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꽃잎에 내려앉은 봄눈

[인천 골목길마실 78] 눈송이 내려앉은 골목 머위꽃

등록 2010.03.22 19:48수정 2010.03.22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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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노래를 대단히 못 부릅니다. 타고났는지 어떠한지는 모르겠으나 어릴 적부터 소리내어 노래부를 때마다 무척 힘들었습니다.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키득키득거렸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음악 실기시험을 치를 때에는 음악교사가 한 소절만 듣고는 '땡!' 하면서 0점이나 0점에 가까운 점수를 주곤 했습니다.


노래는 참 못 부르지만 좋아합니다. 학교에 다닐 때에는 노래를 못 부르더라도 시험을 치러야 하니 다른 동무보다 더 죽도록 용을 씁니다. 사람 없는 호젓한 밤골목에서 혼자서 목청껏 노래를 부르거나 밤이 되어 문닫은 공단길에서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수천 번씩 노래 연습을 한 탓에 고등학교를 마치고 다시는 부를 까닭이 없던 교과서에 실린 노래들 노랫말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면은 내 마음도 피어 ……." 하는.

이렇게 노랫말마따나 진달래가 피어야 할 봄에 고운 잇빛 꽃이 아닌 고운 눈꽃이 흩날립니다. 아니, 눈송이가 퍼붓습니다. 흔히 말하는 '이상 기후'라 할 테고, 쉽게 풀이하자면 '미친 날씨'일 테며, 부드러이 말하자면 '철없는 날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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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아이들은 퍼붓는 눈에 신발이 젖고 하더라도 서로 웃고 떠들면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 최종규


철없는 날씨란, 자연이 철이 없기 때문에 철없는 날씨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삶이 철없는 엉터리이기 때문에 날씨 또한 철없이 뒤죽박죽입니다. 우리 삶이 철이 들면서 옳고 바르게 꾸리는 모양새라 한다면 날씨가 철을 잃겠습니까. 우리들이 환경파괴이니 자본주의이니 개발이니 뭐니 하면서, 자연을 온통 망가뜨리는 쪽으로는 줄달음질을 하고 있으니 날씨 또한 엉망진창입니다. 이러한 흐름을 지식으로 모르는 사람은 이제는 아무도 없다 할 만하지만, 정작 미쳐 가고 있는 날씨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우리 삶을 자연과 가까우면서 자연을 살리고 자연을 사랑하는 쪽으로 돌리거나 고치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올해에는 새봄이 찾아온 날에 갑작스런 눈발이 흩날리는 날씨라 한다지만 이듬해에는 더 미치고 철없는 날씨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난 2009년 날씨를 한번 더듬어 보셔요. 2009년에 맞이한 봄날씨는 참으로 철이 없었지만 2010년 올해와 견주면 아무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2009년 철없던 날씨 또한 2008년에 대면 대단히 철이 없었고, 2008년 날씨는 2007년에 대면 참으로 철이 없었습니다.

2011년이 되고 2012년이 되면 2010년 철없는 날씨는 아무것 아닌 날씨처럼 느끼지 않을까 싶은데, 우리 스스로 소비주의 삶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2020년이나 2030년에는 몹시 슬프고 괴로운 날씨를 맞이할밖에 없지 않으랴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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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복소복 내리는 겨울눈이 아닌 펑펑 퍼붓는 봄눈입니다만, 이 봄눈이 우리 마음을 하얗고 맑게 덮어 준다면 좋겠습니다. ⓒ 최종규


지난 2007년부터 올 2010년까지 날마다 골목마실을 하면서 느낍니다만, 2007년과 2008년과 2009년과 2010년을 헤아려 보면, 해가 갈수록 '햇볕 쨍쨍한 맑은 날'을 맞이하기가 힘듭니다. 해가 갈수록 날씨는 더 더워지는데 새로 맞이하는 여름마다 갑작스런 큰 비바람 몰아치는 날이 늘어나고, 겨울이 덜 춥다고 하지만 꽁꽁 얼어붙는 날수는 더 늘어나며, 눈은 더 안 온다고 하면서도 포근하고 맑던 이듬날 뜻밖에 몰아치는 큰눈이 자꾸자꾸 생겨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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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복소복 따스하게 내려서 쌓이는 봄눈이라고 느낍니다. ⓒ 최종규

동네마실을 하며 사진을 찍다가 생각합니다. '내가 눈골목 사진을 제대로 못 찍어서 하늘이 도와주려고 갑작스레 눈을 퍼부어 주는가?' 하고. 그래도 봄인데 봄날씨가 아닌 뒤틀린 날씨로 찾아드는 눈은 반갑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눈이라 한다면 겨울에 퍼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온 겨울을 하얗디하얗게 뒤덮으며 우리 마음에 깃든 모든 찌꺼기와 더러움을 내려놓은 다음, 새롭게 다시 찾아오는 봄에는 티없이 맑고 푸른 마음결로 싱그럽고 고운 삶을 꾸려야지 싶습니다.

언제나 꽃잔치를 이루고 있는 율목동 아지매 집 텃밭 한켠에 머위꽃이 소담스레 핀 모습을 사진으로 조촐히 담고, 새로운 수인선 기찻길을 낸다며 온 동네를 철거하고 있는 신흥동3가 골목동네 산수유나무 노란꽃을 사진으로 담으며 곱씹습니다. 우리들 누구나 맑고 고운 철을 즐겁고 반갑게 맞이하면서 올 새봄에는 새롭고 맑은 마음결을 살가이 건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우산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네 아이들 모습을 뒤꽁무니에서 한 장 두 장 사진으로 담으면서 헤아립니다. 이렇게 철없고 터무니없는 날씨라 하더라도 이 아이들한테 '눈 퍼붓는 날'에 얽힌 이야기 한 자락 새록새록 만들어 주기도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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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쨍쨍하던 어제(3월 21일) 담은 골목집 머위꽃하고 눈이 펑펑 쏟아붓는 오늘(3월 22일) 담은 골목집 머위꽃 사진.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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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는 눈을 모르는 채, 길가에 내놓은 빨래를 적시는 골목집이 꽤 많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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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규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골목길 #봄눈 #골목마실 #사진찍기 #인천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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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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