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엔 '독자님!', 지금은 '기자님!'

아내와 함께 하는 '부부 시민기자'를 꿈꾸며

등록 2010.03.08 11:48수정 2010.03.0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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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니 생각험서 시어머니랑 다듬이질 허는 걸 쓴 글이고만, 어렸을 때 빨래 잡어주면서 누님이랑 혀 봤는디, 이 정도는 나도 쓸 수 있겄네!"

 

"그러니까 써보라니까요. 자기도 글에 소질이 있는 것 같던데, 얘기 들어보니까 재미있는 소재도 많이 간직한 것 같고···."

 

2000년,  30-40대 중년 주부들로 구성된 '서해문학' 회원으로 활동하던 아내가 후배들이 쓴 글을 가져와 검토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다듬잇돌 관련 글이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기에 했던 말이다. 그런데 아내가 나에게 '소질이 있다'고 말하자 어린애처럼 귀가 쫑긋해졌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글을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는디, 내가 글에 소질이 있는 걸 자기가 어떻게 알어?"

"글이라는 게 따로 있나요. 어렸을 때 재미있었던 일이나 가슴 아팠던 일들을 솔직하게 쓰면 되지, 사진 모임이랑, 동창회 총무할 때 소감문이랑 행사 안내문 쓰는 것 보니까 쓰면 쓰겠던데요."

 

초등학교 4학년 담임선생님은 글짓기 시간마다 나에게 쓴 글을 읽어보라고 했는데, 처음엔 온몸에서 땀이 날 정도로 긴장되었다. 그러나 급우들의 호응이 좋아서 그런지 횟수를 거듭할수록 자신감이 생겼다. 이상이 글짓기 경력의 전부인 나에게 소질이 있다니 기분이 싫지는 않았다.

 

"그려, 어렸을 때 추억들이 머리에 꽉 들어차 있지, 책으로 한 권은 될 꺼여. 그런디 자꾸 잊어버리더라고, 한참 지나면 다시 떠오르긴 허지만. 지금도 종인이 사는 'ㅇㅇ아파트' 하고, 컴퓨터 '탐색기'가 입에서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니까."

 

"그러니까 시도를 해보라고요 시도를. 시작이 중요하니까. 한꺼번에 쓰려고 하지 말고 생각날 때마다 쪽지에 메모해놓으면 되지요. 신문 스크랩도 잘하고, 이런 것 저런 것 꼼꼼하게 잘 챙기던데···."

 

아내 권유로 쓰기 시작한 '나의 이야기'

 

컴퓨터 앞에 앉으면 게임만 하던 나였다. 그러나 아내의 권유로 손가락을 마우스에서 키보드로 옮겨 자리, 낱말, 짧은 글을 거치는 한글 타자를 연습했다. 엄지·검지 사이가 칼로 찢는 것처럼 아팠다. 그래도 참고 노력한 결과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내 생일에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려나간 수필 '골목길 추억'을 완성했다. 아내는 그거 보라며 기뻐했다.

 

내가 써 놓고도 신기했다. 첫 글이어서 그런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랑스럽고, 읽을 때마다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솟는 골목 풍경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곰삭은 갈치속젓처럼 개운하고, 누런 황석어젓처럼 단맛이 나면서, 잘 무쳐놓은 '꼬록'(꼴뚜기)젓처럼 고소하기도 하고.

 

그 후 마음에만 담고 있던 아련한 추억들을 하나씩 기록하고 메모하면서 '나의 이야기'를 써나갔는데, 항상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몇 달이 지나니까, 맞춤법을 확인하면 "사전 찾아봐요!"가 답이었고, 글을 검토해달라고 부탁하면 회원들 글 봐주기도 바쁘다면서 외면했다. 장난도 아니고, 환장할 일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 외면은 더했다. 어떤 때는 외로운 방랑자가 된 느낌으로 헤매고 다니기도 했다. 외면까지는 참을 수 있겠는데, 고생고생하며 완성해놓은 글을 보고는 "무슨 글을 이런 식으로 써요!"라며 질책할 때는 얼굴이 화끈거려 땅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아내의 말에 맵시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존심은 구겨지고 망가졌다. 다투기도 여러 번 다퉜는데 그때마다 글쓰기를 그만두고 싶었다.

