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이목이 태안반도로 쏠린다

국제 기후안보의 최전방 '안면도 기후변화감시센터'

등록 2010.03.28 11:51수정 2010.03.2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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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안반도에 위치한 안면도 기후변화감시센터를 아시나요.' 서울시민에게 무작위로 물었을 때, 열이면 열 모두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안면도에 그런 곳이 있었나? 또한,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에서 태안반도 공기를 포집해 간다는 사실을 일반인은 물론,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조차도 대부분 모르고 있을 것이다. 미국 NOAA에서 태안반도 공기를 왜?

작년(2009년) 12월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192개국 정상(105개국) 또는 이에 상응하는 거물급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제15차 당사국 총회를 개최했다. 현재 UN 가입국 수가 192개국이다. 세계 정상이 모두 모인 것이나 다름없는 행사였다. 세계사의 한 획이 아닌 대여섯 획 진하게 그을 정도의 대규모 회의였다. 회의 목적은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온실가스 인위적 배출 규제였고, 각국 정상들이 앞다퉈 코펜하겐으로 모인 것은, 온실가스가 잉태한 기후변화란 괴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작년(2009년) 9월 25일 미국에서 조용한 일이 발생했다. 미국중앙정보국(CIA)가 '기후변화와 국가안보에 관한 센터(The Center on Climate Change and National Security)를 개설한 것이다. 미국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그 CIA가? 세계 최강국 정보기관인 CIA에서 기후변화를? 선뜻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그 CIA가 맞다. 기후변화가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 것이라 미국은 판단한 것이다.

현재 인류가 누리는 달콤한 문명은 화석연료의 기반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당연히 온실가스 배출 억제는 화석연료 사용 억제를 의미하고, 화석연료 대체방안을 수립하지 못한 국가는 문명의 기반이 통째로 무너질 운명에 처해있다. 하지만,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올해(2009년)안으로 새로운 기후변화협약(온실가스감축) 타결에 실패한다면 이는 도덕적으로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했고, 2007년 작성한 IPCC 4차 종합보고서는 '2050년까지 2000년 대비 50~80% 온실가스를 감축하지 않으면 지구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라고 경고했다. IPCC는 각국의 기상학자, 해양학자 등 3천여 명의 전문가로 구성한 정부간기후변화협의체다. 온실가스 감축은 이젠 인류의 선택사항이 아니다. 반드시 실천해야하는 과제가 되었다. 단지, 감축강도가 협의 대상이었다.

코펜하겐에 192개국의 정상급을 모이게 한 주범이며, 화석연료의 기반으로 구축한 현 인류 문명을 통째로 갈아엎을 위기로 빠트린 온실가스. 그렇다면, 미세한 규모로 국경을 초월하며 지구대기를 떠다니는 온실가스의 신뢰성 있는 관측은 어떻게 할까?

 이를 위해, UN 산하 세계기상기구(WMO)에서는 1989년부터 온실가스 등을 감시하고자 지구대기감시(GAW : Global Atmosphere Watch)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현재 전 세계 400여 개의 관측소에서 지구대기를 관측하여, 국제적 기후협상에 객관적 근거 자료로 활용함은 물론, 각종 미래 기후변화 모델 기초자료로도 요긴하게 쓰인다.

처음에 언급했던, 안면도 기후변화감시센터도 GAW의 지역급 관측소로, 동아시아 지구대기감시의 중추적 구실을 하는 곳이다.


다시 작년 코펜하겐으로 가보자. 온실가스 감축 협정을 타결했을까. 안타깝게도 실패했다. 인류 최고 기관의 수장과 관련 전문가 3천여 명이 경고했듯이 어쩌면 우리 세대를 '지구의 미래를 암흑으로 이끌어, 도덕적으로 용서받지 못할 세대'라고 역사가 기록할지도 모른다.

합의 도출 실패 원인은 간단하다. 화석연로 기반으로 급속히 성장하는 경제를 선뜻 멈출 수 없다고 주장한 개발도상국과 어느 정도 경제가 안전 궤도에 올랐고, 신재생에너지, 바이오연료 등 녹색산업의 기본 인프라가 확보된 선진국과의 견해차다. 선진국은 강제력 있는 온실가스 감축을 주장한 반면, 중국을 필두로 개발도상국은 해당 국가별 사정에 따라 자발적 감축을 요구했던 것이다. 최근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세계경제 규모 2위의 자리에 오름과 동시에 온실가스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1위 국가가 된 중국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요구일 수 있다.

목적 없이 배회할 때 흔히 '정처 없이 바람 따라 떠돈다.'라는 말을 쓴다. 하지만, 이 말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편서풍지대에서 공기 덩어리는 서에서 동으로 이동한다. 한반도에서 바람 따라 떠돌면 언젠가는 동해에서 허우적댈 것이다. 바람은 정처(定處)가 분명히 있다. 거대 중국경제 중심지인 동중국연안 경제벨트 동쪽으로 가장 인접한 지구대기감시소(GAW)가 안면도 기후변화감시센터다. 중국의 온실가스도 바람 따라 서해를 건너 태안반도로 이동할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처럼, 소량의 공기 속에도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각종 온실가스들이 인위적으로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자연적 발생인지. 또한 국지적 배출 원인지, 장거리 이동해 왔는지 등 다양한 정보를 찾아낼 수 있다. 이쯤 되면 미국 NOAA에서 왜 태안반도 공기를 포집해 가는지, 그리고 그 자료가 어떻게 쓰일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신문배달이 안 되는 곳, 식당 한번 가려면 시쳇말로 산 넘고 물 건너야 하는 곳, 사방을 둘러봐도 바다와 소나무 숲만 보이는 곳. 문명과 최대한 동떨어진 지역에 센터가 있다. 국지적 오염원 유입을 최대한 차단하고, 순수한 기후변화 요인인 지구배경대기 온실가스 관측을 위해서다. 이곳에서 13명의 전문가가, 40미터 철탑에서 흡입한 공기를, 100만분의 1에서부터 몇 조분의 1의 초정밀 인자(이산화탄소, 메탄 등 36요소)를 국제적 규정(GAW)에 따라 관측․분석하고 있다.

올해 연말에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제16차 당사국 총회가 멕시코에서 개최된다. 회의규모도 작년 못지않을 것이다. 중국의 온실가스 배출현황은 이미 세계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당연히 전세계 관련 전문가는 물론 정책결정자들은 안면도 지구대기감시 관측 자료에 지대한 관심을 보일 것이다. 또한, 감축협정이 타결된다고 해도 여전히 안면도는 세계의 이목을 끌 것이다. 세계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의 협정이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래저래 안면도 기후변화감시센터는 국제 기후안보의 최전방이 된 것이다.

신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고, 인간 자신을 포함한 지구 생태계의 운명을 인간에게 떠맡겼다. 오지에서 고독하지만, 겸허한 자세로, 침묵 하는 신의 미세한 숨결 한 가닥이라도 파악하여, 자연과 인류 상생의 길을 찾고자 하는 곳, 이곳이 바로 안면도 기후변화감시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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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 기후변화감시센터 이곳에서 기후변화 주범으로 주목받는 이산화탄소 등 36요소를 관측 분석하고 있다. ⓒ 허관



#기후변화 #온실가스 #화석연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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