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호 기념관과 둔동마을 숲정이를 찾아서

순천에서 화순가는 국도변을 달리며 만난 겨울풍경…

등록 2010.01.27 15:19수정 2010.01.27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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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국도를 달리다 만난 마을 풍경. 왼편 건물이 주암면사무소다. ⓒ 전용호


길거리 풍경을 즐기며

1월 24일. 호남고속도로 주암 나들목을 나와 국도 22호선을 타고 간다. 주암댐이 막아선 보성강을 지나면 주암면소재지다. 사거리 길가로 천막이 몇 개 있다. 차를 세우고 기웃거린다. "강정 직접 만드신 거예요?" 5천원어치 산다. 옆 포장마차에서 따끈한 어묵을 먹는다. 아줌마는 고구마튀김을 하고 있다. 날씨가 추운데…. "많이 파세요."


시골마을들이 한 폭의 그림같이 스쳐지나가는 한적한 길을 따라 간다. 재를 넘어서면 화순군 동복면이다. 오늘 찾아갈 곳은 동복에 있는 둔동마을 숲정이와 오지호 기념관이다. 22번 국도에서 동복으로 빠지는 표지판을 보고 내려서면 오지호 기념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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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강정. 아저씨가 직접 만들어 판다. ⓒ 전용호


서양화단의 거목 오지호(吳之湖.1906-l982)

기념관이 있는 마을은 오지호 화백이 태어난 곳이다. 단층 건물로 지어진 기념관 마당에는 아름다운 여인상과 역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한 인물상 몇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시골마을과 잘 어울린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서니, 안내실에서 방명록만 쓰고 들어가란다. "기념관을 누가 지은 거래요?" 군에서 지었고, 모든 운영비를 지원해 준다고 한다. 따끈한 거피를 한잔 마신다.

기념관을 들어서니 은색 철판에 오지호 화백의 옆모습이 판에 새겨져 있다. 전시실에는 1920년대 초기 작품부터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인상파. 고흐가 생각나고, 세잔느가 생각난다. 색감으로 표현한 그림들. 1938년 우리나라 근대화가로서 최초 화집을 발간할 정도로 정열이 대단한 분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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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호기념관 전시관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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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호 화가의 그림 중 일부. 왼쪽시계 방향부터 임금원, 남향집, 나부, 선창. 색감이 아름답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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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호 화가를 소개한 잡지도 전시되어 있다. 우리나라 인상주의 회회의 선구자로 소개하고 있다. ⓒ 전용호


나부(裸婦, 1928년)라는 작품에서 풋풋한 여인의 아름다움을 보고, 어린 소녀(少女)와 처(妻)의 상(像)을 보면서 '그림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하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전시실 한 편에서 화백을 소개한 잡지와 최초로 발간했다는 화보집도 볼 수 있다.


전시실 중앙에 화백의 일대기를 보다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다.

1940년 창씨개명령(創氏改名令) 거부로 요시찰 인물로 기록됨.
1944년 전쟁기록화(戰爭記錄畵) 제작령 거부 등으로 일경(日警)의 감시를 받아오다 9월 함남(咸南) 단천(端川)으로 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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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에서 본 오지호 화가의 생전 모습. ⓒ 전용호



순간 많은 친일인사들이 떠오른다. 그들은….

꽁꽁 얼어버린 둔동마을 숲정이

오지호기념관을 돌아 나와 822번 지방도로를 따라 간다. 느티나무 두 그루가 수문장처럼 지키고 있는 현천마을을 가로질러간다. 반듯한 길을 내려가니 '김삿간초분유적지' 표지석 맞은편으로 둔동마을 표지석이 서있다. 천을 건너는 다리가 있고 그 옆으로 시멘트 기둥처럼 세운 비가 있다. 화순광업소 김만복소장 공적비라고 써 있다. 예전 다리가 없을 때 화순광업소 소장으로 부임한 분이 다리를 놔줘서 이런 공적비를 세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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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동마을로 건너는 다리. 다리 난간이 오래된 풍경을 만나는 기분.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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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그려낸 아름다운 그림. 얼음이 얼어간다. ⓒ 전용호


숲은 천을 건너 마을과 함께 어울려 있다. 천을 건너는 다리는 하얀 눈이 있고, 몇 사람이 지났는지 알 수 있을 만큼 발자국이 남아있다. 천을 건너간다. 천은 추운 날씨에 물이 얼어간다. 하얀 눈이 아직 남아있는 얼음 아래로 물이 흐르고, 그 물은 추위를 견디지 못해 점점 굳어가고 있다. 시린 아름다움이 있다. 물이 만들어낸 선의 예술과 색감의 대비. "흐르는 물이 예술가네."

숲정이라 부르는 숲. 1500년경 마을이 형성되면서 마을을 보호하고자 인공으로 조성한 방풍림으로, 산림청에서 '아름다운 숲'으로 지정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겨울, 썰렁하기만 하다. 천변을 따라 푸름을 자랑하던 그 아름답던 숲은 잎사귀 하나 남기지 않고서 하늘만 바라보며 서있다. 숲은 추운 날씨에 나를 이끌지 못한다. 아무런 기척이 없는 숲을 뒤로 하고 나온다. "봄에 다시 올 수 있을까?"

탄광촌 분위기는 우울해

다시 국도 22호선을 따라 달린다. 4차선과 2차선을 번갈아 가며 달리니 구암삼거리다. 멈춰 선다. 구암마을은 시간이 멈춰져버린 듯 착각이 드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예전 화순탄광이 번성하던 때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미용실, 슈퍼들이 아직도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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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삼거리 풍경. 과거로의 여행을 온 것 같은 풍경이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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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 주변 도로 풍경. 화순탄광은 지금도 운영중이다. ⓒ 전용호


영업을 하지 않을 것 같은 장의사 간판. 그 앞에 서있는 오토바이를 보면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맞은편에도 장의사 간판이 있다. 이 작은 마을에 장의사가 두 명이나? 임창정이 나오는 영화 <행복한 장의사> 한 장면이 떠오른다. 상(喪)이 난 집에 등을 먼저 달기 위해 자전거로 시골길을 열심히 달려가던 모습. 이곳에서도?

길가 탓도 있지만 탄광지역은 잿빛 풍경이다. 탄광 주변의 힘겨운 생활이 마치 나의 일상인양 스쳐 지나간다. 우울한 분위기가 오버랩. 길가 가게 밖으로 빼어 논 난로연통에서 연기가 따뜻하게 피어 나온다. 난로 옆 탁자에서 우울한 분위기로 소주를 마시고 있는 고단한 광부의 모습이 겹쳐진다. "너무 텔레비를 많이 봤나봐."
#화순 #오지호 #둔동마을 #탄광 #주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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