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삶, 멋진 사람, 멋진 길

[책읽기가 즐겁다 336] 제임스 렘지 울만, <시타델의 소년>

등록 2010.02.13 20:31수정 2010.02.13 20:31
0
원고료로 응원
- 책이름 : 시타델의 소년
- 글 : 제임스 렘지 울만
- 옮긴이 : 김민석
- 펴낸곳 : 양철북 (2009.10.29.)
- 책값 : 9500원

 (1) 세 사람이 함께 걷는 길


한 집에서 살아가는 우리 세 식구이지만, 저와 옆지기는 서로 살아온 길이 다릅니다. 그런데 살아온 길만 다르지 않고 생각하는 길도 다릅니다. 좋아하는 길도 다르며 바라보는 길도 다릅니다. 어느 누군들 안 그러겠습니까만, 다 다르게 살아오고 다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 집에서 어우러져 살아간다는 일이란 대단한 어깨동무가 아닌가 싶습니다.

예전에는 미처 못 느꼈습니다. 저와 형이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살아온 일도 놀라운 어깨동무였습니다. 저와 형 스스로도 놀라운 일일 테고, 어머니와 아버지한테도 놀라운 일입니다. 제아무리 어버이가 낳아 기르는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당신하고 다른 사람이요 삶이니까요.

날마다 아이를 보면서 새삼스레 느낍니다. 이 아이가 옆지기하고 살을 섞은 다음 태어난 목숨이요 우리가 키우는 아이이지만, 이 아이가 스스로 꾸리는 삶이나 이 아이가 바라보는 삶은 엄마 아빠하고 다릅니다. 엄마 된 옆지기나 아빠 된 제가 바라보거나 생각하는 눈길 그대로 아이가 바라보거나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로서로 마음읽기를 할 때가 있으나, 마음읽기를 한달지라도 서로 같은 길을 걷는 삶은 아닙니다. 어찌 보면 참으로 용하게 세 식구가 어우러지며 한 집안을 이룬다고 하겠습니다. 곰곰이 들여다보면 더없이 재미나게 세 식구가 얼크러지며 한 살림을 꾸린다고 하겠습니다.

아침에 옆지기가 빗자루를 들고는 집안을 청소하겠다고 외쳤습니다. 한 엿새쯤 서로 집 치우기를 못한 탓에 먼지가 꽤 쌓였고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날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대로 힘들었고 옆지기는 옆지기대로 힘들어 여러 날 그냥 손 놓고 지냈습니다. 옆지기가 건넌방부터 슥슥 쓸기에, 바닥에 널브러진 이불을 안고 앞마당으로 나와서 탕탕 텁니다. 이불을 다 털고 나서는 걸레를 빨아 바닥을 훔칩니다. 쓸고 닦기를 마친 다음에는 국수를 끓여 아침 밥상을 차립니다. 밥을 안 먹고 땡깡 부리고 칭얼대기만 하는 아기를 어르고 달래어 겨우 잠재웁니다. 애 아빠는 아침부터 여러모로 시달리고 바쁘기만 해서 아무 일손을 못 잡는다고 푸념합니다. 옆지기는 애 아빠 푸념을 듣고는 '내가 혼자 느긋하게 치우고 쓸고 닦으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애 아빠가 걸레질을 하면 머리카락을 다 훔치지 않는다 합니다. 당신은 걸레를 새로 빨아 발로 슥슥 문지르면서 다시금 닦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라고 걸레질을 하며 새로 빨고 다시 닦기를 안 하겠습니까. 먼저 먼지와 머리카락들을 훔치려고 한 번 닦고, 한 번 빨아서 다시금 닦으며, 또 한 번 빨아 마무리 걸레질을 하곤 합니다. 서로서로 쓸고 닦기를 해 온 버릇이 다르니, 애 아빠는 애 아빠대로 옆지기 청소 매무새를 못마땅해 하고, 애 엄마는 애 엄마대로 애 아빠 청소 매무새를 마땅찮아 합니다. 그러나, 이모저모 헤아리면서 애 아빠 마음대로 집안 치우기를 하기보다는 애 엄마 마음이 홀가분하도록 집안 치우기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이 다음에 함께 집안 치우기를 할 때에는 제 버릇을 조금씩 고쳐야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집안을 쓸고 닦으면서 아이한테 일감 하나 맡길 수 있습니다. 아빠가 빨래를 할 때에 어느새 물소리를 듣고는 후다닥 달려와서 옆에서 빨래하는 시늉을 하며 물놀이를 하는데, 집안을 쓸고 닦을 때에도 아이가 쥘 만한 빗자루나 걸레를 따로 마련해 주면 더 좋겠지요. 그런데 애 아빠 된 사람은 '얼른 치우기를 마치고 아빠 일 좀 하자'는 생각으로 혼자 바빠맞습니다. 아이는 엄마 아빠가 집안을 치울 때 무엇을 생각할까요?

