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어디서 뭐하세요?

언론이 관권선거 의혹 제기, 시민단체가 책임자 고발... 선관위는 캠페인 감시

등록 2010.04.26 22:40수정 2010.04.26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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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와 2010유권자희망연대 주최로 열린 '선관위의 유권자 행사 탄압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에서 심판 복장을 한 회원들이 선관위의 친환경 무상급식 실현 캠페인과 4대강 죽이기 사업 반대 운동에 대한 과잉 단속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관권부정선거 신고센터를 전국적으로 설치해 불법부정 선거와 정부기관의 선거개입을 감시한다. 교육감선거를 앞두고 '우파 후보의 승리전략', '전교조와 민주노총의 좌파후보 지지의 불법성'을 조사하라고 일선 경찰서에 지시한 경찰청 책임자들을 고발한다.

얼핏 보면 선거관리위원회가 하는 활동으로 보인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공무원이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운동 기획에 참여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경찰 책임자들이 교육감선거에 나선 것은 이를 위반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26일 오후 3시, 경찰 책임자들을 선관위에 고발한 쪽은 시민사회단체 공동기구인 유권자희망연대였다. 이 단체는 이날 오전 11시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관권선거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도 열었다.

시민단체가 나서자 선관위도 뒤늦게 이날 오후 경찰청에 자료요청 공문을 보내고 조사에 착수했다. 최대한 빨리 조사를 진행해 선거 전에 결과를 내놓는다는 방침이다.

"내부 제보 없이는 감시 어렵다"

이재근 유권자희망연대 전국공동행동팀 간사는 "선관위가 관권선거에 대해서는 사실상 손 놓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동안 행정부의 선거개입 논란과 관련, 선관위가 제대로 진상을 조사한 적이 있냐는 것이다.

실제로 관권선거 논란은 이번에 처음 벌어진 일도 아니다. 교육과학부 '실세'인 이주호 차관부터 선거법 위반 의혹을 받아온 당사자다.


지난 2월 초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교과부 고위 관계자는 시도 교육감 선거에 전직 장관과 교수 등을 내세우기로 하고, 인천시 부교육감에게 "그 자리에 있으라"면서 출마 포기를 종용했다. 이 '고위 관계자'가 바로 이 차관이라는 것이 야당의 중론이다.

이 사건이 가라앉기도 전에 지난 2월 말 또다른 논란이 불거졌다. 이번에도 의혹을 터뜨린 것은 선관위가 아닌 언론이었다. 교과부가 직접 무상급식 전략 구상에 나섰다는 보도가 <한겨레>에 실린 것이다. 급식정책을 담당하는 교과부 과장이 한나라당 보좌관 간담회에 참석해 대응방안 문건을 제출했다는 내용이다.

결국 지난 3월 2일 참여연대는 안병만 장관과 이주호 제1차관 등 교과부 간부들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검찰이 고발인 조사만 한 차례 하고 그 뒤론 연락도 없다"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선관위는 굵직굵직한 관권선거 사건에 대해 의혹 제기도 못했고 조사도 못했고 고발도 못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선관위가 한 일은 도대체 무엇일까?

선관위 관계자는 "이주호 차관이 (출마 예상자에게) 압력을 행사한 정황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교과부 무상급식 전략 문건에 대해서는 "서면으로 또는 직접 조사를 했는데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하다가 시민사회단체가 고발해서 중복되기 때문에 별도 조치를 안했다"고 강조했다.

선관위가 관권선거를 감시하는 주요 수단은 내부 제보다. 선거법 위반을 고발하는 제보자에게 포상금을 주고, 본인이 원할 경우 다른 부처로 전출할 기회도 준다.

지난 3월 선관위는 이를 위해 유관기관과 협의를 하면서 "공무원 선거범죄에 대해서는 일반인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겠다"면서 "소속 기관의 장 및 상급 행정기관의 장에 위반사실을 통보하고 징계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선관위가 내놓은 자료에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칠순잔치를 빙자한 선심관광 제공' 외에는 별다른 관권선거 단속 성과가 보이지 않았다. 선관위 관계자는 "사실 조직에서 일어나는 (선거 개입) 부분은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제보 없이는 상당히 (감시가) 어렵다"고 말했다.

4대강 홍보는 "통상적 방법으로" 안내... 반대광고는 "선거법 위반" 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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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폭로된 교육감선거 개입 문건이 경찰이 작성한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경실련,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2010서울교육감시민선택' 소속 단체 회원들이 23일 낮 서울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책임자 처벌과 대국민 사과를 촉구했다. ⓒ 권우성


정작 선관위가 활약한 분야는 다른 데 있다. 지난 15일 친환경무상급식연대의 친환경무상급식 서명운동, 지난 14일 지율스님의 4대강 공사현장 사진전 및 캠페인이 이렇게 선관위로부터 불법통보를 받았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라는 것이 이유다.

