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꽃, 고운 사람, 고운 책

[책읽기가 즐겁다 337] 사기사와 메구무,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

등록 2010.02.21 14:34수정 2010.02.21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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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

- 글 : 사기사와 메구무

- 옮긴이 : 최원호

- 펴낸곳 : 자유포럼 (1998.1.20.)

- 책값 : 6500원 (판 끊어짐)

 

 

 (1) 딸을 바란 마음

 

지난 2008년 8월 16일, 우리 집 아이가 딸로 태어나서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아이 엄마와 저는 병원에 한 번도 가지 않았기에 태어나는 날까지 아이가 딸일는지 아들일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집에서 낳으려고 여러모로 마련하고 애썼지만, 한여름이었음에도 간밤에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붙이는 바람에 옆지기가 배앓이를 하고 아이를 낳으려 할 때에는 집안 온도가 뚝 떨어졌고, 힘이 빠진 옆지기는 거의 쓰러졌습니다. 어쩌는 수 없이 구급차를 불러 산부인과로 가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빠 된 사람으로서 좀더 제대로 알아보고 살펴보고 다스렸으면 집에서 낳을 수 있었을 텐데, 더없이 미안한 일이었습니다.

 

아이가 딸로 태어난 지 어느새 스무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헤아립니다. 아이를 낳을 무렵이든 아이를 낳아서 함께 키우는 요즈음이든, 내가 아빠 된 사람으로서 얼마나 집살림을 알뜰히 가꾸고 있는가 하고.

 

딱 어디에서 어디까지 금을 그어 놓고 일을 하지 않는 터라 집에서 들여다보는 책들이 여기에 쌓이고 저기에 쌓여 있습니다. 어느 만큼 일하고 어느 만큼 쉬며 어느 만큼 어느 때에 집일을 하는지도 틀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아빠 된 사람으로서는 오늘 해야 할 만큼 일을 하지 못했다고 느끼기 마련이고, 엄마 된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어디에서 어디까지 손을 잡아야 하는가를 느끼기 힘들기 일쑤입니다. 아빠는 아니라고 말할지라도 집살림 흐름은 아빠한테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런 판에 아이가 아들이었으면 더 아빠 흐름으로 쏠리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아빠 된 사람은 제 삶이나 식구들 삶을 알맞고 따스하게 추스르는 데에 익숙하지 못하고 슬기롭지 못합니다. 세상 모든 아빠들이 익숙하지 못하거나 슬기롭지 못하지 않을 테지요. 알뜰한 어버이와 함께 살아오면서 몸에 아름다움을 깃들인 아들이었다면, 이들이 아빠가 된 다음에도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집살림을 꾸리리라 봅니다. 아름다움을 모르거나 사랑스러움하고 동떨어진 채 살아온 터전이었다면, 이러한 느낌이 옆지기와 아이한테 고스란히 이어간다고 봅니다.

 

옆지기가 묻습니다. 제 이빨이 언제부터 안 좋았느냐고. 저는 망설이지 않고 말합니다. 군대에 있을 때 망가졌다고. 왜 그때에 망가졌느냐고 다시 묻습니다. 그때 군대에서 이를 닦을 수 없어 망가졌다고 이야기합니다.

 

한참 뒤, 틀림없이 군대에서 이빨이 망가졌으나 군대를 마친 다음 내 망가진 이빨을 알뜰히 되살리고자 애쓴 적이 있는가 돌아봅니다. 이태 남짓 망가진 이빨이라 할지라도 차근차근 되살리려 애썼다면 더 망가지지 않거나 조금이나마 살아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너무 손쉽게 군대 탓으로 돌리지 않느냐 싶습니다.