a

칭얼대는 아이를 재우며 젖을 물리는 옆지기. 아이한테 젖을 물리며 만화책을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아이는 젖을 물면서 엄마 머리끄댕이를 잡고 있습니다. ⓒ 최종규


엊저녁 밤마실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옆지기가 한 마디를 합니다. "바쁘면 당신 먼저 집으로 들어가요." 따로 바쁘지 않고 걸음을 재촉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잘 안 따라온다고 골 부리는 모양새가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무언가 다른 일을 해야 하는 듯 보인 듯합니다. 틀림없이 밀린 일이 많아 집에 돌아가면 아빠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함께 마실을 나올 때에는 '숱한 일이 더 밀리면 식구들이 다 잠든 결에 조용히 하면 되지.' 하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살아가고자 따로 여느 회사나 모임에 몸을 안 담으면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제 걸음 매무새는 '아주 바쁜 사람'으로만 보이겠구나 싶어, 걸음을 더 늦추고 옆지기 뒤로 처지며 밤골목 사진을 몇 장 찍습니다. 그런데 아빠를 앞질러 가던 아이가 걸음을 멈추고 아빠를 쳐다보며 "어! 어!" 하고 부릅니다. 아빠 왜 안 오느냐고 부르며 기다립니다. 아빠가 부르든 엄마가 부르든 저 보고픈 것 다 볼 때까지 꼼짝 않기 마련이고 저 가고픈 대로 가려고 발버둥이면서, 아빠가 저 뒤에서 뭔가 꾸물거린다고 부릅니다. 엄마 생각 다르고 아빠 생각 다르며 아이 생각 다릅니다.

날마다 아이 사진을 서른∼마흔 장 남짓 찍고 있습니다만, 나중에 아이가 커서 이 사진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철든 나이가 될 때에는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합니다. 아이 개인생활을 건드렸다거나 아이 인격과 인권을 쑤석거렸다고 아빠를 미워하거나 싫어하지는 않을는지요. 왜 멋대로 이런 모습 저런 모습 안 가리고 다 찍어 놓았느냐고 성을 내지는 않을는지요. 애 아빠 된 몸으로 아이를 사랑한답시고 아이 사진을 누리사랑방(블로그) 같은 데에 올려놓는다지만, 아이 눈높이와 아이 삶으로 돌아볼 때에 이렇게 하는 일은 아이한테 못할 짓이 될 수 있겠다고 깨닫습니다. 아이는 저 스스로 바라지 않던 '제 모습 공개되기'가 사람들 앞에 떡하니 내보이는 셈이니까요.

이제 고작 두 돌이 채 안 된 아이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하고 저런 생각을 하는 일이 섣부른지 모릅니다. 앞으로 아이가 자란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고 여길 만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은 하루하루 참으로 금세 지나갑니다. 몇 해 사이에 '엄마 아빠'라는 낱말 말고도 숱한 말을 재잘재잘 종알종알대는 어린이로 자라날 테고, 동무들하고 사귀며 뛰어논다며 어린이집에 보내 달라 할 터이며, 초중고등학교 다니는 나날(또는 학교를 안 다니며 푸름이를 보내는 나날) 또한 화살과 같으리라 봅니다. 오늘이야 이 집에서 함께 뿌리내리며 살아간다지만, 앞으로 스물이 되고 서른이 될 때에는 어엿하게 제금을 나며 따로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아이 삶자락을 하루에 서른∼마흔 장쯤 담아내는 사진찍기는 마땅히 못 할 뿐 아니라, 한 달에 한두 장 담아내는 사진찍기마저 힘들 수 있습니다. 사진쟁이 삶을 꾸리는 아빠이기에 아이 삶을 사진으로 담는다고 하겠지만, 아이 삶을 사진으로 담는 일이 아빠한테만 좋자고 하는 일인지 아이와 함께 좋자고 하는 일인지 아이한테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일인지 제대로 갈피를 잡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저는 저대로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꿈을 품으며 살아가는 목숨 하나이면서 아빠 자리에 서야 하고, 옆지기는 옆지기대로 당신이 사랑하는 뜻을 붙잡으며 살아가는 목숨 하나이면서 엄마 자리에 서야 할 테고, 아이는 아이대로 스스로 사랑하는 길을 찾으며 살아가는 목숨 하나로 서야 하니까요.

