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자도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까닭

[추자도 2] 항해에 지친 사람들이 잠시 쉬던 '후풍도'

등록 2010.02.20 15:39수정 2010.02.2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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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자항 인근 마을 상추자도에는 영흥리와 대서리가 있는데, 상추자항은 영흥리, 대서리 두 마을 모두와 인접해있다. ⓒ 장태욱


무턱대고 준비없이 추자도에 도착했기 때문에, 세찬 바람과 함께 눈발이 날리는 궂은 날씨가 여간 당황스러운 것이 아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처음 방문하는 섬을 그렇게 대책도 없이 왔냐며 원성을 한다.

멀리 둘러볼 틈도 없이 신양항 인근에 있는 민박집을 찾아 들어갔다. 전라도 사투리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는데, 주인아주머니 입에서는 경상도 말투가 튀어나왔다. 낚시 민박집을 운영하기 위해 얼마 전에 이 섬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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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 밥상 매운탕 맛이 일품이다. ⓒ 장태욱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최근 추자도는 굴비로 호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현지 주민들 중에는 민박집을 그만 두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외지인이 현지인을 대신해서 운영하는 민박집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추자도 현지의 인심과 전통 음식 맛을 기대했기 때문에 처음엔 다소 실망했지만, 밥상 가득 반찬을 내주는 것을 보고는 괜한 실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섬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상추자도 대서리에 고인돌로 추정되는 바위들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많은 이들은 이 바위들이 고인돌이라는 사실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다.

탐라와 백제 간에 조공을 통한 교역이 이루어진 이래로, 추자도는 제주에서 내륙을 오가는 뱃사람들에는 피할 수 없는 기항지였다. 작은 배에 몸을 싣고 바람에 배를 맡겨 제주해협을 건너던 뱃사람들은 이 섬에 잠시 정박하는 동안, 고단한 몸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순풍이 불기만을 기다려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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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초리 포구 과거 이 섬은 제주와 내륙을 오가는 뱃사람들에게는 빠질 수 없는 기항지였다. 오랜 항해에 지친 사람들은 이 섬에 배를 댄 후 휴식을 취하며 순풍이 불기만 기다렸다. ⓒ 장태욱


뱃사람들에는 중요한 기항지였다

고려시대 고려 조정과 탐라 간의 뱃길에 관하여서 <고려사>는 3가지 경로를 알려주고 있다. <고려사>에 기록된 경로들은 각각 나주목-무안 대굴포-영암 화무지와도-해남 어란양-추자도 등을 경유하거나, 해남-삼재포-거요랑-삼내도-추자도 등을 경유하거나, 탐진(강진)-군영포-고자황이-노슬도-삼내도-추자도 등을 경유하여 제주로 들어오는 것들이었다.


3가지 경로들 중 어디를 선택하든지, 제주와 내륙을 오가는 뱃길에 추자도는 피할 수 없는 기항지였다. 때문에 사람들은 추자도에 마을이 형성되는 시기를 제주도와 한반도 내륙 간에 해상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고려 중기 이후로 보고 있다. 특히, '삼별초의 난'이나 '목호의 난'과 관련한 <고려사>의 기록에서 추자도가 자주 거론되는 것으로 보아 주민들은 13세기에 이르러서 설촌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추자도가 제주를 오가는 뱃사람들에게는 중요한 기항지였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이 섬을 '후풍도(候風島)'라고 하였다. 후풍이라 '순풍을 기다린다'는 의미다.

이형상 목사는 <남환박물(1704년)>에 추자도와 관련하여 "고려 삼별초의 난 때 김방경이 몽골의 혼도와 더불어 이곳에 이르러 후풍하고 마침내 큰 공을 이루었으므로 제주 사람들은 이를 생각하여 '후풍도'라 이름하였다"고 기록했다.