 

더 헤아려 보니, 군대라는 곳에 있을 때에도 더 애썼다면 이빨이 그예 망가지지 않도록 다스릴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스스로 더 부딪히지 않았으면서, 몸소 더 힘쓰지 않았으면서 무슨무슨 탓이라고 핑계를 늘어놓지 않느냐 싶습니다. 따지고 보면, 아이가 아들이 아니고 딸이기를 바란 데에는 아들이면 '학교를 아예 안 가야 군대도 안 간다'는 까닭 때문입니다. 아이를 군대에는 도무지 보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말과 글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이기에, 군대에 있는 동안 몇 가지 군대 말투를 일본제국주의 군대 말투가 아닌 우리 말투로 돌려놓는 데에 살짝 이바지를 했습니다. 그러나 고작 이런 일만 깨작거렸습니다. 더 밑바탕에 있는 고름을 짜지 못했고, 더 밑바닥에 있는 생채기를 건드리거나 감싸지 못했습니다. 나는 내가 앞사람한테 얻어맞거나 욕을 먹었어도 내 뒷사람한테는 주먹질이나 욕질을 안 하겠다고 다짐했으나 상병 6호봉 때에 이 다짐이 무너졌습니다.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고, 내 마음밭을 내가 더 알차고 사랑스레 지킬 길이 있었으나 고스란히 무너지는 길을 걸었습니다. 비무장지대 안쪽에 있었건, 강릉에 잠수함이 넘어왔대서 다시 비무장지대에 들어가 한 달 반쯤 다시 살아야 했건, 훈련을 뛴다며 허구헌날 바깥에서 맴돌았건, 나한테는 내 삶을 돌아볼 겨를이 없이 뺑이를 쳐야 했건, 하루에 1분을 못 쓸 노릇이었을까 하고 곰곰이 되씹어 보면, '하루에 1분이 없어 하루에 꼭 한 번이라도 이빨을 못 닦을 일은 없었겠지'입니다. 아마, 아이가 아들로 태어나고 군대로 끌려간다 할지라도 어버이 된 저와 아이 된 아들내미가 제 마음을 튼튼하고 맑게 건사한다면 외려 군대라는 곳을 거친 삶이 더욱 튼튼하고 한결 해맑을 수 있습니다. 가난이란 하느님이 내려준 선물이거든요. 가시밭길이란 우리한테 주어진 고마운 지름길이고요.

 

우리 아이가 딸로 태어나 주기를 빌던 아빠 마음은, 아빠 스스로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다른 이야기라고 느낍니다. 나 스스로 내 삶을 조금 더 알맞고 싱그럽고 튼튼하고 믿음직한 곳으로 이끌고자 하지 않고, 그저 이대로 내멋대로 살아가겠다는 어리석은 배짱이었다고 느낍니다. 함께 식구를 이루는 고운 사람을 앞으로도 곱게 목숨줄 잇도록 한손을 따숩게 내미는 일은 굳이 안 하겠다는 등돌림이었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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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책과 한국책을 나란히. 일본책은 1994년, 한국책은 1998년. ⓒ 최종규

 

 (2) 글쟁이를 바란 삶

 

1993년에 우리 나라에 처음 옮겨진 <진짜 여름>(작가정신)부터 <거리로 나가자 키스를 하자>(문학사상사,1994), <레토르트 러브>(문학사상사,1994),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문학사상사,1995), <그대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가>(자유포럼,1999), <뷰티풀 네임>(북폴리오,2006), <웰컴 홈>(북폴리오,2006) 모두 새책방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사기사와 메구무 님 작품입니다. 1998년에 우리 나라에 옮겨진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 또한 새책방에는 없고 헌책방에만 있는 책입니다. 그러나 헌책방이라고 이 책을 늘 갖추어 놓고 있지 않습니다. 새책으로 팔린 만큼 남아 있으며, 새책으로 팔린 책 가운데 책임자가 기꺼이 헌책방에 내놓은 만큼 만날 수 있습니다. 책을 더 안 찍은 지 제법 되었고 아예 판이 끊어진 지 한참 된 만큼, 이 책들을 우리가 헌책방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한다면 대단히 고마운 노릇이요 몹시 반가운 일입니다.

