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 찾아간 함평천지, 들판에 야생갓이 지천

초봄 시냇가에서 캐온 야생 갓김치맛이 기가 막히다

등록 2010.03.23 18:38수정 2010.03.23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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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효와 이서구 선생 중에 한 분이 썼다는 <호남가> 첫번째 소절이 '함평천지'로 시작한다. 함평천지라는 의미는 넓고 많은 것을 포용하는 의미라고 한다. 지난 목요일 오후쯤 같이 근무하다 정년 퇴직한 형이 전화를 하여 "작년에 갔던 함평에 냉이 캐러 가자는데 어떨 것이여?" 하기에 하기여 6명 회원들께 번개를 쳤더니 금요일 저녁에 근무 끝나고 출발하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60 전후의 여섯집 부부가 젊은이들 흉내를 내 번개를 친 셈이다.

 

그래서 승합차를 빌리고 등등해서 금요일 저녁 남녀 합 열명이 전남 함평군 대동면 용성리 괴정마을을 내비에 찍고 출발하여 회원의 고향집에 도착하니 새벽 한시쯤 되었다. 작년 이맘때 승진 기념으로 고향집에서 돼지를 잡는다고 해서 방문했을 때만해도 팔십이 훨씬 넘으신 친구 어머님이 생존해 계셔서 반가이 맞아 주셨지만 작년 12월경에 유명을 달리 하셔서 뵐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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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불 낙지. 산낙지가 바다를 찾아가려는 지...상위로 기어 나왔다. ⓒ 양동정

▲ 손불 낙지. 산낙지가 바다를 찾아가려는 지...상위로 기어 나왔다. ⓒ 양동정

하지만 인근에 살고 있는 동생에게 미리 연락을 하여서 보일러 불도 피워 두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있다는 무안 손불낙지가 배달되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도착하자마 시장하던 터라 손놀림이 잽싸신 형수씨가 산낙지를 총총 썰어서 깨소금에 참기름 방울을 떨어뜨려 내놓은 산낙지 회의 고소하고 쫄깃쫄깃한 맛과 살짜기 데쳐서 초장에 찍어먹는 신선한 맛이 기가 막히다. 퇴직후 만나는 선배들이랑 날이 새는 줄 모르고 기울인 술잔수가 더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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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낙지 회 산채로 썰어놓은 산낙지회와 살짝 데친 낙지요리 ⓒ 양동정

▲ 산낙지 회 산채로 썰어놓은 산낙지회와 살짝 데친 낙지요리 ⓒ 양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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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 라면 낙지를 넣고 끓인 라면이 속풀이에는 그만 ⓒ 양동정

▲ 낙지 라면 낙지를 넣고 끓인 라면이 속풀이에는 그만 ⓒ 양동정

느지막히 일어나니 속이 쓰리다. 비어 있는 집이라 찬거리도 적당치 않고 하여 남은 낙지를 넣어서 끓인 낙지라면 국물이 쓰린 속을 달래주기에 충분하다. 간단히 아침을 때우고 작년에 찾아갔던 냉이밭을 찾아 갔더니 냉이가 모두 꽃이 피어서 먹을 수가 없다. 작년보다 2주 늦게 찾아 갔는데 이렇게 자라 버린 것을 보니 자연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다는 교훈을 들려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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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이 지천으로 시냇가 언덕에 자생으로 자란 갓이 지천이다 ⓒ 양동정

▲ 갓이 지천으로 시냇가 언덕에 자생으로 자란 갓이 지천이다 ⓒ 양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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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바람을 겨우내 맞고 자란 갓 ⓒ 양동정

▲ 갓 강바람을 겨우내 맞고 자란 갓 ⓒ 양동정

냉이는 철이 지났고, 고민 끝에 근처의 개천에 가면 갓이 많았다는 친구 부인의 말에 따라 그 개천을 찾아가니 맑은 물이 흐르는 조그만 개천 가운데 언덕에 강바람 맞으며 자라난 보라빛 갓이 지천이다. 마치 누가 재배라도 한 듯하다. 도로 가에도 야생갓이 더러 있었지만 어쩐지 오염 됐을 것 같다. 하지만 이곳에는 물도 깨끗하지, 강바람도 강하지. 토질도 깨끗한 모래나 다름이 없다. 이제 동이 나오기 직전의 부드러운 갓을 얼마든지 채취할 수가 있다. 우리 모두는 횡재를 만난 사람들처럼 갓을 뜯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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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다듬기 논 바닥에 지천인 자운영 나물을 다듬고 있다. ⓒ 양동정

▲ 나물 다듬기 논 바닥에 지천인 자운영 나물을 다듬고 있다. ⓒ 양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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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미나리도 엄청 싱싱하다. ⓒ 양동정

▲ 미나리 미나리도 엄청 싱싱하다. ⓒ 양동정

개울 근처에는 미나리도 자라기 시작한다. 아직은 너무 어리다. 논에는 자운영이 지천이다. 조금 있으면 보라빛 작은 꽃을 피울 자운영도 좋은 나물재료이긴 마찬가지다. 오랫만에 자운영도 뜯어보고... 서울에서는 구경조차 어려운 온갖 나물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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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김치 함평천지 시냇가에서 캐온 갓으로 담음 갓김치. 한잎깨물으니 재채기가 나올 정도로 톡 쏘는 맛이 강하다. ⓒ 양동정

▲ 갓 김치 함평천지 시냇가에서 캐온 갓으로 담음 갓김치. 한잎깨물으니 재채기가 나올 정도로 톡 쏘는 맛이 강하다. ⓒ 양동정

채취해온 갓을 음식솜씨 좋다는 전라남도 벌교 출신 회원 부인이 가지고 가더니, 갓김치를 담궈서 일부를 오늘 집으로 보냈다. 나는 고향이 순천인지라 그 유명하다는 돌산 갓김치를 많이 먹어 봤다.

 

하지만 이 갓김치 맛이 기가 막히다. 바닷바람이 아닌 시냇가에서 강바람 맞고 노지에서 겨우내 자란 갓이라 그런지 톡 쏘는 맛이 재채기가 나올 정도다. 비용으로 따지만 너무나 비싸다 할 것이다. 하지만 열사람의 중년들이 젊은이들 흉내를 낸 번개를 쳐서 봄나들이도 하고 쌓인 스트레스를 푼 것을 생각하면 비용으로 따질 일이 아닐 성싶다.

#갓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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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역할에 공감하는 바 있어 오랜 공직 생활 동안의 경험으로 고착화 된 생각에서 탈피한 시민의 시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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