절해고도의 섬, 생활환경은 여전히 열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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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진(신양항 대합실에서 촬영) 추자도 항공사진이다. 푸른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섬이 아름답기는 한데, 섬에 평지가 적어서 농사지을 땅이 부족하다. ⓒ 장태욱



추자도 주민들은 추자군도를 이루는 44개 섬들 중에 상추자도, 하추자도, 추포도, 횡간도 등 네 개의 섬에서 6개의 마을을 이루고 산다. 이들 네 개의 섬은 대부분 산지(山地)를 이루기 때문에 농지가 부족하고, 섬을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는 바다에서는 연중 강한 바람이 분다.

추자도 마을의 주택과 골목길에는 이 섬의 열악한 생활환경이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어느 마을을 가든지 집은 아담하고, 그 조그만 집들은 서로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붙어있다. 그리고 촘촘한 돌담이 아담한 마당을 빈틈 없이 둘러싸고 있다. 마을 안을 지나는 골목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을 만큼 비좁다. 바람의 피해를 막고 열 손실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다.

최근에 추자도 굴비가 시장에서 각광을 박으면서 가구당 수입이 높아졌다. 경제적으로는 추자도가 제주도 본도 주민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지만, 생활용수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이 섬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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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둘러싼 돌담 바람을 막기위해 마당에 촘촘히 돌담을 둘렀다. ⓒ 장태욱


최근에 추자도에 담수화 시설이 들어서서 이전보다 물 공급이 원활해졌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주민들은 한 달에 두세 번 물이 공급될 때 통에 저장해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아껴서 쓰고 있다. 그래서 추자도의 어느 가정에서나 큰 식수통을 쉽게 볼 수 있는 반면, 현대 가정집에 일반화된 샤워장은 추자도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2004년 조사된 바에 따르면 추자도의 가구수는 상추자도에 969가구, 하추자도에 446가구, 횡간도 18가구, 추포도에 3가구이고 총 인구는 3166명이었다. 주민 대부분은 상추자도와 하추자도에 거주하고, 학교도 상추자도 대서리에 있는 추자초등학교와 하추자도 신양리에 있는 신양분교, 신양중학교가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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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안길 마을안길은 한 사람이 겨우 다닐 만큼 비좁다. 역시 이웃한 집들끼리 서로 가까이 의지해 바람의 피해를 줄여보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 장태욱


상추자도화 하추자도 사이에는 다리가 놓여 차량을 통해 이동하고 있다. 필자가 묵은 민박집이 소재한 신양리에서 상추자도로 가기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더니 버스 기사가 각 마을의 이름과 내력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승객들이 버스에서 오르고 내릴 때마다 버스 기사와 승객들 간에는 살가운 인사가 반복되었다.

"아제, 오랜만이네요."
"아가, 설이라서 부모님 뵈러 와부렀냐? 광주는 언제 다시 가냐?"

이 기사는 이 섬 주민들 사정을 훤히 아는 눈치다. 이 섬에 들어와서 버스를 운행한 지 오래되었다는데, 알고 보니 이 버스의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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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두 대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오가는 버스들이다. 두 대의 버스가 서로 시간을 나눠서 운행하기 때문에 두 대 중 한 대는 항상 주차 중이다. ⓒ 장태욱


추운 설날, 뭔 고생?

섬에는 버스가 두 대 있는데, 두 대가 서로 시간대를 나눠 운행하기 때문에 두 대중 한 대는 주차된 상태로 있다. 이 섬에 유일하게 있는 택시 한 대도 이 버스 사장 소유라고 하는데, 택시를 타고 다니는 승객이 없어서, 택시는 거의 노는 처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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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장군 사당 추자면사무소 뒤에 있다. ⓒ 장태욱


상추자도 대서리에 있는 최영사당과 고인돌 유적지 등의 위치를 물었더니, 버스 사장은 "설날 뭐하러 이 고생하고 다니냐"고 되물었다. 설날 함박눈이 날리는데, 객지를 싸돌아다니는 게 정상으로 보일 리 만무할 터다. 그래도 친절한 안내 덕에 유적지를 쉽게 찾아갈 수 있어서 발걸음이 가볍기만 했다.

<계속>
#추자도 #후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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