 

저는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을 2004년 12월에 헌책방에서 만났습니다. 그무렵에 처음 만나 1/3쯤 읽다가 덮어 놓았는데, 요즈음 유미리 님 판끊어진 산문모음을 찾아 읽으며 새삼 떠올라 이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었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사기사와 메구무 님 발자취를 더듬어 보니, 2004년 4월 11일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세상을 떠났더군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기사와 메구무 님은 '남자와 여자'라는 나눔과 '조선사람(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이라는 나눔이 없는 세상을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1968년에 태어나 2004년에 숨을 거두었으니 고작 서른 몇 해를 보낸 삶입니다. 고등학생 2학년인 1987년에 글쟁이 문턱에 들어섰으니 당신 삶 반나절은 글쓰기로 보냈다 할 수 있습니다. 짧다면 그지없이 짧은 삶이요 길다면 제법 긴 삶일 텐데, 글을 쓰는 사람이었기에 우리한테는 작품으로 오래오래 남아 언제까지나 숱한 이야기를 아로새겨 주겠지요.

 

모르는 노릇이지만, 사기사와 메구무 님은 글을 쓰는 일을 하지 않았으면 당신 할머니가 평안도 사람임을 알 수 없었습니다. 당신 아버지한테는 한쪽에 한국사람 피가 흐르고 있었는 줄 생각할 수 없었으며, 당신한테 한국사람 피가 1/4 섞여 있음도 알 길이 없었습니다. 글을 안 쓰고 살았다면 서른다섯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일이 없었다 할 수 있습니다. 글을 안 쓴다고 세상을 덜 생각하는 삶은 아니요 글을 쓰는 삶이라 하여 세상을 더 생각하는 삶은 아니나, 사기사와 메구무 님이 쓰는 글 매무새로 볼 때에는 날마다 마음앓이가 깊은 삶이었구나 싶습니다. 어쩌면 이런 매무새로 글을 안 쓰는 '수수하다는 삶'을 꾸렸을 때에도 어지럽고 어수선한 세상이 슬프고 괴로워 새삼스레 스스로 목숨을 놓았을 수 있겠지요.

 

.. "재미있잖아요?" 혜자의 말이다. 모처럼 이리저리 궁리한 끝에 희생까지 치르고 한국에 와서 생긴 것이 고작 원형탈모란다면 '재미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야 당신은 지문날인을 하지 않아도 되고, 외국인등록증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며, 결혼과 취직에서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니 바보처럼 그 따위를 따져서 무엇에 쓰겠어? 나는 당신의 친구니까 당신이 하는 말이나 괴로운 심정도 알아줄 수 있지만, 아마도 앞으로 수많은 사람을 만나야 되고 온갖 소리를 다 들어야 할지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그 따위야 우리 교포들 모두가 겪어 온 '가슴앓이'라고 제쳐두면 그뿐이야. 지금에 와서야 우리 역시 그렇게 힘겨웠다고 여기지도 않아. 그러므로 그때 '그만둬 버릴걸' 하는 마음을 먹었더라도 이미 소용이 없는 일이잖아? 뭐니뭐니 해도 당신은 작가니까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전할 수 있는 사람'이야. 그러니 내버려 둬! ..  (175쪽)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은 뜻하지 않게 당신 뿌리를 알고 만 사기사와 메구무 님이 남녘땅 연세어학당에서 여섯 달 동안 한국말을 배우면서 살던 이야기를 갈무리한 글모음입니다. 당신 할머니는 '국적을 밝히지' 않았고 당신 아버지는 '국적을 몰랐'으며 당신은 '국적을 따지지' 않아도 좋을 나날을 보냈습니다. 뿌리를 알고 난 다음에도 사기사와 메구무 님은 '일본사람으로 살아가'지 조선사람으로든 한국사람으로든 바뀔 몸이 아닙니다. 한국말을 배우고 한겨레 문화를 익힌다 할지라도 '살아가는 곳'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일본이라는 나라는 외국인등록증을 따로 만들어 재일조선인을 푸대접하고 따돌리거든요. 한국이라는 나라에는 외국인 지문날인이 따로 없습니다만, 이주노동자가 받는 대접은 아주 모집니다. 이주노동자한테는 당신들 땀방울을 바칠 의무만 있을 뿐, 땀을 바치는 동안 누릴 권리란 없습니다. 게다가 이주노동자가 아닌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말을 나누며 한국사람으로 살아가는 이들한테도 사람다운 대접을 누릴 권리가 많이 억눌려 있습니다. 이 나라 학교는 사람이 사람답도록 가르치는 터전이 아닌 시험점수 높이는 입시지옥입니다. 이 나라 일터는 사람이 사람다이 어울리며 일하는 보람을 맛보는 터전이 아니라 그저 더 많은 돈을 벌도록 내몰리는 사육장입니다.

