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맛나다"... 한남동 골목에서 만난 '꿀' 한통

복합문화공간 꿀 개관행사... 최정화 작가 "생활에 활력 주는 프로젝트 공간"

등록 2010.04.17 11:29수정 2010.04.1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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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오픈 기념 퍼포먼스 꿀 2층 창문 밖으로 여성이 거꾸로 머리를 내미는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다. ⓒ 김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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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기와 꿀 꿀 개막 기념행사로 '이동기와 꿀'이 공연하고 있다. ⓒ 김솔미


16일 오후 10시께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으슥한 건물 2층 창밖으로 한 여인이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채 머리를 거꾸로 내밀었다. 이날 오후 9시에 개관한 신생 복합문화 공간 '꿀'의 오픈 기념 퍼포먼스다.

늦은 저녁 시간에도 꿀의 개막을 축하하기 위해 200여 명의 관객들이 공연을 즐기고 전시물을 감상했다. 개막 공연에는 이동기와 꿀, 아나킨, 아리랑, 박나훈, 푼돈 등 총 다섯 팀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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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꿀 전경 ⓒ 김솔미


간판도 없는 갤러리, 꿀 찾아왔어요

안내판도, 간판도 없어 마치 버려진 공간처럼 보이는 저기가 바로 '꿀'이다. 삼성 미술관 리움 건너편, 골목으로 들어오면 정체를 알 수 없는 2층 건물이 있다. 불빛이 번쩍거리고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이곳에 바로 한국의 대표적 작가 최정화(49)와 재기 넘치는 작가들의 열정이 담겨 있다.

아무리 그래도 간판은 달려 있어야지. 두리번거리며 꿀을 찾아 들어온 관객이 묻는다. "여기가 꿀 맞나요?" 대답이 가관이다. "아, 예. 그런 것 같아요." 문을 열고 들어 와도, 여기가 공연장인지 카페인지 전시관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곳이 바로 '꿀'이다. 

'꿀'은 대안공간 '풀'과 파트너십을 맺어 만든 전시장, 카페, 바(bar), 공연장 등 어느 하나로 결론지을 수 없는 혼성 공간이다. 특히 풀의 프로젝트 실험 공간 '꿀풀'에는 생활 대중과 미술인 사이의 불통 구조에서 대안의 길을 모색하는 문화 생산자들의 실험을 담았다.  

'꿀풀'은 12명의 작가가 참여한 12개의 공간이 벌집처럼 이루어져 있다. 녹슨 파이프와 덩그러니 비어있는 칙칙한 공간뿐만이 아니다. 색소폰이 천장에 달려 있지를 않나 경찰 형상의 조형물이 떡 하니 서 있지를 않나, 화장실인지 전시장인지 구분할 수도 없을 정도로 작가들의 비상한 작품세계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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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thing's gonna be alright 윤지원, 이수성 (꿀, 2010) ⓒ 김솔미


동굴 속으로 들어가 작가를 만나다

꿀에 들어가기 전 유리벽 안으로 수십 개의 형광등이 보인다. 윤지원, 이수성 작가의 작품인 'everything's gonna be alright'. 윤지원 작가는 "최정화와 풀의 인연을 기리는 의미에서 만든 것"이라며 "최정화에 대한 오마주라고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윤씨는 "작품을 완성했는데 누군가로부터 내 작품이 다른 곳에도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걱정 안 하고 전시하기로 결정했다"며 작품에 담긴 사연을 털어놨다. 그는 "작업을 하다가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게 다 작품 속에 담겨진 작업의 한 과정인 것 같다"면서 "결국 작품이 어떤 이야기를 할지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전시가 끝날 때쯤, 형광등의 불은 다 꺼져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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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3 선풍기는 남성의 주체가 뿜어대는 힘을 상징한다. 선풍기의 바람이 세 질수록 대상인 식물들은 자지러진다.(김홍빈) ⓒ 김솔미



TV가 틀어진 지하의 어느 방, 야구 방망이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고 형광등은 천장에서 반쯤 떨어졌다. 뻥 뚤린 창으로는 선풍기가 매달려 있고 마치 정리 안 된 노총각의 방처럼 보이는 이곳. 작가 김홍빈씨가 젠더 문제, 특히 남성에게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성역할인 '힘'을 표현하고자 한 공간이다.

인사동 어느 건물의 옥상에서 작업하는 김씨는 "내 작품은 좀 야한데"라며 수줍게 자신의 작품세계를 공개했다. "사회는 남성에게 점점 더 강한 힘을 요구한다. 강요된 요구는 점점 더 무리하게 힘을 과시하게 만드는데, 결국 자기 파괴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며 "남성에게 힘을 요구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꿀을 찾아온 관객 이원희(29)씨는 "디렉터의 느낌이 구석구석 살아있는 것 같다"면서 "공간마다 작가들의 스튜디오인 것 같은 느낌을 주어 재미있다"고 전했다. 이씨는 이어 "이곳 주민들과 유기적으로 맺어져 생활과 예술이 하나가 될 수 있겠다"면서 "인사동의 쌈지길처럼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지인의 소개로 찾아온 홍지현(26)씨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 개인적인 공간을 만나는 기분"이라면서 "작가 개인에게 더욱 다가갈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삼성미술관 리움에 대항? 그건 오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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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작가 “이런 곳에서도 전시, 공연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골목들 사이에, 사람들 생활 속에 스며들어 대중과 예술인의 구별이 없도록 말이다.” ⓒ 김솔미

다음은 '꿀'의 대표, 최정화 작가와의 일문일답.

- 어떻게 '꿀'을 기획하게 됐나?
"'생생활활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였다.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고 싶었다."

- '스페이스 꿀'이라는 이름이 특이하다. 무슨 뜻인가?
"건물을 딱 보면 꿀 같지 않나? 쥐어짜고, 쥐어짜서 만든, 덧붙이고 덧붙여서 자연스럽게 나뉘어진. 디자이너나 아티스트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진짜 생활의 모습이다. 예술과 생활의 차이를 없앤 공간 말이다."

- 건물이 무척 허름하던데, 어떻게 이런 곳을 선택했나?
"이런 곳에서도 전시, 공연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골목들 사이에, 사람들 생활 속에 스며들어 대중과 예술인의 구별이 없도록 말이다."

- 삼성미술관 리움 근처에 있어 사람들이 비교를 할 것 같다. 리움 근처에 '꿀'을 만든 이유가 있나?
"아니다. 그냥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보면 알겠지만, 진짜 생활의 모습이 담겨져 있는 건물이다."

- 리움에 대항하여 만든 공간이라는 말도 있던데.
"오해다. 꿀은 기존의 미술관과는 분명히 다르지만 '대항'한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함께 예술을 할 뿐이다."  

- 다른 복합문화 공간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냥 보이는 대로 느끼시길 바란다. 그게 예술 아닌가."

- 꿀을 찾는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좋은 작가 누구나 와서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많이 와서 즐겨주길 바란다."  

미술관은 생각만 해도 지루한 사람이라면, 예술은 나와는 상관없는 별나라 이야기 같기만 하다면, 한남동 한복판에서 달콤한 꿀 한통 맛보러 가보는 건 어떨까.

'꿀풀'은 6개월 단위로 작가를 초청해 공간을 운영할 예정이며, 1기로 권용주, 김상돈, 김상진, 김홍빈, 윤지원, 이수성, 임정규 등 12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1기 프로젝트는 9월 30일까지이며 화요일부터 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문을 연다.
#꿀 #풀 #복합문화공간 #최정화 #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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