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만 있으니 답답하지?"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수채화

등록 2010.03.20 16:05수정 2010.03.20 16:5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수양매화 고운 얼굴 ⓒ 김현숙

▲ 수양매화 고운 얼굴 ⓒ 김현숙

a

청매화 고운 얼굴 ⓒ 김현숙

▲ 청매화 고운 얼굴 ⓒ 김현숙

a

고목에 핀 매화 . ⓒ 김현숙

▲ 고목에 핀 매화 . ⓒ 김현숙

이른 봄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 땅꼬마였을 때 나물 캐러 가고픈 마음 굴뚝같았지만 엄마가 무서워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엄마는 절대로 밖에 나가 놀지 말라고 하셨다. 못하게 하는 짓은 더 하고 싶어지는 모양이다. 그 어느 날, 엄마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겁도 없이 엄마 몰래 동네 친구들 따라서 나물 캐러 갔었다.

 

a

제비꽃 어제 만난 제비꽃 ⓒ 김현숙

▲ 제비꽃 어제 만난 제비꽃 ⓒ 김현숙

a

산자고 꿀벌을 품은 산자고 ⓒ 김현숙

▲ 산자고 꿀벌을 품은 산자고 ⓒ 김현숙

마냥 신났다. 딴 세상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언덕을 다니며 나물을 캐다가 어둑해지자 내려오는데 길 따라 내려오지 않고 모두들 언덕에서 아래로 풀쩍 뛰어내렸다. 나도 따라서 뛰다가 그만 다리가 부러졌다. 훌쩍 뛰어 땅에 닫는 순간 다리가 아프더니 금세 위아래 색깔이 달라졌다. 마치 다리가 두 동강이 난 것처럼 선명하게 금이 보였다. 그리고는 일어서지를 못했다. 엄마가 돌아오시기 전에 빨리 집에 가야 하는데 아무리 일어서려고 해도 일어설 수가 없었다. 아픈 줄도 모르고 엄마에게 혼날 일만 걱정이 되었다. 우리 엄마에게 동네 아이들이 붙여준 별명은 호랑이 엄마였다.

 

한 아이가 달려가 동네 어른에게 알렸고, 그 어른은 급히 달려와서 나를 엎고 접골원으로 갔다. 접골원 아저씨는 다리를 만져보더니 발바닥과 다리에 기역자로 판자를 대주었고, 나중에야 그 소식을 들으신 엄마가 오셔서 나를 업고 가셨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불호령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엄마가 한 마디도 혼내지 않으시는 것이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그건 불가사의였다. 왜 혼내지 않으시는 걸까.

 

그로부터 몇 달을 나는 방안에서만 생활해야 했고, 대농으로 농사일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엄마는 움직이지 못하는 내 병 수발까지 해야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죄송스럽기 그지없다. 언니 오빠들은 모두 학교에 가고, 혼자서 방안에 하루 종일 누워있으면 밖에서 들리는 사람소리가 얼마나 나를 목마르게 했던지.

 

그러던 어느 따스한 봄날, 마당에서 인부들이 새참을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방안에만 갇혀있는 내가 안돼 보였는지 "방에만 있으니 답답하지?"하시더니 엄마는 문을 열어 텃밭이 가장 잘 보이는 마루에 앉혀주셨다. 아, 그때 내 눈앞에 펼쳐진 장관을 나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지만 텃밭에는 아주 작은 싹이었던 보리이삭이며 장다리꽃, 유채꽃이 내가 누워만 있는 그 사이에 내 키보다 더 자라서 온통 만발해있었다. 샛노란 유채꽃과 진초록 청보리가 함께 피어있는 모습은 얼마나 찬란한 아름다움이었던지 놀라울 뿐이었다. 나에게 정지된 시간이 그들의 키를 그토록 높였던 것은 어린 마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때의 느낌은 강렬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소경이 처음 눈뜬 감동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 정경은 해마다 봄이면 어김없이 들녘에 펼쳐져 가슴을 아리게 한다.

 

a

현호색 새처럼 자태가 곱다 ⓒ 김현숙

▲ 현호색 새처럼 자태가 곱다 ⓒ 김현숙

들판에는 어린 시절의 그때처럼 지금 봄꽃들이 찬란한 세상을 열고 있다. 꽃을, 그중에서도 특히 봄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는 지금 꽃들이 보내는 메시지를 온 몸을 열어놓은 채 수신하고 있다. 우주가 열리는 감동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2010.03.20 16:05 ⓒ 2010 OhmyNews
#봄꽃 #어머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특혜 의심' 해병대 전 사단장, 사령관으로 영전하나
  2. 2 "윤 대통령, 달라지지 않을 것... 한동훈은 곧 돌아온다"
  3. 3 왜 유독 부산·경남 1위 예측 조사, 안 맞았나
  4. 4 '파란 점퍼' 바꿔 입은 정치인들의 '처참한' 성적표
  5. 5 창녀에서 루이15세의 여자가 된 여인... 끝은 잔혹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