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좀 잡수셔요

[사진 육아일기, 사름벼리와 함께 2] 아이한테 밥 먹이기란...

등록 2010.02.16 14:16수정 2010.02.1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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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6.] 너나 좀 잡수셔요

 

우리 아이는 언제부터 혼자서 책을 펼쳤을까. 예전 사진을 하나하나 더듬어 보면 알 수 있을 텐데, 엄마 아빠가 함께 놀아 주지 않으면 이것저것 마구 쑤석거리다가 그림책을 제 무릎에 올려놓고는 펼치곤 한다. 그러나 책읽기는 몇 분 가지 않는다. 엄마 아빠가 늘 책을 읽으니 저도 따라서 읽을까. 아직 책이 무거우니까 무릎에 얹어 놓고 읽을까. 나는 우리 아이 나이만 했을 때에 책을 읽었을까. 그때에 나도 책을 읽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밥 한 숟가락 떠먹이면 한참 동안 안 씹고 입에서 우물우물거린다. 그런데 이 녀석이 저는 안 먹고 엄마한테 밥을 먹인다며 숟가락에 밥을 퍼서 엄마한테 내민다. 어이구, 고맙기도 하셔라. 근데 제발 너나 좀 잡수셔요.

 

저녁나절 혼자 이 짓 저 놀이 신나게 해대더니 옷장 안쪽으로 들어간다. 나도 어릴 때에는 외진 구석에 숨는 놀이를 곧잘 하곤 했다. 옷장이나 이불장에 들어가 폭신한 옷 느낌과 이불 느낌을 받으면서 숨을 때에 퍽 즐거웠다. 아이가 손을 꽤 맘대로 놀릴 수 있게 되었다며, 사진첩 사진을 하나씩 빼서는 들여다본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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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모습이 참 깜찍하다고 느낍니다. ⓒ 최종규

책을 읽는 모습이 참 깜찍하다고 느낍니다. ⓒ 최종규
 

[2010.2.7.] 아이하고 못 놀다

 

일산 옆지기 식구들 이삿짐 나르는 일을 도우러 새벽바람으로 길을 나섰다. 식구들이 모두 잠들어 있을 때에 길을 나섰고, 인천집으로 돌아오니 모두들 잠들어 있다. 일요일이면서 도서관 문도 못 열었고, 아이하고도 어울리지 못했으며, 옆지기하고 성당마실조차 할 생각을 못했다. 마땅하게도 아이 사진 한 장 못 찍었다. 몸보다 마음이 힘든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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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온갖 모습으로 놀고 자랍니다. ⓒ 최종규

아이는 온갖 모습으로 놀고 자랍니다. ⓒ 최종규

 

[2010.2.8.] 어느새

 

엄마가 바느질을 하고 아빠가 글을 쓰는 동안 어느새 아이는 제 자전거 짐바구니에 연필을 쏟아부어 놓았다. 쏟아부을 때 제법 소리가 났을 텐데 두 사람 모두 알아채지 못했다.

 

아이가 어질러 놓은 책과 장난감을 모처럼 반듯하게 꽂아 놓고 치워 놓았다. 앞으로 몇 분이나 이 모습이 이어질는지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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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등에 업히며 좋아하는 아이. ⓒ 최종규

엄마 등에 업히며 좋아하는 아이. ⓒ 최종규

 

[2010.2.9.] 빨래하는 돼지

 

아이는 아빠가 빨래를 할 때면 언제가 곧바로 알아채고 부리나케 달려온다. 씻는방으로 들어와서는 아빠 고무신을 제 발에 꿴다. 제 발에도 아이 고무신이 꿰어 있는데 굳이 아빠 고무신을 또 꿴다. 물소리가 안 나게 하려고 수도꼭지가 아닌 물뿌림 손잡이를 대야에 넣고 살살 틀어 놓고 비빔질을 하는데, 이렇게 해도 용케 알아챈다.

 

엄마가 여러 날 손바느질로 꿰맨 인형을 안고는 몹시 기뻐하는 아이. 그러나 처음 안을 때에만 기뻐하고는 이내 다른 장난감을 쥐어든다. 그리고 다른 장난감도 이내 집어던지고(마땅하게도 온 방은 이런 장난감으로 어질러지고 만다) 책을 펼친다. 얌전히 앉고 다리를 쭉 뻗어 무릎에 책을 올려놓는다. 아이는 어디에서 이렇게 책을 읽는 매무새를 배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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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빨래하기를 좋아하는 아이. 그래, 고맙구나. ⓒ 최종규

아빠와 함께 빨래하기를 좋아하는 아이. 그래, 고맙구나. ⓒ 최종규

 

