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번호가 쭉쭉... 빨간펜 손가락이 춤을 췄다

[공모- 로또] "제일 먼저 집을 사고, 세계여행을 가자"

등록 2010.04.22 10:41수정 2010.04.2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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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어 3!"
"24!"
"어어어어! 24랑 또 불러봐봐!"
"25, 30..."
"우와~"


목소리가 조금씩 격양되더니 외마디 비명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로또 종이를 손에 들고 반쯤은 바들바들 거리면서, 반쯤은 넋이 나간 듯 소리를 외치는 한 남자. 설마 로또가 당첨된 거야?

그런데 옆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반응이 더 이상했다. 로또 걸리는 게 그렇게 웃긴 걸까? 한 사람은 입을 틀어막고 키득거리고, 다른 한 사람을 숫제 바닥을 뒹굴고 있는 게 보였다. 로또 한 번 걸렸다고 단체로... 뭐지?

 

로또 장난 하지 맙시다


이야기는 이랬다. 엠티를 가기로 한 우리는 이것저것 장을 보고 오는 길에 친구가 로또를 사는 모습을 목격했다. 장난 끼가 발동한 우리, 친구의 로또 번호를 슬쩍 훔쳐보고는 메모해 두었던 것!

밥 잘 챙겨먹고, 술 한 잔 걸치기 전 친구는 로또를 산 사실을 기억해 냈고, 다른 친구에게 핸드폰으로 로또 번호를 좀 봐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때 메모해 두었던 로또 번호를 실제 번호인양 불러 주었는데, 오... 생각보다 친구의 반응이 너무 강력했던 거다. 다리를 후들거리면서 당장이라고 은행으로 뛰쳐나갈 기세를 보였던 것이었다.

바지까지 추켜 입고 나가려던 찰라, 친구들이 만류하며 장난임을 폭로하자, 친구가 그래도 믿을 수 없는 듯 재차, 삼차 물었다.

"진짜? 진짜? 장난 친 거야?"


아, 로또. 나도 얼마나 많은 밤을 그 허황된 꿈으로 설쳤을까. 일단 내가 만약 로또에 당첨된다면 제일 먼저 집을 살 거다. 아름답고 조용한 시골에 나만의 집을 지을 거다. 그리고 부모님과 동생들에게 용돈을 두둑하게 주고는 나머지 돈을 몽땅 싸들고 세계여행을 떠나는 거다. 중국부터 시작해서 몽골 인도를 거쳐서 유럽을 지나 남미로, 미국으로... 아! 생각만 해도 심장이 벌렁벌렁해!

 

초반부터 번호가 쭉쭉... 나 심봤어


나도 가끔 로또를 사곤 했다. 번번히 한 개도 제대로 안 맞고, 가끔가다가 5000원짜리 걸리는 게 다였지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심봤다!

그날따라 로또를 사는 손이 떨렸더랬다. 매일 천 원짜리 한 줄만 사는데 그날은 과감하게(?) 두 줄을 질렀더랬다. 그리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지갑 속에 끼워놓고 잊어 먹고 있었더랬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새벽녘 갑작스럽게 로또의 존재 사실이 생각났는데!

언제나 꽝이 될 줄은 알지만 로또를 맞춰보는 순간은 떨린다. 손바닥에 맺히는 땀을 바지에 쓱쓱 닦으며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2주쯤 지난 로또 번호를 맞춰보는데, 럴수 럴수 이럴 수가! 초반부터 번호가 쭉쭉 맞는 게 아닌가!

손에 펜을 들고 맞는 숫자를 동그라미 치는데, 마치 100점짜리 시험지마냥 동그라미가 죽죽, 그 손가락의 희열감이란! 나 혼자 그 새벽에 입을 틀어막고 흐흐거렸다.

엄청나게 많은 숫자를 맞춘 것만 같았는데, 결과는 4등 당첨. 비록 4등이라고는 하지만 6개 숫자 중에서 4개나 맞는 것이니 얼마나 짜릿했을까. 그 등골 찌릿한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결국 세금 다 떼고 나니, 15만원 정도 되었다. 그 사실을 아는 순간 '왜 이렇게 세금을 많이 떼는 거야!' 하고 배부른 투정을 했지만, 은행에 돈을 바꾸러 가는 그 날은 괜히 가슴이 쭉 펴지는 기분이었다.

그 돈은 가족들이랑 외식 한 방에 금방 동이 났지만, 이 맛에 사람들이 '로또 중독'이 되는 구나라는 간접 체험(?)을 할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이런 일확천금 따윈 바라지 않고 차근차근 실력대로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난 1등 걸려도 절대, 절대로 타락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 말이다.

2010.04.22 10:41 ⓒ 2010 OhmyNews
#로또 #4등 당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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