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보고' 때문에... 이귀남 법무장관의 굴욕

[取중眞담] 장관의 실언 낳은 허위 보고와 혼란 키운 언론

등록 2010.04.15 21:16수정 2010.04.2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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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를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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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10만불수수? 검찰은 한글도 못 읽나" ⓒ 김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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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귀남 법무부장관이 15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의원 10만 달러 수수설'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 남소연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발설한 "민주당 의원들 10만 달러 수수설'은 허위 보고가 발단이었다.

이 장관은 지난 12일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10만 달러를 한 전 총리에게 줬다는 최초 진술과 관련 "곽씨가 10만 달러를 한 전 총리에게 준 것이 아니고 미국 출장 중이던 민주당 의원들에게 준 것 같다고 말을 바꿔서 증언했다"며 "판사가 판결문을 쓸 때 앞 부분만 따서 써서 그런 것 같다는 보고를 검찰로부터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장관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검찰로부터 받았다는 보고 내용도 잘못됐다.

곽 전 사장은 검찰 조사에서 자기 입으로 직접 민주당 의원들에게 10만 달러를 줬다고 한 적도 없고 법정에서도 그렇게 증언 한 적이 없다. 신문에 나선 검사의 질문에 문제의 내용이 들어있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곽 전 사장의 법정 증언은 10만 달러를 정치인들에게 준 것이 아니고 미국에 있는 자식들에게 송금했다는 내용으로 끝난다.

당시 곽영욱 전 사장의 증언 내용은 이랬다.

검사 : "그게 2004년인가 2005년이었던 것 같은데 한 총리가 국회의원이었을 때 다른 민주당 의원들과 미국 공화당인가 민주당 전당대회에 갔는데 그때 10만불이 그쪽 주려고 보낸 것 아나냐고 검사가 물어본 것이 기억이 나나요?"


곽영욱 : "네. 기억이 납니다."

검사 : "곽 사장님이 처음에 아닌 것 같다고 진술을 하다가 나중에는 그런 것 같기도 하다고 진술을 했지요?"

곽영욱 : "무서워서 그랬어요. 그때…."

검사 : "아까 변호인은 그 10만불 이야기가 총리공관에서 줬다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물어본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는 거지요?"

곽영욱 : "생각이 안 났어요. 그런데 알아보니까 미국에 있는 우리 애들이 합법적으로 돈을 가져가겠다고 해서 보낸 것이더라고요. 처음에는 검사가 다그치니까 한 총리에게 줬다고 했어요. 그런데 안 줬는데 줬다고 할 수는 없어서 나중에 무서워서 거짓말 했다고 했잖아요."

증언 내용 앞부분만 본 법무부 장관

이 증인 신문은 한 전 총리의 변호인 측이 10만 달러 관련 최초 진술이 검찰 조서에 빠져 있는 점을 지적하면서 "왜 처음에는 10만 달러를 줬다고 했느냐"고 묻자 검찰이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추가로 진행했다. 총리공관에서 곽 전 사장이 10만 달러를 줬다고 한 게 아니라 전혀 다른 건이었다는 점을 해명한 것이다.

그런데 이귀남 장관은 신문 내용 전체가 아니라 앞부분만 인용하면서 곽영욱 전 사장의 진술이 아닌 검찰의 신문 내용을 곽 전 사장의 증언으로 잘못 말했다. "판사가 앞부분만 따서 판결문을 썼다"고 불만을 터뜨린 검찰이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할 때 자신들도 역시 '앞부분만 따서' 한 모양이다.

이 장관이 전체 신문 내용을 봤다면 10만 달러가 민주당 의원들에게 준 게 아니고 곽 전 사장의 자식들에게 보낸 돈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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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귀남 법무부장관이 15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무죄 판결 이후 검찰이 반박 보도자료를 배포한 경위에 대해 추궁받자, 최교일 검찰국장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 남소연


보고를 잘못한 당사자는 최교일 법무부 검찰국장이었다. 최 국장은 1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검에서 공판조서를 받아 이를 기초로 보고했는데 내가 보고를 잘못한 것 같다, 죄송하다"고 사과해야 했다.

"보고를 그대로 믿었다"는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가 한글도 제대로 못 읽느냐"(박영선 민주당 의원)는 핀잔을 듣는 굴욕을 당했다.

이 장관은 또 "장관이 의도적으로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의원을 폄하하고 창피를 주기 위해 그랬다면 선거법 위반, 형법상 명예훼손죄, 허위사실유포죄에도 해당한다"(박영선 의원)는 훈계도 들어야 했다. 

이 장관은 결국 "제 발언의 진의와 관계없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언급돼서 민주당 의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린 점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한글도 제대로 못읽나"... 고개 숙인 법무부 장관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이날 법사위에서는 이 장관이 억울한 장면도 있었다. 이 장관은 사과를 하라는 민주당 의원들의 요구에 끝까지 "유감스럽다"는 답변으로 버티다 거센 질타를 받았다.

박영선 의원은 "공판 조서에 민주당 의원에게 10만 달러 줬다는 이야기가 어디 있느냐, 있지도 않은 사실로 민주당을 명예훼손하고 사과도 안 하냐"고 따졌다.

그러자 이 장관은 "증인 조서에는 (민주당 의원이) 나온다"고 반박했고 박 의원은 "민주당 의원에게 줬다는 이야기가 어디 있나, 없다"고 다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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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최교일 법무부 검찰국장이 관계자로부터 보고받고 있다 ⓒ 남소연


하지만 당시 신문에서 검찰이 '민주당 의원들'을 언급한 것은 사실이다. 앞서 제시한 녹취는 법정에 있던 기자가 정리한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가 정리한 공판 조서에는 '민주당 의원들'이 '다른 국회의원'으로 돼 있다.

재판부가 검찰의 신문 내용을 확인하면서 발언의 취지를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일부 표현을 손 본 것이다. 재판 당시 '민주당 의원'과 '다른 국회의원'을 놓고 야당 의원과 법무부 장관이 논쟁을 벌일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공판 조서에 '민주당 의원이 없다'는 박영선 의원의 말이 맞지만 '있다'는 이 장관의 말도 근거가 있다. 아마 법무부가 검찰로부터 받은 조서는 검찰이 자체적으로 정리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의혹이 불거진 것처럼 보도한 언론

문제는 이 장관의 대정부질문 발언을 보도한 언론에게도 있다. 대부분의 언론은 재판 취재를 통해 문제의 10만 달러가 한 전 총리나 민주당 의원들이 아니라 곽영욱 전 사장의 자식들에게 보낸 돈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곽영욱, 민주 의원들에 10만불 제공' 진술"과 같은 제목을 뽑아 마치 새로운 의혹이 드러난 것처럼 보도한 것은 제대로 된 보도 태도가 아니다.

민주당이 이 장관의 발언에 강하게 반발한 것도 이런 언론 보도로 인한 국민들의 오해를 우려해서다. 결국 언론을 통해 필요 이상으로 정치적 논란이 커진 것이다.

이 때문에 이귀남 장관에게 보고를 잘못한 법무부 간부들이 '조인트'를 까일지도 모른다는 우려는 괜한 걱정일까.
#이귀남 #박영선 #곽영욱 #한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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