 

사기사와 메구무 님은 마음앓이를 견디지 못해, 아니 마음앓이를 풀어낼 길을 찾고자 스스로 목숨을 내놓았습니다. 당신으로서는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무언가를 밝히고 따지고 말하고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말할 수 있는 사람'이요 '남길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여느 회사원이 목매달아 죽는다고 이이가 남긴 쪽글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거나 읽힐까요? 여느 농사꾼이 농약 마시고 죽는다고 이이가 남긴 외침이 세상에 두루 퍼지거나 들릴까요? 사기사와 메구무 님이기 때문에 당신이 목매달아 죽으며 남긴 외마디소리가 여러 해 지난 오늘까지도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당신이 떠나고 없는 자리이지만, 당신이 몸부림을 치면서 종이에 아로새긴 이야기는 우리 가슴으로 스며들 수 있습니다. 당신이 가고 난 빈 자리이지만, 당신이 발버둥을 치면서 종이장에 꾹꾹 눌러 적은 글줄이 우리 마음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떠나는 사람은 남아야 할 사람한테 짐만 잔뜩 안긴다고 하는데, 남아서 살아가는 사람이란 늘 짐을 지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짐이 없이 살고자 한다면 떠나야 할 노릇입니다. 살아가면서 내 몸에 얹힌 짐이 너무 고달프고 무거우면 떠날밖에 없습니다. 떠나는 길은 여럿이라, 깊은밤에 보따리 싸들고 몸뚱이만 내빼는 떠남이 있습니다. 모든 연락을 끊고 조용히 고속버스나 기차에 몸을 싣고 멀리멀리 돌아다니는 떠남이 있습니다. 나라밖으로 떠날 수 있고, 내 목숨줄을 놓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떠나고 말면 떠난 사람 자리에 누군가 들어와서 먼지를 털고 흐트러진 물건을 갈무리하면서 이이가 남겨 놓은 짐을 짊어집니다. 살아가고 싶기 때문에.

 

그런데 이래저래 떠난 길은 다시 돌아올 길이 있다지만, 목숨줄을 내려놓는 떠남은 다시 돌아올 길이 없습니다. 그리워도 이쪽에서 찾아가서 만날 수 없고, 애닲아 울어도 내 울음소리를 들어 줄 수 없습니다. 그저 책 몇 권 종이 몇 장 더듬으면서 손자국을 헤아려 봅니다. 그나마 글쟁이였기에 작품 여럿 남아 있어 이 작품을 하나하나 쓰다듬으면서 말없이 말하고 말있이 말한 이야기를 짚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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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책과 한국책을 맞대어 놓고 읽으면서, 번역판에는 군데군데 '번역을 안 하고 빼먹은 곳'이 있음을 알아챘습니다. ⓒ 최종규

 

 (3) 아껴 읽는 글

 