[2010.2.10.] 서울 다녀온 날

 

아이와 옆지기를 집에 두고 홀로 서울마실을 다녀온 날이면 온식구가 힘들다. 한글학회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아 오늘도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새벽바람으로 글 하나 마무리해서 누리신문에 띄우고, 새벽밥을 지어 놓으며, 새벽빨래를 해 놓는다. 새벽빨래를 하면서 머리를 감았으며, 오늘은 도시락을 따로 챙기지 않는다. 전철길에 읽을 책 네 가지를 가방에 챙기고 전철역으로 달려간다. 마침 용산 가는 빠른전철이 막 떠날 즈음. 가까스로 잡아타고 서울에 닿았고, 사진잡지사 포토넷에 들러 책 계약서를 쓴 다음 저녁을 함께 먹었으며, 버스를 타고 홍대 앞으로 가서 <한양문고>에 가서 만화책을 한 꾸러미 장만한다.

 

오늘 집안 청소를 하겠다던 옆지기는 청소를 못하고 널브러져 있다. 아이가 밥 안 먹고 떼쓰기만 하느라 힘이 많이 빠졌겠구나. 신나게 빽빽 울던 아이를 엄마가 품에 안으니 울음이 잦아든다. 엄마는 아이를 팔베개를 하며 안은 채 아빠가 사 온 만화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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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지러지게 울고불고 하는 아이는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엄마 품에 안깁니다. ⓒ 최종규

자지러지게 울고불고 하는 아이는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엄마 품에 안깁니다. ⓒ 최종규

 

[2010.2.11.] 걸상에 올라서기

 

아이는 나날이 몰라보게 자란다. 함께 살고 있으면서도 문득문득 놀란다. 우리야 늘 보고 있다지만 어쩌다 한 번 보는 일산 식구들은 볼 때마다 '많이 컸다!'면서 놀랄 테지. 그런데 아직 아이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우리 아버지는 어떠려나? 아이가 자라는 흐름을 보지 못한 채 나중에 인사를 한다면 어떤 느낌일까?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아이라고 느끼시려나? 아이는 날마다 웃고 울고 찧고 까불고 귀엽다가는 고달픈 모든 모습이 골고루 있는 목숨임을 읽으시려나?

 

전남 고흥에서 살고 있는 씩씩한 김미정 님이 참다래를 한 상자 보내 주었다. 고맙게 먹기로 한다. 깎아서 포크로 찍어 아이한테 건네니 엄마하고 짠 하자고 한다. 아이는 먹다 말다 걸상에 올라갔다 내려왔다 ……. 어느새 혼자서 걸상에 올라갈 수 있다.

 

아이가 요즈음은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나 준다. 예전에는 밤 한 시에 잠들어도 새벽 여섯 시에 어김없이 깼는데, 요사이는 오줌을 누었다며 새벽 대여섯 시에 한 번 살짝 깨어 칭얼거리다가도 다시 잠든다. 엎드려 자는 아이한테서 살짝 떨어져 누운 옆지기가 만화책을 읽는다. 만화책은 <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요시다 아키미 그림,애니북스 펴냄,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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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내내 함께 엎치락뒤치락 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잊어버립니다. ⓒ 최종규

하루 내내 함께 엎치락뒤치락 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잊어버립니다. ⓒ 최종규

 

[2010.2.12.] 로빙화

 

 아빠가 집에서 혼자 아이를 보며 놀고 빨래하고 씻기고 밥 먹이고 하는 동안, 엄마가 바깥마실을 한다. 아이하고 빨래놀이를 하면 아이는 아빠가 빨래를 끝마칠 때까지 옆에서 함께 있으려 한다. 엄마가 아무리 불러도 나갈 생각을 않는다. 물놀이가 가장 즐거울까?

 

 아이 엄마가 한참 안 들어온다 싶더니 '아름다운 가게'에 들러 아이 장난감을 한 가득 사 왔다. 아이한테 토끼 머리띠를 씌워 본다. 아이는 아빠보고도 머리띠 하라며 하나를 내민다. 배다리에 있는 책쉼터 '나비날다'에서 사 온 '동티모르에서 온 커피'를 끓여 마신다. 아이가 잔 부딪히기를 하잔다. 세 식구가 둘러앉아 영화 <로빙화>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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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안 먹겠다며 고개를 돌리면서도 밥상머리에서 장난을 하겠다는 아이입니다. 제발, 너나 밥 좀 잘 드셔요. ⓒ 최종규