 

언론 게시판에 올릴 정치관련 글도 잘 써졌느냐고 봐달라고 하면, 야멸치도록 냉정한 아내였다. 하지만, 고마움을 느낀다. 누구에게 묻기보다는 좋은 글을 보면서 시야를 넓히고, 죽을 때까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실수와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작성하는 게 좋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이·취임식이 있던 2003년 2월에 보니까 50여 개 수필과 미완성작 단편소설 두 편이 탐색기에 저장되어 있었다. 등단할 마음도 없으면서 어떻게 이리도 열심히 쓸 수 있었는지, 내가 생각해도 놀라웠다. 아마 타자연습을 하면서 '내 삶을 글로 정리해서 딸에게 남겨주자!'는 다짐을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마이뉴스>와의 인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글은 꾸준히 썼는데, 2001년 봄부터는 누리꾼 자격으로 <한겨레> 토론방에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한 달쯤 지났을까?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편지 형식으로 쓴 글이 기사로 채택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는데, 누군가가 퍼온 기사를 통해 <오마이뉴스>를 알게 되었다. 

 

처음엔 팥 광주리에 쥐 드나들듯 하면서 눈팅만 했는데, 딱딱한 일반 뉴스와 달리 현실감을 배가시켜주는 이미지와 기자들의 다양한 시각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정치인, 교수, 소설가, 주부, 재야운동가 등 필진도 다양했는데, 뛰어난 문장력에 가위눌려 글을 올릴 생각조차 못했다. 모토가 '모든 시민은 기자다!'이지만, 시민기자도 상근기자처럼 일정 이상의 자격을 갖춰야 하는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기사가 마음에 들면 활동하는 사이트에 퍼 나르거나 찜을 해서 자료실에 보관했다. 그런데 몇 달 하다 보니까 공짜로 구독하는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해서 2002년 말쯤에는 정기 구독료를 내는 회원으로 가입했다. 2006년에는 블로그도 개설했는데, 기사도 2007년 11월23일 '통일호 열차를 타고 떠난 여행'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313꼭지를 올렸다. 호칭도 10년 전엔 '독자님'이었는데, 지금은 '기자님'으로 바뀐 것 또한 놀라운 변화이다.

 

그런데 조금은 가슴 아픈 추억이 하나 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참신하고 신선한 <오마이뉴스>에 반했던 나는 자칭 '한겨레홍보맨'에 이어 '오마이홍보맨'이 되려고 마음먹고, 만나는 사람마다 침이 마르도록 설명했는데 아내를 빼놓을 수 없었다.

 

"자기 문학 서재에 보관 중인 글 많지? 조금만 다듬어서 <오마이뉴스>에 연재해보라고, 돈 안 들이고 홍보하고, 경험도 쌓으면서, 원고료도 받으니까, 일석삼조에 꿩 먹고 알 먹기거든···."

 

"······."

 

며칠이 지나도 아내는 말이 없었다. 답답했다. 그러나 끈질긴 설득 끝에 '2000년 군산 대명동 화재사건'을 가까이서 본 아내 느낌을 정리한 기사 두 꼭지를 편집부로 송고했다. 그런데 이튿날 전화가 걸려왔다. 좋은 글인데, 성격이 맞지 않아 메인기사로 올리지 못하니까 양해해 달라며, 원고료는 지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끊고 아내를 보니까 자존심이 상했는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결국, 입씨름이 붙었는데, 1천 원이라도 원고료를 받아야 글을 올릴 정도로 글쟁이에 대한 자부심과 프로정신이 대단했던 아내는 무슨 언론사가 그러느냐는 거였다. 그러나 내 입장은 조금 달랐다.

 

"자기 속상한 마음은 이해허지만, 전화까지 혀서 미안허담서 원고료까지 준다고 혔잖여. 조중동 봐봐 기사를 빼라, 올려라, 내려라 하는 요즘 세상에 그 정도면 웅숭깊은 대접이지. 그러니 이해허고 새로 쓰든지 다른 글을 찾아보라고!"

 

"지금 한가하게 올릴 글이나 찾고 있을 기분이 아니에요. 좀 쉬어야겠어요."

 

그 일이 있은 후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설득했다. 몇 년 전부터는 '부부'를 강조하면서 어르고 달랬지만, 아내는 요지부동이다. 스스로 '나도 한 고집 한다'는 말을 주저하지 않는 여인이거든. 그 고집으로 나 같은 사람하고 결혼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때 입씨름은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결말이 나지 않고 진행 중이다.

 

속으로는 창간 10주년 기념일인 지난 2월22일에 맞춰 올려줄 것을 은근히 기대하면서 글쓰기를 계속 권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실패로 끝났다. 아내가 하루빨리 마음을 바꿔, '빼빼로 기념일'이 될 2011년 2월22일 이전에 또 한 팀의 '부부 시민기자'가 탄생하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2000년의 나, 2010년의 나' 응모글

2010.03.08 11:48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2000년의 나, 2010년의 나' 응모글
#부부시민기자 #글쓰기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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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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