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에 꽃등을 다는 봄나무꽃들

등록 2010.03.07 14:59수정 2010.03.0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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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춘화 비를 함빡 머금고 피어났다 ⓒ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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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피어난 영춘화 이름도 봄을 환영한다는 꽃, 영춘화 ⓒ 김현숙


T.S 엘리어트는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고 노래했다.

죽은 듯이 보였던 나뭇가지들이 사방에서 놀라운 속도로 눈을 뜨고 있다. 봄날 연둣빛 작은 잎을 피워내서 한여름 무성했던 나무는 가을날 동반자였던 잎을 다 떨구어내고 맨몸으로 겨울을 다 견디어내더니 찬란한 꽃망울로 생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


남쪽으로 내려가니 나뭇가지마다 꽃망울들을 달고 있는데 금방이라도 터트릴 듯 한껏 부풀어 있다. 그들은 기나긴 겨울,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쉬지 않고 꽃망울을 준비하여 바야흐로 노래할 준비를 다 마쳤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여기저기서 대합창소리가 들릴 것이다. 성급한 꽃망울들은 벌써 풍선 터지듯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러나 꽃망울 열리기를 숨죽이며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하나 둘 피어나는 모습은 감동을 준다. 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마치 한 생명의 탄생을 지켜보는 것처럼 가슴 뛰는 일이며 행복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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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매화 부풀어오르는 꽃망울 ⓒ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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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매 일찍 피어난 홍매화 ⓒ 김현숙


홍매화가 제일 먼저 입을 열고 내게 다가왔다. 첫사랑, 첫 키스, 첫눈 등 처음이란 단어가 주는 의미는 얼마나 우리를 황홀하게 하는가. 그건 일등이라는 의미와는 전혀 다른 풋풋함이고 싱그러움이고 눈부심이다. 세상을 향하여 제일 먼저 입을 열고서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왔음을 알리는 꽃들이 있어 봄이 생동감 넘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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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봄을 알리는 샛노란 산수유 ⓒ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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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가지마다 노랗게 피어나고 있다 ⓒ 김현숙


며칠 전까지도 소식이 없던 산수유는 가지마다 노란 꽃등을 달듯 피어나고 있었다. 그 노란 꽃망울들로 하여 세상이 갑자기 환해졌다. 꽃이 피는 것을 개화(開花)라고 한다. 개화한다는 것은 곧 하늘이 열리는 소리가 아닌가 싶다. 꽃은 하늘의 사랑을 받아 대지가 피워내는, 하늘과 땅의 합작품이다. 그러므로 대지에 꽃이 핀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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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갯버들 화려하게 피어나고 있다 ⓒ 김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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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버들 빨갛게 피어나서 노랗게 ⓒ 김현숙


해마다 봄이면 갯가에서 피어나는 갯버들은 그냥 깨어나는 것이려니 했을 뿐 이렇게 예쁘고 화려하게 피어나는 것인 줄도 몰랐다. 빨갛게 피어나 노랗게 변하는 것을 본 순간 가슴이 뛰었다. 자연은 이렇게 신비한 것임을 꽃들에서 다시금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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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리 노랗게 피어나고 있다 ⓒ 김현숙


처음으로 만난 히어리꽃은 다른 꽃들처럼 하늘을 향하여 피지 않고 않고 마치 가로등이 높은 데서 세상의 어둠을 환하게 비추어주는 것처럼 아래를 향하여 피어나고 있었다.

사방에서 손짓하는 다양한 봄나무꽃들로 하여 이제 걸음걸이가 더 바빠질 듯 싶다. 부지런한 봄꽃들 따라다니려면 나도 한껏 부지런을 떨어야겠다. 추운 겨울 뒤에 따뜻한 봄이 오는 것은 살얼음판처럼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이며 축복인가. 아무리 힘들다 해도 아픔을 딛고 일어서 당당하게 가리라.
#봄나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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