밥 안 먹겠다며 고개를 돌리면서도 밥상머리에서 장난을 하겠다는 아이입니다. 제발, 너나 밥 좀 잘 드셔요. ⓒ 최종규

 

[2010.2.13.] 하루가 어떻게 지나갈까

 

 누구든 마찬가지이리라.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 되는 사람으로서 하루 내내 아이하고 복닥이고 있다 보면 누구든 다르지 않으리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를 알 수 있을까. 집안을 치워 놓아도 '다 치웠다!' 하고 기뻐하는 바로 이때부터 또다시 잔뜩 어질러 놓는 아이를 어떻게 말리랴. 시계를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몇 시인 줄을 안다. 쉴새없이 뛰고 까불고 노는 아이인데, 이처럼 쉴새없이 놀면서도 밥을 주면 고개를 돌리고 손사래까지 친다.

 

 그러나 잠든 아이 모습은 참으로 맑다. 제아무리 말괄돼지 짓을 하더라도 새근새근 잠든 모습을 보며 한 시름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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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프지만 함께 절을 하고, 직직 긋는 그림이지만 차츰 그림그리기도 즐길 줄 알며. ⓒ 최종규

어설프지만 함께 절을 하고, 직직 긋는 그림이지만 차츰 그림그리기도 즐길 줄 알며. ⓒ 최종규

 

[2010.2.14.] 절하는 아이

 

 설날을 맞이하여 일산 옆지기 식구들 집으로든 음성 우리 부모님 집으로든 가지 못했다. 세 식구끼리 어줍잖으나마 차례상을 차리고 술 한잔 따른 다음 절을 한다. 우리끼리이니까 떡국 한 그릇과 막 지은 밥 한 그릇과 신포시장에서 장만한 양과자에다가 전남 고흥에 사는 분이 보내 준 참다래까지 올려놓았다. 아이는 배고프다며 차례상을 차릴 때부터 이것저것 집어먹었다. 이러다가 절을 하려고 더 먹지 말라고 말리니 울고불고 한다. 그런데 엄마랑 아빠가 엎드려 절을 하니 처음에는 멀뚱멀뚱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다가 함께 덥석 엎어진다. 엎어져서는 엄마를 보며 방긋방긋 웃는다.

 

 오늘 하루도 잔뜩 쌓이는 빨래감에다가 밥 제대로 안 먹고 젖만 먹겠다는 떼쓰기로 보냈다. 밥을 잘 먹어 준다면 가끔가끔 떼쓰고 그래도 한결 귀여울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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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에 올라타는 용한(?) 재주를 선보이기도 하다가는 이내 곯아떨어집니다. ⓒ 최종규

접시에 올라타는 용한(?) 재주를 선보이기도 하다가는 이내 곯아떨어집니다. ⓒ 최종규
 
 

[2010.2.15.] 접시 올라타기

 

아침마다 새밥을 하면서 "밥 먹어라." 하고 노래를 하지만, 우리 아이는 자꾸자꾸 도리질을 하며 안 먹으려 한다. 한참 배고프게 하고 젖도 안 준 다음에는 저 스스로 밥을 낼름낼름 잘 받아먹는다. 그러니까 어른들부터 배고프도록 한참 기다린 끝에 아이한테 살짝살짝 밥을 먹여 보고서 비로소 낼름낼름 받아먹을 때에 밥을 주어야 하는가 보다. 또는 어른들이 미리 조금 먹고 나서 아이가 배고파 하기를 기다린 다음에 밥을 차려 주면서 같이 더 먹든가.

 

밥은 제대로 안 먹는 주제에 아이가 접시를 들고 와서 이 위에 올라탄다. 이제 키가 꽤 자랐기에 개수대로 손이 뻗으니 설거지를 마치고 말리는 접시를 집을 수 있다. 때로는 다 쓴 물잔이나 밥그릇을 저 스스로 개수대에 밀어넣기도 한다. 엊저녁 늦게까지 칭얼대다가 아침에 열 시가 되도록 잠들어 있는 아이를 보며 "오늘은 늦잠을 자 주니 이렇게 고마울 데가!"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침에 <푸른 꽃>(시무라 타카코 그림,중앙북스 펴냄,2009) 느낌글을 적바림하다가 이 만화책하고 <방랑 소년>을 아이 옆에 나란히 내려놓고는 사진 한 장 찍어 본다. 새근새근 자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맑다.

 

저녁에 엄마랑 그림그리기 놀이를 한다. 얼마 앞서까지는 줄만 직직 그었는데 이제는 꽤 모양이 나온다. 엄마는 "m을 그린다."고 말한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2010.02.16 14:16 ⓒ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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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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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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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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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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