쓴 글들도 있다고 합니다.

은종복씨 책은 '더불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 될 듯싶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해가 졌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헤어지는데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이렇게 더불어 살고자 하는 사람이 왜 국가로부터 감시대상이 되어야 할까? 그리고 국가로부터 보호받는 사람 옆에 있으면 같이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아니면 나도 감시대상에 오를까?

은종복씨와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것도 책까지 읽고서요. 어떤 책을 읽느냐고요? 글쎄요. 감시하는 눈들이 너무 많아서 절대 가르쳐 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도 빨갱이를 잡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오마이뉴스>에 들어와 이 글을 보실 당신을 위해 딱 한 가지 힌트를 드리죠.

책이 빨갛네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풀무질 #은종복 #국가보안법 #안기부 #박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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