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차입할 그리움은 따뜻하다

[시와 현실과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처럼

등록 2010.02.23 17:43수정 2010.02.2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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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차입할 그리움은 따뜻하다
한 조각의 빵과 자유를 바꾸어버린
당신에게 가는 차표는 주머니 속에 구겨져 있다
그대의 면회를 기다리며
팔랑팔랑 책처럼 넘겨지는 생각 위에 눈이 나렸다
그대는 아직도 연필에 침을 묻혀 편지를 쓰고 있고
언 손을 녹이는 슬픈 화로 속엔
우리가 주고 받아야 할 말들이 타고 있다
그대를 만나기 위해 걸어온 길은 너무 길고
마주할 오분의 시간은 화살로 빠르게 지나간다
유리벽을 두고 마주 앉은
그대와 나는 쓸데없는 세상이야기를 주고 받기만 하고
그대에게 하지 못하는 말들은
돌아오는 덜컹거리는 완행버스 짐칸에 얹혀져 흔들린다
겨울내의와 함께 차입해야 할
잊어버린 과자봉지를
괜스리 슬픔인 듯 만지작거리면
창 밖의 풍경은 스크린처럼 바뀌었다
그대가 돌아 올 수 있는
세상은 비어있지 못하고
그대가 비어두고 간 자리는
메어질 수 없는 쓸쓸함으로 사라진다
그대에게 가는 길은
늘 눈이 왔고
차창 밖의 상수리나무들은
언제나 늑대같이 우우우우우 울고 있다
<청송가는 길-S에게>-송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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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나의 아홉 살... 차입은 한 봉지 과자

나는 <청송가는 길-S에게>라는 제목의 시를, 1995년도인가 '한국시인협회' 세미나 자리에서 낭송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몇몇 시인들이 도대체 교도소에 누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아무 대답하지 않고 그저 희미하게 웃기만 했었다. 그건 시적 대상(S에게)의 존재를 한마디로 간단하게 설명하기 힘든 너무 오랜 세월 속에서, 단 한번 면회한 사람이라서 그랬을 터이다….

...성경 말씀에도 있듯이, 이 세상에 죄인 아닌 사람은 정말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를 때 죄인은 전과자나 복역수만 지칭하게 되어, 법에 걸리지 않는다면, 자신을 일러 '나는 정말 하늘을 우르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당당하게 말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본다. 그러나 윤동주 시인의 <서시>에 나오는 구절처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이 복잡하고 힘들고 각박한 세상을 단 하루라도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을까 싶다.

...그러니까 <청송 가는 길>의 부제목의 'S'는, 나의 아홉살, 어머니가 어렵게 운영하는 식당(건설공사 현장 안의 임시 가건물)에서 일했던, K(요즘 같으면 도우미 같은 역할)의 남편(사실혼 관계)의 이니셜이다. 이들 부부에게는 그런데 3세가량의 딸이 있었는데, K는 비오는 날(공사 현장은 비오는 날은 휴무)이면 친정 어머니에 맡겨 둔 어린 딸을 보러 가곤 했다. 철딱서니 없는 나는 그녀가 집에 가려면 울고불고 난리를 해서, 나는 K를 따라 그녀의 어린 딸과 함께 S가 복역하는 교도소에 면회를 가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아홉살의 나는 내 인생 처음으로 교도소를 방문한 것이 되는 셈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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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그 죄는 미워하되 그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나는 S가 어떤 죄목으로 그 가시철책 둘러 싸인 담장높은 교도소에 복역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분명히 어머니와 그녀가 나누는 얘기를 엿들었을 터인데, 나는 그런 것보다 항상 배우처럼 이쁜 그녀가 소지한 옷가방이나 소지품 따위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얼마 전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비디오로 보면서, 그들 부부와 영화 속의 연인들이 너무 닮은 것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영화 속의 비운의 사형수 윤수(강동원 분)가 너무 가진 것 없는 사람이라는 점이, 미모외 너무나 가진 것 없는 K의 처지와 비슷했다. 그리고 너무 가진 것 많은 유정(이나영 분)은, 감옥 안에서 형을 살 망정, 너무 배운 것이 많아 탈이 많은 S는, 너무 가진 것이 많아 불행한 유정에 다름 아님을 말이다. 

그러니까 옥바라지 하는 k는 한글도 제대로 몰라 아홉살짜리 내가 편지 답장을 대필해 주어야 할 만큼,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찢어지게 가난한 홀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이 여러명이었다. 이러한 K의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S가 그녀에게 차입해 달라고 편지로 부탁한 책들은, 하나 같이 책값도 비싸지만, 번번히 차입 불가한 서적이라, K는 그 무거운 책보따리를 가지고 흔들리는 완행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제법 오랜 시간을 옥바라지를 했던 것이다….

... 진정한 사랑은 국경이 없다는 말은, 영화나 현실에서나 다르지 않다… 그래서 사랑이 모두들 위대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지금도 하얀 흙먼지 폴폴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덜컹이며 달려가는 완행버스 차창 밖으로 도열해 있는 상수리나무들이 우우-짐승이 우는 소리처럼 들려왔던 기억이 선명하다. 

정말 죄를 짓지 않으며 살면 좋겠지만, 사람은 죄가 있어, 또 그 죄를 참회하는 눈물이 죄인을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그래서 우리 속담에 '그 죄는 미워하되 그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 않나 싶다… 지금 그들 부부는, 어느 하늘 아래서 그들이 가장 어려웠지만, 또 가장 그때 그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그리워하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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