날마다 숱한 집일을 부대끼면서 '우리한테 아이가 없었다면?' 하고 생각할 겨를이 있을 턱이 없으나, 밤에 아이가 잠든 뒤에 옆지기가 때때로 묻곤 합니다. '우리한테 아이가 있지 않던 때가 생각나요?' 하고. '우리한테 아이가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요?' 하고. 졸리고 고단하니 생각마저 귀찮습니다. 그러나 졸리고 고단해서라기보다 '아이가 없는 삶'을 꿈조차 꾸지 못합니다. '아이가 없는 삶'이었다면 그러한 삶결대로 우리 두 사람이 새로운 길을 다투기도 하고 어깨동무도 하면서 보냈겠으나, 고운 빛살 하나를 살뜰히 어루만지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니, 옆지기는 옆지기 나름대로 어루만졌겠지요. 이 땅에서 남자로 태어나 살도록 짜맞추어진 애 아빠는 목숨 하나가 이루어지는 흐름과 목숨 하나를 느끼는 넋하고 목숨 하나를 애틋하게 사랑하는 눈길이 무엇인지를 늘그막까지 옳게 받아들이지 못했으리라 봅니다.

a

밥을 안 먹겠다며 칭얼대는 아이가 혼자 걸상에 올라가서 투정을 부립니다. 아이는 이런 사진을 싫어할 수 있을 텐데, 그래도 엄마 아빠랑 함께 보내온 하루하루이기 때문에, 저로서는 놓칠 수 없다고 느끼며 사진으로 담습니다. ⓒ 최종규


 (2) <시타델의 소년>이라는 푸름이문학

푸름이문학(청소년문학) <시타델의 소년>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시타델'이라는 이름이 붙은 깎아지른 묏부리 꼭대기까지 올라가 본 산쟁이가 아직 없던 지난날, 이 묏부리 꼭대기에 이르고자 했다가 죽은 사람네 어린 아들이 '산에서 부르는 소리'가 아닌 '산이 산 그대로 곱게 서 있으면서 보여주는 모습'에 차츰 젖어들면서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가까이 다가서는 삶을 보여주는 빼어난 문학작품입니다. 어린이한테든 푸름이한테든 저마다 가슴에 고이 껴안을 꿈이란 어떻게 다스리면 좋고, 이렇게 다스리는 꿈을 어떠한 결로 차근차근 이루어 가는가를 살뜰히 보여주는 문학작품입니다. 저는 이 책 <시타델의 소년>을 덮으며 어린이문학가 이원수 님 작품 <숲속 나라>가 떠올랐습니다. 다루는 줄거리가 다르고 이야기 펼침새가 다르며 나타내려는 넋이 다른 두 작품이지만, 두 작품을 읽을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보여주는 매무새는 매한가지입니다. 바로 '꿈'과 '사랑'과 '사람'과 '꽃'과 '어깨동무'입니다.

꿈이란, 아이한테나 어른한테나 앞으로 맞이할 새날을 비롯해 오늘 하루요 어제까지 보낸 나날입니다. 머나먼 앞날에 이루어진다는 꿈이지만 않습니다. 지나온 하루하루가 쌓이면서 차츰 마무를 수 있는 꿈입니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걸어가면서 비로소 이루어 내는 꿈입니다.

a

겉그림 ⓒ 양철북

사랑이란, 아이와 어른 모두한테 가장 아름다울 마음입니다. 착함도 너그러움도 다소곳함도 따스함도 넉넉함도 바지런함도 올바름도 모두 사랑에서 샘솟습니다.