돌아가신 권정생 할아버지 책을 다 갖고 있습니다. 맨 처음 낸 <강아지똥>부터 맨 마지막으로 나온 <랑랑별 때때롱>까지 갖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랑랑별 때때롱>만 아직 안 읽었습니다. 이제 권정생 할아버지 다른 작품을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이 하나를 펼치면 모두 읽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끼고 아끼면서 읽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원수 님 문학을 읽을 때에도 매한가지입니다. 저로서는 문익환 님 시와 편지를 읽을 때에도 마찬가지이고, 묵은 잡지 <뿌리깊은 나무>에서 한창기 님 글을 찾아 읽을 때에도 비슷합니다. 세상일은 모르는 터라, 제가 앞으로 얼마나 목숨을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니, 읽을 수 있을 때에 읽어야 하는데, 그래도 아쉬워서 좀처럼 더 손을 대지 못합니다.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을 금세 읽어치우면서 가슴이 짠했습니다. 다시금 넘겨 읽으면서 서운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책 일본판 <ケナリも花, サクラも花>(新潮文庫,1994)를 서울 동묘앞에 있는 헌책방에서 보았습니다. 일본글은 읽을 줄 모르지만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하고 맞대어 놓고 한 줄씩 새겨 보곤 합니다. 그러다가 한글판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에는 군데군데 '한 줄씩 번역을 안 하고 빠뜨린 대목'이 있음을 알아챕니다. 책을 읽으며 때때로 어딘가 아귀가 안 맞는다거나 끝맺음이 아리송하다고 느끼곤 했는데, 군데군데 번역을 빼먹은 데가 있는 탓이었습니다. 다시 올 수 없는 사람이요 다시 나오기 힘든 책인데, 애써 묶였던 책 하나를 일군 번역이 이러하다니 ……. 우리 나라에서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 스스로 바깥말을 익혀서 아예 처음부터 번역책이 아닌 외국책으로 읽어야 하는가요? 쓴 입맛을 다시며 책을 덮습니다.

 

 

[26∼27, 29쪽] 일본인은 지독한 외국어 콤플렉스를 가진 인종이다. 패전 후 모두가 녹초가 되어서 의지할 곳이 없는 상태에서, 너무나도 강하게 보인 '미국'의 환상을 아직도 좇고 있는 것이다. 먹을것이 없어 굶주리던 당시의 일본인에게 미국은 너무나도 멋지고 강력한 존재로 보였다. 그래서 일본인이 영어에 대해서 갖고 있는 일반적인 인식도 멋지고 강대한 미국의 부속물과 같았다. 이것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일관된 관점이므로 일본에서는 영어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국제인의 면허를 받을 수 있다는 착각에 너도나도 영어를 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지금도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 미국인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영어를 해야 한다는 매우 오만한 의식을 품고 있으므로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자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영어도 할 줄 모르는 역무원'에 대해서 안달한다. 이런 광경을 보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는 일본이야. 누구나 영어를 할 수 있다고 여겨서는 안 돼!" 하는 분노를 가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나는 많은 일본인이 그 '어휴, 어쩔 수 없다'고 하는 몸짓을 도리어 부럽게 여기지나 않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 '외국에 나가면 모국어가 통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는 지극히 일반적인 상식을 미국인은 깨닫지 못했지만, 앞으로 점점 확실하게 형성될 '세계의 아시아' 속에서 일본인이 그것을 답습하지 않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아시아에서 일본이 '미국의 미니어처'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빈다.

 

[48쪽] "서교동!" "서울역!" "이대 후문!" 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대는 길가로 튀어나와 모두 목청껏 외쳐댄다. 나도 외친다. 게다가 손님이 타지 않은 빈 차도 행선지에 따라 승차거부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차에 올라타기 전에 반드시 행선지를 말해야만 된다. 그래서 거리가 언제나 소란스럽다 … 재일동포인 혜자와 같은 사람들은 오사카에 돌아가서 택시를 타려고 할 때 무심코 조수석 문을 자신이 직접 열고서 "통천각!" 하고 외친다고 한다. 게다가 이어서 나오는 말이 "안 가요?"라니.