선관위가 발표한 '선거쟁점과 관련한 시민·종교단체, 정부 및 정당 활동의 허용·금지사례'를 봐도, 4대강 사업과 무상급식 등의 현안에 대한 시민·종교단체의 활동은 거의 다 불법이다. 찬반집회나 서명운동은 물론이고 현수막을 거는 행위, 인쇄물을 작성해 배부하는 행위가 모두 금지된다.

선관위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정부의 국정설명회나 4대강 홍보사업에 대해서도 규제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12일 국토해양부의 관련 질의에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제해야 한다"는 취지로 회답을 보내기도 했다.

얼핏 보면 중립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한나라당 후보들에게 훨씬 유리한 게임이다. 야당은 친환경무상급식과 4대강 사업을 주요 선거쟁점으로 삼아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이에 대한 여론도 정부 여당에 불리하다.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이 쟁점이 가라앉을수록 좋다.

게다가 정부 쪽에 대한 선관위 규제도 명확한 '전면 금지'는 아니다. 4대강 사업 홍보에 대해서는 "기관 청사나 민원실에 인쇄물을 비치하거나 해당 기관 홈페이지에 설명자료 게시, 언론기관에 보도자료 제공, 기자회견 등의 통상적 방법으로 홍보하는 것은 무방할 것"이라고 안내했다. 국정설명회도 "최소한의 범위에서 제한적으로 개최"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지난 13일 환경단체 라디오광고 시안이 선거법 위반인지를 묻는 한국방송협회 측에 "공직선거법 92조 및 254조에 위반될 것임"이라고 명시했다. 광고는 "모래하천의 흰수마자, 아름다운 전설의 단양 쑥부쟁이, 천연기념물 재두루미, 4대강 사업으로 우리 땅 우리 강의 이 소중한 생명들은 다 어디로 가게 될까요?"라고 묻고 "환경운동연합의 회원이 되어주세요"라고 호소하는 내용이다.

이런 차이 때문일까. 정부의 4대강 사업 홍보는 별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일 정부와 한나라당이 4대강 사업에 대한 전방위 홍보전을 결의하면서 "우호단체를 활용해 캠페인 등을 추진한다"고 밝혔고, 바로 다음날인 21일 '4대강살리기 국민연합'이 출범했다. 22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대표적 녹색뉴딜 프로젝트'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2000년 낙천낙선운동, 그리고 10년 뒤

이재근 간사는 "선관위가 정책 의제나 회원 캠페인까지 단속하는 것은 이번 선거가 처음이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동안 주로 논란이 됐던 사안은 낙천·낙선운동처럼 직접 특정 후보나 정당을 반대 또는 지지하는 활동이었다는 것이다.

2000년 당시 총선시민연대는 "감옥에 갈 것을 결의했다, 시민의 자유로운 정치참여를 가로막는 선거법에 불복종을 선언한다"고 결연하게 외쳤다. 10년이 지난 지금,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캠페인 하나 열면서도 법 위반 여부를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이미 일부 활동가들은 무상급식 서명운동이나 4대강 반대 1인시위에 나섰다가 집시법 위반으로 소환장을 받아놓고 있다. 선거법 위반 고발은 없었지만 현 추세로는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안진걸 팀장은 "선관위가 정부 여당에 유리한 선거 국면을 만들어주고 있다"면서 의혹을 나타내기도 했다. 남은 임기 동안 각종 정책들을 밀어붙이기 위한 정부 여당 차원의 '큰 그림'이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아직까지 시민사회단체들은 '선거법 불복종'까지 나아가지는 않겠다는 방침이다. 자칫 불법 논란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일단 27일 오전 11시 경찰 책임자들 검찰에 고발하고 1인 시위를 이어가기로 했다.

좁은 합법의 틀에서 움직이는 시민단체들은 여론이 가장 큰 무기다. 그래서 촛불도 들었다. 26일 오후 7시 30분 활동가들과 시민 20여 명은 경찰이 만든 정보수집 지시 문건 복사물과 경찰청 앞으로 나섰다. 이 문건 위에는 "경감님, 나오세요"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이 보고 싶어하는 경감님이 누구인지는 아직 모른다. 문제의 문건이 보도된 지 이날로 6일째지만, 그동안 선관위는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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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유권자희망연대, 친환경풀뿌리무상급식국민연대, 4대강사업저지범국민대책위, 국민주권운동본부 소속 시민단체 대표들이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관권부정선거 규탄 비상회의'를 개최한 뒤 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우성


#관권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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