사람이란, 아이이든 어른이든 똑같은 목숨이요 아름다운 숨결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도 사람, 어른도 사람입니다. 여덟 살배기도 사람, 여든 살 할매도 사람입니다. 우리들 누구나 사람이고, 우리들이 날마다 차려서 먹는 밥상에 오르는 풀이나 곡식이나 고기 또한 '사람과 같은 숨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사람을 생각하는 문학이란, 서로서로 어우러지는 목숨고리를 깨닫도록 이끕니다.

꽃이란, 아이하고 어른하고 어울려 살아가는 터전입니다. 바로 자연입니다.

어깨동무란, 아이가 어른하고 같다는 소리, 곧 서로 평등하다는 소리입니다. 평등은 평화와 이어지고 평화는 통일하고 끈이 닿습니다. 통일은 민주하고 한동아리이고, 민주는 자유와 벗삼습니다.

<시타델의 소년>이라는 작품은 시타델이라는 이름이 붙은 묏봉우리 하나를 바라보는 아이와 어른한테 꿈과 사랑과 사람과 꽃과 어깨동무는 어떻게 얽히고 설키면서 곱게 빛을 내는가 들려줍니다. <숲속 나라>라는 작품은 아이들이 이루어 가는 '숲속 나라'와 이 숲속 나라를 망가뜨리려는 어른들을 견주어 보여주면서 허물과 스스럼이 없이 이룰 참답고 아름다운 꿈과 사랑과 사람과 꽃과 어깨동무는 어느 나라에서 어떠한 땀방울로 일굴 수 있는지 들려줍니다.

멋진 삶이란 누가 언제 어떻게 꾸리는지를 보여줍니다. 멋진 사람이란 어느 자리에서 어떻게 태어나는가를 알려줍니다. 멋진 길은 어느 곳에 어떻게 마련되어 있는가를 밝히고 일러 줍니다.

 (3) 하나하나 곱새기며 읽기

푸름이문학 <시타델의 소년>은 묏부리를 온몸으로 껴안는 산쟁이들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야기감은 묏부리와 산쟁이입니다. 그러나 묏부리와 산쟁이를 빌어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밑바탕에 무엇이 있는가를 차근차근 되새겨 보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훌륭한 문학에서도 비슷할 텐데, 이야기감을 무엇으로 삼느냐는 그리 눈여겨볼 대목이 아니고, 이야기틀을 어떻게 다루느냐 또한 그다지 살펴볼 대목이 아닙니다. 판타지여야 더 훌륭하다거나 생활문학이라야 더 알차다고 할 수 없습니다. 곰곰이 돌아볼 대목은 '무엇을 이야기하느냐'이고, 찬찬히 되새길 대목은 '어떻게 살아가느냐'입니다.

좋은 문학이라면 바로 이 두 가지, 무엇을 이야기하느냐와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짚어내는 매무새가 알차면서 훌륭하다고 느낍니다. <시타델의 소년>을 읽으며 가슴 깊이 뭉클하다고 느낀 글월을 한 줄 두 줄 되읽어 봅니다.

a

무엇이 멋진 삶인지 모릅니다. 누가 멋진 사람인지 모릅니다. 어디가 멋진 길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즐겁게 어울리면서 살아가는 우리 삶이라면 우리 깜냥껏 멋지고 좋다고 느낄 만하지 않느냐 생각하면서 책 하나 흐뭇하게 덮어 봅니다. ⓒ 최종규


[12, 113쪽] 루디는 골짜기를 따라 솟구친 웅장한 봉우리들이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광경을 호텔 주방의 창문으로 보았다 … 루디는 마을 입구에 도착했고, 삼가 분 뒤에는 시냇물을 가로질러 맞은편 길을 따라 걸어갔다. 루디는 조명이 필요없었다. 별빛으로 충분했다. 풀밭의 거무스름한 비탈 사이로 어스름한 그림자가 보였다.

