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여행자가 제주도에서 '공짜'로 사는 법

[제주도 여행 2] 섬이 이렇게 큰 줄 몰랐어요

등록 2010.03.05 14:53수정 2010.03.05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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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제주도 너무 커!"

3월 1일부터 25일까지 무계획 야심찬 제주도 여행을 계획한 나는 제주도에 도착한 첫 날 부터 좌절했다. 아무것도 준비를 안 했으니 제주도가 서울보다 무려 2배가 크다는 사실을 도착해서야 알아버린 것이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남들 하는대로 공항 리무진을 타고 중문 관광단지에 내린 것까지는 좋았다. 그저 이름이 중문관광단지라서 중심가로만 알았던 거다. 그러나 내리니 이렇게 휑할 수가! (뭔가 신혼 여행지 분위기가 나는 곳이었다) 아무도 없는 한가로움을 넘어서서 호화 호텔들이 즐비. 나 도대체 어디에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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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리무진에서 중문관광단지 입구에서 내린 모습. 내가 상상하던 번화가의 느낌이 아니잖아! ⓒ 이유하


날씨는 꾸물꾸물, 내가 생각한 제주도가 아니잖아

게다가 제주도는 따뜻한 남쪽나라라고 해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날씨는 꾸물꾸물. 발길 닿는 대로 떠나려고 했던 계획은 무슨, 도대체 아무 곳에도 발길이 닿지가 않았다. 준비 좀 해올 걸 하는 후회가 심장을 후려치고 떠나갔다. 배낭에 보조가방에 캐리어까지 줄줄 끌고는 제주도의 칼바람을 앞머리로 다 맞았는지 5분 만에 떡져버린 머리로 걸어가는데 괜히 울적했다. 뭐야 이거 내가 생각하던 여행 맞어?

제주도를 서울의 종로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다. '섬이 커봤자 뭐'라는 생각에 중심가에 가면 고만고만하게 구경거리들이 붙어있을 거라고 혼자 지레짐작한 것이 오산이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게스트 하우스는 저만치 물건너 가고 (도저히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 물색해둔 다른 게스트 하우스를 타려면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그러나 도대체 어디서 몇 번의 버스를 탄단 말인가!) 그래서 인생은, 여행은 타협! 그냥 근처 민박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떡진 앞머리를 만회하고픈 마음을 반영하는 민박집 이름, 남쪽나라. 이름이 맘에 들어서 들어갔는데 가격이 문제였다. 게스트 하우스는 보통 1만5천~2만원 정돈데, 민박은 3만원부터 시작되니 그냥 간단하게 잠만 자려고 한 가난한 나로서는 한 푼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쩔쏜가. 벌써 캐리어를 끄는 손은 후끈후끈하고 날은 어두워져지는데. 급하게 아줌마랑 2만5천원으로 타협을 보고 하루를 묵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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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도착해서 먹은 첫 음식, 몸국이다. 육수를 마시면 입술이 찰싹찰싹 달라 붙는 게 몸 보신 제대로 되는 뜨뜻~한 음식이었다. ⓒ 이유하


역시 먹는 게 최고, 마음을 녹인 몸국 한 그릇

울적한 마음에 맛있는 거나 먹어야 겠다 싶어서 아줌마가 강추 별 5개를 날리는 몸국집으로 달려갔다. 몸국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먹고 싶다는 생각에 시켰는데, 나오는 걸 보니 해조류로 만든 국밥 느낌의 음식이었다. 그 뜨끈한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들이키는데, 캬! 진한 육수가 나를 어루만져줬다. 그래 '여기가 제주도야. 넌 제주도에 온 거야'라고 말이다.

역시 사람은 먹어야 살아. 한 그릇의 몸국에 혼자 위로 받고는 숙소로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와보니 절실히 느꼈지만 여행에서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하는 게 숙소 문제다. 언제나 그렇듯 간당간당한 살림에 어디서 좀 지낼 곳이 없을까를 알아보던 중에 최고의 장소를 물색해 냈다. 며칠 동안 눈팅을 하면서 전화를 할까말까 하던 바로 그곳에 연락을 하기로 했다.

"네, 여보세요. 인터넷에서 쿠키 보고 연락드렸는데요."
"아... 저번에 잠깐 이야기 들었어요."
"네... 저 혹시 제가 3월 25일까지 제주도 여행을 할 예정인데요. 방이 있으면 좀 묵어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서귀포쪽인데 일단 그 작업실이 비었으니까 쓰시면 될 거 같아요."

오예, 아싸라비아 땡 잡았어요. 나는 야 생활력 강한 여자. 안 될 줄 알았는데 내가 근 25일을 기거하게 될 집은 다름아닌 문화도시공동체 쿠키에서 진행하는 예술+인+집(Art In House)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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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공동체 쿠키 대문사진이다. 제주도에서 여러 가지 예술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http://cafe.naver.com/galleryharu.cafe에 들어가보자. ⓒ 이유하


제주도에서 예술인(?)으로 살아가기

쿠키는 "도심에 버려진 공간을 재활용해,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돕는 게 진정한 도시 재생"이라고 말하면서 지난 3월에 출범한 비영리단체다. '쿠키(CUCI)'라는 뜻은 문화(culture)와 도시(city)를 함축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활동이 예술인의 집 '레지던스'인데, 제주도에 있는 빈집들을 가난한 예술인들에게 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임대조건은 '작업실 공개를 통한 주민들과의 의사소통 및, 작품 전시와 다양할 결과물을 내는 것'이라고.

나는 사실 딱히 작가도 아니고 무엇에 대한 결과물을 내야할지도 모르지만 열심히 글을 써서 제주도를 널리 알리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당당하게 입주하기로 했다. 일단은 묵을 곳이 있으니 한 시름 놓은 터, 계획은 커녕 미뤄뒀던 무한도전 및 지붕뚫고 하이킥 시리즈를 보다보니, 흑 또 캄캄한 밤이다.

제주도에서 만난 첫 번째 인연, 문화도시 공동체 쿠키에서 나는 새로운 사람, 새로운 경험들을 만날 수 있을까?
#제주도 #몸국 #문화도시공동체 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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