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3월의 게릴라를 꿈꾸며

[공모- 2000년의 나, 2010년의 나] 727명 중 하나에서 6만 6천명 중의 하나로

등록 2010.03.05 12:02수정 2010.03.0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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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혹시 예전에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시던 장성희님이 아니신가요?"


2010년 1월 어느 날 쪽지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인터넷 검색 중 우연히 들르게 된 저의 블로그에서 저를 알아보시고 메일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의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면서 왜 어느날 사라져 버렸는지 모르지만 다시 저의 글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나의 글 때문에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를 기억해 주는 한 사람의 독자를 만난다는 것보다 글 쓰는 이들에게 더 즐거운 일이 있을까요. 그리고 오랫동안 떠났던 오마이뉴스에 2010년 1월 30일에 다시 기사를 올렸습니다. 왜 1월 30일인가 하면 그날이 제 생일이어서 기념으로 그 날 올렸습니다.

세상의 막장을 불러올 것처럼 와글와글 하던 Y2K 버그들이 한마리도 보이지 않던 2000년 2월 10일에 첫 기사를 올렸으니 만 10년만의 일입니다. 어떻게 해서 오마이뉴스의 공식적인 창간일 이전인 2월 10일에 첫 기사를 올렸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대학 졸업후 첫 직장이 신문사였던 저는 미국 이민 후 그 당시에도 신문에서 아주 달아나지 못하고 애틀랜타의 한 신문에 번역기사를 맡고 있었습니다. 뉴스 속에서 생활하던 저는 인터넷 어디에선가 오마이뉴스 창간 소식을 읽었을 것이고 그 사이트에 가서 신문의 목적과 성향 등을 살폈을 것입니다.

오연호 대표기자의 경험과 취지를 읽고 공감했던 부분이 많이 있어 주저없이 기자 등록을 했습니다. 제가 몇번째인지는 알 수 없지만 2월 22일 창간 당시 발표한 그 727명 중에 하나였을 것입니다. 당시는 지금처럼 블로그를 통해 자신만의 개성을 발산할 수 있는 뉴스를 쓸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기에 좌우를 떠나 오마이뉴스는 나만의 뉴스를 표출하고 싶은 많은 이들에게 매력적인 매체였습니다.


저도 그 중에 하나였기에 미국 사는 이야기란 연재를 시작하여 47회까지 썼습니다. 당시 10년을 보낸 이민생활에서 겪는 나만의 경험과 또 생활 속에서 발견하는 소재를 시사성과 연관시켜 그 주제를 잡아나가기도 했는데 다행히 많은 분들이 즐겨 읽어 주셨습니다.

덕분에 2000년 3월에는 오마이뉴스가 매달 선정하기로 한 그 첫번째 이달의 뉴스 게릴라 사는 이야기 부문에 우수상을 수상해 지금 생각해도 정말이지 촌스럽긴 하지만 의미있게 마련한 상품을 받아 한국에 계신 시어머님께 쌀을 그리고 남편에게 오마이뉴스 구두를 선물할 수 있었습니다.

47편의 미국 사는 이야기 연재 외에도 2001년 4월 10일까지 총 128건의 기사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1년 남짓 기사를 쓰다가 오마이뉴스를 탈퇴한 이유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기사에 따라붙는 정제되지 않은 인신공격성 악플뿐만은 아니었습니다. 댓글에서 멈추지 않고 이메일로도 날아 오기 시작하더니 어느날은 메일을 열자 컴퓨터가 작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악성 바이러스 때문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관련된 이런 저런 이유들이 있었지만 모두 밝힐 수는 없는 일입니다.

신경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저는 그런대로 참을 수 있었지만 가족들의 염려와 반대가 있었고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는 행위가 과연 그것을 상쇄시킬 만한 가치가 있는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마이뉴스를 쓰던 펜을 놓았습니다.

다시 펜을 들면서 생각해봅니다. 10년이란 시간은 결혼하고도 근래까지 100파운드를 고수하던 나의 체중에 10파운드를 얹어 주었습니다. 저라고 별 수 없는 나잇살. 뼈 부딪는 소리들을 감싸주는 그 살들이 어떤 덧글이라도 완충작용을 해내지 않을까하는. 다시 말하면 그 10년의 공백이 오히려 너와 나 사이의 거리를 훌륭하게 조절해 주지 않을까 하는.

잠깐 지난 10년 동안 10파운드 늘어난 체중 외에 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볼까요? 물론 주름이 늘었고 그리고 큰 딸이 대학에 갑니다. 10년 전까지도 그랬듯이 지난 10년 동안에도 아내로 엄마로 생활인으로 그리고 신앙인으로 나에게 충실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크게 들려오는 배고픈 시인들의 푸념 속에서 외로운 시를 썼고 마흔에는 꼭 장편소설 하나를 쓰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지금은 중앙일보 애틀랜타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기치 아래 날것으로 읽을 수 있는 기사를 지금도 오마이뉴스에서 만날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바라기는 더 많이 둥글어지고 그렇다고 내 하고 싶은 말을 놓치지 않는 솔직함을 여전하게 간직하고 싶습니다.

문득 10년전 함께 울고 웃던 시민기자들이 그리워집니다. 오마이 잉글리쉬를 쓰던 박정선영 기자. 오마이 영화를 쓰던 배을선 기자, 다큐작가 강미란 기자, 노숙자들의 애환을 그리던 심보선 기자, 그리고 걸어서 국토종단기를 쓰던 당찬 김남희 기자 등등 모두 제가 즐겨 읽던 글들입니다. 누군가 저의 글을 읽고 저를 기억해주었듯이 그대의 글로 인해 마음이 곱던 당신들을 기억합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 오마이뉴스의 초석을 놓던 그대들, 건강하시라.

덧붙이는 글 | '2000년의 나, 2010년의 나' 응모글


덧붙이는 글 '2000년의 나, 2010년의 나' 응모글
#뉴스 게릴라 #2000년과 2010년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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