[15, 35, 90, 97쪽] 사람들은 산에 오르는 게 아니라 산을 정복했다 … "외삼촌은 아빠에 대한 기억 때문에……." "그럼. 프란츠 러너 씨는 네 아빠를 기억하지. 모두들 네 아빠를 기억해. 사람들은 네 아빠를 사랑하고 존경하지만, 한편으론 네 아빠가 미쳤다고 생각해." 캡틴 윈터는 소리를 낮춰 웃었다. "이제 사람들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겠지. 그 사람들 생각이 맞을지도 몰라." … "하지만……, 그걸 메면 균형을 잃을 텐데요." "그렇겠지. 이걸 메면 균형을 잃겠지. 실제 산행이라면 어떤 게 나을까? 균형을 조금 잃는 게 나을 것 같아, 아니면 춥거나 배가 고파 죽는 게 낫겠어?" … "이제 알겠니? 내가 왜 이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는지? 네 아빠는 산이 너무 가팔라서 죽은 게 아니야. 네 아빠는 정복욕이나 명예욕 때문에 죽은 것도 아니었어. 네 아빠는 그 능선에서 산으로 오르내릴 정도의 힘은 남아 있었어. 하지만 자기를 고용한 에드워드 경을 버려 두고 갈 수 없었던 거야. 네 아빠는 자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한 거야. 시타델 산의 정상에 나부껴야 할 네 아빠의 빨간 셔츠가 어디서 발견되었는지 아니? 에드워드 스티븐슨 경한테서야. 네 아빠는 얼어죽어 가면서 셔츠를 벗어 스티븐슨 경의 몸을 덥혔지."

[19∼20, 101쪽] 루디는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루디는 빙하로 올라가서 살펴보고 연구하고 측정하는 일을 계속했다. 루디는 이 일을 하기 위해 학교를 무단결석하고, 교회 예배를 빼먹기도 했다. 지금은 호텔 주방에서 도망쳐 나왔다. 루디가 이런 행동을 할 때마다 엄마는 눈물로 호소했고, 외삼촌 프란츠는 모진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루디는 신경 쓰지 않았다 … 루디는 언제 두려움을 떨쳤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건 테오 아저씨가 암벽 아래에 매달린 채 어떻게든 올라오려고 발버둥을 칠 때였다. 그리고 테오 아저씨가 불평 한 마디 없이 자기 생명을 루디한테 맡겼을 때였다.

[37, 63, 219쪽] "젊을 때는 꿈을 꿔야 해.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그 꿈을 잊지 말아야 하지." … 테오 아저씨가 루디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서 가! 이 개구쟁이야! 네 아빠의 아들답게 산을 타지 못한다면 힘들게 돌아올 필요도 없어." … "한 가지 더. 문제에 부딪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는 '아빠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네 자신에게 물어 봐."

[171쪽] 루디는 베낭을 둘러멘 뒤 등반을 시작했다. 루디는 혼자서 광대한 침묵을 뚫고 등반했다. 하지만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제 루디는 하느님 아버지와 진짜 아빠와 함께 산을 오르고 있었다 … 루디는 감정이 복받쳤다. 예전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미친 듯이 기뻐하지도, 요들을 부르지도, 승리에 들떠 고함을 지르고 싶지도 않았다. 더 낮은 산을 정복하고 기뻐 날뛰던 때와는 달랐다. 그러기에는 너무 깊고 강력한 감정이었다. 루디가 마침내 도착한 높고 신비스러운 장소에서 고함을 지르는 건 불경스러운 일처럼 느껴졌다.

[311쪽] "올라가. 목표를 향해. 승리를 향해. 쿠르탈 마을 사람들이 환호하며 네 이름을 부를 거야. 스위스가 네게 축하의 인사를 건넬 거야. 영웅이 되는 거야. 시타델 산을 정복한 영웅 말이야. 네 아빠가 못 이룬 꿈을 이루는 거야." 아빠가 못 이룬 꿈을 이룬다. 루디가 눈길을 떨구었다. 시타델 산의 정상은 사라졌다. 꿈도 사라졌다. 무감각한 꿈의 세계가 서서히 걷히며 현실의 세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현실의 세계는 산에서 바라보는 하늘만큼이나 깊고, 차갑고, 깨끗했다. 루디는 고개를 돌려 삭소를 쳐다본 뒤,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팔걸이 붕대를 만들 거예요. 그러고 나서 함께 내려가는 거예요." 루디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시타델의 소년

제임스 램지 울만 지음, 김민석 옮김,
양철북, 2009


#책읽기 #청소년문학 #문학책 #시타델 #사름벼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