 

[56, 58∼59쪽] 얼토당토않은 이상한 영어로 인터뷰를 시도하는 사람이 많았다. 만약 내가 거기에 응했을 경우, 도대체 그들은 어떤 식으로 기사를 쓸 셈인지, 그것이 나에게는 수수께끼였다 … 단지 내 감각으로는 그 여기자가 내가 3개월 만에 돌아가려고 한다는 점, 일본은 나의 조국이 아니고 바로 여기가 나의 조국이라고 당당히 말하지 않는 점에 '불만'을 느꼈으리라는 기분이 들 뿐이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재일동포 3세를 주인공으로 쓴 <진짜 여름>이라는 내 소설에 대해서 언급했다. "어떤 내용인지 알려주십시오." 그녀는 아무런 의문이나 주저함 없이 분명하게 이렇게 물었다.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 '내용'을 알려 달라는 질문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물론 이 사실만으로도 상당히 놀랐다(더구나 그녀는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60∼61, 64쪽] 그들(한국사람)은 일본에서 살아가는 한국인의 사정은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말로 한다면 끝도 한도 없으며, 또 누구인들 다른 사람의 슬픔과 고통을 자신의 일처럼 이해해 주려고 들지는 않는 법이다 … '민족', '조국'이라는 대단히 크고 추상적인 말과 연관지어 판단하기 전에, 우선 인간은 매일매일을 살아가야 되는 사회적 동물인 것이다 … 남의 '아픔', 남의 '사정'을 상상하는 힘만 있다면 조금이라도 거리를 좁힐 수 있다 … "아, 알았다. 메구무 씨의 이야기가 어쩐지 생소하지 않더니, 우리가 일본에 있으면 일본인과 다르고, 한국에 있으면 한국인과 다르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 아닌가요?"

 

[70, 82쪽] 그러나 그 순간, 행인지 불행인지 대경 씨의 귀는 형들의 입에서 나온 '쪽발이'라는 말을 놓치지 않았다. "알잖아? 교포들이 그런 말에 민감하다는 사실 말이야." 그래서 울컥 치밀어오른 대경 씨는 형들에게 대들게 되었는데, 그때 대경 씨가 한 말이 걸작이다. "이 멍청한 자식들아! 교포에게 함부로 싸움을 걸어도 되는 거야? 재일 대한민국 거류민단에서 가만 있지 않을 거라구!" '뭐라고……? 그래, 아마 가만히 있을 거야.' 역시 어딘지 모르게 장난감 로봇을 닮은 동작으로 어젯밤의 일을 재현해 보이는 대경 씨의 그 말을 들으며 다들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나는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 "그렇지만 좀 알아 달라고 매달릴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 알아 달라고 매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대목이 필시 꽤 오래 전부터 내 신경을 날카롭게 만든 원인의 하나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 거친 말을 받아서 대경 씨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어조로 말했다. "그래, 알아 달라고 할 수도 없지만, 그렇지만 적어도 이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아 주었으면 좋겠네요."

 

[97쪽] "한국에서는 말이야, 모두가 잘났어." 일본에서 한국어를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의 이런 말씀을 어렴풋이 기억해 내곤 한다.

 

[115쪽] 한국은 스스로의 '사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라다. 도대체 흘러가 버린 시간의 저 너머에 고통스런 추억과 슬픈 과거, 그렇지 않으면 수치와 잘못을 저지른 수많은 '마이너스'의 역사가 없는 민족이나 국가가 있을 수 있겠는가?

 

[143쪽] 하지만 역시 일반적인 일본인은 재일 한국인이라는 문제에 흥미가 없다. 상대에게 흥미가 없는 이야기를 구태여 말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미묘한 '아아, 역시 알아주지 않는군.' 하는 느낌도 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2010.02.21 14:34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

사기사와 메구무,
자유포럼,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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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을 새로 쓴다.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우리말 꾸러미 사전》《우리말 글쓰기 사전》《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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